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키워드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연재소설|녹도아리랑 ㊶] 품에 남은 무게

  • 김광희 기자
  • 입력 2026.10.07 12:46
  • 댓글 0
  • 글자크기설정

  • 정선 동학항쟁사, 기록에 남지 않은 사람들

41-1 65%.png

 

제41부 - 묻지 못한 어머니

 

원복이 들어온 뒤 동백은 두 배를 번갈아 부리지 않았다.

그가 나루 일을 맡는 동안 그녀는 문턱에 앉아 짚신을 삼고 밧줄의 해진 데를 고쳤다.

강 쪽에서 손님을 부르는 소리가 나면 습관처럼 고개를 들었으나, 배가 기슭을 떠나는 것을 보고 다시 손에 잡힌 짚을 비볐다. 젖은 짚을 꼬아 당길 때마다 손가락 마디에 물기가 맺혔다.

뒤꼍의 감자는 잎을 넓히고 있었다.

 

동백은 비 온 뒤 흘러내린 흙을 줄기 밑으로 모아 주다가 배가 당기면 괭이를 놓고 앉았다. 예전 같으면 한 고랑을 마저 끝냈겠지만 이제는 손바닥으로 배를 감싼 채 숨이 고르게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흙 묻은 손 아래에서 아이가 움직이는 날이면 하던 일을 잊고 한참 그대로 있었다.

마을에서는 두 사람이 함께 산다는 말을 먼저 했다.

동백의 몸이 달라지는 것을 본 사람들도 원복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그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손님을 건네고 돌아오면 밭으로 가서 그녀가 남겨 둔 고랑을 마저 덮었으며, 동백이 일어나려 하면 괭이를 받아 들었다.

“나머지는 내가 하겠소.”

그녀가 언덕을 오르는 동안 원복은 흙을 모았다. 동백은 방문을 열기 전에 한 번 돌아보았다. 고랑 사이에 굽은 등이 있었고, 그 뒤로 강물이 봄보다 불어난 몸을 밀고 흘렀다.

 

순덕이 동백을 다시 본 것은 봄이 깊어진 뒤였다.

두 사람이 남면의 대문에 이르자 순임이 달려 나와 동백의 손을 잡았다. 순덕은 부엌에서 나오다가 마당 한가운데 멈췄다. 늙은 도수매에서는 꽃이 거의 지고 어린 잎이 돋아 있었으며, 담 밑에는 바람에 밀린 꽃잎 몇 장이 흙에 붙어 있었다.

동백이 마루에 앉아 신을 벗을 때 치마 위로 배의 윤곽이 드러났다. 순덕은 손에 든 바가지를 내려놓지 못했다. 무진이 떠나던 가을부터 속으로 달을 헤아렸다. 겨울을 지나고 봄을 넘기는 동안 접었던 손가락을, 동백이 몸을 일으키자 슬그머니 폈다.

“먼 길에 힘들었겠네.”

그 말만 하고 부엌으로 돌아갔다.

바가지의 물을 솥에 부으려다가 조금 흘렸고, 젖은 부뚜막을 손바닥으로 훔친 뒤에야 보리를 씻었다. 손을 물에 담그고도 한동안 낟알을 문지르지 않았다.

 

무진과 살림을 꾸리려던 아이였다.

이제는 원복과 함께 왔고, 몸 안에는 또 다른 목숨이 자라고 있었다. 순덕은 마루에서 들려오는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바가지 바닥을 쓸었다. 헤아린 달 가운데 어느 하나를 잘못 짚었을 수도 있었다. 아들을 잃은 뒤에는 며칠이 지났는지조차 모르는 날이 많았다.

순덕은 보리밥을 짓고 말린 나물을 불렸다. 겨우내 바싹 말라 있던 줄기를 물속에서 펴 주고 억센 끝은 따로 골랐다. 그릇을 놓을 때 동백의 몫에는 밥을 조금 더 눌러 담았다. 원복이 그것을 보고 제 그릇을 순임 쪽으로 당겨 덜어 주자, 순덕은 부엌으로 돌아가 솥뚜껑을 닫았다.

 

동백은 밥을 넘기다가 물을 마셨다.

순덕의 그릇에는 나물 줄기가 많았다. 씹는 동안 움푹 팬 볼이 천천히 움직였고, 숟가락은 좀처럼 밥 쪽으로 가지 않았다.

아이에 관한 말이 나오면 저 얼굴을 보며 대답할 수 있을까. 누구의 아이냐고 물으면 원복을 돌아볼 수 있을까.

