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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녹도아리랑 ㉞] 돌아오는 고개

  • 김광희 기자
  • 입력 2026.10.06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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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선 동학항쟁사, 기록에 남지 않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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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부 - 강릉에서 꿈꾼 새 세상, 빗속에 남겨 둔 사람들

  

정선에서 떠난 사람들은 강을 거슬러 여량으로 향했다. 

나루에서 내린 사내들과 금점에서 나온 광부들이 짚신 끈을 고쳐 매고 행렬에 붙었다. 무진은 아우라지를 지나며 물가를 돌아보았다. 기슭에 묶인 배 한 척이 물살에 밀려 천천히 돌아앉았다. 동백이 그 곁에 있는지 살폈으나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가 뱃전을 가리고 있었다. 앞사람이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을 때에도 배는 가지 사이에서 흔들렸다.

여량에서 임계로 접어들자 길이 좁아졌다. 

나란히 걷던 사람들이 앞뒤로 늘어섰고, 돌이 많은 곳에서는 먼저 건넌 이가 발 디딜 자리를 일러 주었다. 보리쌀과 감자를 나누어 담은 자루는 가벼워졌으나 젖은 짚신은 걸을수록 발에 들러붙었다. 골짜기 밭에서는 조 이삭이 고개를 숙였고, 높은 산등성이의 풀에는 누런 빛이 번지고 있었다.

 

삽당령(揷唐嶺)을 오르면서 물소리가 멀어졌다. 

고갯마루에 닿기도 전에 행렬이 끊어져 앞에서 멈춘 까닭을 뒤에서는 알지 못했다. 무진은 뒤처진 광부의 자루를 받아 들었다. 금점에서 돌에 눌렸던 발목이 부어 짚신 끈 아래로 살이 솟아 있었다.

“강릉까지 가면 무엇이 달라지겠소?”

광부가 지팡이를 짚은 채 물었다. 무진은 자루를 어깨에 고쳐 올리고 비탈 위의 사람들을 보았다.

“품삯 달라는 사람을 잡아넣지는 못하게 해야지요.”

“그것부터 되면 좋겠소. 일한 값 받으러 갔다가 다시 빚지고 나오는 일은 없어야지.”

광부는 흔들리는 돌을 지팡이로 밀어 놓고 발을 옮겼다. 무진은 그가 성한 발을 디딜 때까지 기다렸다가 뒤를 따랐다.

 

삽당령을 내려온 일행은 왕산의 골짜기를 지나 강릉(江陵)으로 향했다. 

산자락에 붙었던 길이 낮은 곳으로 풀리고 그 너머로 들이 넓어졌다. 작은 밭을 골짜기마다 나누어 붙이던 사내들이 논둑에 멈춰 섰다. 벼가 익은 들에서는 바람이 지나간 자리가 한동안 물결처럼 남았다.

강릉 가까이에서 대관령(大關嶺)을 넘어온 본대와 만났다. 평창 쪽에 모여 있던 여러 고을의 농민군이었다. 출신 고을을 묻는 동안 뒤에서는 물바가지가 돌았다. 이름을 듣지 못한 사람도 바가지를 받아 마신 뒤 다음 사람에게 건넸다.

 

동학 지도자들은 강릉 관아를 확보해 영동의 도인들을 보호하고 그곳에서 개혁을 시작하려 했다. 흩어진 접을 모으고 세금과 송사를 바로잡아 다른 고을로 넓혀 가자는 뜻이었다. 

정선 광부들은 갱도에서 죽은 사람의 빚을 자식에게 넘기지 못하게 하고, 살아 나온 사람에게 일한 몫을 돌려주는 일을 그 안에 보탰다.

“도인이라고 붙잡아 가는 일부터 멈추게 합시다.”

평창에서 온 지도자의 말에 누군가 물었다.

“관아에서 들어주겠소?”

“들어주기를 기다리다 여기까지 온 것 아니오.”

 

무진은 죽창을 다른 손으로 옮겨 쥐었다. 소장을 들고 관아를 찾았던 날에는 문밖에서 기다리다가 문밖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대문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그의 앞뒤에 있었다.

갑오년 음력 구월 초나흘 오전, 천여 명이 넘는 농민군 본대가 강릉 관아를 점거했다.

대문을 넘은 사람들은 담장과 행랑을 번갈아 살폈다. 마당 한가운데까지 들어간 뒤에도 창끝을 내리지 못하는 이가 있었다. 무진은 안쪽 문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죽창을 세워 짚었다.

