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 동학항쟁사, 기록에 남지 않은 사람들

제39부 -돌아갈 집을 부르던 사람들
동짓달 스무닷샛날 아침, 녹도의 자갈밭에는 밤이 걷힌 뒤에도 추위가 남아 있었다.
강물 위로 엷은 안개가 흘렀다.
기슭에 얼어붙은 물은 물살이 밑을 훑을 때마다 속에서 가늘게 울었다.
산등성이가 밝아지는데도 섬에는 볕이 들지 않았다. 포로들의 머리와 어깨에 내려앉은 서리가 숨결에 녹았다가 다시 희어졌다.
군졸이 일어나라고 발끝으로 등을 밀었다.
사내 하나가 몸을 세우다 옆으로 쓰러지자 곁의 사람이 어깨를 들이밀었다.
밤새 등 뒤에 묶여 있던 손은 제 몸 아래 깔려 감각이 없었다. 포승줄로 이어 놓은 몸들은 한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함께 흔들렸다.
무진은 무릎을 벌려 쓰러지는 사내를 받쳤다.
일어난 자리에는 옷에 눌린 자갈이 검게 젖어 있었다. 몸으로 겨우 덥혀 놓았던 그만한 땅도 곧 식었다.
누군가 해가 뜨면 좀 낫겠다고 말했다.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으나 몇 사람이 산 위를 보았다.
무진도 빛이 걸린 능선을 올려다보았다. 볕이 여기까지 내려오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나루에서라면 늘 알던 시간이 오늘은 가늠되지 않았다.
녹도 전투에서 강둑의 사격을 지휘했던 일본군 장교 사토가 통역을 불렀다.
포로들 가운데 전투에 앞장선 자와 지도자를 가려 목을 베고, 그 머리를 내걸라는 요구였다. 통역이 말을 옮기는 동안 그는 섬 아래쪽 여울을 살폈다. 병사들이 총을 든 채 물가로 흩어졌다.
감영군 군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연학은 부장에게 명단을 가져오게 하고, 정선 군졸과 민보군에 형장을 준비하라고 명했다.
군졸들이 숲 가장자리에서 땅을 팠다.
삽날은 언 흙을 조금 벗겨 내고 곧 돌에 막혔다. 쇠와 돌이 부딪치는 소리가 날 때마다 포로들의 얼굴이 들렸다. 구덩이가 깊어지자 긴 장대가 들어갔다. 한 사람이 붙잡고 다른 사람이 발로 흙을 다졌으며, 손을 놓은 뒤에도 나무 끝은 한동안 소나무 가지 곁에서 흔들렸다.
“저걸 어디에 쓰려는 거요?”
뒤쪽 사내가 물었다. 군졸은 삽에 묻은 흙을 털었다.
사내는 장대의 높이를 올려다보다가 칼을 든 사람 쪽으로 눈을 돌렸다.
“사람 목을…….”
그가 몸을 뒤로 밀었다. 뒤에 앉은 사람의 무릎에 등이 걸렸는데도 발뒤꿈치로 자갈을 밀어냈다. 줄이 팽팽해져 옆 사람의 어깨가 돌아갔다.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소. 곡식만 날랐소. 나를 아는 사람이 있소.”
군졸이 조용히 하라고 했으나 그는 포로들의 얼굴을 하나씩 찾았다. 눈이 마주친 사람이 고개를 숙이면 그다음 사람에게 매달렸다.
“자네도 보았지. 내가 자루만 날랐지.”
불린 사내의 입술이 벌어졌다가 닫혔다.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지만 군졸은 그쪽을 보지 않았다. 곡식을 날랐다는 말이 다시 나왔다. 처음보다 작아진 목소리가 줄에 묶인 사람들 사이를 맴돌았다.
무진의 곁에서는 한 사내가 입을 벌린 채 숨만 쉬고 있었다.
갈라진 입술 끝에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사내는 무진의 무릎에 제 무릎을 붙였고, 무진이 피하지 않자 조금 더 가까이 몸을 옮겼다.
부장이 명단을 폈다. 바람에 들리는 종이 귀퉁이를 엄지로 누르고 첫 이름을 읽었다.
“지왈길.”
지왈길은 고개를 들었다. 대답은 했으나 일어서지 못했다.