동백은 숟가락을 쥔 채 순덕의 손을 보았다. 순덕은 밥상 아래로 흘러내린 순임의 소매를 걷어 주고 동백에게 나물그릇을 밀었다.

끝내 묻지 않았다.

돌아갈 때에는 묵은 감자를 보자기에 싸 주었다. 싹을 떼어 낸 자리에 손톱 자국이 남아 있었고, 작은 것들은 껍질이 쭈그러져 있었다.

“많이 남지 않았을 텐데요.”

동백이 말하자 순덕은 매듭을 더 단단히 조였다.

“우리도 심어 놓았다.”

아직 밭에서는 잎만 올라오고 있었다. 동백은 보자기를 받아 들었다. 돌려드리면 순덕의 손이 오래 허공에 남을 것 같았다.

 

그날 밤 순덕은 무진의 겨울옷을 꺼냈다.

소매 안쪽에 덧댄 천을 만지다가 순임의 옷도 곁에 놓았다. 딸의 팔꿈치를 가릴 천이 필요했다. 아들의 옷 안쪽에는 아직 쓸 만한 데가 있었다.

가위를 가져와 소매에 대었으나 벌어진 날을 다물지 못했다. 이 옷을 입던 팔은 흙 속에 묻혔고, 다시 기워 줄 일도 없었다. 그래도 한 번 자르면 무진에게서 또 무엇을 떼어 내는 것 같았다.

순덕은 아들의 옷을 접어 안쪽으로 밀고 제 치마의 속단을 조금 뜯었다.

순임이 잠든 곁에서 바늘을 움직일 때마다 짧아진 치마 끝이 무릎 위로 올라왔다.

 

41-2 65%.png

 

아이가 태어난 날은 바람이 없는 초여름 아침이었다.

강에는 얇은 안개가 남아 있었고, 나루의 밧줄을 푸는 원복의 등으로 볕이 들기 시작했다. 동백이 문밖에서 그를 불렀다. 평소보다 낮고 끊기는 목소리에 그는 밧줄을 다시 걸고 언덕을 올라왔다.

동백은 문설주를 붙든 채 서 있었다. 원복이 팔을 받치자 몸을 맡겼으며, 방에 들어가서도 손을 놓지 못했다. 그는 그녀를 눕히고 마을의 산파를 데리러 달려갔다.

이웃 여인도 천 꾸러미를 들고 들어왔다. 원복은 부엌에서 시키는 일을 했다. 물이 끓으면 옮기고 젖은 천이 나오면 받아 두었다. 무엇을 더 해야 하느냐고 자꾸 묻다가 산파에게 아궁이 불이나 지키라는 말을 들었다.

해가 마당 가운데로 옮겨 갔다.

 

원복은 방에서 나는 소리를 따라 일어서고 앉았다. 동백의 숨이 길게 새어 나오면 부지깽이를 쥔 손이 멈췄고, 잠깐 조용해지면 문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밖에서는 첫 손님이 나루의 빈 배를 보고 돌아가는 발소리가 났으나 그는 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이의 울음이 들렸을 때 원복은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처음 듣는 작은 목소리가 방 안을 채우자 일어서려다가 무릎에 힘이 풀려 부뚜막을 짚었다. 산파가 문을 열고 부르자 손과 발을 씻고 문턱을 넘었다.

 

동백은 이불 위에 누워 있었다.

입술은 말라 갈라졌고 이마의 머리카락은 젖어 붙어 있었다. 그녀의 곁에 작은 몸이 놓여 있었다. 원복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도 동백은 아이 쪽으로 얼굴을 돌린 채였다.

“받아 보게.”

원복이 두 팔을 내밀자 산파는 아이의 머리와 등을 받치게 해 주었다. 아이는 가벼웠으나 그는 몸을 굳힌 채 서 있었다.

“숨을 쉬어야지. 자네가.”

그가 길게 숨을 내쉬자 아이의 눈두덩이 가늘게 떨렸다. 천 밖으로 나온 발을 동백이 덮어 주었고, 원복은 아이를 가슴 가까이 안고 이불 끝에 앉았다.

작은 입술이 벌어졌다 닫혔다. 동백은 그 움직임을 보다가 울었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술을 다물었으나 눈물이 귀밑으로 흘렀다.

 

무진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이 작은 발과 손톱, 울다가 지쳐 잠드는 얼굴을. 그가 겁을 내며 두 팔을 내밀면 잘 받치고 있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를 안고 있는 사람은 원복이었고, 그가 얼마나 조심스럽게 안고 있는지 알면서도 다른 얼굴을 떠올리는 자신이 미안했다.

