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 동학항쟁사, 기록에 남지 않은 사람들
제39부 -남겨진 사람과, 아직 오지 않은 세상
정유년(丁酉年) 봄, 오횡묵은 전라도 서남쪽 섬 고을 지도(智島)의 군수로 있었다. 갑오년 겨울 녹도전투가 끝난 뒤 두 해 남짓이 흐른 때였다.
낮에 내린 비는 그쳤으나 처마 끝에서는 물이 떨어졌다. 바닷바람이 젖은 창호를 밀 때마다 등잔불이 기울고, 종이 위의 글줄이 손 그림자에 잠겼다가 드러났다. 오횡묵은 쓰던 《지도총쇄록(智島叢鎖錄)》을 잠시 놓고 붓끝에 엉긴 먹을 벼루 가장자리에 풀었다.
하인이 정선에서 온 사람이 기다린다고 알렸다.
들어온 사람은 보부상 이원복이었다. 정선 장터에서 무진과 나란히 걷던 사내였다. 아우라지에서는 등짐을 진 채 무진이 대어 준 배에 오르곤 했다.
원복의 바짓단은 무릎 아래까지 젖어 있었다.
짚신을 벗자 발뒤꿈치에 붙은 짚이 함께 들렸다. 그는 몸을 굽혀 짚을 떼어 내고 절을 올렸으나 곧 허리를 펴지 못했다. 젖은 등짐에서 떨어진 물이 마루에 번졌다.
“무진이 일로 왔습니다.”
오횡묵이 붓을 놓았다.
“진작 찾아뵈었어야 했습니다. 나리께서 그 아이와 정선 사람들에게 해주신 일을 생각하면…….”
자리를 권하자 원복은 말을 멈추고 등짐을 내렸다. 어깨에 파고든 끈을 빼는 데 시간이 걸렸다.
“무진이가 어찌 되었느냐?”
“녹도에서 죽었습니다.”
처마의 물방울이 돌에 부딪쳤다. 오횡묵은 원복을 바라본 채 앉아 있었다. 대답을 듣고도 다음 말이 남아 있기를 기다리는 얼굴이었다.
“전투가 있던 날 저는 녹도에 없었습니다. 붙잡혔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을 때에는 벌써 목을 베어 내걸었다고…….”
원복은 끝을 맺지 못했다.
오횡묵의 눈길이 펼쳐 놓은 종이로 내려갔다.
무진이 소장을 들고 관아에 찾아왔던 날에도 책상에는 종이가 놓여 있었다. 아버지 석주가 무엇을 바로잡으려 했고 어째서 곤장을 맞았는지, 젊은이는 제 손으로 적어 왔다. 획은 고르지 않았으나 아버지 이름 옆의 ‘죄인’ 두 글자를 지워 달라는 대목에는 거듭 고쳐 쓴 흔적이 있었다.
무진은 소장을 다 읽을 때까지 앞에 서 있었다. 옷자락 아래로 닳은 버선 끝이 보였다. 오횡묵이 고개를 들면 그도 눈을 들어 대답을 기다렸다.
“네가 가서 보았느냐?”
“동백이와 함께 들어갔습니다.”
원복의 말이 더뎌졌다.
“제가 불러도 돌아보지 않고 앞서 걸었습니다. 그러다 회색 저고리 앞에서 멈췄습니다.”
그 위에 엎어진 몸을 원복이 옆으로 옮기자 동백은 무릎을 꿇었다. 얼어붙은 소매를 뒤집어 안쪽의 실밥을 살피고, 한쪽이 짧은 옷고름을 만졌다.
“자기가 꿰맨 옷이라고 했습니다.”
“무진이가 맞았느냐?”
“바짓단을 걷고 정강이의 흉터에 손을 얹었습니다. 그제야 무진아, 했습니다. 곁에 있던 저도 겨우 들었습니다.”
오횡묵은 책상 가장자리를 짚었다.
자신도 나루에서 불렀던 이름이었다. 배를 대던 젊은이가 물살을 살피다가 고개를 들고 대답했었다.
“앞섶을 덮고 옷고름을 매는데 자꾸 풀렸습니다. 한쪽이 짧아서요. 제가 돕겠다고 해도 놓지 않았습니다.”