한 번 주저앉은 뒤 무릎을 짚으려던 손이 등 뒤에서 멎었다. 곁의 사람이 어깨를 받쳐 주자 그 힘을 빌려 몸을 세웠다. 산판에서 나무가 쓰러질 때마다 흩어진 일꾼들을 세던 사람이 군졸 앞에 섰다.
“네가 사람을 모았느냐.”
“모았소.”
“산에서 일하던 것들을 꾀어 창을 들게 했지.”
지왈길은 부장의 종이를 보았다.
어느 줄에 제 이름이 있는지 찾는 듯 눈길이 아래로 움직였다.
“나무를 내리고도 품삯을 못 받았소. 다친 사람을 업고 내려온 날에는 그 사람 몫까지 깎였소. 왜 깎았느냐고 물으면 내일도 일하고 싶지 않으냐고 했고.”
“그것이 난리를 일으킬 까닭이 되느냐.”
“관아에 가도 우리 말은 안 적어 주었소.”
강바람이 해진 옷깃을 파고들었다.
지왈길은 어깨를 움츠렸다가 천천히 폈다.
“일한 사람이 제 몫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했소. 그 말을 함께 하자고 모았소.”
포로들 사이에서 흐느낌이 났다. 여량에서 함께 나무를 끌던 사내였다.
지왈길이 그쪽을 보려 하자 군졸이 앞을 막았다.
처음 주문을 배운 산판의 움막에서도 저 사내가 곁에 있었다. 다친 일꾼에게 밥을 먼저 주던 밤이었다. 지왈길은 사내를 향해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그때처럼 가까이 앉고 싶었으나 군졸이 앞을 막고 있었다.
“감히 창을 들고 관아를 침범했으니, 나라에 반역한 죄를 아느냐.”
감영군 군관이 물었다.
“나라를 뒤엎으려 한 것이 아니오.”
“관아를 치고도 그런 말을 하느냐.”
“전하의 눈과 귀를 가리는 자들이 있소. 백성에게 거둔 것을 제 곳간에 넣고, 우리가 굶는다는 말은 올리지 않는 자들이오. 우리 사정이라도 알리고 싶었소.”
군관이 입을 다물라고 했다.
지왈길은 군졸의 어깨 너머로 포로들을 보았다.
“보국안민(輔國安民).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자는 것이었소.”
팔이 당겨졌다. 지왈길은 비틀거리면서도 여량 사내를 찾았다.
“집에 가거든…….”
말이 멎었다. 앉아 있는 얼굴들 가운데 집으로 갈 사람을 고를 수 없었다. 사내와 눈이 마주친 뒤에야 입술이 다시 움직였다.
“우리 집에도 좀 들러 주게.”
“내가 어떻게 가나. 자네 두고 어떻게 가.”
지왈길은 고개를 끄덕이는 듯하다가 숲 가장자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칼을 든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군졸이 어깨를 눌렀으나 다리가 굽혀지지 않았다. 버티려던 것이 아닌데 무릎이 말을 듣지 않았다.
“잠깐만.”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그는 제 목소리에 놀란 듯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벌렸다.
“숨 좀…….”
한 번만 길게 숨을 쉬고 싶었다. 들이마신 공기가 목에서 막혀 가슴까지 내려오지 않았다. 군졸이 다시 누르자 무릎이 자갈에 닿았다.
지왈길은 턱을 떨며 포로들이 앉은 쪽을 보았다. 입에 익었던 첫말이 나오지 않아 두 번이나 입술을 다물었다.
“시천주 조화정(侍天主 造化定)…….”
여량 사내가 울음을 삼키며 뒤를 받았다.
“영세불망 만사지(永世不忘 萬事知)…….”
한울님을 모시고 조화의 이치를 마음에 정하여, 영원히 잊지 않으며 온갖 일을 깨닫는다는 본주문이었다.
움막의 불씨가 꺼져 갈 때에도, 일터로 돌아가기 전 짚신을 신을 때에도 서로 틀린 대목을 고쳐 주며 외웠던 말이었다.
지왈길의 목소리가 끊겼다.
여량 사내가 몸을 앞으로 던졌다. 포승줄이 어깨를 뒤로 잡아당겼으나 그는 다시 일어나려 했다.
“왈길이!”
군졸이 가슴을 밀어 앉혔다.
사내는 목을 빼고 같은 이름을 불렀다. 뒤쪽에서 주문이 이어졌지만 그는 따라 하지 못했다. 방금까지 대답하던 사람이 있는 쪽을 향해 입을 벌리고 울었다. 무진도 주문을 받다가 한 음절을 놓쳤다. 그 음절을 곁의 사람이 채웠다.
