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 동학항쟁사, 기록에 남지 않은 사람들

제35부 - 사람을 먹이려고 연 창고, 죄목이 되어 돌아오는 이름들
이튿날, 사람들은 남은 곡식을 삶아 나누고 정선으로 향했다.
걸을 수 없는 부상자는 가까운 마을에 맡기고 돌볼 사람을 남겼다.
함께 나선 이들은 짐을 줄였다. 무진은 광부의 자루를 제 등에 얹고 보폭을 맞추었다. 사내는 성한 발을 먼저 디딘 뒤 다친 다리를 끌어당겼다. 뒤에서 서두르자는 소리가 나면 무진은 길 가장자리로 비켜 그를 쉬게 했다.
강릉 사내도 행렬에 있었다.
동생의 소식을 얻지 못한 뒤로 말이 줄었다. 누가 강릉에서 왔다고 하면 얼굴을 살폈으나, 더는 이름을 묻지 않았다. 길가에서 주운 굵은 나무를 깎아 몽둥이로 만들고 걷는 동안 손에서 놓지 않았다.
시월 하순, 여러 고을의 농민군이 정선읍에 이르렀다. 군수가 달아났다는 소문은 이미 퍼져 있었으나 관아 대문은 닫혀 있었다.
사람들은 죽창과 낫, 쇠스랑을 들고 섰다. 화승총을 가져온 이도 있었지만 화약이 모자랐고 심지는 눅눅했다. 아이를 업은 여자는 등 뒤로 손을 뻗어 버선 밖으로 나온 발가락을 감쌌다.
“문을 열어라!”
“관곡을 내놓아라!”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지왈길이 앞으로 나섰다.
“문이 열려도 사람에게 함부로 손대지 마시오. 곡식과 장부부터 확인하겠소.”
늙은 농부가 물었다.
“우리를 굶긴 자들은 그대로 두자는 말이오?”
“한 일을 물어야지요. 누구든 붙잡아 때려서는 안 됩니다.”
농부는 허리에 두른 새끼줄을 당겨 바지춤을 고쳐 묶었다. 뒤에서는 통나무를 가져오자는 소리가 났다.
석주의 상여를 함께 멨던 마을 사내가 무진을 불렀다.
“정말 들어갈 셈이냐?”
“먹을 것이 떨어졌습니다.”
“문을 부수면 집에 남은 사람들도 무사하지 못할 게다.”
무진은 대문을 보았다.
“문 앞에서 사정을 말할 때에는 들여보내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살아서 돌아가야 하지 않느냐.”
무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나루에는 동백이 있었고 순덕도 소식을 기다릴 것이었다. 이곳에 선 사람들에게도 돌아갈 집이 있었다. 다만 그 집에서 먹을 것이 먼저 떨어져 있었다.
대문 앞에 굵은 통나무가 놓였다. 잘린 밑동에서 송진 냄새가 났다. 무진이 한쪽을 들자 곁의 사람들이 달라붙었다. 빈속으로 산길을 걸어온 팔들이 무게를 받으며 떨렸다. 말리던 사내도 끝에 손을 얹었다.
“같이 들어야지. 한쪽으로 쏠리면 다친다.”
첫 충격이 문짝을 울렸다. 손목에서 어깨까지 힘이 되돌아와 사람들이 발을 고쳐 디뎠다. 처마에서 먼지가 떨어졌으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손바닥이 벗겨진 사람이 소매에 피를 닦고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손을 보탰다. 다시 들이받자 문설주에서 흙과 나무 부스러기가 쏟아졌다. 앞뒤의 걸음이 어긋나 통나무가 비스듬히 닿았을 때에는 한 사내가 진창에 넘어졌다. 그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신물을 토하고 다시 나무를 잡았다.
“앞에서 먼저 뛰지 말고 함께 갑시다.”
무진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구령에 맞춰 발을 디디자 문 한가운데로 무게가 실렸다. 빗장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고 문짝 사이에 틈이 벌어졌다.
