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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사십팔 킬로그램의 이별 ⑤] 아내를 씻기고 나는 늙어갔다

  • 김광희 기자
  • 입력 2026.09.1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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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아내가 침대에서 일어나 변기까지 가는 데 처음에는 십 분이 걸렸고, 나중에는 삼십 분이 걸렸다.

 

어느 겨울 새벽, 아내를 화장실로 옮기다 둘이 함께 넘어졌다.

아내의 몸이 내 가슴 위로 무너졌고, 허리를 찌르는 통증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아내의 오른손이 허공을 더듬어 내 얼굴에 닿았다. 자신보다 내가 다쳤는지를 먼저 묻는 손이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려 했으나 목에서는 신음만 새어 나왔다.

우리는 차가운 바닥에 쓰러진 채 서로에게 기댔다. 어느 한쪽이라도 먼저 일어날 힘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 뒤로 방 한쪽에 이동식 변기를 놓았다.

더 지나서는 기저귀를 썼다.

 

당뇨가 심한 나는 아침이면 가장 먼저 혈당을 쟀다.

채혈침으로 손가락 끝을 찌르면 좁쌀만 한 피가 맺혔다. 시험지 끝에 피를 묻히고 숫자가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수치를 확인한 뒤 잠옷을 걷어 올리고 배에 인슐린을 놓았다.

오래 주사를 맞은 배와 허벅지에는 살이 군데군데 단단하게 뭉쳐 있었다. 날마다 자리를 바꾸어 찔렀지만, 바늘이 머물지 않은 곳은 점점 줄어들었다.

혈압약까지 삼키고 나면 내 아침이 끝났다.

 

그다음부터는 아내의 하루였다.

기저귀를 갈고, 미음을 끓이고, 약을 먹이고, 몸을 닦았다.

그러나 아내의 몸을 매일 온전히 씻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내를 침대 가장자리에 앉히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등 뒤로 팔을 넣어 상체를 일으키면 마비된 왼팔은 침대 위에 남았다. 내가 그 팔을 들어 가슴 앞으로 옮겨주고서야 아내의 몸도 겨우 따라왔다.

 

아내는 힘이 남은 오른손으로 내 목을 붙잡았다. 

넘어지지 않으려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욕실 문턱을 넘으면 아내의 몸은 전혀 다른 무게가 되었다.

물에 젖은 살갗은 자꾸 미끄러졌고, 비누 거품이 묻은 허리와 겨드랑이는 아무리 단단히 붙들어도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아내의 무릎이 꺾일 때마다 나는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놓치면 사람 하나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온 세월 전부가 내 손에서 미끄러져 내릴 것 같았다.

한 번은 목욕의자에서 아내를 일으키다가 둘이 함께 주저앉았다.

아내의 등이 타일 벽에 부딪치고 내 허리는 수도꼭지에 찍혔다. 샤워기에서는 아무 일도 모르는 물이 계속 쏟아졌다.

 

그날부터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 아내의 몸을 나누어 닦았다.

얼굴과 목, 겨드랑이와 가슴, 등과 사타구니. 한쪽을 닦는 사이 다른 쪽 물이 식었다.

아내는 내가 수건을 빨러 나가면 이불을 가슴까지 끌어올렸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아도 병든 몸의 부끄러움까지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내에게는 가릴 힘이 조금 남아 있었고, 내게는 보지 않은 척할 힘이 필요했다.

 

신동읍사무소에 전화를 건 것은 그다음 날이었다.

“집에 와서 목욕을 도와주는 것도 있습니까?”

전화를 받은 공무원은 장기요양등급을 받으면 목욕설비를 갖춘 차량이 찾아오거나 요양보호사들이 이동식 욕조를 가지고 와 목욕을 도와주는 방문목욕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아내가 아직 예순다섯이 안 됐습니다.”

“예순다섯 살이 안 됐어도 뇌출혈이나 뇌경색 같은 노인성 질병이 있으면 신청할 수 있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장기요양인정을 신청하세요.”

나는 그날로 공단에 전화를 걸었다. 신청서를 내고 병원에서 의사소견서를 받아 제출하자 며칠 뒤 조사원이 집으로 찾아왔다.

 

서류에는 아내가 평생 들어보지 못했던 말들이 적혀 있었다.