부장은 붓끝에 먹을 묻혀 다음 이름을 불렀다.
“아니오. 나는 아니오.”
불린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군졸 둘이 겨드랑이를 붙잡자 다리를 뻗고 자갈을 밀었다. 발뒤꿈치가 미끄러져 몸이 끌려갔다.
“집에 어린것들이 있소. 내가 가야 먹을 것이 있소.”
그는 군졸의 얼굴을 번갈아 올려다보았다.
한 사람이 팔을 고쳐 잡는 틈에 몸을 틀었으나 묶인 손이 등 밑에 깔렸다. 비명을 지르면서도 다리를 오므려 일어나려 했다.
“살려 주시오. 다시는 안 하겠소.”
끌려가는 동안 짚신 한 짝이 벗겨졌다. 사내는 고개를 돌리고 발을 그쪽으로 뻗었다.
“신이라도…….”
군졸이 놓아 주지 않자 강을 보았다. 가까이 물이 흐르는데 혀는 입천장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물 좀 주시오. 한 모금만.”

무진은 눈을 감았다.
애원은 잠시 더 들렸다. 솔잎을 훑는 바람 사이로 몸이 자갈에 닿는 소리가 났다.
눈을 떴을 때 짚신은 그대로 있었다. 밑창을 기운 새끼줄이 풀려 앞코 밖으로 나와 있었다. 발이 빠져나간 속에는 진흙과 마른 풀 한 가닥이 남았다.
뒤쪽에서 한 사람이 구역질했다. 빈속에서 나오는 것은 없었으나 몸이 거듭 꺾였다. 곁의 포로가 어깨를 대어 받쳤다. 다른 사내는 아내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문밖에서 부르듯 낮았다.
“복례야.”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자 목소리가 높아졌다.
“복례야, 복례야!”
군졸이 호통을 쳤다.
사내는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불렀다. 이번에는 군졸의 얼굴도 보지 않았다. 울음에 젖은 이름이 강 쪽으로 흩어졌다.
누군가 주문을 처음부터 외웠다.
“지기금지 원위대강(至氣今至 願爲大降)…….”
지극한 기운이 지금 이르니 크게 내려 주시기를 바란다는 강령주문이었다.
곁의 사람이 본주문으로 이어 갔다. 이를 맞부딪치는 소리와 마른기침이 음절 사이에 끼었다. 주문을 모르는 사내는 외우는 사람의 입을 보며 뒤늦게 따라 했고, 가족을 부르던 사람은 고개를 숙여 울었다.
누군가는 두 말을 섞었다. 아이의 이름을 부른 뒤 잊지 않겠다는 대목으로 돌아왔다.
무진은 어린 도인을 찾았다.
군졸들이 이름을 확인하며 사람들을 옮기는 동안 소년은 몇 사람 건너에 앉게 되었다. 다친 다리를 펴지 못한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여울에서 창을 옆으로 눕히라고 일렀을 때 고개를 끄덕이던 얼굴이었다.
소년은 입술을 움직이다가 앞에서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가 나면 멈췄다. 곁의 포로에게 얼굴을 묻었으나 곧 다시 무진을 찾았다. 무진이 고개를 끄덕여 주자 아이도 끄덕였다. 다음 이름이 불리면 그 작은 움직임마저 멎었다.
앞에 앉은 노인이 몸을 돌렸다.
“자네 몇 살인가?”
“스물여섯입니다.”
노인은 그의 얼굴을 보다가 발치로 눈을 내렸다.
“우리 막내보다도 어리네.”
무진은 맨발의 발가락을 굽혀 보았으나 감각이 없었다. 노인의 발도 자갈 위에 놓여 있었다. 두껍게 갈라진 엄지발톱 아래로 흙이 끼어 있었고, 발등에는 줄에 쓸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북평에서 왔네. 박춘삼이라고 하네.”
노인은 말을 마친 뒤에도 무진을 바라보았다.
“박춘삼 어른.”
무진이 이름을 되받자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군졸한테도 말했는데, 목이 잠겨서…….”
마른침을 삼킨 그가 다시 물었다.
“자네한테는 들렸나?”
“예. 똑똑히 들었습니다.”
노인은 무진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살아서 내 이름을 듣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겠군. 자네가 그래도 불러 주는구먼.”
무진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다시 불렀다.
“박춘삼 어른.”
