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딸에게 전화했다.
“엄마가 기계로 말했어. 요양원에 보내달라고.”
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상태가 더 안 좋아졌어요?”
“안 좋아진 건 오래됐지.”
“아빠가 힘들어서 그러는 거예요?”
나는 그 말에 화가 났다.
딸이 나를 탓한 것도 아닌데 찔린 사람이 먼저 상처를 감췄다.
“내가 보내자는 게 아니다. 네 엄마가 먼저 말했어.”
“알아요. 그냥 물어본 거예요.”
딸은 요양원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장기요양등급으로 얼마까지 지원되는지,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가 있는지도 확인하겠다고 했다.
말투는 차분했으나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목소리가 조금씩 갈라졌다.
“아빠.”
“왜.”
“엄마가 정말 그렇게 말했어요?”
“그래.”
딸은 다시 말이 없었다.
어릴 때 열이 나면 밤새 제 이마에 물수건을 얹어주던 어머니가 이제 낯선 사람에게 몸을 맡기러 간다는 말을 아직 한 문장 안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들에게도 전화했다.
아들은 회사 회의 중이라며 저녁에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밤 열 시가 넘어 전화가 왔다.
“누나한테 들었어요.”
“그래.”
“한 달에 얼마쯤 든대요?”
안부보다 돈을 먼저 묻는 말에 서운했다.
그러나 나도 그 기계음을 들은 뒤 비용부터 헤아렸다. 사랑보다 먼저 숫자를 떠올린 죄는 아들에게만 있지 않았다.
“아직 모른다.”
“제가 알아볼게요. 돈이 아까워서 묻는 건 아니에요.”
그 말이 오히려 돈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전화를 끊기 직전, 아들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엄마가 거기 가면……우리가 버리는 것 같잖아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내는 늙어서 가는 것이 아니었다. 쉰다섯에 쓰러진 뒤 꼬박 열 해를 병든 몸으로 살았다.
병은 서두르지 않았다.
먼저 걷는 일을 가져가고, 다음에는 혼자 밥 먹는 일을 가져갔다. 말과 웃음을 조금씩 흐리게 만들더니 마침내 제 몸을 제 손으로 씻는 일까지 가져갔다.
아내는 그렇게 예순다섯이 되는 해를 맞았다.
남들은 그 무렵부터 노후를 이야기했다. 일을 줄이고 여행을 다니고, 늦잠을 자고, 미뤄두었던 삶을 살아볼 때라고 했다.
우리도 그러려고 했다.
식당 문을 닫으면 동해로 가기로 했다.
바다가 보이는 방을 얻어 파도 소리를 들으며 늦잠을 자고, 배가 고프면 천천히 일어나 회를 먹기로 했다. 젊어서는 돈이 없어 못 했고, 아이들을 키울 때는 시간이 없어 못 했던 일들을 늙어서 하나씩 하기로 했다.
그러나 우리가 기다린 늙음은 오지 않았다.
아내에게는 병이 왔고, 내게는 돌봄이 왔다.
이제는 내가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려 했다.
아내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손이 놓치기 전에 더 익숙하고 단단한 손을 빌리는 것이라고.
그러나 아무리 말을 바꾸어도 아들의 한마디는 바뀌지 않았다.
버린다.
나는 아니라고도, 그렇다고도 말하지 못했다.
어떤 사랑은 설명하는 순간 변명처럼 들린다.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휴대전화를 귀에서 내리지 못했다. 아들의 숨소리는 이미 사라졌는데 그가 남긴 말만 끊어진 전화 너머에서 오래 울리고 있었다.
며칠 뒤 아이들이 함께 왔다.
딸은 과일과 성인용 물티슈를 가져왔고, 아들은 기저귀 두 상자를 차에서 내렸다.
아내는 아이들을 보자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딸이 달려가 등을 받쳤다.
“엄마, 그냥 누워 있어.”