 

관아 동문에는 삼정의 폐단을 고쳐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이루겠다는 글이 걸렸다.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겠다는 뜻을 읽어 주자 뒤쪽에 서 있던 노인이 앞으로 나왔다.

“죽은 자식한테 매긴 군포도 없애 주는 것이오?”

노인은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접힌 자리마다 닳아 펼칠 때 손가락으로 아래를 받쳐야 했다. 뒤에서도 사람들이 종이를 내놓았다. 거두지 못한 곡식이 빚으로 올랐다는 사람과 빼앗긴 밭을 돌려 달라는 사람이 나란히 앉았다. 잡혀간 아들의 이름만 외워 온 여인은 종이를 가진 이들이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해가 기울어도 마당은 비지 않았다. 한 사람의 사정을 듣고 나면 그 뒤에 다른 사람이 남아 있었다. 밤에는 등잔을 문턱에 내려놓고 함께 주문을 외웠다.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한울님을 모시고 조화에 마음을 정하여, 오래도록 잊지 않고 모든 일을 알아 행하겠다는 주문이었다. 낮에 군포를 묻던 노인도 무진 곁에서 입술을 움직였다. 무릎 위에는 아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가 펼쳐져 있었다. 바람이 들어오자 노인은 손바닥으로 귀퉁이를 눌렀다.

 

그 무렵 선교장(船橋莊)에서는 관아의 움직임을 전해 듣고 있었다.

이회원(李會源) 앞에 앉은 읍리 정시중과 최희민은 농민군이 부자들을 붙잡아 재산과 전답문서를 거두고, 아전들을 문책하며 송사를 처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선교장으로 가자는 자들도 있다 합니다.”

이회원은 읽던 종이를 내려놓았다.

“보국안민이라 써 붙였다지?”

“그렇습니다.”

“임금의 관아를 빼앗고 세금을 제 마음대로 고치는 자들이 나라를 돕는다 하는구나.”

문밖에서 곡식 자루를 옮기는 소리가 났다. 그는 잠시 그쪽을 보았다가 읍리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기군망상(欺君罔上)이다. 임금을 속이고 윗사람을 업신여기는 무리다.”

수령의 잘못은 조정에 아뢰어 죄를 물을 일이었다. 창을 든 백성이 수령의 자리를 대신하게 두면 다른 고을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터였다. 관아에서 거둔다는 전답문서가 자신의 집까지 이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으리라는 것도 그는 알고 있었다.

 

농민군을 칠 방도가 논의됐다. 

양반과 유력자들이 사람을 보내 주민들을 모았다. 소작을 붙이던 농부와 고용된 일꾼도 불려 나왔다. 어제까지 낫으로 밭둑을 베던 사람이 창대를 받았고, 품삯을 받으러 왔다가 줄에 선 사람도 있었다.

도사(都事) 최윤정(崔允鼎)은 모여든 사람들을 나누어 배치했다. 선두에는 함경도(咸鏡道) 군영에서 복무한 병사들을 세웠다. 칼과 창을 다루고 명령에 맞추어 움직이는 데 익숙한 이들이었다.

“혼자 쫓아가지 마라. 앞이 멈추면 같이 멈춰라. 명이 떨어지면 한꺼번에 밀어라.”

병사 하나가 줄 사이를 지나며 주민들의 창대를 낮췄다. 서로 다른 무기를 쥔 손들이 같은 높이로 내려왔다.

 

구월 초이레 낮, 농민군에게 쌀과 돈이 들어갔다. 사람들은 점심과 저녁에 쓸 곡식을 나르고 얼마를 남겨 두어야 하는지 헤아렸다. 이회원이 뜻을 받아들이려는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선교장으로 당장 가자던 목소리가 잠시 잦아들었다.

농민군은 관아 건물과 점막에 나뉘어 머물렀다. 젖은 짚신을 처마 밑에 걸고 먹고 남은 밥을 저녁까지 덮어 두었다. 쌀자루 곁에서는 내일 죽을 쑬 솥을 찾았다.

 

그날 밤, 비가 내렸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던 물이 마당을 두드렸다. 발자국마다 물이 차고 지붕에서 쏟아지는 빗소리가 골목의 소리를 덮었다. 옷을 말릴 곳이 없어 사람들은 행랑과 마루에 몸을 붙였다. 바깥을 지키던 사내들도 처마 밑으로 물러서서 어둠을 살폈다.

