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 동학항쟁사, 기록에 남지 않은 사람들
제36부 - 모두 우리백성입니다
무진이 문서 꾸러미를 싣고 강을 건너던 무렵, 군영에서는 정선 관아의 창고를 지키던 아전이 젖은 바짓단을 걷고 있었다.
기슭의 진흙이 옷감에 달라붙어 손으로 털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걷어 올린 자리에서는 맨살에 눌려 있던 짚신 끈 자국이 드러났다.
정선의 동학농민군을 토벌할 소모군관(召募軍官) 고연학(高演學)은 그가 가져온 보고를 읽다가 종이를 내려놓았다.
“창고를 열라고 한 자를 직접 보았느냐.”
“예. 곁에서 무진이라 부르는 것도 들었습니다.”
“곡식만 가져갔느냐.”
“장부를 마당에 내놓고 사람들을 불러 말을 받았습니다. 나중에는 문서도 묶어 옮겼습니다.”
그는 부장에게 이름과 행적을 따로 적게 했다.
군졸이 죽었다는 대목에서는 아전을 다시 불러 세워 손을 댄 자까지 보았는지 물었다.
“창고 쪽에 있어 거기까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강릉에서 온 교도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본 것과 들은 것을 나누어 말해라.”
아전은 옷자락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고연학은 보고서의 그 줄 옆에 표시하고 농민군이 모인 곳과 사람 수를 물었다. 아전이 녹도로 건너가는 모습을 보았을 뿐 수를 헤아리지는 못했다고 답하자, 부장은 숫자를 적으려던 붓을 거두었다.
군영은 정선읍으로 들어가는 길 바깥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밤이면 물가의 찬 기운이 올라와 마당 웅덩이에 얇은 얼음이 잡혔고, 아침에 군량을 나르는 병사들의 발밑에서 얼음 조각이 흙과 함께 으깨졌다.
처마 밑에서는 젖은 화승을 말리는 동안 창대를 닦고 짚신 밑창을 덧댔으며, 고연학의 부름을 받은 군관들이 그 사이를 지나 방으로 들어갔다.
주민들을 모아 무장시킨 민보군(民堡軍)의 지휘자들도 회의에 참석했다.
문간에는 심부름을 기다리는 군졸들이 서 있었고, 마당에서 쇠를 갈던 병사 몇은 안쪽 말소리가 높아지자 손을 늦추었다.
고연학은 체포할 사람들의 명단을 가운데 놓았다.
“관아를 차지한 자들이 강가에 모여 있다. 사람과 양식을 더 모으기 전에 쳐야 한다.”
그는 명단의 첫 이름에 손가락을 얹었다.
“이번에는 동학의 씨를 말려야 한다.”
민보군을 이끄는 사내가 무릎을 당겨 앉았다.
고연학은 그의 뒤에 놓인 칼을 보다가 말을 이었다.
“봄부터 전라도 고부의 황토현(黃土峴)에서 감영군이 무너지고, 장성의 황룡강(黃龍江)에서는 중앙군을 이끌던 이학승(李學承)이 전사했다.”
그는 한숨을 쉰뒤 말을 이었다.
“그와 함께 쓰러진 군졸들은 누가 세었느냐. 관아를 지키다 죽은 자와 집을 빼앗기고 길에서 죽은 백성까지, 이 난리가 일어난 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돌아오지 못했느냐.”
문간의 군졸이 고개를 숙였다.
형이 농민군의 습격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자였다.
“저들은 보국안민(輔國安民)을 말한다. 그런데 명을 받고 길을 지키던 군졸이 죽고, 곡식을 가진 집은 문을 닫지도 못한다. 손에 창을 쥐었다고 모두 탐관이냐. 군졸에게도 늙은 부모와 처자식이 있다.”
민보군의 사내가 제 마을에서도 사람을 끌어내 전답문서를 내놓으라고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고연학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은 채 명단을 옆으로 밀었다.
“전주까지 빼앗기니 조정이 청군을 불렀고, 일본군도 따라 들어왔다. 저들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외국 군대가 들어올 빌미도 그만큼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 궁궐까지 짓밟혔는데도 또 관아를 빼앗고 사람을 모은다. 그대로 두면 다음에는 어느 고을이 무너지겠느냐.”