원복은 아이를 놓지 않은 채 곁의 천을 그녀에게 건넸다. 동백이 얼굴을 닦는 동안 그의 팔 안에서 아이가 고개를 조금 움직였다. 원복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작게 말했다.

“여기 있소.”

아이에게 하는 말인지 동백에게 하는 말인지 그녀는 묻지 않았다. 천을 내려놓고 아이의 뺨에 손끝을 대었다.

 

남면에 소식이 닿은 것은 며칠 뒤였다. 정선읍에서 오던 장꾼이 순덕에게 동백이 사내아이를 낳았다고 전했다.

순덕은 보리를 씻던 바가지를 부뚜막에 놓았다. 물 위에 뜬 쭉정이를 걷던 손이 젖은 채 멈췄다.

“동백은 괜찮다던가?”

무사하다는 말을 듣고도 한 번 더 물었다. 장꾼이 떠난 뒤에는 순임에게 집을 맡기고 길 떠날 채비를 했다. 가져갈 것을 찾았으나 독에는 보리가 바닥을 겨우 가리고 있었다. 그녀는 남은 감자를 꺼내 성한 것부터 골랐다.

보자기를 묶고 나서야 손이 멎었다. 무슨 마음으로 가는지 자신도 선뜻 말할 수 없었다. 동백이 무사하다니 얼굴을 보고 와야 했다. 아이도 한번 안아 보고 싶었다. 그다음 생각은 매듭 안으로 눌러 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우라지에 도착했을 때에는 해가 기울어 있었다.

치맛단에 마른 진흙이 붙었고, 오래 쥐고 온 보자기의 매듭은 납작하게 눌려 있었다. 언덕을 오르며 몇 번 쉬었으나 대문 앞에서는 숨을 고르지도 않고 방 쪽을 보았다.

원복이 짐을 받으려 하자 순덕이 물었다.

“자니?”

동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덕은 발소리를 죽여 들어왔다. 아이 곁에 앉아 눈두덩과 오므린 입술을 살폈다. 머리카락을 만지려다가 손을 거두어 치마에 닦았다. 길에서 묻은 먼지가 남아 있을까 손바닥을 뒤집어 보기도 했다.

 

동백은 그 손을 보고 있었다.

“안아 보시겠어요?”

순덕은 두 팔을 내밀었다. 아이가 품으로 옮겨지자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그녀는 팔을 고쳐 잡고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아이의 숨이 턱 아래에 닿았고, 싸 놓은 천 안에서는 작은 몸이 한 번 꿈틀거렸다.

무진도 처음에는 눈을 잘 뜨지 못했다. 젖을 먹고 나면 한 손을 펴서 순덕의 옷깃을 잡았다.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 놓아도 다시 쥐곤 하여, 급한 일을 앞두고도 아이가 놓아 줄 때까지 앉아 있던 날이 있었다.

 

순덕은 아이의 손 가까이에 제 손가락을 가져갔다. 작은 손이 닿자 가슴이 먼저 움직였다. 그녀는 아이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닮았다고 생각하면 닮은 것 같았고, 눈길을 옮기면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갓난아이들은 모두 이렇게 눈을 감고 입을 오므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름은 지었니?”

“한결이라고 지었습니다.”

“한결아.”

순덕이 작게 부르자 아이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녀는 한 번 더 부르려다가 천을 조금 끌어 올렸다. 동백은 무릎 위에서 두 손을 맞잡고 있었다.

 

그때 마당에서 원복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그의 부모가 아이를 보러 온 것이었다. 어머니는 미역을 싼 보자기를 들고 있었고, 아버지는 문밖에서 신에 묻은 흙을 털었다.

원복이 부모를 맞아 방으로 들였다. 순덕이 아이를 안은 채 몸을 비키려 하자 원복의 어머니가 손을 내저었다.

“그대로 계세요. 아이 깨겠어요.”

그녀는 보자기를 내려놓고 순덕의 품으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한결의 입술이 움직이자 웃으며 남편을 돌아보았다.

“보세요. 원복이도 갓났을 때 입을 저렇게 오므렸지요.”

아버지가 허리를 굽혀 아이를 들여다보았다.

“잠든 것까지 제 아비 같구먼.”

 

42-1 65%.png

 

원복은 문가에서 눈을 내렸다.

동백은 이불의 접힌 끝을 펴고 있었으나 손끝이 같은 자리를 거듭 문질렀다.

순덕은 품 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무진의 입술처럼 보였던 곳을 다른 사람이 원복의 입술이라 했다. 그녀는 아이의 천을 여미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잘못 보았을 수도 있었다. 아들을 잃고 나서는 장터에서 비슷한 뒷모습만 보아도 몇 걸음씩 따라간 적이 있었다.