“목은 찾았느냐?”
원복은 고개를 저었다.
“날이 밝아 왔습니다. 더는 있을 수 없었습니다.”
창호가 바람에 울었다. 오횡묵은 입술을 다물었다.
“곁에 있던 소년과 이름 모르는 사내도 함께 데려왔습니다. 강 건너에서는 순덕 어머니와 집안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원복은 잠시 숨을 골랐다.
“동백이가 마지막 흙을 덮었습니다. 사람들이 돌아갈 채비를 하는데도 무덤 앞에 서 있기에, 제가 몇 걸음 나갔다 돌아보았습니다.”
그는 문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닫힌 문 너머에서 처마의 물이 떨어졌다.
“그때 다시 부르더군요. 무진아, 하고.”
오횡묵은 기다렸다.
“곁으로 돌아가도 저를 보지 않았습니다. 무덤만 보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원복은 아직 그 곁에 서 있는 사람처럼 문에서 눈을 거두지 못했다.
“진작 말씀드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뒤에는 죽은 사람들을 묻고 살아 있는 사람들을 돌봐야 했습니다.”
등짐 아래로 물이 번졌다. 원복이 닦으려 몸을 숙이자 오횡묵은 손을 들어 말리고, 하인을 불러 마른 수건과 따뜻한 물을 가져오게 했다.
원복은 사발을 두 손으로 받았다. 온기가 스미자 갈라진 손마디가 따끔거리는지 손가락을 조금 움직였다.
오횡묵은 아우라지에서 감영의 답을 전하던 날을 떠올렸다.
답은 돌아왔으나 무진의 아버지 석주의 이름 옆에 적힌 ‘죄인’ 두 글자는 지워지지 않았다.
무진은 소장 사본을 접어 품에 넣었다. 손톱 밑에는 금점의 검은 돌가루가 남아 있었다.
그러고도 나루를 떠나지 않고 강 건너를 보았다.
“누굴 기다리느냐?”
“좋아하는 여자가 있습니다. 동백이라고, 여기서 배를 몹니다.”
무진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저보다 배를 잘 몹니다. 물이 불어 나오지 말라고 해도 제 눈으로 물살을 보고 결정하지요.”
“그렇다면 걱정할 것 없겠구나.”
“마음이 어디 그렇습니까.”
강 건너에 배가 나타나자 무진은 손을 들었다. 동백이 보았는지 살피다가 품속의 소장을 눌렀다.
“아버지 일부터 바로잡고 마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오횡묵은 그 뒤 두 사람이 어찌 되었는지 듣지 못했다.
강가에서 손을 들던 젊은이는 그의 기억 속에서 줄곧 그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백이는 어찌 지내나?”
“아이를 낳았습니다.”
오횡묵은 원복을 바라보았다. 아이의 나이를 물으려던 말이 입안에 머물렀다.
“사내아이입니다. 한결이라 지었습니다.”
“한결.”
“이한결입니다. 제 아들입니다.”
원복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목소리는 흐트러지지 않았으나 말을 마친 뒤 입술을 한 번 다물었다.
오횡묵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백이와 혼인했구나.”
“예.”
등잔불이 두 사람 사이에서 기울었다.
“아이는 잘 자라느냐?”
“잘 뜁니다. 걸음보다 마음이 급해서 몇 발짝 못 가 넘어집니다. 울지도 않고 땅을 노려보다 다시 일어섭니다.”
원복의 얼굴에 잠깐 웃음이 스쳤다.
“집에 가면 대문까지 뛰어나옵니다. 짐을 내려놓기도 전에 안기려고 합니다.”
그는 아이를 받으려는 듯 팔을 조금 벌렸다가 거두었다.
“순덕 어머니께도 데리고 갔습니다.”
“무엇이라 하시더냐?”
“이름을 물으셨습니다. 한결이라고 하자 품에 안고 가만히 따라 부르셨습니다.”
잠든 아이가 입꼬리를 올렸다. 순덕은 한쪽 볼이 먼저 올라가는 것을 보고 손을 뻗었다. 무진도 어릴 때 그렇게 웃었다고 했다. 그 뒤로는 아이의 얼굴만 쓰다듬었다. 잠결에 몸을 뒤척이면 손을 멈추었다가 잠이 깊어지면 다시 볼에 댔다.