노인은 고개를 숙였다.
강바람이 해진 옷깃을 벌렸으나 등 뒤로 묶인 손으로는 여밀 수 없었다. 무진이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몸을 옮겨 어깨를 붙였다. 노인은 잠시 버티던 허리를 늦추고 그에게 기대었다.
“자네는 어쩌다 도를 믿었나?”
“제게도 한울님이 계신다고 했습니다.”
노인은 무진의 얼굴을 보았다.
“아버지가 관아에서 매를 맞고 돌아가셨습니다. 옳은 말을 하셨는데도 저는 오래 아버지가 무슨 잘못을 하셨는지부터 생각했습니다.”
등에 눌어붙었던 옷이 떠올랐다. 따뜻한 물로 적셔도 천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고, 아버지는 이를 악문 채 벽을 보았다.
무진은 그 옷을 벗기던 손을 등 뒤에서 움직였다. 줄이 살을 더 파고들었다.
“도를 배우고 나서야 그런 매를 맞을 사람이 아니셨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노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또 한 사람의 이름이 불렸다. 일어난 사내가 제 발로 두 걸음 가다가 군졸에게 몸을 맡겼다. 두 사람은 그가 숲 가장자리로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내 막내는 감자밭에서 일하네.”
노인이 말했다.
“환곡(還穀)을 갚으라고 씨감자 묻은 자리까지 캐려 하더군. 그걸 가져가면 내년에 무엇을 심느냐고 물었지.”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건 네 사정이라더군.”
노인은 마른침을 삼켰다.
“접소에서는 우리 막내한테도 자리를 내주었네. 밥이 모자라면 먼저 앉은 사람들이 덜 먹고.”
그는 발가락 사이에 낀 자갈을 밀어내려다 그만두었다.
“같이 밥 먹던 사람들이 붙들려 가는데 나만 집에 있을 수가 없었네.”
무진이 어깨를 붙였다.
노인은 잠시 기대었다가 허리를 세웠다. 눈은 강 건너에 가 있었다. 낮게 엎드린 집들 가운데 한 굴뚝에서 연기가 올랐다. 바람에 누워 흐르던 연기가 지붕을 벗어나자 희미해졌다.
“한양까지 가야 했어. 전하께 우리 입으로 아뢰었어야 했는데.”
뒤쪽 사내가 중얼거렸다. 박춘삼은 대답하지 않았다. 연기가 흩어진 자리만 보았다.
무진도 그곳을 보았다.
노인은 연기가 흩어진 뒤에도 눈을 거두지 않았다. 무진은 바람이 들어오는 틈을 막으려 어깨를 조금 더 붙였다.
강둑에서 고함이 났다.
일본군 병사 하나가 여울 쪽으로 옮겨 갔다. 무진은 소년을 돌아보았다. 물을 건넌 아이가 기슭에서 두 발로 서기를 기다리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 아이를 더 멀리 보냈어야 했다. 어느 길로, 누구에게 보내야 했는지는 떠오르지 않았으나 그 생각만은 자꾸 돌아왔다.
잠시 뒤 박춘삼의 이름이 불렸다.
노인은 몸을 흔들어 일어서려 했다. 다리가 펴지지 않자 무진이 어깨를 대었다. 그 힘을 받아 선 노인은 군졸이 팔을 잡기 전에 몸을 돌렸다.
“내 이름을 들었지?”
“북평의 박춘삼 어른입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어 걸음 옮긴 뒤 다시 무진을 보았다.
“나도 집에 가고 싶네.”
입가가 일그러졌다. 웃으려는 것인지 울음을 참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막내가 혼자 밭을 매야 하는데.”
무진은 입을 열었으나 해 줄 말이 없었다.
노인이 기다리는 동안에도 말은 나오지 않았다. 군졸이 팔을 당겼다. 박춘삼은 걸음을 옮기면서 몇 번이나 돌아보았다. 마지막에는 발이 돌에 걸려 고개를 숙인 채 갔다.
“시천주 조화정…….”
노인의 목소리가 떨렸다.
“영세불망 만사지…….”
무진이 뒤를 받았다.
칼을 든 군졸 너머로 흰 머리가 보였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무진은 다음 소리를 기다렸다. 노인에게서는 아무 말도 오지 않았다. 그는 목 안에 걸린 음절을 삼키고 처음 대목으로 돌아갔다.
