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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사십팔 킬로그램의 이별 ⑧] 돌아오는 차에는 아내가 없었다

  • 김광희 기자
  • 입력 2026.09.10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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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소를 사흘 앞둔 날 아이들을 불렀다. 

사위도 며느리도 손주들도 데려오지 말고, 이번에는 우리 네 식구만 밥을 먹자고 했다.

딸은 생크림 케이크와 어머니가 좋아하던 포도를 사왔다. 아들은 닭고기와 숯, 식당에서 쓰던 것과 닮은 낡은 석쇠를 가져왔다.

딸은 평상 위에 흰 상보를 펴고 접시 네 장을 놓았다.

아들은 휠체어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꽃밭 사이의 흙길을 널빤지로 눌렀다.

내가 숯불을 피우자 연기가 낮게 깔렸다가 동강 쪽으로 흘러갔다.

닭고기에서 떨어진 기름이 숯에 닿을 때마다 불꽃이 일었다.

그 냄새를 맡은 아내가 식당에 있을 때처럼 주방을 찾는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엄마, 오늘은 손님 없어. 앉아만 있어.”

딸이 말하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평생 어머니에게 한 번도 해주지 못한 말을 너무 늦게 건넨 사람의 얼굴이었다.

아들은 잘 익은 살코기를 잘게 찢어 어머니의 접시에 놓았다.

 

아내가 삼키기 쉽도록 기름진 부분은 떼어냈다.

어릴 적 생선 가시를 발라주던 어머니의 손을 기억하는지 아들의 손끝이 몇 번이나 멈췄다.

“엄마, 이거 한 점만 더 먹어.”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가 아들의 얼굴을 보고 입을 벌렸다. 오래 씹은 뒤 겨우 삼켰다.

 

아들은 고개를 숙여 숯불만 뒤적였다.

우리는 누구의 생일도 아닌 날에 잔치를 벌였다.

축하할 날짜는 없었고 축하해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그래도 네 사람이 아직 한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딸이 초를 네 개 꽂았다.

“왜 네 개냐?”

“우리 식구 네 명이니까.”

불을 붙이자 한낮인데도 작은 불꽃이 또렷했다.

 

동강에서 불어온 바람이 꽃밭을 건너올 때마다 네 개의 불은 꺼질 듯 몸을 낮췄다가 다시 일어섰다.

아내는 오른손을 들어 촛불 쪽으로 내밀었다.

딸과 아들이 양옆에서 어머니의 몸을 받쳤고, 나는 케이크 쟁반을 가까이 들었다.

“엄마, 같이 불어.”

아내의 입술 사이로 가느다란 숨이 새어 나왔다.

 

촛불은 하나도 꺼지지 않았다. 아내의 숨은 불꽃 앞까지 가지 못하고 입술에서 흩어졌다.

딸이 어머니의 어깨를 더 단단히 안았다.

“엄마, 다시. 우리 같이.”

아내와 딸과 아들이 한꺼번에 숨을 불어냈다. 나도 쟁반 너머에서 입김을 보탰다.

 

네 개의 불이 동시에 사라졌다.

가느다란 흰 연기가 피어올라 한동안 네 사람의 얼굴 사이를 떠돌았다.

축하 케이크의 연기였지만 나는 잠시 향불을 바라보는 것처럼 숨을 삼켰다.

그 생각이 부끄러워 급히 웃었다.

딸은 눈가로 올라간 손을 그대로 내려 케이크 접시를 붙들었다. 아들은 조금 늦게 박수를 쳤다.

 

아내만은 꺼진 촛불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끝난 불이 아니라 네 사람의 숨으로 함께 꺼낸 불이라는 듯이.

아들은 휴대전화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다.

꽃밭 가운데 휠체어에 앉은 아내, 그 어깨에 얼굴을 기댄 딸, 뒤에서 두 사람을 감싼 아들, 한쪽 무릎을 꿇고 케이크를 든 나.

그 뒤로 동강이 햇빛을 받아 굽이쳤다. 산들은 오래된 병풍처럼 우리를 둘러섰다.

 

우리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라 서로 다른 얼굴을 했다.

셔터가 눌리기 직전 아내가 먼저 웃었다. 안으로 들어간 윗니 한쪽이 아주 조금 보였다.

나는 그 이를 보는 순간 사십팔 킬로그램의 아내가 이 늙고 병든 몸 안에서 한 번도 떠난 적 없다는 것을 알았다.

딸은 아내의 어깨를 감싼 팔에 힘을 주었다. 손등의 힘줄이 하얗게 솟았다.