틈으로 내다보던 아전이 뒤로 물러났다. 안쪽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났다.
마지막 충격에 빗장이 부러졌다. 대문이 안으로 기울며 먼지가 일었으나 앞에 선 이들은 곧바로 들어가지 못했다. 아전의 부름을 기다리고 고개를 숙여야 넘을 수 있던 자리가 발밑에 누워 있었다.
무진이 문짝 위에 발을 놓았다. 나무가 무게를 받으며 갈라졌다. 뒤에서 한 사람이 따라왔고 곧 여러 발이 문을 밟았다.
마당으로 들어선 사람들은 창고와 동헌, 감옥 쪽으로 흩어졌다. 군졸 몇이 창을 겨눴으나 밀려드는 사람들 앞에서 물러섰다. 지왈길과 장익수는 군졸들에게 무기를 내려놓게 하고 사람들을 떼어 놓았다.
무진은 광부를 행랑 벽에 기대앉혔다.
북평에서 합류한 늙은 농부가 빈 자루를 무릎에 놓고 곁에 앉았다. 그는 집에 남겨 둔 식구에게 보낼 곡식을 구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무진은 창고 앞으로 갔다. 문에는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창고 일을 아는 자를 찾자 행랑 가까이에 서 있던 아전 하나가 나왔다. 그는 무진을 보다가 뒤에 선 사람들의 창끝으로 눈길을 옮겼다.
“열쇠가 어디 있습니까?”
“함부로 열 수 없는 곳이오.”
“먹을 곡식이 남아 있습니까?”
아전은 창고 쪽을 보았다.
“나라의 곡식이오. 내주려면 분부가 있어야 하오.”
행랑에서 기침이 났다. 광부가 벽을 짚고 몸을 옮기고 있었다.
“문을 여십시오.”
“군수도 없는 마당에 내가 무슨 수로 책임을 지겠소.”
무진은 더 묻지 않고 문 앞으로 갔다. 뒤따라온 사내가 자물쇠를 당겼다. 쇠가 문고리에 부딪쳤으나 열리지 않았다.
“부숴도 되겠소?”
무진은 문 앞에서 비켜섰다.
“부수시오. 곡식부터 꺼내 사람들을 먹여야겠습니다.”
망치가 쇠고리를 내리쳤다. 두 번째에 문고리 주변의 나무가 갈라졌고 세 번째에 자물쇠가 쇠붙이째 떨어졌다. 문이 안쪽으로 밀리며 묵은 냄새가 쏟아졌다.
무진은 먼저 들어가 축축한 가마니를 젖혔다.
“마른 것부터 내오시오. 꺼낸 수량은 적어 두고, 다친 사람들에게 먼저 나눕시다.”
아전은 기둥 곁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곁의 사내가 무진을 이름으로 부르자 그의 눈길이 얼굴에 머물렀다. 무진이 창고 안으로 다시 들어간 뒤에야 아전은 행랑 뒤로 물러났다. 뒷문에서 한 차례 돌아보고는 나갔다.
지왈길과 마을 두민들이 곡식을 살폈다. 아래쪽 가마니는 습기를 먹어 검게 물렀고 터진 자리에는 쥐똥이 섞여 있었다. 북평의 늙은 농부가 낟알을 손바닥에서 비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이건 먹이면 탈이 나겠소.”
마른 곡식을 골라 부엌으로 보냈다. 보리쌀을 씻고 물을 넉넉히 부어 끓이자 솥 가장자리에 거품이 모였다. 사람들은 빈 그릇을 찾아 씻고 뜨거운 솥을 옮길 자리를 비웠다.
무진은 먼저 뜬 죽을 광부에게 가져갔다.
광부는 두 손으로 사발을 받았으나 수저를 쥔 손이 떨렸다. 무진이 사발 밑을 받치자 그가 첫술을 입에 넣었다. 오래 씹고 삼킨 뒤에야 굳었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천천히 드십시오. 더 있습니다.”