북평의 박춘삼이라는 이름을 잊지 않으려 했으나 주문을 외우는 동안 이름의 첫소리가 잠깐 흐려졌다. 놀라서 다시 입안으로 불렀다.
뒤쪽 사내가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내가 왜 왔나. 내가 왜…….”
손을 가슴으로 가져오려 했으나 팔꿈치만 들렸다. 곁의 사람이 몸을 붙이자 밀어냈다가 다시 그 사람 쪽으로 쓰러졌다. 얼굴을 옷에 비비며 집에 가겠다고 했다. 군졸이 다가오지도 않았는데 가지 않겠다는 말로 바뀌었다.
처형이 잠시 멎었다.
칼을 든 군졸이 강가로 내려가 날을 씻었다.
돌 앞에 쪼그리고 앉아 칼을 갈자 거친 소리가 물가를 따라 번졌다. 포로들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소리가 그칠 때마다 오히려 그쪽을 보았다. 군졸이 날을 들어 살피면 누군가 숨을 삼켰고, 다시 돌에 대면 숙인 머리들이 조금 내려갔다.
한 사내가 무릎으로 기어 나왔다.
“시키는 일은 다 하겠소. 어디로 보내든 가겠소.”
군졸이 발로 앞을 막았다. 사내는 그 발 가까이 이마를 낮췄다.
“살려만 주시오.”
뒤에서 아는 사람이 그를 불렀다. 사내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군졸의 짚신에 묻은 흙을 보며 같은 말을 했다. 무진은 그 등을 보다가 눈을 내렸다. 제 이름이 불리면 자신도 저 말부터 할 것 같았다. 입안에서 살려 달라는 말이 저절로 만들어졌다. 입술을 다물었으나 말은 없어지지 않았다.
볕이 자갈밭 한쪽에 닿았다.
밤새 기다린 빛이었다. 포로들 가운데 몇 사람이 고개를 들었지만 따뜻해지지는 않았다. 바람은 물을 건너올 때마다 더 매서워졌고, 젖은 옷 안에서는 한기가 살을 따라 움직였다.
무진은 저고리 안쪽의 나무 핀을 떠올렸다.
금이 간 노걸이의 핀이었다. 동백은 새것을 깎아 준다는 말을 지난봄부터 들었다며 그의 손에 놓았다.
배에는 다른 것을 끼우면 된다고 했지만 무진은 버리지 못했다. 품에 넣을 때 끝이 가슴을 찔러 옆으로 돌려 두었다. 지금도 거기에 있었다.
나루에서는 동백이 배 밑의 물을 퍼내고 있을 것이었다.
젖은 바가지를 뱃전에 엎어 놓은 뒤 밧줄을 풀고, 손님이 타면 배가 기울지 않게 한 사람씩 자리를 잡아 주었을 것이었다. 노걸이가 덜컥거리면 손목의 힘을 바꾸어 저었을 것이다. 새 핀 하나를 깎아 끼우면 될 일을 무진은 지난봄부터 미루었다.
돌아가면 나무부터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른 토막을 고르고 칼을 갈아야 했다.
너무 굵으면 노가 돌아가지 않을 테니 조금씩 깎아 맞추면 되었다. 동백이 곁에서 재촉하는 얼굴까지 떠올랐다.
강가의 군졸이 돌 앞에서 일어났다.

무진은 숨을 들이쉬다가 멎었다.
방금 고르던 나무토막이 떠오르지 않았다. 가슴이 빠르게 뛰었고 그때마다 품속의 핀이 살에 닿았다. 손을 앞으로 가져오고 싶었다. 핀을 한 번 쥐고 싶어서 손목을 틀었으나 줄만 팽팽해졌다.
“변무진.”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름이 또렷이 들렸는데도 다른 사람이 먼저 일어날 것 같아 포로들을 보았다.
부장이 다시 불렀다.
“변무진.”
“여기 있습니다.”
일어서는 순간 무릎이 꺾였다.
군졸이 팔을 붙잡았고, 무진은 그 손에 몸을 맡겼다. 군졸의 손바닥이 옷 위로 단단히 느껴졌다. 그 손이 놓이지 않기를 바라다가 자신을 데려가는 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 걸음은 제 발로 옮겼으나 발바닥에 닿는 자갈을 느낄 수 없었다.
부장이 명단의 한 줄을 짚었다. 여울을 맡아 사람들을 이끌었고 군졸 앞에서 창을 들었다는 진술이 적혀 있었다. 관아 창고를 열고 곡식을 나누었다는 말도 덧붙어 있었다.