 

“엄마, 우리 이렇게 끝나는 거 아니야.”

아내는 글자판을 천천히 눌렀다. 손끝이 몇 번이나 옆 글자로 미끄러졌다. 

잘못 찍힌 글자가 지워질 때마다 아이들은 숨소리마저 낮추고 기다렸다.

오랜 시간이 지나 문장이 완성되었다.

기계는 그 말을 지나치게 맑은 목소리로 읽었다.

 

“이번 생에서 아프면 다음 생에서 건강하게 또 만나면 돼.”

아들은 고개를 숙였다.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짧은 숨이 웃음처럼 떨리다가 끝내 울음으로 꺾였다.

“다음 생에는 엄마가 내 딸로 태어나. 그때는 내가 다 해줄게.”

아들은 숯불을 뒤적이던 집게를 내려놓았다.

딸은 케이크 상자의 모서리를 손끝으로 오래 문질렀다.

“나는 엄마 언니로 태어날래.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을게.”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그러나 목구멍을 막고 선 것이 말보다 커서 입술만 몇 번 달싹였다.

아내의 손가락이 다시 글자판 위를 움직였다.

 

당신은?

기계가 물었다.

“당신은?”

“나는…….”

꽃밭의 국화 한 송이가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 꽃을 바라보며 겨우 입을 열었다.

“나는 다음에도 당신 남편 해야지.”

목소리가 갈라졌다. 헛기침을 하고 다시 말했다.

“대신 그때는 조금 일찍 철들게. 밥도 하고 애들도 볼게. 당신 혼자 불 앞에 세워두지 않을게.”

 

아내는 나를 바라보았다. 

웃으려 했으나 한쪽 입술만 희미하게 올라갔다. 그 작은 웃음이 내가 평생 받아본 어떤 용서보다도 무거웠다.

딸은 어머니의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아들은 꽃밭 쪽으로 돌아앉아 기울어진 국화 줄기 하나를 바로 세웠다. 손을 놓으면 바람에 다시 넘어지는 줄기였다. 아들은 몇 번이고 흙을 끌어모아 그 뿌리를 눌러주었다.

 

아내가 오른손을 들었다.

딸의 머리카락을 한 번 쓸어내린 손이 아들을 향해 움직였다. 

그러나 팔은 허공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아들은 그것을 보고도 돌아오지 않았다. 울고 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아내의 팔꿈치를 받쳤다.

 

“이리 와. 엄마가 부르잖아.”

아들이 고개를 숙인 채 다가와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내가 아내의 손을 받쳐 아들의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아내의 손가락이 아들의 머리카락 사이에서 힘없이 벌어졌다. 아

들은 그 손이 떨어지지 않도록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한때 자신을 업고 밤길을 걷던 손이었다.

 

이제는 자식의 머리 하나를 쓰다듬기 위해 남편의 손을 빌려야 하는 손이었다.

케이크 위의 딸기는 아무도 손대지 않아 햇볕 아래에서 조금씩 물러갔다. 흰 생크림 가장자리에는 어디서 날아왔는지 노란 꽃가루 몇 점이 내려앉았다.

 

동강의 강물은 우리가 무슨 약속을 했는지 모른 채 산 아래를 돌아 흘렀다. 

꽃밭은 바람이 지날 때마다 작은 물결처럼 일렁였다. 

해가 서쪽 산의 어깨에 걸리자 강물 위에 남아 있던 빛도 서서히 식어갔다.

 

딸은 남은 음식을 용기에 담았다. 

아들은 숯불에 물을 부었다. 흰 김이 한 차례 피어올랐다가 걷혔다.

평상 위에는 빈 접시 네 장과 반쯤 남은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이제 일어나면 이 하루가 정말 끝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도 먼저 돌아가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마침내 아내가 기계를 눌렀다.

 

“고마워.”

딸은 대답 대신 어머니의 무릎 위에 손을 포갰다.

아들은 어머니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나는 고맙다는 말을 받을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평생 가족을 먹이고 키운 사람은 아내였다.

 

우리는 그 사람에게 마지막 하루를 돌려주었을 뿐이었다.

그날 찍은 사진은 우리가 함께 찍은 마지막 가족사진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오래도록 그 사진을 마지막이라고 부르지 못했다.

네 사람이 한 화면 안에 들어와 서로의 무게를 받치고 있었으므로, 그것은 오히려 우리 가족이 가장 늦게 완성된 모습에 가까웠다.

 

입소 날짜를 정한 뒤 아내의 물건을 챙겼다.

속옷과 양말, 편한 옷, 물컵, 로션, 칫솔.

