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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사십팔 킬로그램의 이별 ①] 그릇 하나가 깨지고 아내가 무너졌다

  • 김광희 기자
  • 입력 2026.09.10 1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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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현실의 여러 사회적 문제에서 모티프를 얻어 창작한 소설입니다.

등장인물과 지명, 단체, 구체적인 사건 및 전개는 허구이며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재현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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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아침 약을 먹이던 중,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는 알약 일곱 개가 든 작은 종지와 미지근한 물을 밥상 끝에 놓았다.

아내는 침대 머리맡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왼쪽 어깨가 벽 쪽으로 기울어 있었고, 힘이 남은 오른손은 이불 위에서 자꾸만 무언가를 찾듯 움직였다.

 

약을 한꺼번에 삼키면 목에 걸렸다.

두 알씩 혀 위에 올려놓고 물을 한 모금 마시게 한 뒤, 목울대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다음 약을 건네야 했다.

네 번째 약을 삼킬 때쯤 밥 딜런의 〈Forever Young〉이 흘러나왔다.

 

진행자는 사랑하는 사람의 앞날을 축복하며, 세월 속에서도 마음만은 오래 젊기를 비는 노래라고 했다.

낡은 라디오에서는 노래와 함께 낮은 잡음이 흘렀다.

나는 알약을 집어 든 채 노래보다 아내의 목울대가 움직이는 것을 오래 바라보았다.

 

희끗한 머리카락과 한쪽으로 기운 어깨, 뜻대로 펴지지 않는 손가락 너머에서 연한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스물다섯 살 여자가 걸어 나왔다.

스물다섯 살의 아내는 사십팔 킬로그램이었다.

 

나는 그 숫자를 잊은 적이 없다.

결혼을 앞두고 내가 “우리 신부, 좀 뚱뚱해진 것 같은데” 하고 놀리자, 아내는 시장 약국 앞 저울에 성큼 올라섰다.

바늘이 사십팔을 가리켰는데도 신발 무게 이백 그램은 빼야 한다고 우겼다.

웃을 때면 고개를 조금 뒤로 젖혔고, 안으로 들어간 윗니 한쪽이 보였다.

나는 가지런하지 않은 그 이를 좋아했다.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아내의 웃음 같았다.

아내에게 처음 말을 건 곳은 읍내 버스정류장이었다.

겨울비가 진눈깨비로 바뀌던 저녁이었다.

우리는 저녁마다 같은 버스를 타면서도 한 번도 말을 섞은 적이 없었다. 

서로 이름은 몰랐지만 누가 어디쯤에서 내리는지는 알고 있었다.

 

읍내 봉제공장에서 하루 일을 마친 아내는 처마 끝에 서서 양은 도시락통을 가슴에 끌어안고 있었다. 

빈 도시락통에서는 몸을 움직일 때마다 젓가락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정류장 안에서는 먼저 온 사내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내는 연기를 피해 처마 밖으로 밀려나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진눈깨비가 비스듬히 들이쳐 코트의 어깨를 희게 적셨다.

 

나는 우산을 펴 아내 쪽으로 기울였다.

씌워주고 싶어서였는지, 말을 걸고 싶어서였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다만 그날 내 우산의 절반이 오래전부터 아내의 자리였던 것처럼 비어 있었다.

 

“어디까지 가세요?”

아내는 나를 보지 않았다. 빗물에 번진 버스 시간표를 올려다본 채 말했다.

“먼저 내리는 사람이 그건 왜 물어요?”

쌀쌀맞은데도 웃음이 나는 대답이었다.

내가 먼저 웃자 아내는 한동안 입술을 다물고 버티다가 끝내 따라 웃었다.

 

그때 처음 보았다.

아내가 웃을 때마다 살짝 안으로 숨어들던 윗니 하나를.

그 뒤로 나는 아내의 얼굴보다 그 작은 이를 먼저 기다렸다.

버스가 진눈깨비를 헤치며 정류장으로 들어왔다.

나는 우산을 들어 아내를 먼저 태웠다. 뒤따라 오르려고 우산의 물기를 털어내는 사이 출입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나는 어깨로 문을 밀고 버스에 올라탔다.

