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병원 언어치료사가 의사소통기기를 한번 써보라며 빌려준 것은 그 무렵이었다.
아내는 말을 알아듣고 글자도 읽을 수 있었다.
다만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을 입 밖으로 온전히 밀어내지 못했다.
언어치료사는 작은 태블릿을 거치대에 고정하고 화면에 큼직한 한글 자판을 띄웠다.
힘이 남은 오른손으로 글자를 고른 뒤 음성출력 버튼을 누르면, 입력한 문장을 기계가 대신 읽어주었다.
손끝은 자꾸 옆 칸으로 미끄러졌다.
글자 하나를 고르기 위해 잘못 누른 글자를 몇 번씩 지워야 했다.
아내가 처음 완성한 말은 두 글자였다.
물 줘.
음성 버튼을 누르자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물 줘.”
나는 웃으며 컵을 들었다.
몇 년 만에 아내의 뜻을 알아맞히지 않고도 부탁을 들은 날이었다.
그러나 기뻐하는 나를 바라보던 아내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평생 수없이 내 이름을 불러주었던 아내가 이제는 기계 속 낯선 여자의 목소리를 빌려 물을 청하고 있었다.
그 뒤로 화면에는 짧은 말들이 쌓였다.
아파.
돌려줘.
추워.
미안해.
아내가 가장 자주 누른 말은 ‘괜찮아’였다.
괜찮지 않은 사람이 하루에도 몇 번씩 괜찮다고 말했다.
어느 저녁, 아내는 기계를 가슴 앞으로 당겨달라는 눈짓을 했다.
나는 거치대를 침대 가까이 옮겼다.
검지가 화면 위를 느리게 기어갔다. 잘못 누른 글자를 지우고 다시 쓰는 동안 손등에는 핏줄이 솟았고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나는 대신 눌러주고 싶었다.
그러나 아내가 꺼내려는 말을 내가 먼저 짐작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두 손을 무릎 사이에 끼운 채 기다렸다.
한 글자씩 문장이 생겨났다.
나를 요양원에 보내줘.
아내는 완성된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손가락은 지우기 버튼 가까이에 머물렀다. 그러나 문장을 지우는 대신 음성 버튼을 눌렀다.
“나를 요양원에 보내줘.”
밝고 반듯한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는 망설임도 울음도 없었다. 아내가 직접 말했다면 그 말 사이에 섞였을 숨과 떨림을 나는 혼자 찾아 들어야 했다.
“거길 가고 싶어?”
아내는 ‘네’라고 눌렀다가 지웠다.
응.
“응.”
“내가 그렇게 못해줘?”
아니.
“아니.”
“내가 귀찮아서 그래?”
손가락이 멎었다.
아내는 오른손을 이불 위에 내려놓고 한동안 숨만 골랐다.
나는 더는 쓰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손이 다시 올라왔다.
여기 더 있으면 나도 미칠 것 같아.
한 문장을 완성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기계는 그 시간을 모르는 목소리로 읽었다.
“여기 더 있으면 나도 미칠 것 같아.”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당신도 미칠 거야.
“당신도 미칠 거야.”
나는 그 말이 틀렸다고 하고 싶었다.
아직은 견딜 수 있다고, 당신 한 사람쯤은 내가 끝까지 돌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내는 다음 문장을 쓰고 있었다.
나도 화가 나.
기계가 읽었다.
“나도 화가 나.”
나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아내의 눈에서 오래 눌러둔 것이 처음으로 밖을 향해 열리고 있었다.
왜 나만 이렇게 됐어.
“왜 나만 이렇게 됐어.”
손가락이 떨리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당신이 한숨 쉬는 것도 싫어.
그래도 당신을 불러야 하는 내가 더 싫어.
기계는 그 말을 한 치도 떨리지 않고 읽었다.
나는 변명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밤마다 아내의 부름 앞에서 내쉰 한숨을 아내가 듣지 못했을 리 없었다.
내가 아내의 몸을 견디는 동안, 아내는 나의 피로를 견디고 있었다.
잠시 뒤 아내가 다시 글자를 골랐다.
우리 둘 다 너무 지쳤어.
“우리 둘 다 너무 지쳤어.”
그리고 한 줄이 더 생겼다.
나는 몸이 지쳤고 당신은 마음이 지쳤어.
기계는 아내가 온몸으로 밀어 올린 문장을 너무도 수월하게 읽었다.
“나는 몸이 지쳤고 당신은 마음이 지쳤어.”
그때 아내의 손이 화면 아래로 미끄러졌다.
애써 만든 문장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아내는 빈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미 들었으니 다시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려는 순간, 아내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말이 지워진 채로 끝나는 것을 견딜 수 없다는 듯 처음부터 다시 글자를 골랐다.
오른손이 심하게 떨렸다.
나는 그 손을 붙잡으려다 멈추었다.
한 글자씩, 오래 참아온 말이 다시 화면 위로 돌아왔다.
더 미워하기 전에 나를 놓아줘.
그래야 좋았던 때를 기억할 수 있어.
당신도 이제 좀 편하게 살아.
마지막 글자를 누른 아내는 손가락을 자판 위에 오래 올려두었다.
이번에도 지울 수 있었다.