물건마다 이름을 써 붙여야 한다고 했다. 나는 검은 유성펜으로 옷 안쪽에 아내의 이름을 적었다.

평생 내 이름과 아이들 이름을 수백 번 써온 사람이 이제는 자기 이름을 남의 손으로 받아야 했다.

서랍 아래에서 오래된 사진 봉투가 나왔다.

아이들이 바다에서 젖은 옷을 입고 웃는 사진, 식당을 연 날 화환 앞에 서서 찍은 사진, 아내가 앞치마를 두른 채 딸의 졸업장을 들고 있는 사진이 있었다.

나는 몇 장을 골라 작은 앨범에 넣었다.

결혼사진을 넣으려다가 망설였다.

사진 속 우리는 너무 젊었다. 저 두 사람이 우리라는 사실을 아내가 알아볼까 싶었다.

그래도 맨 앞장에 넣었다.

 

입소 전날 밤, 나는 휴대전화를 노트북에 연결해 오래전 라디오에서 듣고 내려받아 둔 밥 딜런의 노래를 틀었다. 

전주가 흐르자 음량을 조금 높였다. 아내는 그 노래를 알아들은 듯 천천히 눈을 감았다.

노래는 사랑하는 사람의 앞날에 햇빛이 오래 머물기를 빌고 있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도 진실한 마음을 잃지 않기를, 높은 곳에 올라도 약한 사람을 내려다보지 않기를, 두려운 순간에는 용기를 내고 넘어졌을 때는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고 있었다.

 

손은 늘 남을 도울 만큼 바쁘고, 발은 어떤 폭풍 앞에서도 제자리를 지킬 만큼 단단하기를, 마음속에서는 기쁨의 노래가 오래 그치지 않기를 축복하고 있었다.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것이 병든 아내에게 건네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 밤에는 알 수 없었다.

우리 가운데 누가 누구의 앞날을 빌고 있는지, 누가 떠나는 사람이고 누가 남겨지는 사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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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의 머리를 감겼다.

한 손으로 목을 받치고 다른 손으로 물을 끼얹었다. 흰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은 뒤 천천히 빗질했다.

아내는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았다.

“내일 가면 편할 거야.”

아내가 거울 속에서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밥때 되면 밥 주고, 약도 챙겨주고. 사람들도 있고.”

 

나는 좋은 점만 말했다.

밤에 내가 없다는 말, 낯선 사람이 기저귀를 갈아준다는 말, 창밖의 산이 우리가 함께 바라보던 산과 다르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자주 갈게. 날마다도 갈 수 있어.”

그 말이 거짓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둘 다 알았다. 당뇨가 심하거나 눈이 길을 막는 날도 있을 것이다.

아내는 오른손으로 내 손목을 잡았다.

힘이 거의 없었지만 나는 잡힌 채 움직이지 못했다.

 

노래가 끝나갈 무렵 아내가 입을 열었다.

입술은 몇 번이나 움직였으나 소리가 따라 나오지 않았다. 목 안에서 길을 잃은 숨만 가늘게 새어 나왔다.

나는 노트북에서 나오는 소리를 줄이고 아내에게 몸을 가까이 기울였다.

아내가 다시 숨을 모았다.

 

“당신도…….”

그 말을 꺼낸 뒤 한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짧은 말 하나를 입 밖으로 밀어내는 데에도 온몸의 힘이 필요한 듯했다.

 

나는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아내가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남아 있는 숨을 모두 건네듯 말했다.

“살아.”

 

당신도 살아.

두 마디는 떨어져 나왔지만 내 귀에는 한 문장으로 닿았다.

기계가 대신 읽어준 반듯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입술 한쪽에서 새고 목 안에서 부서졌어도, 내가 평생 들어온 아내의 목소리였다.

 

젊은 날 내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 아이들이 태어나던 날 웃으며 울던 목소리, 읍내 버스정류장에서 춥다며 내 외투 주머니 속으로 손을 밀어 넣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아내는 자기가 없는 집에서 살아갈 시간을 내게 건네고 있었다.

나는 대답하려 했으나 이번에는 내 말이 입안에서 무너졌다.

바닷가에서 돌아오던 버스 안에서 아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누가 먼저 가든, 같이 산 마음까지 버리지는 말자.

나는 그 약속을 삼십여 년이 지나서야 알아들었다.

 

먼저 가는 사람은 죽는 사람만이 아니었다.

거울 속에서 아내와 내 얼굴이 나란히 늙어 있었다. 