 

“탈 거면 얼른 타요.”

기사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아내는 이미 창가에 앉아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손바닥으로 제 옆자리를 두 번 두드렸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았다.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는 이제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아내의 빈 도시락통에서 젓가락 부딪치는 소리가 났고, 창밖에서는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이 하나씩 지나갔다.

 

그날 나는 집으로 가는 길을 세 정거장이나 지나쳤다.

아내에게 가는 길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아내를 만나러 가는 날이면 구두에 신문지를 넣어 닦았다. 

광을 낼 약이 없어도 침을 묻혀 문지르면 앞코가 조금은 반짝였다.

 

아내는 내가 같은 셔츠를 입고 나오는 것을 알고도 매번 처음 보는 옷처럼 말했다.

“오늘은 멋있네.”

“어제는?”

“어제도 멋있었고.”

아내는 웃으며 내 팔을 한 번 쳤다.

 

우리에게 다방은 버스정류장 구석의 커피 자판기였다.

주머니가 가벼워 다방 문을 열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추위가 뼛속까지 스미는 날이면 우리는 동전을 모아 종이컵 커피 한 잔을 뽑았다.

아내가 먼저 한 모금 마시고 내게 건넸다. 

컵 가장자리에는 아내의 입술 자국이 남아 있었다. 나는 컵을 돌리지 않고 그 자리에 입을 댔다.

커피는 몇 모금 만에 바닥을 드러냈다. 그래도 우리는 빈 종이컵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래 서 있었다.

탁자도 의자도 없었지만 그곳이 우리의 다방이었다.

 

 

커피를 마신 뒤에는 시장 골목을 걸었다.

주머니를 털어 어묵 몇 개를 사 종이컵에 담았다. 아내가 새 어묵 하나를 집어 내게 건네면, 나는 배가 고프지 않다며 다시 아내 쪽으로 밀어놓고 공짜로 내주는 뜨거운 국물만 천천히 마셨다.

아내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하나를 다 먹고 나면 남은 어묵을 다시 내 쪽으로 내밀었고, 나는 그제야 못 이기는 척 하나를 집어 들었다.

끝내 누가 더 많이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빈 종이컵을 들고 돌아가던 그 길에서 우리는 자주 웃었다.

 

한 번은 장날에 갑자기 눈발이 날렸다.

아침에는 견딜 만하던 바람이 해가 기울자 매섭게 변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아내는 곱은 손을 겨드랑이에 번갈아 끼웠다.

나는 주머니에 남은 돈을 털어 좌판에서 빨간 털장갑 한 켤레를 샀다. 두 켤레를 사기에는 돈이 모자랐다.

오른쪽은 아내가 끼고 왼쪽은 내가 꼈다. 장갑을 끼지 않은 손은 내 외투 주머니 안에서 맞잡았다.

“사람들이 보면 흉보겠다.”

“추워서 그러는 건데 누가 흉을 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아내는 손을 빼려 했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그 손을 더 꼭 붙잡았다.

 

봄에는 강둑에 앉아 돌을 던졌다.

아내가 던진 돌은 수면을 세 번이나 튕겼고, 내가 던진 돌은 큰 소리만 내며 가라앉았다.

“당신은 돌도 무겁게 던져.”

“돌이 원래 무겁지.”

“마음까지 실어 던지니까 그렇지.”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묻지 않았다.

아내는 가끔 내가 한참 뒤에야 알아듣는 말을 했다.

 

결혼하자고 먼저 말한 사람도 아내였다.

나는 통장에 찍힌 돈을 보여주며 조금만 더 모으자고 했다. 아내는 잔액보다 내 얼굴을 오래 보았다.

“얼마가 있어야 결혼할 건데?”

“방은 있어야지.”

“방 생길 때까지 기다리다가 늙겠다.”

“늙으면 그때 하지 뭐.”

아내는 웃지 않았다.

“나는 가난한 게 무서운 게 아니야. 당신이 자꾸 다음으로 미루는 게 무서워.”

그 말 앞에서 나는 더 미룰 수 없었다.