무진은 마루에 앉아 풀어진 짚신 끈을 꼬았다. 곁에서는 군포를 물었던 노인이 팔을 베고 잠들어 있었다. 종이는 저고리 안에 넣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빗물이 마루 끝으로 튀자 무진은 노인의 발을 안쪽으로 당겼다.

동문 쪽에서 고함이 났다.

이어 대문 밖에서 낮은 말소리가 들렸다. 무진은 장을 보러 나간 동료들이 돌아오는 줄 알았다. 문간의 사내가 누구냐고 물었다.

 

총성이 대답을 끊었다.

사내의 몸이 문기둥에 부딪쳤다. 마루를 붙잡으려 뻗은 손이 젖은 나무를 긁고 내려갔다. 몸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어둠이 갈라지며 창끝들이 들어왔다.

“민보군이다! 일어나시오!”

무진의 외침이 행랑으로 번졌다. 잠든 사람들은 남의 어깨와 무릎을 짚으며 일어났다. 문턱에 겹친 신을 찾는 손 위로 발이 내려왔다. 누군가 죽창을 뽑다가 처마에 걸려 놓쳤고, 뒤따르던 사내가 그것을 받아 대문으로 달려갔다.

앞선 농민군 셋이 문간을 막았다. 창대가 문기둥에 부딪쳐 마른 소리를 냈다. 뒤에서 사람들이 붙자 앞줄의 어깨가 함께 밀려 나갔다.

“미시오! 문밖으로 밀어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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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도 그들의 뒤에 붙었다. 

발목까지 잠긴 물 밑에서 흙이 밀렸다. 앞사람의 등을 어깨로 받치고 죽창을 내밀자 맞은편 창대가 손등을 때렸다. 손가락이 벌어졌으나 그는 다시 움켜쥐었다.

문밖에서 짧은 명령이 들렸다.

물러난 병사들이 문간 양쪽으로 비켰다. 뒤의 총수가 처마 가까이에서 총을 들었다. 한 자루에서는 화승의 불꽃만 튀었다. 다른 총이 터지면서 무진 앞에 있던 사내의 몸이 뒤로 꺾였다. 

그가 놓친 창이 사람들의 발 사이로 떨어졌다.

무진은 쓰러지는 등허리를 받쳤다. 

사내의 입이 움직였으나 빗소리와 고함 속에서 말은 들리지 않았다. 뒤에서 달려온 사람이 빈자리를 메우기도 전에 칼끝이 문기둥 안으로 들어왔다.

 

긴 창들이 좁은 문간에서 서로 걸렸다. 

농민군이 창대를 되당기는 동안 병사 하나가 몸을 낮춰 들어왔다. 기둥을 등진 사내가 낫을 휘둘러 그를 막았으나, 넘어진 동료를 피하느라 옆 사람의 어깨에서 떨어졌다. 벌어진 틈으로 다른 창끝이 나왔다.

삽당령에서 자루를 받아 주었던 광부가 죽창을 길게 찔렀다. 상대가 창대를 움켜쥐고 옆으로 당겼다. 광부가 놓지 않고 버티는 사이 칼이 허벅지를 베었다.

광부의 다리가 꺾였다. 창대를 잡았던 두 손이 무진의 무릎으로 내려왔다.

무진은 제 창을 짧게 쥐고 칼 든 팔을 떠밀었다.

“제 허리를 잡으십시오!”

광부는 일어나려 했으나 발이 몸을 받치지 못했다. 곁의 농민군이 상대의 창대를 낫으로 누르는 동안 무진은 광부를 기둥 뒤로 당겼다.

행랑 뒤쪽에서도 적이 들어온다는 외침이 났다. 대문을 막던 사람들이 돌아보았다. 앞을 향하던 창이 옆으로 움직이자 문간이 벌어졌고 병사들이 그 틈으로 밀려들었다.

“뒤에도 온다!”

“대문을 놓지 마시오!”

 

엇갈린 외침이 빗속에서 부딪쳤다. 

기둥 뒤에 웅크린 농민군 하나가 젖은 화승을 품에 감췄다가 꺼냈다. 불을 살리려는 손이 떨렸다. 마침내 총을 내려놓고 창을 찾았으나 곁에 있던 동료는 보이지 않았다.

무진은 광부의 팔을 목에 걸고 몸을 낮췄다. 젖은 옷끼리 미끄러져 등이 비었다. 광부가 이를 악물고 매달렸고 다른 동료가 허리띠를 잡아 올려 주어서야 몸이 올라왔다.