편마비(片麻痺). 보행장애. 일상생활 수행능력 저하.

내가 날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감당하던 일들이 종이 위에서는 몇 줄의 병명이 되었다.

조사원은 아내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하고 침대 곁에 의자를 놓아 앉았다.

혼자 일어날 수 있는지, 방 안을 걸을 수 있는지,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을 수 있는지 물었다. 옷을 갈아입고 세수하는 일, 화장실에 가서 뒤처리하는 일도 하나씩 확인했다.

질문은 짧았으나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아내는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 불릴 때마다 나를 바라보았다.

오래 함께 산 내가 정말 그것을 모르는지 묻는 것 같기도 했고, 자신에게서 사라진 것들을 왜 낯선 사람 앞에 하나씩 꺼내놓아야 하는지 묻는 것 같기도 했다.

“혼자 목욕하실 수 있습니까?”

아내가 고개를 숙였다.

조사원은 잠시 기다리다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내 대신 대답했다.

 

“못 합니다.”

그 말이 입에서 떨어지자 방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혼자 일어나지 못합니다.

화장실에도 혼자 가지 못합니다.

목욕도 혼자 하지 못합니다.

내가 “못 합니다”라고 대답할 때마다 병들기 전의 아내가 돌아왔다.

침대에서 제 몸을 일으키고,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고,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던 아내였다.

 

그때는 너무도 평범해서 소중한 줄조차 몰랐던 일들이었다.

아내는 그 모든 것을 보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무릎만 내려다보았다.

조사원은 아내에게 평소처럼 침대에서 한번 일어나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성한 손으로 침대 가장자리를 짚었다. 어깨가 먼저 들리고 허리가 뒤늦게 따라왔다. 두 발을 바닥에 내려놓았지만 몸은 더 이상 일어서지 못했다.

내가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넣자 아내는 성한 손으로 내 팔을 밀어냈다.

혼자 해보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몸은 마음이 가려는 데까지 따라가지 못했다.

나는 잠시 기다렸다가 겨드랑이 밑으로 팔을 깊이 넣어 아내의 체중을 거의 떠받쳤다. 아내는 내 몸에 매달린 채 두 걸음을 옮겼다. 마비된 발끝이 바닥을 쓸었다.

조사원은 가까이 다가와 넘어지지 않도록 살피면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아내가 혼자 일어서지 못하고, 걸을 때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조사표에 적었다.

나는 평소 아내를 어떻게 일으키는지, 옷은 어떻게 갈아입히는지, 화장실까지는 어떻게 데려가는지 설명했다.

그 일들은 내게 아침과 저녁의 순서였다.

그러나 하나씩 입 밖으로 꺼내놓고 나자 우리가 견뎌온 하루가 모두 아내의 장애를 증명하는 기록이 되었다.

조사가 끝난 뒤에도 아내는 한동안 고개를 들지 않았다.

현관문이 닫히고 조사원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아내가 물었다.

 

“나…… 그렇게 못 해?”

흐릿한 발음이었지만 나는 알아들었다.

“당신이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야. 도움을 받으려면 지금 힘든 것부터 말해야 한대.”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아내가 잃어버린 것만 말했을 뿐, 아직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얼마 뒤 장기요양등급이 나왔다.

인정서와 이용계획서를 받아 방문목욕기관과 계약했다. 

목욕설비와 온수탱크를 갖춘 차량이 일주일에 한 번 찾아와 요양보호사 두 사람이 아내를 씻기고 머리를 감긴 뒤 옷까지 갈아입혀준다고 했다.

 

“비용은 얼마나 듭니까?”

“장기요양보험이 적용돼서 본인부담금은 한 번에 만 원 남짓입니다.”

만 원 남짓.

그 돈이면 두 사람이 찾아와 아내를 안전하게 안아 올리고, 따뜻한 물로 몸을 씻기고, 머리를 감기고,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준다고 했다.

내가 욕실 바닥에서 아내를 놓칠까 두려워 두 다리에 온 힘을 주던 일을, 이제는 누군가가 일주일에 한 번씩 나누어 맡아준다고 했다.

따뜻한 물을 실은 차가 산길을 넘어 우리 집까지 온다고 했다.

도움을 받으려면 먼저 아내가 하지 못하는 일들을 증명해야 했다.