아내는 누운 채 웃었다. 발음되지 않는 소리로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딸은 “응, 엄마. 나 왔어” 하고 몇 번이나 대답했다.
아들은 새 기저귀를 장롱 아래에 밀어 넣었다가 다시 꺼내 크기와 수량을 확인했다. 어머니의 얼굴을 오래 바라볼 자신이 없을 때마다 손에 잡히는 일을 찾는 것이 아들의 버릇이었다.
점심에는 닭죽을 끓였다.
딸이 숟가락 끝에 죽을 조금씩 얹어 입가로 가져가자 아내는 평소보다 반 그릇이나 더 먹었다. 죽 한 술을 삼킬 때마다 딸은 휴지를 접어 어머니의 입가를 조심스레 닦아주었다.
한때 밥을 받아먹던 아이의 손이 세월을 건너, 이제는 늙고 병든 어머니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아들은 물컵을 받쳤다.
아내가 물을 삼키는 동안 컵을 든 손이 떨렸다. 물 몇 방울이 턱을 타고 흐르자 아들은 소매로 닦으려다 딸이 건넨 손수건을 받았다.
네 사람이 한 밥상에 모인 것이 몇 년 만인지 몰랐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이 시간이 오래갈 것 같아 수저 소리만 들었다. 그러나 침묵은 시간을 붙들지 못했다.
밥상 한가운데서 닭죽이 천천히 식었다. 표면에 얇은 막이 생기는 동안 네 사람의 목 안에도 꺼내지 못한 말들이 한 겹씩 내려앉았다.
저녁 무렵 나는 약을 사러 영월읍내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는 일부러 천천히 운전했다. 아이들이 엄마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나 없는 곳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싶지 않았다.
집에 돌아왔을 때 대문 앞에는 아이들의 차 두 대가 그대로 서 있었다.
현관문을 여니 안방에서 딸의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 몇 달은 어떻게든 낼 수 있어. 그런데 그다음은?”
“그다음도 같이 내야지.”
“언제까지?”
아들이 대답하지 않았다.
“엄마가 앞으로 십 년을 더 사실지, 이십 년을 더 사실지 아무도 모르잖아.”
“그럼 오래 사시는 게 문제라는 거야?”
“그런 뜻이 아니잖아.”
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엄마가 또 넘어지면 아빠 혼자 못 일으켜. 지난번에는 나하고 둘이서도 겨우 침대에 눕혔어. 엄마 팔에 멍든 것 봤지?”
잠시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지난 열 해는 아빠가 거의 혼자 버텼어.”
아들이 말했다.
“알아.”
“이제는 못 해. 그러다 두 분 다 쓰러져.”
“그래서 요양원에 모시지 말자는 게 아니야.”
“그럼 뭐가 문제야?”
딸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끝이 안 보이는 게 무서워. 돈도 그렇고……그냥, 다.”
아들이 낮게 숨을 내쉬었다.
“나도 알아.”
“엄마가 앞으로도 계속 저렇게 살아야 한다면…….”
딸의 말이 거기서 끊겼다.
“그게 엄마한테 사는 걸까?”
아들이 다시 침묵했다.
“너는 그런 생각 안 해봤어?”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아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으로 이미 대답하고 있었다.
그때 안방 깊은 곳에서 아내의 소리가 났다. 말이 되지 못한 짧은 신음이 문틈을 지나 현관까지 흘러왔다.
“엄마 들려.”
아들이 말했다.
“알아.”
“그런데도 그런 말을 해?”
“못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해서 하는 말 아니야.”
딸이 울음을 삼켰다.
“알아들으니까……엄마도 무서울 거 아니야. 언제까지 이 몸으로 살아야 하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으니까.”
“그만해.”
“그만하면 누가 결정하는데?”
방 안이 조용해졌다.
나는 현관에 선 채 신발도 벗지 못했다.
손에는 아직 자동차 열쇠가 들려 있었다. 금속 모서리가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손을 펼 수가 없었다.