“한번 안아 보시겠습니까.”

순덕이 아이를 내밀었다.

원복의 어머니는 두 팔을 벌렸다. 아이가 옮겨 가는 동안 순덕은 머리 밑에 넣었던 손을 늦게 뺐다. 천의 끝이 손가락에서 미끄러져 나가자 팔 안으로 서늘한 공기가 들었다.

“우리 아들 어릴 때를 다시 보네.”

원복의 어머니가 아이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남편은 곁에 앉아 천 밖으로 나온 손을 보고 웃었다.

“손이 야무져. 크면 제 아비 일도 거들겠어.”

 

순덕은 무릎 위에 두 손을 놓았다.

품에 안았던 모양대로 손가락이 조금 굽어 있었다. 펴려다가 그대로 두고 동백을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동백의 얼굴에는 아직 해산의 피로가 남아 있었고, 말라 갈라진 입술이 잠깐 열렸다가 닫혔다. 순덕도 입을 열려다가 아이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작은 손이 원복 어머니의 옷깃을 쥐고 있었다.

순덕은 무릎에 놓인 손을 포개었다.

원복의 어머니는 동백에게 미역을 건네고 몸을 잘 추스르라고 당부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이가 울거든 어미만 깨우지 말고 먼저 일어나라고 일렀다.

“예. 그러겠습니다.”

 

원복의 대답이 방 안에 낮게 남았다. 순덕은 그 목소리를 듣고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부모가 돌아간 뒤 원복이 물을 가져왔다. 순덕은 그릇을 받아 몇 모금 마셨다. 동백의 곁에서는 한결이 다시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물그릇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이가 순하네.”

동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사이에 그 말만 남았다.

그날 밤 순덕은 아우라지에서 묵었다. 아이가 울 때마다 몸을 일으켰지만 원복이 먼저 물을 데웠다. 동백에게 아이를 건넨 뒤에는 젖은 기저귀를 받아 밖으로 나갔다. 새벽까지 말려야 할 천을 처마 밑에 널고, 바람이 들지 않게 문틈을 막았다.

 

순덕은 누운 자리에서 그 발소리를 들었다.

물을 붓는 소리와 장작을 밀어 넣는 소리, 젖은 천을 짜는 소리가 차례로 이어졌다. 아이가 잠잠해진 뒤에도 원복은 한 번 더 문을 살피고 누웠다.

순덕은 무진의 어린 얼굴을 떠올리려다가 등을 돌렸다. 방 안에는 젖 냄새와 데운 물의 김이 엷게 남아 있었다. 오래전 자기 방에서도 나던 냄새였다.

이튿날 원복은 길에서 먹을 밥과 집에 가져갈 보리를 싸 주었다. 순덕이 사양하자 그는 보자기를 짐 위에 올려놓고 매듭을 묶었다.

 

동백은 아이를 안고 문 앞에 서 있었다.

순덕은 그 얼굴을 보다가 아이를 덮은 이불 끝을 여며 주었다. 손가락이 작은 턱 가까이 갔다가 옷깃으로 내려왔다.

“젖 먹일 때 네가 굶으면 안 된다.”

동백은 고개를 숙였다.

순덕은 손을 거둔 뒤에도 바로 돌아서지 못했다. 아이의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었으나 이불을 다시 들추지는 않았다.

“몸 좀 나으면…….”

말을 잇지 못하자 동백이 그녀를 보았다.

“한결이 데리고 찾아뵙겠습니다.”

 

순덕은 고개를 끄덕이고 언덕을 내려갔다.

중간에서 한 번 돌아보았을 때에도 동백은 문 앞에 서 있었다. 원복이 그녀 곁으로 다가가 아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순덕은 보자기를 고쳐 쥐었다. 품에 안았을 때에는 그렇게 가벼웠던 아이가, 내려놓고 나오니 팔 안에서 오래 무거웠다.

동백도 바로 방에 들어가지 못했다. 순덕이 보이지 않게 된 뒤 아이의 얼굴을 가슴 가까이 당겼다. 품 안의 숨이 따뜻하게 닿자 고개를 숙여 작은 이마에 입술을 댔다.

저녁 무렵 원복은 잠든 아이를 내려다보다가 동백에게 물었다.

“이한결이라 부르겠소?”

아이는 젖을 먹다 만 입을 조금 벌리고 있었고, 손 하나가 동백의 옷깃에 걸려 있었다. 그녀는 그 손을 떼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서 누가 물으면 내 아들이라 하겠소.”