일어날 수 없다고, 걸을 수 없다고, 씻을 수 없다고 말해야 했다. 한 사람의 몸에서 사라진 것들을 빠짐없이 헤아려야 비로소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릴 수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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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방문 날, 요양보호사 두 사람이 혈압계와 목욕용품이 든 가방을 들고 비탈길을 걸어 올라왔다.

그들은 곧바로 아내를 일으키지 않았다. 먼저 침대 곁에 앉아 체온을 재고 팔에 혈압계를 감았다. 목욕은 몸에 부담을 줄 수 있어 혈압이 지나치게 높거나 열이 나면 미뤄야 한다고 했다.

 

기계가 아내의 팔을 조였다가 천천히 풀었다.

작은 화면에 숫자가 떠오르는 동안 나는 합격 발표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아내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아내가 목욕을 할 수 있는지조차 이제는 숫자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아내는 낯선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이불을 놓지 않았다.

“당신, 이분들이 씻겨주신대.”

 

아내가 고개를 저었다.

요양보호사 한 사람이 아내와 눈을 맞추려고 몸을 낮췄다.

“싫은 건 하지 않을게요. 오늘은 머리만 감고 싶으시면 머리만 감아도 돼요.”

아내는 한동안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불을 움켜쥔 손에서 천천히 힘을 풀었다.

한 사람은 마비된 어깨를 받치고 다른 사람은 허리와 무릎을 감쌌다. 둘이 하나, 둘, 셋을 맞추자 아내의 몸이 휠체어 위에 반듯하게 놓였다.

 

내가 혼자 들 때마다 내 쪽으로 무너지던 몸이었다.

목욕차 안에서 그들은 굳은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까지 씻었다. 물기를 닦은 뒤에는 욕창이나 상처가 없는지도 살폈다.

“등 쪽 피부가 조금 붉어요. 같은 자세로 오래 눕지 않게 해주세요.”

 

나는 그 말을 수첩에 적었다.

목욕을 마친 아내에게서는 오래전 식당 문을 닫고 함께 목욕탕에 다녀오던 날의 비누 냄새가 났다.

나는 그 냄새를 맡으며 이 차가 우리를 구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사람을 씻겨주는 일.

부부가 오래 함께 살면 끝까지 서로 해낼 수 있으리라 믿었던 일.

그러나 사랑은 아내의 젖은 몸을 붙들어주어도, 미끄러운 욕실 바닥까지 마르게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따뜻한 물을 실은 차가 산길을 넘어온다고 해서 곧바로 아내를 씻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돈보다 길이 문제였다.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큼 좁았다. 마을길에서 대문까지 이어진 비탈은 가팔랐다.

목욕차는 집 앞까지 올라오지 못한 채 늘 비탈 아래에 멈춰 서야 했다.

아내를 씻기려면 먼저 휠체어에 태워 그 길을 내려가야 했다.

날이 좋을 때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휠체어가 앞으로 쏠릴 때마다 아내의 몸도 함께 기울었다. 요양보호사 한 사람이 앞에서 휠체어를 붙잡아 속도를 늦추고, 다른 사람은 뒤에서 손잡이를 힘껏 움켜쥐었다. 나는 옆에서 아내의 어깨와 허리를 받쳤다.

세 사람의 손이 아내 한 사람을 붙들고 비탈을 내려갔다.

 

겨울이 오자 같은 비탈도 전보다 가팔라졌다.

얼어붙은 흙길에서 휠체어 바퀴가 옆으로 밀렸고, 강을 건너온 바람에 브레이크를 쥔 손가락부터 굳어갔다.

아내는 성한 손으로 팔걸이를 움켜쥐었다. 손등의 핏줄이 파랗게 솟았다.

“괜찮아. 우리가 잡고 있어.”

나는 그 말을 되풀이했다.

아내에게 하는 말인지, 휠체어를 붙든 세 사람에게 하는 말인지, 겁먹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목욕을 마치면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싼 아내를 다시 비탈 위로 밀어 올려야 했다.

 

내려갈 때는 놓칠까 두려웠고, 올라갈 때는 힘이 다해 중간에 멈춰 설까 두려웠다.

목욕차 안에서 겨우 데워진 아내의 몸이 식기 전에 집까지 데려가야 했다.