지난 열 해 동안 우리는 아내의 죽음이 가까이 올까 봐 두려워했다.
밤중에 숨소리가 달라지면 얼굴 앞에 손을 대보았고, 가래가 끓으면 등을 두드리며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열이 오를 때마다 이번에는 정말 잘못되는 것이 아닌가 겁을 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이 달라져 있었다.
죽음이 오지 않는 시간.
아내의 몸은 조금씩 가벼워졌지만 그 몸을 들어 올리는 일은 해마다 무거워졌다.
침대 난간과 약봉지, 기저귀와 미음 그릇 사이로 열 번의 봄이 지나갔다.
앞으로 몇 번의 봄을 더 건너야 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아내가 오래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이 고통이 이제는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어느 때부터인가 같은 가슴 안에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 쪽도 거짓은 아니었다.
나도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사실을 입 밖에 내는 순간, 열 해 동안 사랑이라 믿었던 모든 일이 한꺼번에 변명으로 바뀔 것 같았을 뿐이었다.
안방에서 다시 아내의 소리가 들렸다.
의자 두 개가 거의 동시에 뒤로 밀렸다. 아이들의 발소리가 안방으로 향했다.
“엄마, 왜 그래?”
“물 줄까?”
조금 전까지 서로를 향해 날이 서 있던 목소리가 아내 앞에서 나란히 낮아졌다.
나는 그제야 손바닥을 폈다.
자동차 열쇠의 모서리가 박혔던 자리에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아이들을 꾸짖고 싶었다.
너희를 키우는 데 들어간 돈이 얼마인지 아느냐고, 엄마가 뜨거운 주방에서 몇 번이나 쓰러질 뻔했는지 아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틀린 말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딸은 집 대출과 유치원에 다니는 두 아이를 책임지면서도 가까이 산다는 이유로 어머니의 병원 일을 맡아왔다.
아들은 계약이 끝날 때마다 다시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두 사람 모두 제가 내놓은 것은 오래 기억했지만 상대가 포기한 것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두 아이 모두 어머니를 사랑했다.
그러나 마음만으로 젖은 기저귀를 갈 수는 없었다. 간병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돈과 시간과 몸이 들어가야 했고, 자기 삶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일부러 문을 크게 닫았다.
말소리가 멎었다.
“왔어요?”
딸이 먼저 나왔다. 눈가가 젖어 있었다. 아들은 물을 마시는 척 부엌으로 갔다.
“요양원은 내가 알아서 한다.”
“아빠, 그게 아니라…….”
“식당 팔고 남은 돈 아직 있다. 너희한테 손 벌리려고 부른 것 아니다.”
말을 뱉고 나니 속이 시원하지 않았다.
딸의 얼굴이 붉어졌다. 무슨 말인가 하려던 입술이 몇 번 움직이다 닫혔다.
아들은 고개를 숙인 채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그 얼굴 아래로 안도와 수치가 거의 동시에 지나갔다.
나는 보지 않은 척했다.
아내는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기저귀를 갈아주다가 아내의 눈가가 젖어 있는 것을 보았다.
“들었어?”
아내는 눈을 감았다.
“애들이 원래 저런 애들은 아니야.”
그 말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몰랐다.
아내는 힘겹게 오른손을 들어 내 가슴을 두 번 두드렸다. 아이들을 미워하지 말라는 뜻 같았다.
“당신 잘못 아니야.”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의사소통기계를 가까이 가져다주었다.
아내의 검지가 몇 번이나 엉뚱한 글자를 눌렀다. 딸과 아들이 방문 밖에서 숨을 죽이는 기척이 들렸다.
한참 뒤 기계음이 방 안에 울렸다.
“내가 아파서 너희가 싸운다.”
딸이 문을 열고 들어와 침대 옆에 무릎을 꿇었다.
“엄마 때문 아니야. 우리가 못돼서 그래.”
아들도 누나 뒤에 서 있었다. 그는 방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문틀만 붙잡았다.