고치거나, 없던 말로 돌릴 수도 있었다.
아내는 그러지 않았다.
마침내 음성 버튼을 눌렀다.
“더 미워하기 전에 나를 놓아줘. 그래야 좋았던 때를 기억할 수 있어. 당신도 이제 좀 편하게 살아.”
기계 속 여자는 울지 않았다.
아내가 평생 가장 힘들게 꺼낸 말을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끝까지 읽었다.
기계음이 멎자 방 안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남았다.
우리가 무너지는 동안에도 냉장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켜졌다가 꺼지기를 되풀이했다.
아내의 오른손이 이불 위를 조금씩 건너와 내 손등에 닿았다.
손바닥을 뒤집어 내 손을 감싸려 했으나 손가락은 다 오므라들지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아내는 자기를 보내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두 사람을 여기서 꺼내달라고 하고 있었다.
나는 아내의 손을 이불 위에 내려놓고 일어섰다.
“별소리를 다 한다. 아직 내가 멀쩡해.”
부엌으로 나와 수도꼭지를 틀었다.
씻을 그릇도 없는데 물을 오래 흘려보냈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부어 있었고 눈 밑은 검었다.
멀쩡하다는 말은 방 안의 아내보다 싱크대 앞의 나에게 더 필요한 말이었다.
낮에는 아내의 뜻을 따르겠다고 마음먹었다. 밤이 되면 그 결심이 배신처럼 느껴졌다.
내 두 팔과 두 다리는 아직 성했다. 그 성한 팔다리로 평생을 함께 산 사람을 모르는 이들의 손에 맡긴다는 것이 어떤 이름으로도 버림이 아닌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팔다리로도 나는 이미 아내를 온전히 돌보지 못하고 있었다.
아내를 보내는 일도 사랑 같았고, 붙잡는 일도 사랑 같았다.
어느 쪽을 택해도 한 사람은 버려질 것 같았다.
날이 밝으면 다시 아내의 곁이었다.
기저귀와 약봉지와 미음 그릇 사이에서 하루가 시작돼 같은 자리에서 끝났다.
아침에 걷은 빨래를 저녁에 개고, 밤에 갈아준 기저귀를 새벽에 다시 갈았다.
달력은 한 장씩 앞으로 넘어갔지만, 나는 아내가 누운 그 하루의 가장자리만 닳도록 돌고 있었다.
아내를 돌보는 일이 허무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밖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내가 허무했다.
나는 몇 년째 우울증 약을 먹고 있었다.
약을 삼키면 마음의 바닥이 조금 평평해지는 대신 몸이 종일 무겁고 졸렸다.
새벽에 화장실에 가다가 벽에 걸린 옷을 사람으로 보고 멈춰 선 적도 있었다. 마당 끝에서 누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 나가보면 바람에 빈 빨랫줄만 흔들렸다.
잠이 모자란 것인지, 약 때문인지, 내가 정말 무너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텔레비전을 켜면 죽음이 먼저 얼굴을 내밀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십 년 넘게 돌보던 아들이 어느 날 어머니를 숨지게 한 뒤 자신의 목숨도 끊었다.
앵커는 오랜 간병과 생활고 끝에 벌어진 일이라고 짧게 덧붙였다.
십 년의 밤이 몇 줄의 자막으로 화면 아래를 지나갔다.
며칠 뒤에는 자신이 죽고 나면 중증 장애가 있는 아들을 맡아줄 사람이 없다며 아들과 함께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소식이 나왔다.
나는 채널을 돌렸다.
그러나 죽음은 다른 번호에서도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과 이름, 병명만 달랐을 뿐 마지막에 남긴 말은 비슷했다.
혼자 두고 갈 수 없어서.
맡길 곳이 없어서.
더는 견딜 수 없어서.
아내의 병이 십 년을 넘긴 뒤부터 뉴스 속 죽음은 남의 집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텔레비전을 끄고 나서도 그들의 마지막은 방 안에 남았다.
희미한 수면등 아래에서 아내의 가슴이 천천히 오르내리고 있었다.
살아 있다는 안도와 내일도 이 삶이 계속된다는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가장 무서운 것은 죽음을 택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절망이 더는 낯설지 않은 나였다.
꺼진 화면에 내 얼굴이 떠올랐다.
오래 잠들지 못한 눈과 마른 입술, 나도 모르는 사이 깊어진 주름이 어둠 속에서 낯선 사람의 얼굴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나는 두려워졌다.
아내가 죽을까 봐서만은 아니었다.
어느 날 사랑보다 피로가 더 커질까 봐, 아내를 살피던 내 손이 전혀 다른 손으로 변해버릴까 봐 두려웠다.
모든 것이 끝난 뒤 그 손으로 나 자신에게는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검은 화면 속 남자를 오래 바라보았다.
그가 아직 나인지, 아니면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사람이 이미 되어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아내가 기계를 눌렀다.
“당신.”
나는 돌아보았다.
아내가 다시 글자를 골랐다.
손끝이 몇 번이나 옆 칸으로 미끄러졌다. 잘못 누른 글자를 지우고, 떨리는 손을 쉬었다가 다시 화면으로 가져갔다.
마침내 기계 속 여자가 말했다.
“나를 보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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