광부는 사발 안을 내려다보았다. 무진이 손을 떼려 하자 한 번 더 받쳐 달라는 듯 손가락으로 가장자리를 눌렀다.
그때 마당 반대편에서 고함이 났다.
창을 내려놓았던 군졸 하나가 바닥에 넘어져 있었다. 강릉 사내가 그의 옷깃을 잡아 끌고 있었다.
“칼 찬 놈들은 다 한패야!”
군졸은 바닥에 떨어진 창을 바라보았으나 손을 뻗지는 못했다.
“내 동생도 이렇게 넘어졌겠지!”
몽둥이가 내려갔다. 곁의 교도 하나가 발을 보탰고 뒤따르던 사람들이 군졸을 둘러쌌다.
“그만두시오!”
지왈길이 뛰어들어 몽둥이를 붙들었다.
“이 사람이 당신 동생을 죽였소? 무기를 놓았으니 물러나시오!”
“그럼 내 동생은 누가 살려 줄 것이오!”
사내가 팔을 비틀었다. 지왈길이 다시 붙잡으려 하자 팔꿈치로 얼굴을 밀쳤다. 입술이 터졌지만 지왈길은 군졸 앞을 막았다.
무진은 사발을 광부의 무릎 위에 놓고 달려갔다. 사내의 팔을 뒤에서 붙잡자 그는 끌려가면서도 발을 뻗었다.
“내 동생을 내놓으라고!”
장익수가 몽둥이를 빼앗았다. 사내는 빈손으로 허공을 움켜쥐다가 멈췄다.
지왈길이 군졸을 바로 눕히고 목에 손을 댔다. 젊은 얼굴이었다. 한쪽 눈이 떠 있었고 입가에 피가 고였다.
“죽었소.”
둘러섰던 사람들이 물러났다. 발을 보탠 교도 하나가 제 짚신을 내려다보았다. 강릉 사내는 무진에게 붙잡힌 채 군졸을 보았다.
“내 동생도 못 돌아왔소.”
무진이 팔을 놓자 그는 마당에 주저앉았다. 이제 누구도 그의 말을 받지 않았다.
담장 가까이 선 정선 교도가 낮게 말했다.
“제 동생 죽인 자를 찾아야지, 여기 군졸을 죽이면 어쩌자는 것이오.”
그는 아전들이 달아난 뒷문을 보았다.
“저들이 가서 무엇이라 하겠소. 정선 교도들이 관아를 빼앗고 군졸까지 죽였다고 할 것 아니오.”
곁의 사내가 대꾸했다.
“우리 사람도 발을 보탰소.”
먼저 말한 교도는 입을 다물었다.
무진은 군졸의 옷깃을 여며 주었다. 가까이 놓인 손에는 창자루를 오래 쥐어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누군가 시신을 덮을 멍석을 가져왔다. 무진은 어깨 아래에서 손을 빼고 일어났다.
행랑에서는 광부가 사발을 내려놓았다. 수저가 그릇에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무진이 돌아가자 광부는 그의 손을 보고 수저를 다시 들지 못했다.
죽은 아직 따뜻했다.
무진은 사발이 기울지 않도록 광부의 무릎 위에서 조금 안쪽으로 밀어 주었다.
해가 기울 때까지 곡식을 나누었다. 처음에는 집마다 두 되씩 돌아갔으나 기다리는 사람이 늘면서 한 되를 채우기도 어려워졌다.
“앞집은 두 되인데 왜 우리는 한 되요?”
“남은 곡식이 모자랍니다.”
되박을 든 교도는 말을 마치고 손을 멈췄다. 자신도 관아에서 그런 대답을 듣고 돌아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더 채우면 뒤에 선 사람에게 줄 것이 없었다.
무진이 가마니 바닥의 낟알을 모아 보탰다. 기다리던 여자는 그 양을 보고 자루 입구를 벌렸다.
“애가 셋이오.”
무진은 자루를 붙잡아 주었다.
여자는 흘러내린 낟알을 손으로 훑어 담고 뒤로 물러났다.
