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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아리랑제, 20만여 명 함께하며 막 내려
‘정선의 소리, 끝없는 비상’을 주제로 지난 1일부터 4일까지 정선읍 일원에서 열린 제51회 정선아리랑제(사진)가 나흘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정선아리랑문화재단에 따르면 축제에는 군민과 관광객 20만여 명이 함께했다. 올해 축제는 영화 〈아리랑〉 탄생 100년과 1976년 시작된 정선아리랑제의 지난 50년을 돌아보고, 새로운 반세기의 출발을 알리는 자리로 마련됐다. 개막식에서는 군민·출연진의 아리랑 대... -
아리랑제 맛을 더하는 주민식당…봉사자도 함께 즐기는 축제로
임계면 출장뷔페 전환…인력 분산·교대 운영으로 공평한 참여 보장해야 <북평면 주민들이 정선아리랑제 주민식당에서 음식과 식재료 준비에 여념이 없다> 제51회 정선아리랑제가 성대한 막을 올렸다. 무대에 불이 켜지고 주민들이 공연장으로 모여들기 전, 북평면 새마을가족의 하루는 새벽 4시에 시작됐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시간, 새마을부녀회와 새마을지도자협의회 회원들은 복지... -
산등성이마다 은빛 파도…민둥산의 가을이 열렸다
바람이 능선을 쓸고 지나갈 때마다 억새가 몸을 눕혔다 일어선다. 햇빛을 받은 억새밭은 은빛으로 번쩍이고, 정상 부근의 돌리네는 파란 가을 하늘과 주변 산세를 한 폭의 그림처럼 품어낸다. 정선의 대표적인 가을 축제인 ‘제31회 민둥산은빛억새축제’가 지난 18일 남면 민둥산운동장에서 막을 올렸다. 축제는 오는 11월 8일까지 52일간 민둥산 일원에서 이어진다. 민둥산은 해발 1,119m로, 정상 부근에 펼쳐진 드넓은 ...
[연재소설|녹도아리랑 ㊻] 빈 배에 남은 노래 -끝
제46부 — 산으로 들어간 선조, 세상으로 돌아온 후손들의 아리랑
돌아오지 못한 이름과, 그 이름을 품고 살아온 사람들
2022년 6월 하순, 수연은 칠현의 후손들이 정선에 모인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국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이 선조의 자취를 찾아오는 자리였다.
고려가 무너지고 일곱 선비가 정선에 들어왔다고 전해지는 해로부터 육백삼십 년이 흘렀다.
안내문에는 남면 칠현사(七賢祠)에서 제례를 지내고, 이튿날에는 아리랑의 자취가 남은 곳들을 돌아본다고 적혀 있었다.
수연은 안내를 끝까지 읽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칠현 후손들이 정선에 온대요.”
어머니는 장소를 묻고 날짜를 다시 확인했다. 수화기 너머로 달력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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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녹도아리랑 ㊺] 돌아온 사람들의 집
제45부 — 이름을 찾다가 멈춘 사람 1994년 가을, 수연은 외할머니 이정숙의 장례를 치르고 어머니와 함께 빈집을 정리했다. 마당의 감나무는 잎을 거의 떨구었다. 비에 젖은 몇 장만 가지 끝에 붙어 있었고, 바람이 불면 처마 가까이 기울었다가 힘없이 돌아갔다. 장례 동안 마루를 메웠던 신발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먼지가 얇게 내려앉았다. 어머니는 방문을 열어 놓고도 한동안 들어가지 않았다. 아랫목의 이불과 벽에 ... -
[연재소설|녹도아리랑 ㊹] 재 속에서 건진 이름
제44부 - 이름 아래에 남겨진 삶을 다시 적다 정명이 스무 살을 넘겼을 무렵, 한결은 정선읍에 만물가게를 차렸다. 문을 열면 실타래와 헝겊이 놓인 선반부터 보였다. 그 아래에는 바늘 꾸러미와 크고 작은 생활용품이 차례로 들어앉았다. 장길에서 팔고 남은 물건을 등짐에 꾸려 돌아오던 사람이 이제는 가게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렸다. 처음에는 밖에서 발소리만 들려도 고개를 들었으나, 차츰 선반 앞에 앉아 물건을... -
[연재소설|녹도아리랑 ㊸] 돌아오려고 갑니다
제43부 — 만세를 부르러 떠나는 아들, 다시 기다리는 어머니 1919년 봄, 만세 소식은 장꾼들의 등짐과 함께 정선으로 들어왔다. 먼 장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서울에서 조선의 독립을 선언했다고 했다. 천도교 지도자 손병희가 앞장섰고, 예수교 사람들과 절에 있는 사람들도 함께했다는 말이 고개를 넘어왔다. 장터에서는 물건을 고르던 사람이 손을 멈추었고, 이야기를 전하던 장꾼은...