방 끝에 앉아 있던 군관 이재학은 문간의 군졸이 창을 쥔 손을 바꾸는 모습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황룡에서 죽은 군졸도 우리 사람입니다. 그러나 고부에서 수탈당한 농부와 붙잡혀 죽은 교도도 우리 백성입니다.”
고연학이 그를 보았다.
“그러니 관아를 빼앗고 사람을 죽여도 된다는 것이냐.”
“그 죄는 물어야 합니다. 다만 그들이 왜 일어났는지도 보아야 합니다.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은 농민들을 동원해 만석보(萬石洑)를 쌓게 하고, 그 물을 쓴다는 이유로 무거운 수세를 거두었습니다. 전봉준(全琫準)과 농민들이 두 차례 찾아가 줄여 달라고 호소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고연학은 명단 위에 놓인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이재학은 그 손 아래 적힌 이름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황무지를 일구면 세금을 면해 주겠다던 약속도 뒤집었고, 죄명을 씌워 재물을 빼앗거나 제 아버지의 공덕비를 세운다며 돈을 걷었습니다. 백성에게는 관아로 가는 길도 곡식을 빼앗기는 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수령을 몰아내고 관아를 차지해도 된다는 것이냐.”
“조병갑이 물러나고 새 군수가 수습하면서 농민들도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봉기의 까닭을 조사하러 내려온 안핵사(按覈使) 이용태(李容泰)가 동학교도의 명단을 만들어 다시 잡아들였습니다. 달아난 사람은 가족까지 붙잡아 죽였습니다.”
문간의 군졸이 창대를 고쳐 쥐자 이재학은 잠시 그쪽을 보았다. 고연학이 명단을 제 앞으로 당겼다.
“죽은 군졸의 가족은 누가 돌보느냐.”
“그 죽음도 밝혀야 합니다. 그러나 수탈을 바로잡으러 온 관리가 남은 가족까지 해친 일을 덮고, 모든 죄를 민초에게 돌릴 수는 없습니다.”
“수령이 잘못했다고 백성이 창을 들면 나라가 서겠느냐.”
이재학은 명단에서 눈을 들어 고연학을 보았다.
“소장을 내도 듣지 않고, 조사하러 온 관리가 가족까지 잡아간다면 백성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사람을 죽인 자는 가리되,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살려야 합니다.”고연학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이재학도 명단의 모서리를 누르던 손을 거두지 않았다.
“청군을 부르기로 한 것은 조정입니다. 일본군이 물러가지 않고 궁궐을 점령한 것도 그들의 뜻입니다. 그 모든 책임을 들고일어난 민초에게 씌울 수는 없습니다.”
“저들이 빌미를 주었다는 말이다.”
“빌미가 되었다고 해서 침략한 자와 잘못 다스린 자의 책임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문밖에서 쇠를 가는 소리가 멎었다. 고연학은 이재학이 누르고 있는 명단을 당겨 제 앞에 놓았다.
“나는 지금 이 고을을 지켜야 한다. 붙잡은 자를 놓아주었다가 다시 군졸이 죽으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
“동학을 믿었거나 양식을 날랐다는 이유로 모두 죽이실 것입니까?”
이재학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그는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그들도 밭을 갈고 품을 팔던 민초입니다. 사람을 죽인 자와 따라간 자를 가려야 합니다.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살려야 합니다. 군졸과 백성이 서로 죽고 마을까지 비면, 그 뒤에는 누가 이 땅을 지키겠습니까.”
문간의 군졸이 앞으로 나서서 절을 올렸다.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시선은 이재학에게 머물러 있었다.
“제 형은 살려 달라고 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형님을 죽인 자를 찾습니다.”
“찾지 못하면요?”
이재학이 곧 대답하지 못하자 군졸은 고연학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저는 군관님 명을 따르겠습니다.”
민보군의 사내도 앞에 서겠다고 청했다. 고연학은 부장에게 길목과 강을 건널 자리를 적게 하고, 녹도로 양식을 옮기는 길과 배를 가진 집을 차례로 물었다.
이재학은 길목 그림에서 강가의 마을 하나를 짚었다.
“여기에는 싸움에 나가지 않은 집도 많습니다.”
“숨겨 주었으면 조사한다.”
부장은 그 말을 마을 이름 곁에 적었다. 이재학은 손을 거두고 종이가 채워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튿날 오후, 군졸 둘이 사내를 데려왔다. 손목은 묶였고 바짓단에는 진흙이 옷감과 함께 굳어 있었는데, 문턱을 넘으려고 발을 들 때마다 말라붙은 흙이 조금씩 떨어졌다. 군졸은 그의 품에서 꺼낸 짧은 칼을 책상 위에 놓고 임계 쪽으로 넘어가다가 붙잡았다고 보고했다.