형방의 방에는 장부들이 쌓여 있었다. 책등에는 손때가 검게 배었고 습기를 먹은 종이 끝은 말려 있었다. 무진은 글을 아는 교도들과 몇 권을 펼쳤다. 같은 이름 아래 해마다 곡식과 돈이 붙었다. 갚은 것인지 남은 것인지 가리기 어려운 줄도 있었다.
날짜를 맞추던 교도가 한 이름에서 손을 멈췄다.
“변석주.”
무진이 가까이 앉았다. 이름 곁에 항납과 곤장 스무 대가 적혀 있었다. 오래 바로잡아 달라고 청했던 기록이었다. 종이 끝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 가장자리가 구겨졌다.
그는 잠시 그대로 있다가 손을 폈다.
“이 줄을 따로 베껴 주십시오.”
교도가 새 종이를 당겼다. 무진은 원본을 붙들고 아버지의 이름이 옮겨지는 것을 보았다.
마당에서는 납부표를 가진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렸다. 죽은 식구의 군포를 대신 냈다는 여자와 없는 땅에 세금을 냈다는 사내가 앉았다.
“이게 다시 빚이 되는 것은 아니오?”
사내가 자기 이름을 적기 전에 물었다. 교도가 받아 적은 말을 읽어 주자 그는 갚은 해를 고쳤다. 곁의 이웃이 그해 흉년을 기억한다고 거들었다.

지왈길이 동헌 마루에서 보국안민을 외쳤다. 군중이 받아 외쳤고 척양척왜의 함성도 뒤따랐다. 무진은 종이를 묶다가 멍석 밖으로 나온 군졸의 버선 끝을 보았다. 짚신을 찾아 곁에 놓자 뒤에서 누군가 납부표의 글자를 읽어 달라고 불렀다.
며칠 동안 사람들은 관아와 가까운 마을을 오갔다. 다친 이들을 돌보고 다른 고을의 농민군에게 소식을 보냈다. 군졸의 시신은 집을 아는 사람에게 맡겼다. 멍석을 들어 옮길 때 무진도 한쪽을 잡았다. 대문을 넘는 동안 아무도 함성을 지르지 않았다.
소식을 알아보러 나갔던 무리가 돌아온 것은 그 뒤였다. 길목에서 관군과 민보군의 공격을 받아 흩어졌다고 했다. 팔에 헝겊을 감은 사내가 먼저 들어왔고 뒤에서는 동료를 업은 이가 문턱을 넘었다. 업힌 사람의 발이 걸음마다 땅을 스쳤다.
무진은 물동이를 가져왔다.
상처에 붙은 흙과 천은 물을 적셔도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다친 사내는 상처를 만질 때보다 문밖에서 발소리가 날 때 더 크게 몸을 움츠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 사람이 제 손을 보고 있었다.
“내가 놓았어.”
장익수가 곁에 앉았다.
“누구를?”
“같이 가자고 했는데…… 내 발목을 붙들었는데.”
사내는 손가락을 벌렸다가 다시 쥐었다. 장익수가 놓아 준 물그릇을 들지 못했다.
그날 저녁, 일본군과 감영군이 정선으로 온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포군과 민보군도 움직인다고 했다. 언제 닿을지는 말이 달랐다.
지왈길은 직접 본 곳과 전해 들은 곳을 따로 묻게 했다.
“앞에서 길을 잡는 사람은 보았소?”
무진이 묻자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당의 얼굴들을 살핀 뒤 낮은 목소리로 이름을 댔다. 장날이면 같은 나루를 건너고 마을에 상이 나면 함께 줄을 잡던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그 이름을 듣고 서로를 보았다. 그 사람은 고개와 여울을 묻지 않아도 알았다. 누가 어느 사랑방에 모였고 누가 곡식을 보탰는지, 산에 숨으면 어느 집에서 밤을 지낼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뒤이어 들어온 소식에는 무진의 이름이 있었다. 창고 앞에서 사라진 아전이 관군 쪽에 가서, 무진이 자물쇠를 부수게 하고 관곡을 내주었다고 알렸다는 것이었다.