고연학은 종이에서 무진에게로 눈을 옮겼다.
창을 버리라고 했을 때 바로 놓지 않던 사내였다. 물 밖으로 나온 소년이 두 발로 설 때까지 여울에 남아 있었다. 고연학의 눈길이 포로들 사이의 아이에게 잠깐 갔다가 돌아왔다.
“여기 적힌 사람이 맞느냐.”
“변무진입니다.”
부장이 이름 옆으로 붓을 옮겼다.
무진은 소년을 보았다. 아이는 다친 다리를 끌어안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몸을 일으키려 했다. 곁의 포로가 어깨를 받쳐 앉혔다.
“가지 마십시오.”
무진의 걸음이 늦어졌다.
군졸이 팔을 당겨도 고개는 아이 쪽에 남았다. 괜찮다고 말하려 했으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는 무진의 얼굴을 보고 더 크게 울었다.
“같이 외워라.”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무진은 아이가 자신을 보고 있는 동안 천천히 첫 대목을 외웠다.
“지기금지…….”
아이가 울음 사이로 따라 했다. 끝 음절에서 입술이 닫히는 것을 확인한 뒤 무진은 고개를 돌렸다. 몇 걸음 되지 않는 길이었다. 숲 가장자리까지 가는 동안 바람이 한 번 옷깃을 들추었고, 발밑의 돌 하나가 굴렀다. 그 소리가 유난히 오래 들렸다.
군졸이 그를 꿇렸다.
얼어붙은 자갈이 무릎 아래에서 밀렸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희끄무레한 하늘과 강 건너의 산등성이가 보였다. 눈길이 능선에 닿았을 때 뒤통수에 손이 내려왔다.
무진의 몸이 저절로 뒤로 물러났다. 군졸이 어깨를 붙잡자 그는 자갈에 발가락을 세웠다.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목을 내놓으라는 손길에는 몸이 따르지 않았다. 무릎은 땅에 닿아 있는데 허리는 자꾸 펴지려 했다.
“잠깐…….”
다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턱을 조금 들자 누르는 손에 힘이 실렸다. 벌어진 입으로 짧은 숨이 새어 나왔다.
포로들 쪽에서 소리가 왔다.
“원위대강…….”
무진은 따라 입술을 움직였다.
혀가 말라 음절이 붙지 않았다. 숨을 들이쉴 때 나무 핀 끝이 살에 닿았다. 손목이 등 뒤에서 한 번 움직였다.
“시천주 조화정…….”
소년의 가는 목소리였다. 울음 때문에 첫말을 두 번 되풀이했다. 곁의 사람이 서두르지 않고 함께 외워 주었다. 무진은 그 소리를 들으려 귀를 기울였다. 눈물이 턱 아래로 떨어졌다. 묶인 손을 한 번 더 움직였지만 품에는 닿지 않았다.
“영세불망…….”
칼이 내려왔다.
소년은 입을 벌린 채 소리를 내지 못했다. 곁의 포로가 몸을 기울여 아이의 어깨를 제 가슴 쪽으로 당겼다. 그 사람도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으나 아이의 귀 가까이에서 다음 말을 외웠다.
“만사지…….”
아이는 옷에 이마를 댔다. 숨을 삼킬 때마다 마른 등이 들썩였다. 한참 뒤 옷깃 사이에서 작은 목소리가 나왔다.
“영세불망…….”
이미 지난 대목이었다. 사내는 아이에게 어깨를 더 붙이고 그곳부터 다시 외웠다.
부장은 무진의 이름 옆에 적힌 ‘생포’를 지우지 않았다. 다음 칸에 날짜와 ‘참수’를 적었다. 먹이 종이의 거친 결을 따라 번졌다. 그는 붓을 들고 번짐이 멎기를 기다렸다가 아래 줄로 내려갔다.
처형은 해가 기울도록 이어졌다.
포로들이 앉은 자리는 조금씩 비었다. 기대고 있던 사람이 불려 나가면 남은 사람이 몸을 옮겨 그 자리를 메웠다. 처음에는 이름이 불릴 때마다 얼굴을 들었으나 나중에는 제 이름이 아니면 오래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가도 곁에서 누가 일어서면 옷자락이 떠나는 쪽을 보았다. 방금까지 닿아 있던 어깨의 온기가 해진 저고리 안에서 사라졌다.