나는 휠체어를 밀며 몇 걸음마다 아내의 어깨를 만져보았다. 수건 밖으로 나온 머리카락 끝이 얼 듯 차가워졌다.

눈이 많이 내린 날에는 그 일조차 할 수 없었다.

 

목욕차는 마을 입구까지 왔다가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요양보호사들은 눈에 잠긴 비탈을 한동안 올려다보았다. 사람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길을 바람이 먼저 올라와 다시 눈으로 덮고 있었다.

누구도 아내를 그 길로 데려가자고 말하지 못했다.

 

결국 목욕차는 따뜻한 물을 그대로 싣고 돌아갔다.

나는 대문 앞에 서서 붉은 후미등이 눈발 속으로 작아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후미등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길 위에는 한동안 붉은빛이 남아 있는 듯했다.

방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외출할 때 입는 옷으로 갈아입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는 깨끗한 수건 한 장이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차 갔어?”

나는 아내의 젖지 않은 머리를 바라보았다.

“응. 오늘은 길이 안 된대.”

아내는 말없이 수건을 접었다.

한 번 접고, 다시 한 번 접었다.

따뜻한 물은 산 아래까지 왔으나, 그날도 우리 집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차가 나머지 엿새까지 데려가 주는 것은 아니었다.

혈압이 높거나 열이 나는 날에는 목욕을 미뤄야 했다. 아내는 낯선 손에 몸을 맡긴 날이면 깨끗한 옷을 입은 채 오후 내내 누워 있었다.

그날만큼은 내 허리와 손목도 쉬었다.

그러나 밤이 되자 기저귀는 다시 젖었다.

아내가 몸을 돌려달라는 낮은 소리를 냈다.

나는 다시 세숫대야에 물을 받았다.

 

아내의 어깨와 골반을 잡아 옆으로 돌리고 등을 닦자 척추뼈가 손바닥 아래에서 하나씩 만져졌다.

젊은 날의 나는 아내의 등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시장바구니를 들고 앞서가던 등, 아이를 업고 식당을 오가던 등, 땀에 젖은 채 설거지를 하던 등만 보았다.

그 등은 한 번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제 그 등은 내 두 손 안에 들어올 만큼 야위어 있었다.

아내는 씻는 일에도 내게 미안해했고, 나는 그 미안함 때문에 더 지쳤다.

물은 몸의 때를 씻어냈지만 우리 사이에 쌓인 피로까지 데려가지는 못했다.

 

빨래를 널고 나면 점심이 왔다.

점심 설거지를 끝내면 저녁 기저귀를 살폈다.

밤에는 두세 번 아내의 신음에 깼다.

돌아눕혀 달라는 소리인지, 물을 달라는 소리인지, 다리가 저리다는 뜻인지 알아맞혀야 했다.

 

처음에는 모든 소리를 알아들었다.

오래 함께 산 사람은 입보다 먼저 눈을 읽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피곤이 쌓이자 같은 소리가 다르게 들렸다.

아내의 낮은 신음이 나를 찾는 소리가 아니라 나를 부리는 소리처럼 들리는 날이 생겼다.

“조금만 기다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곧 가지 않았다.

텔레비전 소리를 높이거나 마당으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아내는 다시 부르지 않았다.

그 침묵이 더 견디기 어려워져 방으로 들어가면 아내는 젖은 기저귀 위에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밥 때문에도 자주 다퉜다.

나는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려고 했고 아내는 입을 다물었다.

“이것만 먹어. 세 숟갈도 안 먹었잖아.”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안 먹으면 더 못 일어나.”

그 말은 협박이면서 애원이었다.

 

아내가 끝내 밥을 삼키지 않으면 나는 숟가락을 그릇에 던지듯 놓았다. 죽이 그릇 가장자리로 튀었다.

“먹은 게 있어야 똥도 나오는 거야. 이렇게 안 먹으면 사람 잡아.”

아내는 오른손으로 자기 아랫배를 가리켰다.

많이 먹으면 많이 싼다는 뜻이었다.

많이 싸면 내가 힘들다는 뜻이었다.

 

“그걸 왜 당신이 걱정해.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내가 화를 낼수록 아내는 더 적게 먹었다.

나는 아내의 몸을 살리려고 밥을 권했고, 아내는 나의 몸을 살리려고 밥을 거절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한다는 이유로 서로를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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