원복이 데려가려고 두 팔을 내밀자 순덕은 한결이를 건네주었다. 아이의 무게가 옮겨 간 뒤에도 빈손은 한동안 그 높이에 머물렀다. 원복은 아이를 안은 채 기다리다가 순덕이 손을 내리고서야 일어섰다.
“마당을 나서는데 저를 부르셨습니다.”
순덕은 방에서 작은 버선 한 켤레를 가져왔다. 한결이의 발에 대어 보니 조금 컸다. 남는 앞코를 접어 신긴 뒤 두 손으로 아이의 발을 감쌌다.
“다음에 올 때도 데려오너라.”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발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한 번 더 말씀드렸습니다. 꼭 데리고 오겠다고요.”
원복은 식어 가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한결이는 저를 참 좋아합니다.”
그는 사발을 내려놓고 한동안 그 말을 이을 곳을 찾지 못했다.
“가끔 이름을 불러도 노느라 못 듣습니다. 다시 부르면 돌아보고 웃습니다.”
문밖에서는 하인이 젖은 마루를 닦고 있었다.
“그 웃는 얼굴을 보고도 가슴이 덜컥합니다. 대답을 못 들으면 자꾸 먼저 겁이 납니다.”
오횡묵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뜸해지자 먼 파도 소리가 두 사람 사이로 들어왔다.
원복은 정선에서 이 먼 섬까지 품고 온 말을 꺼냈다.
“군수님, 무진의 죽음은 헛된 것입니까?”
오횡묵은 곧 대답하지 못했다.
“무진의 아버지는 아직도 장부에 죄인으로 남아 있고, 금점 사람들은 쓰지도 않은 돈까지 빚이 되어 갚고 있습니다. 무진이는 제 목조차 돌려받지 못한 채 역적으로 묻혔습니다. 그런데 뜻있는 정선 사람들은 그 아이가 큰 뜻을 품고 죽었다고 합니다. 살아서는 들어 주지 않던 뜻을, 죽고 나서야 알아주는 것입니다.”
원복의 눈길이 오횡묵에게 머물렀다.
“큰 뜻이라는 말로 그 몸을 덮어도 됩니까?”
오횡묵은 펼쳐 놓은 종이를 보았다가 원복에게 눈을 돌렸다.
“모르겠다.”
원복의 얼굴이 굳었다.
“그 죽음의 값을 내가 매길 수는 없다. 뜻이 있었다고 쉽게 말하면, 그 애가 죽어야 할 곳에서 죽은 것처럼 들리지 않겠느냐.”
“그럼 헛되게 죽은 겁니까?”
“그렇게도 말하지 않겠다.”
오횡묵은 잠시 말을 멈췄다.
“무진이가 살아서 한 일을 네가 알고 나도 안다. 죽지 않고 그 일을 계속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원복은 고개를 숙였다.
“저는 그 애가 죽은 뒤 무슨 일을 해도 그 애 몫을 제가 가져온 것 같습니다. 동백이 곁에 있을 때도요.”
무릎 위에서 손가락이 맞물렸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그렇습니다. 제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말이 끊겼다. 오횡묵은 원복이 고개를 들 때까지 기다렸다.
“아이가 네게 안기려 한다 하지 않았느냐.”
“예.”
“그때는 두 손을 내주어라.”
원복은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맞물린 손가락을 하나씩 풀었으나 고개는 들지 못했다.
눈물이 바지 위로 떨어져 젖은 천에 스며들었다.
오횡묵은 말을 보태지 않았다. 처마 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돌을 두드렸다.
한동안 지난 뒤 원복이 말했다.
“나리께서 기억하시는 무진이도 적어 주십시오.”
오횡묵은 책상에 펼쳐 둔 종이를 바라보았다.
“나도 내가 아는 무진을 적어 두마.”
그날 밤 원복은 관아의 방에서 묵었다. 하인이 등짐을 들려고 하자 이번에는 선뜻 내주었다. 방문을 나서기 전 깊이 절했고, 오횡묵은 그가 젖은 짚신에 발을 넣는 동안 문 앞에 서 있었다.