“엄마, 이상한 얘기해서 미안해.”
아내는 두 아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입술이 여러 번 움직였지만 소리가 되지 않았다.
딸이 어머니의 손을 자기 뺨에 대었다.
아들은 문틀을 놓고 다가와 그 위에 제 손을 포갰다.
나도 그 위에 손을 얹었다.
네 사람의 손이 한곳에 모였지만 누구도 용서받았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누구도 아내를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끝까지 견딜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마음들 사이에 아내의 남은 생이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 주에 세 군데 요양원을 둘러보았다.
종교재단에서 운영하는 첫 번째 요양원은 태백시 외곽에 있었다.
복도는 깨끗했지만 소독약 냄새가 강했다. 방문마다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한 할머니가 열린 방문 앞에 휠체어를 세운 채 엘리베이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였다.
상담 직원은 프로그램 시간표와 식단표를 보여주고 비용과 추가 부담금을 설명했다. 나는 숫자를 적다가 할머니를 다시 바라보았다.
우리가 돌아갈 때까지도 할머니는 같은 곳에 있었다.
두 번째 요양원은 횡성에 있었다.
마당이 넓고 햇볕이 잘 들었다. 그러나 집에서 한 시간 반이나 걸렸다. 겨울에 눈이 오면 자주 찾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영월에 있는 세 번째 요양원은 건물이 오래됐지만 직원이 아내에게 먼저 인사했다.
“어르신,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아내는 입을 움직였다. 소리는 흐렸지만 직원은 몸을 가까이 숙이고 끝까지 들었다.
“아, 그러시구나. 여기까지 오시느라 힘드셨죠?”
직원은 나에게 묻지 않고 아내에게 다시 물었다.
“창가가 좋아요, 문 쪽이 좋아요?”
아내는 창가를 가리켰다.
그곳 창밖에는 낮은 산과 작은 밭이 보였다. 신동의 우리 집에서 보던 산만큼 깊지는 않았지만 계절이 바뀌는 것은 알 수 있을 듯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는 잠들었다.
안전띠에 기대어 한쪽으로 기운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삼십여 년 전 결혼사진 속 하늘색 원피스를 떠올렸다.
사십팔 킬로그램의 아내와 지금의 아내 사이에는 아이 둘과 식당 하나, 수만 그릇의 밥과 열 해의 병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잠든 얼굴의 어느 각도에는 시장 약국 앞에서 저울 눈금을 내려다보던 여자가 남아 있었다.
“세 번째가 좋지?”
신호를 기다리며 물었다.
아내는 눈을 뜨지 않은 채 아주 조금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돌아온 이튿날 새벽부터 나는 마당을 팠다.
오랫동안 감자를 심었던 자리였다.
동강에서 아침 안개가 피어올랐다.
물 위에서 태어난 안개는 강기슭을 천천히 덮고 산허리까지 올라가 밤의 기척이 남은 골짜기를 오래 더듬었다.
강 건너 절벽은 아직 푸른 그늘에 잠겨 있었다.
햇빛은 닿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여울에서 시작된 물소리만 굽이굽이 골짜기를 돌아와 고요한 마당 끝에 머물렀다.
마당에 서면 강물은 산모퉁이 뒤로 사라졌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멈추지 않고 흘러, 먼 여울에 이르러서야 한 줄기 흰빛으로 다시 나타났다.
강은 제 몸을 감추면서도 끝내 흐르고 있었다.
잡초를 걷어내고 삽날을 박자 마른 흙 아래에서 검고 축축한 속살이 뒤집혀 나왔다.
허리는 몇 번 삽질하지 않아도 끊어질 듯 아팠다.
오래된 당뇨와 잠 부족 때문인지 다리에는 좀처럼 힘이 붙지 않았다. 쪼그려 앉았다가 일어날 때마다 눈앞이 어두워졌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아내가 이 집을 떠나기 전에 보여줄 것이 하나쯤은 있어야 했다.