“이름.”
“김덕구입니다.”
명단에 같은 이름이 있었다. 농민군 앞에서 길을 안내했고 정선 관아에 들어갔다는 보고가 붙어 있었다. 고연학은 칼을 덕구 앞으로 밀었다.
“무엇에 쓰던 것이냐.”
“나무그릇을 깎았습니다.”
“관아에는 들어갔느냐.”
“들어갔습니다.”
“장부도 가져왔느냐.”
덕구는 묶인 손을 내려다보았다.
“죽은 사람 뒤에도 빚이 붙어 있었습니다. 아이가 갚아야 한다고 해서…….”
“가져왔느냐고 물었다.”
“가져왔습니다.”
부장의 붓이 종이 위를 지나가는 동안 덕구는 칼을 보고 있었다. 자루를 감싼 헝겊 끝이 풀려 있었고, 오래 쥐어 눌린 자리는 다른 곳보다 검게 번들거렸다. 묶인 손가락이 조금 움직였으나 칼까지 닿을 수는 없었다.
고연학은 그가 농민군 앞에서 길을 이끌었다는 사람을 데려오게 했다. 불려 온 사내는 덕구의 얼굴을 확인하고 관아 마당에서도 보았다고 말했지만, 누구를 때리는 것까지 보았느냐는 이재학의 물음에는 고개를 저었다.
“거기까지는 못 보았습니다.”
사내가 돌아간 뒤 고연학은 명단을 접었다.
“무리를 이끌고 관아를 침범한 자다.”
그는 군졸에게 눈길을 돌렸다.
“해 뜨면 처단한다.”
군졸이 덕구의 팔을 잡자 이재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직도 가릴 일이 남았느냐.”
“길을 안내했다는 것은 확인됐습니다. 사람을 죽였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앞에서 길을 열어 주었으니 뒤의 무리가 들어간 것이다.”
이재학은 붙잡아 온 군졸에게 칼을 뽑거나 맞섰는지 물었다. 군졸은 손을 묶을 때도 가만히 있었다고 답했으며, 덕구의 팔을 잡은 자는 그 말을 듣고도 손을 놓지 않았다.
“이 자가 가져온 장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누구의 빚을 확인하려 했는지 마을에 가서 묻겠습니다. 길을 안내한 일도 함께 조사하겠습니다.”
“놓아 달라고 할 때마다 사정 하나씩 붙이면 언제 토벌하겠느냐.”
이재학은 책상 위의 길목 그림을 당겼다.
“농민군이 드나드는 길을 아는 자입니다. 서둘러 죽이면 확인할 말도 끊깁니다. 사흘만 제게 맡겨 주십시오.”
고연학은 그림보다 이재학의 얼굴을 보았다.
“겁을 먹고 아무 이름이나 대면?”
“확인되지 않은 말은 보고에 넣지 않겠습니다.”
“사흘 뒤에도 살려 두자고 하면?”
이재학은 책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관복 자락이 바닥에 접히는 동안에도 고연학의 눈길은 그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확인한 일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고연학은 덕구에게 눈길을 옮겼다.
“네 말 하나가 다른 사람의 목에 걸린다는 것을 알아라.”
덕구의 턱이 떨렸으나 대답은 들을 수 있을 만큼 또렷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겠습니다.”
고연학은 부장에게 처분을 적게 했다.
“오늘은 가둔다.”
붓이 움직이는 것을 본 뒤 덧붙였다.
“사흘이다.”
놓아준 것이 아니므로 도망치면 맡은 자에게도 책임을 묻겠다는 말에 이재학이 고개를 숙였다. 군졸이 덕구를 데리고 나갈 때 굳은 바짓단이 발목에 걸렸고, 그가 비틀거리자 팔을 잡은 군졸이 몸을 당겨 세웠다.
발소리가 문밖으로 멀어진 뒤에야 이재학은 무릎을 폈다. 관복 자락을 털고 책상 위의 칼을 집어 자루의 헝겊을 살핀 다음 부장에게 돌려주었다.
해가 기울 무렵 덕구의 아내와 아이가 군영으로 찾아왔다. 아이는 작은 나무그릇을 두 손으로 들고 있었는데, 가장자리가 조금 기울었고 바닥에는 칼날이 지나간 자국이 남아 있었다.