하인은 부엌의 남은 불을 모아 방을 덥혔다. 잠시 뒤 건너편에서 밥과 국을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원복이 고맙다고 했다.
문이 닫힌 뒤에는 수저 소리가 한동안 들리지 않았다.
오횡묵은 책상으로 돌아왔다. 쓰다 만 《지도총쇄록》 위에 붓이 놓여 있었다. 오늘 들은 일을 적으려 하면 동백이 놓지 못했다는 옷고름이 떠올랐고, 무진의 이름을 쓰려 하면 나루에서 웃던 얼굴이 앞섰다.
그는 등잔불을 돋우었으나 그날 밤에는 다음 줄을 쓰지 못했다.
이튿날 아침, 원복은 마른 짚신을 신고 떠났다. 밤새 말린 보자기에서는 희미한 연기 냄새가 났다. 하인이 길에서 먹으라며 밥을 건네자 원복은 등짐 안쪽에 넣었다.
“돌아가면 동백이에게도 안부를 전하여라.”
“예, 나리.”
원복은 대문 밖에서 한 번 더 돌아보았다. 오횡묵은 문 안에 서서 손을 들었다. 사내가 골목을 돌아 보이지 않게 된 뒤에야 손을 내렸다.
그 뒤 오횡묵은 동학의 글을 구해 읽기 시작했다.
무진이 금점과 나루를 오가며 외웠다는 주문을 종이에 옮겼다.
시천주 조화정(侍天主 造化定).
한울님을 모신다는 말 앞에서 붓이 머물렀다. 정선에서 만났던 광부와 사공, 굶주린 노인과 맨발의 아이들에게도 저마다 모신 한울이 있다고 무진은 믿었다.
최제우가 남긴 글과 도인들이 전하는 가르침을 읽으며 수심정기(守心正氣), 보국안민(輔國安民)의 뜻도 따로 적었다. 마음을 지키고 기운을 바르게 한다는 말,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말이었다. 동학의 모든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으나, 소장을 내밀던 무진이 무엇을 기다렸는지는 알고 있었다.
창밖으로 관아 일을 마친 사람들이 돌아갔다. 한 사내가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걸었다. 아이의 신이 벗겨지려 하자 뒤따르던 사람이 멈춰 세우고 고쳐 신겼다. 사내는 돌아보며 무엇인가 말했고, 셋은 다시 길을 갔다.
무진이 바라던 세상이 이 땅에 올 것인가.
봄이 깊어 갈 무렵, 오횡묵은 나무궤에서 《정선총쇄록(旌善叢鎖錄)》의 필사본을 꺼냈다. 정선을 떠날 때 가져온 책이었다. 끈을 풀자 묵은 종이 냄새가 났고, 뒤쪽에는 글을 쓰지 않은 장이 남아 있었다.
그는 그 빈 장을 펼쳤다.
원복에게 들은 녹도의 일을 적었다. 죽은 사람의 수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썼다. 동백이 짧은 옷고름을 알아보고, 정강이의 흉터를 만진 뒤 무진의 이름을 불렀다고 적었다.
목은 찾지 못했다고도 썼다.
그 줄에서 붓이 멈췄다. 먹이 종이에 스며드는 동안 오횡묵은 다음 줄을 비워 두었다가, 벼루에 붓을 풀고 다시 내려갔다.
변무진. 변석주의 아들. 아우라지에서 배를 몰았다.
그 아래에는 동백과 원복이 아이를 기르고 있다고 적었다. 이름은 이한결이라 한다.
바람에 종이 모서리가 들리자 오횡묵은 손바닥으로 눌렀다. 무진의 이름 아래에는 녹도의 일이 이어져 있었다. 알아본 몸과 찾지 못한 머리, 무덤에 덮은 흙이었다.
그는 남은 빈 줄에 아우라지에서 직접 들은 말을 적었다.
“좋아하는 여자가 있습니다. 동백이라고, 여기서 배를 몹니다.”
붓을 놓고도 책은 덮지 않았다. 바닷바람이 잦아든 창밖으로 먼 물소리가 들렸다.
그날 무진은 나루에 서서 동백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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