 

동백은 아이의 옷깃을 여미며 입 안에서 이름을 불러 보았다.

이한결.

무진의 아이가 원복의 성을 얻었다. 그녀는 작은 손에 붙들린 옷깃을 그대로 두었다.

원복은 새 나무그릇 하나를 선반에 올렸다. 먼저 있던 두 그릇을 옆으로 조금 옮겨 자리를 마련했다. 작은 그릇을 집었다가 바닥의 칼자국을 보고 그대로 내려놓았다.

“한결이가 밥을 먹게 되면 하나 더 만들겠소.”

 

동백은 선반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그릇 사이로 등잔불이 들었고, 무진이 깎은 그릇의 한쪽 밑바닥에는 짧은 그림자가 고였다.

밤에 아이가 울자 원복이 먼저 일어났다. 동백에게 건네고 부엌으로 나가 물을 데웠다. 방문 아래로 그의 그림자가 움직였으며, 아궁이에 넣은 장작이 작은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젖을 먹고 잠든 아이를 내려다보던 동백은 손끝으로 젖은 입가를 닦았다. 아이의 손이 다시 옷깃을 쥐었다. 그녀는 그 손 위에 제 손을 포개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네 아버지 이름은 변무진이야.”

물을 들고 들어오던 원복이 문가에 멈췄다.

 

동백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아이의 손가락을 하나씩 펴 주다가 다시 쥐게 내버려 두었다.

원복은 물그릇을 내려놓고 아이 곁에 앉았다. 이불 밖으로 나온 작은 발을 안으로 넣어 주고, 동백의 손이 닿지 않는 쪽의 이불 끝을 여몄다.

멀리 남면의 집에서 순덕은 순임과 저녁을 먹었다. 원복이 싸 준 보리로 지은 밥이었다. 딸이 그릇을 비운 뒤에도 순덕은 숟가락을 든 채 앉아 있었다.

“아기는 누구 닮았어요?”

순덕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한결의 눈두덩과 오므린 입술이 떠올랐고, 그 위로 원복 어머니의 말이 겹쳤다.

“아직 어려서 모르겠구나.”

순임은 고개를 끄덕였다.

 

42-2 65%.png

 

순덕은 딸의 빈 그릇을 제 그릇 위에 포개어 부엌으로 가져갔다.

잠자리에 들어서는 무진의 어린 얼굴을 떠올렸다. 젖을 먹고 잠들던 얼굴을 더듬어 보았으나 어느새 한결의 눈두덩과 입술이 겹쳐졌다. 순덕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아들의 얼굴을 보려 할 때마다 오늘 품에 안았던 아이가 먼저 돌아왔다.

곁에서 순임이 잠결에 몸을 돌렸다. 기워 준 소매가 걷혀 있어 순덕은 팔꿈치 아래까지 내려 주었다. 그러고는 비어 있는 제 팔 안쪽에 손을 넣었다.

한결아.

낮에 부르던 이름을 입술로만 불러 보았다. 아우라지에서는 그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었다. 아이가 울면 안아 주고, 눈을 뜨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웃어 줄 사람들이.

 

순덕은 이불 속에서 두 팔을 조금 오므렸다.

아이의 머리가 놓였던 쪽으로 손을 옮기자 손바닥에는 제 팔의 식은 살만 닿았다.

혹시 무진의 아이였다면.

생각이 거기까지 갔다가 멎었다. 순덕은 더 헤아리지 않고 팔 안쪽을 천천히 쓸었다. 낮에 내려놓은 아이를 깨우지 않으려는 것처럼, 아주 가볍게.

ⓒ 정선신문 & jsweek.net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전체댓글 0

추천뉴스

  • 강원랜드 한가위 전통시장 찾아 지역상권 활성화 나서
  • 추석 연휴에도 정선 관광시설 문 활짝
  • 정선군 목재문화체험장 인기
  • “농어촌 기본소득 바람·사전투표 압승…최승준 징검다리 4선 견인”
  • 최승준 민주당 후보 정선군수 당선 확정
  • 공연 보면 케이블카 반값… 정선형 ‘문화관광 패키지’ 뜬다
  • 최승준 정선군수 후보, 막판 표심 공략 총력…“129 민간구급차 지원 추진”
  • 차 한 잔의 행복 - 달팽이 뿔 위 에서 의 싸움
  • 정선군 예미농공단지 공공폐수처리시설 2단계 증설
  • 강원랜드, 태백진로박람회서 청소년 도박예방 캠페인 전개

포토뉴스

more +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연재소설|녹도아리랑 ㊶] 품에 남은 무게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