소식을 가져온 사내가 가까이 왔다.
“창고를 열라고 한 사람이 자네라고 했다네.”
무진은 묶던 문서에서 손을 떼었다.
“내가 열라고 했습니다.”
사내는 그를 보다가 말을 낮췄다.
“사람을 먹였다는 말보다 관곡을 빼앗았다는 말이 먼저 갔어.”
창고 문이 갈라지던 소리가 무진에게 돌아왔다. 그 안에서 꺼낸 보리로 광부가 첫술을 삼켰고 빈 사발들이 부엌으로 돌아왔다. 아전은 그동안 기둥 곁에서 그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마당에서 곡식 자루를 묶던 여자가 매듭을 풀었다. 집으로 가져가려고 받은 조를 다시 내놓으려는 것이었다.
“이걸 가져갔다고 우리 애들까지 잡아가면…….”
곁의 여자가 자루를 붙들었다.
“그럼 오늘은 무엇을 먹이려고?”
두 사람은 자루를 사이에 두고 움직이지 못했다.
무진은 진술서들을 내려다보았다.
이름과 마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장부의 잘못을 밝히려고 모은 종이가 잡아갈 집을 알려 주는 종이가 될 수도 있었다.
석주의 기록을 베낀 종이는 따로 접어 품에 넣었다. 다른 진술서는 마을별로 나누었다. 돌려주겠다고 하자 가져가겠다는 사람과 여기 두겠다는 사람이 갈렸다.
“없애면 우리가 낸 것은 누가 알아주오?”
늙은 농부가 물었다.
무진은 그의 종이를 따로 접었다.
“없애지 않겠습니다.”
지왈길이 사람들을 불렀다.
“관아에 모여 있다가 한꺼번에 막히면 빠져나갈 수 없소. 집으로 돌아갈 사람과 남을 사람을 정합시다. 다친 이들부터 옮겨야 하오.”
군중 뒤에서 한 사내가 말했다.
“집에 가면 괜찮겠소? 대문을 함께 민 얼굴을 다 보았는데.”
“여기 남으면 괜찮고?”
다른 이의 말에 몇 사람이 돌아섰다. 그 뒤로는 누구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아이를 업은 여자가 남편의 소매를 잡았다. 남편은 창을 내려놓았다가 다시 들었다. 여자는 소매를 놓지 않은 채 아이를 등에 고쳐 업었다.
무진은 둘 사이를 지나 강가로 갔다.
서리가 내린 갈대 너머로 녹도(鹿島)가 보였다. 먼저 건너간 사람들이 머물 자리를 살피고 있었다. 사공들은 자갈이 드러난 기슭을 피하며 배를 댔다.
무진은 나루로 돌아가고 싶었다.
동백이 기다리는 물가와 순덕이 있는 집을 생각했다. 그러나 곁에서는 광부가 다친 다리를 끌며 짐을 들고 있었다. 몇 걸음 가지 못해 멈췄다.
무진은 그의 자루를 받아 들었다. 녹도로 건널 배 앞에서 광부의 이름을 다시 물었다. 강릉에서 듣기는 했으나 고갯길의 신음과 뒤섞여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광부가 말해 주자 입 안에서 두 번 되뇌었다.
배가 물살에 밀려 돌에서 벌어졌다. 무진은 삿대로 바닥을 짚고 뱃전을 당겼다. 찬물이 짚신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타도 배를 댈 수 있겠소?”
무진은 돌을 밟아 흔들리지 않는지 살핀 뒤 광부의 팔을 어깨에 걸었다.
“성한 발부터 디디십시오.”
광부가 발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무진은 재촉하지 않았다. 녹도 쪽에서 누군가 건너오는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무진은 광부의 이름을 불러 답하고 허리를 받쳤다.
다친 발이 뱃전 안으로 넘어온 뒤에야 팔을 풀었다.
“자네도 타는가?”