“남편이 이 안에 있습니까?”
마당을 건너던 고연학이 걸음을 멈추고 있다고 답하자 여자는 아이 얼굴만이라도 보여 달라고 청했다. 심문이 끝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는 품에서 보자기를 꺼냈다. 삶은 감자 두 알이 포개져 있었고, 여자는 군졸이 받아 들기 전까지 보자기의 네 귀를 놓지 않았다.
고연학은 곁의 군졸에게 안을 살피게 했다. 군졸이 감자를 들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안으로 보내라고 했고, 돌아서는 그의 뒤를 여자가 한 걸음 따라갔다.
“살아서 나올 수 있습니까?”
고연학은 여자를 보았다.
“관아에 들어간 일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소.”
그가 방으로 들어간 뒤에도 여자는 닫힌 문 앞에 서 있었다. 아이는 안쪽 문들을 차례로 살피다가 나무그릇을 가슴 가까이 들어 올렸다.
“아버지 이름을 부르면 들을까?”
여자는 아이의 어깨를 감쌌다. 아이의 입술이 열렸다가 닫혔고, 안에서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그쪽으로 몸을 돌리자 여자는 어깨를 감싼 손을 조금 더 당겼다.
이재학이 마당으로 나와 감자는 안으로 들어갔고 남편은 다치지 않았다고 전했다. 여자는 그에게 가까이 와 언제 나오느냐고 물었으나, 그는 아이가 든 그릇을 보며 곧 대답하지 못했다. 책상 위에 놓였던 칼로 깎았을 바닥에 얕은 홈이 남아 있었다.
“제가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여자는 그 말을 듣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재학은 사흘이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돌아갈 날을 정해 준 날짜가 아니었으므로, 아이를 데리고 사흘 뒤 다시 오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한참 뒤 여자가 아이의 손을 잡고 돌아섰다. 아이는 그릇을 한쪽 팔에 안고 다른 손을 어머니에게 내주었다.
문간에서 군졸이 길을 비켜 주자 한 차례 뒤를 돌아보았으나, 어머니는 손을 놓지 않고 걸었다.
이재학이 방으로 돌아왔을 때 고연학은 출동 명단을 펼쳐 놓고 있었다. 형을 잃은 군졸이 앞줄에 넣어 달라고 청하자 그는 명 없이 먼저 나가지 말고, 적이 물러나도 대열을 벗어나지 말라고 일렀다. 군졸이 고개를 숙인 뒤에야 그 이름 곁에 앞줄을 뜻하는 표시를 했다.
이재학은 덕구의 진술서를 출동 명단 곁에 놓았다.
“내일 새벽에 마을로 가겠습니다.”
“일몰 전에 돌아와라. 출동은 늦추지 않는다.”
밖에서는 군량 자루를 나누고 있었다. 민보군의 사내가 녹도로 가는 길을 묻자 여러 사람이 동시에 대답했고, 부장은 그 가운데 길을 직접 아는 사람을 불러 안으로 들였다.
고연학은 처형을 유보한 기록 아래에 사흘째 되는 날을 적었다. 이재학은 먹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종이를 받아 품에 넣고, 길을 설명하는 사내의 목소리를 뒤로하며 방을 나왔다.
물가에서 불어온 바람에 등잔불이 기울었다. 그는 뒤로 손을 뻗어 문을 닫고 옥으로 향했다. 감자를 들고 갔던 군졸이 옥문 앞에 서 있었으며, 발치에는 빈 보자기가 놓여 있었다.
“먹었느냐.”
“하나는 먹고 하나는 남겼습니다.”
이재학이 까닭을 묻자 군졸은 안쪽을 돌아보았다.
“아이에게 돌려주라 합니다.”
이재학은 보자기를 집어 군졸에게 건넸다. 문이 열리자 어둠 속에서 묶인 손이 먼저 보였고, 덕구의 무릎 곁에는 감자 한 알이 놓여 있었다. 그는 들어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려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이재학은 문턱에 앉아 품에서 진술서를 꺼냈다.
종이를 무릎 위에 펴고 처음 길을 나선 날부터 말해 달라고 하자, 덕구는 묶인 손을 고쳐 놓고 마을의 이름을 댔다. 이재학은 그 이름을 적은 뒤 다음 말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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