기저귀 상자와 약봉지와 입소 서류가 아닌 것. 우리가 이곳에서 견디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흔적.
나는 아내에게 꽃을 한 번도 사준 적이 없었다.
결혼하고 처음 맞은 봄, 시장 좌판 앞에서 장미 한 다발을 만지작거린 적은 있었다. 아내는 값을 듣자마자 내 손을 끌었다.
“그런 비싼 꽃을 왜 돈 주고 사. 길가에서 보면 되지.”
생일날 국화 몇 송이라도 사갈까 하면 아내는 또 투덜댔다.
“꺾은 꽃은 시드는 것도 빨라서 싫어.”
나는 그 말을 평생 핑계처럼 믿었다.
꽃 대신 쌀을 사고 아이들 신발을 샀다. 아내도 더는 꽃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영월읍 화원에 들어가 늦가을까지 피는 국화와 구절초, 패랭이꽃을 골랐다.
꺾어놓은 꽃이 아니라 땅에 뿌리내린 꽃이라면 아내도 나무라지 않을 것 같았다.
화원 주인은 화분을 하나씩 비닐에 담으며 말했다.
“지금 심으면 뿌리가 자리 잡기도 전에 추위가 올 텐데요.”
“그래도 며칠은 피어 있겠지요?”
주인은 내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더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꽃을 담은 비닐봉지 안에 작은 꽃삽 하나를 넣어주었다.
나는 휠체어가 들어올 수 있도록 마당 가운데에 길을 남기고 양쪽에 꽃을 심었다.
가장자리에는 키 작은 패랭이꽃을 놓고, 그 뒤에 흰 구절초와 노란 국화를 둘렀다.
아내가 침대에 누운 채로도 볼 수 있도록 꽃들의 얼굴을 방문 쪽으로 돌려놓았다.
손바닥으로 흙을 눌러줄 때마다 어린 모종들이 쓰러질 듯 흔들렸다.
물을 붓자 잎에 붙은 흙이 씻겨 내려가고 꽃잎의 빛깔이 하나씩 살아났다.
흰색과 보라색, 노란색이 오래 비어 있던 마당 위에 작은 등불처럼 켜졌다.
동강에서 불어온 바람이 지나가자 꽃들은 서로의 어깨를 건드리며 한 방향으로 기울었다가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해가 산등성이 위로 올라오자 강물이 꽃잎 사이에서 잘게 부서져 빛났다.
나는 삽자루에 기대 숨을 골랐다.
평생 아내에게 꽃 한 송이 사주지 못했다.
이제야 겨우 손바닥만 한 계절을 아내 앞에 펼쳐놓고 있었다.
아내를 휠체어에 태워 마당으로 데리고 나왔다.
“당신 꽃밭이야.”
아내는 꽃보다 먼저 내 흙 묻은 바짓단과 퉁퉁 부은 손등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기계를 눌렀다.
“허리 아파.”
“안 아파.”
아내가 다시 눌렀다.
“거짓말.”
기계가 무표정하게 말하자 나는 웃었다.
아내의 입가에도 시장 약국 앞에서 보았던 웃음이 잠깐 돌아왔다.
“비싼 꽃을 왜 돈 주고 사느냐고 안 해?”
아내는 꽃밭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힘겹게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휠체어를 꽃밭 가운데 세웠다.
아내의 무릎 가까이에서 패랭이꽃이 떨었다.
구절초 한 송이는 바람에 밀려 아내의 오른손에 닿았다.
아내는 힘이 남은 두 손가락으로 꽃잎을 받쳤다.
꺾지도 당기지도 않고,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하듯 오래 만졌다.
동강 위의 안개가 걷히자 물길이 온전히 드러났다.
아내는 꽃을 보다가 강을 보고,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기계가 한마디를 읽었다.
“예뻐.”
나는 그것이 꽃밭을 두고 한 말인지, 우리가 함께 보낸 세월을 두고 한 말인지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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