나는 빗을 쥔 손을 멈추었다가, 엉킨 흰 머리카락 한 올을 끝까지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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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의 머리에 얼굴을 묻었다.

샴푸 냄새와 아내의 체온이 함께 났다.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지만 소용없었다.

노래가 끝나자 젊은 날의 시간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빗물이 창틀을 넘어 들어오던 신혼방, 달걀 노른자 하나를 서로 먹이려 두 그릇 사이로 옮기던 밤, 두 아이가 우리 무릎을 하나씩 베고 잠들었던 막차 버스, 그리고 접시가 깨지고 뜨거운 물이 식당 바닥을 흘러가던 순간까지.

 

우리가 함께 살아낸 한 생이 노래 몇 소절 사이에서 환하게 되살아났다가, 붙잡을 틈도 없이 다시 어둠 속으로 흘러갔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이별은 사랑이 끝난 뒤에 오는 것이 아니었다. 사랑은 남아 있었고, 생활이 먼저 물러날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딸이 운전대를 잡았다. 아들은 조수석에 앉았고, 나는 뒷좌석에서 아내의 어깨를 받쳤다.

여행가방 하나와 기저귀 상자가 트렁크에 실렸다.

 

집을 나서며 아내는 마당을 오래 바라보았다.

감자 줄기는 누렇게 말라 있었고, 빨랫줄에는 내가 미처 걷지 못한 수건 두 장이 흔들렸다.

꽃밭의 구절초도 차가 움직이는 쪽으로 가만히 기울어 있었다.

 

차가 골짜기를 빠져나갈 때까지 아무도 라디오를 켜지 않았다.

동강은 차창 아래로 나타났다가 산모퉁이를 돌 때마다 사라졌다. 아내는 움직일 수 있는 만큼 고개를 돌려 강을 바라보았다.

물길은 산에 막힐 때마다 몸을 낮추고 방향을 틀었다. 그러고도 어느 산 앞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차 두 대 앞의 승용차가 유난히 느리게 달리고 있었다. 

초보운전인지, 동강의 풍경을 오래 바라보고 싶은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바로 앞차가 몇 번이나 경적을 울렸지만 맨 앞의 차는 속도를 높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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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르는 차들을 뒤에 매단 채 굽이진 강길을 천천히 따라갔다.

평소 같았으면 나도 조급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그 차의 느린 속도가 고마웠다.

아내와 나에게 남은 시간도 저렇게 흘렀으면 했다. 

뒤에서 아무리 재촉해도 빨라지지 않고, 산모퉁이를 하나 돌아설 때마다 사라졌던 강을 다시 보여주면서.

나는 맨 앞의 차가 조금만 더 천천히 달리기를 바랐다.

가능하다면 우리가 가야 할 곳에 닿을 때까지, 오래도록 길을 막아주기를 바랐다.

 

요양원에 도착하자 직원이 휠체어를 밀고 나왔다.

아내를 옮겨 앉히는 동안 딸은 가방 손잡이를 놓지 못했다.

아들은 트렁크 안을 필요 이상으로 오래 정리했다.

나는 입소 서류에 보호자 이름을 썼다.

비용 납부자 칸에서 펜이 잠깐 멈췄다.

“제가 내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딸이 내 손등을 눌렀다.

“아빠 혼자 내지 마. 우리도 낼게.”

아들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이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도, 의심하지도 않기로 했다.

가족은 약속을 지키지 못한 다음 날에도 다시 찾아오는 사람들이었다.

아내의 침대는 창가에 있었다.

창문 아래 작은 밭에는 들깨가 서 있었다. 딸이 사진 앨범을 협탁에 놓았고, 아들은 물컵에 이름표를 붙였다.

나는 옷장에 아내의 옷을 넣었다.

할 일이 없어지자 네 사람 모두 말이 없어졌다.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딸이 먼저 어머니를 안았다.

“엄마, 자주 올게.”

아내가 딸의 등을 힘없는 손으로 두드렸다.

아들은 어머니 앞에 쪼그려 앉아 발등에 손을 얹었다.

“엄마, 돈 걱정하지 마. 내가 더 열심히 벌게.”

아내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다. 손이 닿지 않자 내가 받쳐주었다.

아들은 그 손바닥에 이마를 대고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아내는 두 아이를 번갈아 바라본 뒤 오른손을 들었다.

손바닥이 허공에서 작게 흔들렸다.

나는 마지막까지 남았다.

“내일 올게.”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밥 잘 먹어.”

또 고개를 끄덕였다.

“물도 좀 마시고.”

아내의 입가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내가 평생 하던 잔소리를 마지막까지 하는 것이 우스웠던 모양이다.