 

우리는 방 한 칸을 얻을 돈조차 없었다.

아내는 장모를 찾아가 울면서 매달렸다.

“뱃속의 아이를 길에서 낳아 키우게 둘 거야? 방 한 칸만이라도 얻게 도와줘.”

장모는 철없는 것들이 아이부터 가졌다고 욕을 한 바가지 퍼부으면서도 천만 원을 내놓았다.

우리는 그 돈으로 작은 예물을 마련하고 꼭 필요한 살림을 장만했다. 남은 오백만 원으로 비가 새는 신혼방을 얻었다.

 

정전이 된 밤이면 촛불을 켜고 라면을 끓였다.

면이 익을 무렵 달걀 하나를 깨 넣으면 흰자는 국물 속에 가늘게 풀리고, 노른자만 둥글게 남았다.

라면을 두 그릇에 나누어 담던 날, 노른자는 아내의 그릇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덜 익은 노른자를 숟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떠서 내 그릇에 놓았다.

 

나는 말없이 그것을 다시 아내에게 건넸다.

두 그릇을 오가던 노른자는 끝내 터져 국물 속으로 번졌다.

우리는 달걀 하나도 제대로 양보하지 못했다며 오래 웃었다.

 

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벽에 비친 두 사람의 그림자도 따라 흔들렸다.

병은 아내의 걸음과 말과 손가락의 힘을 차례로 가져갔다.

그러나 촛불 아래서 터진 노른자를 보며 웃던 여자까지 데려가지는 못했다.

나는 힘이 남은 아내의 오른손을 감쌌다.

“당신은 아직 그대로야.”

아내가 나를 바라보았다.

“내 눈에는 아직 스물다섯이야.”

아내의 입가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그 순간만큼은 병도, 요양원도, 우리 앞에 놓인 이별도 방문 밖에서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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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눈으로 물컵을 가리켰다.

나는 그제야 컵을 입술에 대주었다. 아내는 한 모금만 빨아들이고 고개를 돌렸다.

“조금 더 마셔.”

아내는 입을 다물었다.

“물을 안 마시면 약이 목에 붙어.”

그래도 입술을 열지 않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왜 물까지 아껴 먹어. 물 먹는 데 돈 드나?”

아내의 눈이 잠깐 나를 보았다가 창문 쪽으로 돌아갔다.

 

그 눈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척해온 눈이었다.

기저귀를 찼지만 아내는 소변을 보면 곧바로 갈아 달라고 했다. 물을 많이 마시면 그만큼 자주 나를 불러야 했다.

 

아내는 물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나를 아끼고 있었다.

젊은 날에는 달걀 하나를 내게 먹이려고 했고, 이제는 내 손을 덜 빌리려고 물 한 모금을 삼키지 않았다.

나는 컵을 내려놓았다.

유리 바닥이 밥상에 부딪치며 딱, 하고 마른 소리를 냈다.

“미안해.”

아내는 듣지 못한 사람처럼 창밖만 바라보았다.

 

창밖으로 신동읍의 산들이 겹겹이 물러나 있었다.

집 아래로는 강물이 굽이쳐 흘렀다.

아이들이 모두 떠난 뒤,우리는 치료비와 생활비로 남겨둔 일억 원을 들고 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산골로 들어왔다.

마을 끝에 방 두 칸짜리 작은 집을 샀다.

 

마당에서는 강줄기가 훤히 내려다보였고, 앞마당에는 감자밭만 한 풀밭이 있었다. 밤이면 물 흐르는 소리가 골짜기를 채웠다.

정기진료를 받는 병원까지는 차로 오십 분이 걸렸다.

불편한 대신 집값이 쌌고, 사람들의 눈을 덜 마주쳐도 되었다.

 

이사하던 날 아내가 마당 한가운데 서서 오랫동안 강을 내려다보았다.

짐을 옮기던 나는 빈 상자를 든 채 물었다.

“좋아?”

아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아직 혼자 걸을 수 있었고, 말도 지금보다 또렷했다.

“여기서는 좀 쉬자.”

그 말을 한 사람은 나였다.

 

우리는 그 말을 한 뒤 한 번도 함께 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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