울음에 막힌 주문은 옆에서 받았고, 잊은 대목은 뒤에서 일러 주었다. 어느 목소리가 없어졌는지 알아보려고 돌아보는 일이 잦아졌다. 돌아보았을 때 그 사람이 아직 앉아 있으면 눈이 잠깐 마주쳤다. 둘은 말을 하지 못한 채 다시 앞을 보았다.
숲의 그늘이 자갈밭으로 길게 내려올 무렵, 한 사내가 불려 나가다가 멈췄다.
아직 앉아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잊으면 일러 주게.”
맨 끝의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는 그 대답을 본 뒤 군졸을 따라갔다. 입술은 이미 첫 대목을 더듬고 있었다.
고연학은 처형이 끝난 뒤 장대가 선 쪽으로 걸어갔다.
강 건너 읍내의 지붕들이 낮게 이어져 있었다. 그는 그쪽을 가리켰다.
“벤 머리는 모두 정선 읍내를 향하게 걸어라.”
군졸들이 장대 아래로 모였다. 고연학은 민보군까지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관아를 털고 관군과 백성을 죽인 역적들이 어떤 최후를 맞는지 똑똑히 보게 하라. 다시는 그 뒤를 따를 생각을 못 하게 해야 한다.”
부장은 펼쳐 둔 명단을 내려다보았다.
어느 이름 옆에는 품삯을 요구하며 사람을 모았다고 적혀 있었고, 다른 이름 옆에는 곡식을 나르거나 여울에서 창을 들었다고 적혀 있었다. 그는 붓끝을 대려다가 들었다. 죄목들은 그대로 두고 아래쪽의 남은 날짜만 채웠다.
군졸들은 벤 머리를 장대에 매달아 효수했다. 고연학은 강 건너에서 보이는지 살피고, 비스듬히 돌아간 머리 하나를 바로잡게 했다.
사토는 통역과 함께 장대 앞을 지나며 명단과 걸린 머리들을 번갈아 확인했다.
감영군 군관이 시신을 한쪽으로 옮기라고 명했다. 부장은 마지막 줄까지 살핀 뒤 종이를 접었다. 접힌 자리에 마르지 않은 먹이 묻었다.
장대에 걸린 머리들은 정선 읍내를 향하고 있었다. 이름표는 없었다. 강바람이 머리카락을 얼굴 위로 덮었다가 걷어 냈다. 멀리서는 어느 얼굴도 알아볼 수 없었다.
강 건너에 마을 사람들이 서 있었다.
물가로 내려가려 하면 군졸이 물렸다. 사람들은 조금 물러났다가 군졸이 돌아서면 다시 같은 자리로 왔다. 여량에서 온 사람이 있었느냐고 묻는 이가 있었고, 북평 사람도 보았느냐고 묻는 이가 있었다. 대답을 듣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이에게 가서 똑같이 물었다. 손으로 강 건너를 가리켰다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어 팔을 내렸다.
해가 진 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소나무 가지에 닿자마자 녹았다. 어둠이 깊어지면서 가지의 윗면이 희어졌고, 자갈 사이에도 눈이 남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작은 눈발이 물 쪽으로 비껴갔다. 벗겨진 짚신의 벌어진 앞코로 눈이 들었다. 밑창을 기운 새끼줄 위에도 조금씩 쌓였다.
무진의 흐트러진 저고리 안으로 몇 점이 내려앉았다. 품에 든 나무 핀은 누구의 손에도 닿지 않았다.
멀리 여량의 나루에서는 동백이 빈 배를 말뚝에 묶고 돌아갈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강 건너의 노파가 몸을 돌리다가 멈췄다. 낮부터 형장 쪽을 보고 있던 사람이었다. 아들이 집에 가자며 팔을 붙잡았으나 노파는 발을 떼지 않았다. 눈이 젖은 옷에 붙었다. 아들은 어머니의 옷깃을 여며 주고 다시 강을 보았다.
“시천주 조화정…….”
노파의 입에서 낮은 주문이 나왔다. 바람이 첫소리를 흩뜨렸다. 아들은 팔을 잡은 손을 늦추었다. 곁에 서 있던 사람이 눈 쌓이는 기슭을 바라보며 뒤를 받았다.
“영세불망 만사지…….”
얼지 않은 가운데 물길로 강물이 흘렀다. 두 사람은 주문을 마친 뒤에도 돌아서지 못했다.
맞은편에서는 아무 목소리도 건너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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