나는 몇 발자국을 걸어 문 앞에 섰다. 뒤돌아보지 않으려고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창가에 앉은 아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래전 바닷가에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있던 여자도, 식당 주방에서 국자를 들고 뛰어다니던 여자도, 밤마다 나를 부르던 병든 여자도 모두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문밖으로 나간 사람이 나인지, 방 안에 남은 사람이 나인지 알 수 없었다.

복도 끝에서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딸의 눈은 부어 있었고 아들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우리는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나는 다시 복도를 바라보았다.

아내의 방문은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딸이 라디오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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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잡음이 차 안을 훑고 지나갔다.

이내 피아노 선율을 따라 악뮤의 노래가 낮고 맑게 번졌다.

딸은 노래를 알아본 듯 음량을 조금 낮췄다.

 

“아빠, 이 노래 알아?”

나는 창밖만 바라보았다.

“악뮤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라는 노래야.”

노래는 바다처럼 깊은 사랑이 모두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이별이라고 했다.

 

딸은 한동안 노래를 듣다가 말했다.

“한강 작가도 소설 초고를 마치고 택시에서 이 노래를 듣다가 울었대.”

“왜?”

“바다가 다 마르는 건 불가능하잖아. 그러니까 결국 작별하지 않겠다는 말처럼 들렸대.”

 

 

 

나는 어젯밤을 떠올렸다.

아내와 나란히 밥 딜런의 노래를 듣던 때까지도 아내는 손을 뻗으면 닿을 자리에 있었다.

두 노래 사이에는 하룻밤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하룻밤이 우리가 함께 살아온 수십 년보다 멀게 느껴졌다.

딸이 채널을 돌리려 손을 뻗었다.

“다른 데로 돌릴까?”

“그냥 둬.”

내가 말했다.

 

딸은 라디오에 닿기 직전 손을 거두었다.

노래가 흐르는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차창 아래로 동강이 나타났다. 

해를 잃어가는 강물은 산 그림자를 품고 천천히 흘렀다.

물길은 산모퉁이를 돌 때마다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한참 뒤 전혀 다른 자리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요양원도 그렇게 산 뒤로 사라졌다.

 

그러나 내 눈에는 아내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무릎 위에 놓인 왼손과 그 위를 덮고 있던 오른손.

우리가 방을 나설 때까지 애써 웃고 있던 한쪽 입술.

닫히는 문틈으로 마지막까지 우리를 따라오던 두 눈.

노래는 마지막 구절에 이르렀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나는 눈을 감았다.

나는 이별을 사랑할 수 없었다. 

다만 아내를 사랑했기에 끝까지 곁에 두고 싶었고, 같은 사랑 때문에 놓아달라는 부탁도 외면할 수 없었다.

 

노래가 끝났다.

아무도 라디오를 끄지 않았다. 음악이 사라진 자리에는 자동차 바퀴가 아스팔트를 누르는 소리와 우리 셋의 숨소리만 남았다.

 

운전석의 딸은 두 손에 힘을 준 채 앞만 바라보았다. 

조수석의 아들은 얼굴을 창 쪽으로 돌리고 손등으로 입가를 훔쳤다.

나는 내 옆의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올 때에는 그 자리에 아내가 앉아 있었다. 

 

차가 굽이를 돌 때마다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고, 나는 쓰러지지 않도록 어깨를 받쳐주었다. 

무릎에서 담요가 흘러내릴 때마다 나는 한쪽 팔로 아내를 안은 채 다른 손으로 담요를 끌어올렸다.

 

이제 그 자리에는 접힌 담요만 남아 있었다.

나는 담요를 끌어당겨 무릎 위에 올렸다. 아직 아내의 체온이 남아 있을 것 같아 두 손으로 오래 눌러보았다.

그러나 손바닥에 닿는 것은 천천히 식어가는 천의 감촉뿐이었다.

 

차는 계속 달렸다.

도로표지판의 숫자가 줄어들수록 집은 가까워졌고 아내는 멀어졌다.

돌아갈 집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돌아갈 곳을 잃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아내는 조금도 멀어지지 않았다.

아내는 내 무릎 위의 담요에 있었고, 아이들이 삼킨 울음 속에 있었으며, 노래가 끝난 뒤에도 꺼지지 않은 라디오의 침묵 속에 있었다.

 

나는 담요 위에 두 손을 올리고 눈을 감았다.

사람의 몸은 한곳에 남겨두고 올 수 있어도, 함께 살아낸 세월까지 그곳에 두고 올 수는 없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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