“남은 문서를 챙겨 오겠습니다.”
사공이 배를 밀 준비를 하자 소매를 쥔 광부의 손가락이 하나씩 펴졌다. 무진은 배가 여울을 벗어나는 것을 보고 관아로 돌아갔다.
마당에서는 남을 사람들이 무기를 모았다.
죽창은 끝이 갈라진 것과 성한 것을 나누고, 낫은 풀린 자루를 다시 묶었다. 화승총을 가진 이들은 처마 밑에서 심지를 살폈다. 화약을 받은 사내가 제 몫을 보고 곁의 사람에게 물었으나 그쪽에서도 빈 종이를 접을 뿐이었다.
장익수는 산판에서 나무를 옮기던 사람들을 모아 길을 막을 곳과 다친 이들을 물릴 곳을 살폈다.
아낙들은 남은 곡식으로 주먹밥을 만들고 헌 베를 찢어 씻었다. 한 여자는 남편의 저고리를 펼쳤다가 아직 입을 옷이라며 다시 접었다. 대신 제 속적삼의 해진 부분을 잘라 냈다.
지왈길은 무기를 든 사람들을 마당에 세웠다.
“앞사람이 멈추면 뒤에서도 멈추시오. 혼자 쫓아가지 말고, 다친 사람이 나오면 길을 내주시오.”
구령보다 먼저 나가는 사람이 있었고 남의 발뒤꿈치를 밟는 사람도 있었다. 장익수가 두 사람 사이를 벌려 주었다. 넘어지면 일으켜 세우고 같은 자리에서 다시 시작했다.
무진은 강릉의 문간을 떠올리다가 옆 사람의 흔들리는 창대를 낮춰 주었다.
“제 곁에 계십시오. 앞으로 혼자 나가지 마시고요.”
사내는 대답 대신 창을 고쳐 쥐었다.
마당 한쪽에서 어머니가 아들의 버선목을 끌어 올려 주었다. 아들은 다 큰 몸을 굽혀 끈을 묶도록 기다렸다. 어머니는 매듭을 다 짓고도 발목을 한동안 잡고 있었다.
“밤에는 젖은 데 앉지 마라.”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돌아서자 낫을 들고 다른 사람들 곁으로 갔다. 어머니는 담장 모퉁이에서 그 모습을 다시 보았다.
무리는 곡식과 물을 챙겨 강가로 향했다. 녹도로 갈 사람과 귀가할 사람이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 다음에 어디서 만나자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무진은 마지막 문서 꾸러미를 어깨에 얹었다. 대문을 부술 때 통나무를 함께 들었던 사내가 밑을 받쳐 주었다.
“무겁냐?”
“들 만합니다.”
사내는 꾸러미를 조금 더 밀어 올렸다.
“강 건너가면 함께 있자.”
무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마당을 돌아보았다. 곡식을 쏟았던 자리에는 겨와 낟알이 남았고 군졸의 피를 씻은 땅은 아직 젖어 있었다. 창고 문턱 아래에는 부서진 자물쇠가 놓여 있었다.
쓰러진 문짝을 넘을 때 밑창에 나무 부스러기가 걸렸다. 무진은 발을 털지 않고 걸었다. 뒤에서 사내가 따라왔고 더 뒤에서는 낫과 창을 든 사람들이 같은 문을 넘었다.
강가에 닿자 배 한 척이 돌아오고 있었다.
먼저 건너간 광부의 모습은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등 뒤에서는 집으로 돌아갈 사람들이 길을 물으며 멀어졌다.
“무진아, 타자.”
사내가 배 안에서 손을 내밀었다. 무진은 문서 꾸러미를 먼저 건네고 뱃전에 발을 놓았다. 배가 기울자 사내가 그의 팔을 잡았다. 그는 다른 발도 배 안으로 옮겼다.
사공이 삿대를 밀었다. 물가의 돌이 멀어지고 발밑에서 문서 꾸러미가 옆으로 미끄러졌다. 무진은 그것을 두 발 사이에 붙잡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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