[연재소설|녹도아리랑 ㊷] 두 아버지의 이름
제42부 - 아버지의 등짐을 지고 새로운 길을 배우다
원복은 그해 겨울을 방 안에서 보냈다.
낮에 녹아 처마를 타고 흐르던 물은 밤이면 길게 얼어붙었다.
새벽에 다시 내린 눈은 전날 마당을 건넌 발자국을 덮었다.
한결은 먼 장으로 나가는 일을 줄이고, 길에서 돌아오면 등짐을 내려놓기 전에 방문부터 열었다. 아버지가 잠들어 있으면 문턱에 앉아 숨소리를 듣다가 조용히 물러났다.
깨어 있으면 찬 손을 옷 안에 넣어 데운 뒤 이불 밖으로 나온 손을 잡았다.
원복은 몸이 조금 나아지면 일어나 앉아 남은 물건을 헤아렸다.
바늘 꾸러미를 옮기고 실타래를 빛깔대로 놓다가 숨이 차면 손을 멈추었으나, 한결이 곁에 앉으면 어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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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녹도아리랑 ㊶] 품에 남은 무게
제41부 - 묻지 못한 어머니 원복이 들어온 뒤 동백은 두 배를 번갈아 부리지 않았다. 그가 나루 일을 맡는 동안 그녀는 문턱에 앉아 짚신을 삼고 밧줄의 해진 데를 고쳤다. 강 쪽에서 손님을 부르는 소리가 나면 습관처럼 고개를 들었으나, 배가 기슭을 떠나는 것을 보고 다시 손에 잡힌 짚을 비볐다. 젖은 짚을 꼬아 당길 때마다 손가락 마디에 물기가 맺혔다. 뒤꼍의 감자는 잎을 넓히고 있었다. 동백은 비 온 뒤 ... -
[연재소설|녹도아리랑 ㊵] 내가 아버지가 되겠소
제40부 - 무진의 아이를 지키려는 사람들 무진의 장례를 치른 뒤 사흘 동안 순덕은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밤새 문풍지가 울고 처마에 얹힌 눈이 마당으로 쓸려 내려와도 아궁이 앞에 앉아 타들어 가는 나무 끝만 바라보았다. 불이 사그라진 뒤에도 한동안 장작을 밀어 넣지 않아, 순임이 곁에 와 앉으면 그제야 부지깽이를 들었다. 아침에는 아들이 쓰던 방을 쓸었다. 사람이 눕지 않은 ... -
고한로타리클럽, 봉사 50년 넘어 새로운 100년으로
고한로타리클럽(회장 이만용)이 창립 50주년을 맞아 ‘봉사로 이어 온 50년, 사람으로 이어 갈 100년’을 기치로 새로운 도약을 다짐했다. 클럽은 지난 6일 하이원 팰리스호텔에서 회원과 이소희 국제로타리 3730지구 총재 등 내빈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50주년 기념식(사진)을 열었다. 1976년 10월 10일 창립한 고한로타리클럽은 지역사회와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을 이어 왔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기념영상과 경과보고로 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