마루에서는 군포를 물었던 노인이 엉금엉금 내려오고 있었다. 무진은 지나가는 동료에게 노인의 팔을 붙잡게 했다.

“이 어른도 데리고 나가십시오!”

노인은 저고리 앞섶을 누르며 그를 따라갔다. 품에서 젖은 종이 한쪽이 흘러나왔다.

“먼저 가시오. 우리가 막겠소!”

죽창을 든 두 사람이 무진의 뒤에 섰다. 한 사람은 팔에서 피가 흘러 창을 들 때마다 어깨까지 떨렸다. 그는 기둥에 등을 붙이고 다치지 않은 손을 창대 아래로 옮겼다.

 

무진은 광부를 업고 행랑 옆으로 향했다. 

좁은 출입구에서 사람들이 막혔다. 양식 자루를 끌고 나가려던 사내가 문턱에 걸려 넘어졌다. 뒤에서 누군가 자루의 끈을 잘랐다. 쏟아진 보리쌀 위로 발이 내려앉았다.

광부가 무진의 귀 가까이에서 말했다.

“내 창이 저기 있소.”

“목을 놓지 마십시오.”

“저걸 두고 가면…….”

무진은 옆으로 몸을 틀어 문을 지났다. 광부의 발이 기둥에 부딪치자 목을 감은 팔이 거세게 조여 왔다. 숨이 막혀 무릎이 꺾였다. 뒤에서 나온 동료가 광부의 다리를 받쳐 주었다. 무진은 문설주에 손을 짚고 다시 일어섰다.

골목에서는 농민군 몇 사람이 담장에 등을 붙이고 뒤따르는 이들을 기다렸다. 긴 창이 길을 가로막자 쫓아오던 병사들이 멈췄다. 그 사이 부상자를 끌던 두 사람이 빠져나왔다.

 

담장 너머에서 총성이 났다.

버티던 사내 하나가 담에 기대앉았다. 곁의 사람이 겨드랑이에 손을 넣었으나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사내는 입을 벌린 채 골목을 보았다. 빗물이 얼굴을 타고 턱에서 떨어졌다.

무진이 몸을 돌리려 하자 동료가 어깨를 붙잡았다.

“지금 멈추면 등 뒤의 사람도 못 나가오!”

광부의 팔이 목에서 느슨해지고 있었다. 무진은 그 팔을 붙잡아 가슴 앞으로 당겼다. 뒤에서 창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다음 발을 놓을 자리가 보이지 않아 앞사람의 젖은 등만 따라갔다.

 

보국안민의 글과 송사 종이는 관아에 남았다. 

맨발로 나온 사내가 돌을 밟고 주저앉자 동료가 그의 팔을 어깨에 걸었다. 신을 잃은 사람도 창을 잃은 사람도 골목 끝에서는 같은 방향으로 달렸다. 고함이 멀어지고 빗소리가 다시 가까워졌다.

날이 밝을 무렵에야 흩어진 사람들이 서로를 찾았다.

밤새 곁에 있던 얼굴들이 보이지 않았다. 스무 명이 넘게 죽었다는 말이 돌았으나 누구인지 모두 헤아리지는 못했다. 이름을 세다가 같은 사람을 두 번 부르는 이가 있었다. 아직 오지 않은 사람을 죽은 사람에 넣었다가 지우기도 했다.

 

무진은 광부를 눕히고 다리를 살폈다. 찢어진 옷 아래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마른 천을 구해 달라고 했으나 둘러선 사람들의 옷도 젖어 있었다. 한 사내가 속저고리를 벗어 내밀었다. 무진은 그것을 찢어 상처 위에 겹쳐 놓고 눌렀다.

군포를 물었던 노인이 뒤늦게 도착했다. 그를 데리고 나온 동료는 노인의 팔을 놓고 땅에 주저앉았다. 노인은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접힌 종이들이 물에 붙어 벌어지지 않았다. 한 겹을 떼려다 글씨가 묻어나자 손을 멈췄다.

“이름이 지워지겠소.”

그는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게 중얼거렸다. 무진은 상처를 누르던 손을 바꿔 잡았다. 노인은 종이를 펼치지 못한 채 두 손 사이에 놓고 있었다.

동생이 돌아오지 않은 강릉 사내가 고개 아래로 내려가려 했다.

“산 사람만 챙겨서 이대로 갑니까?”

아무도 곧 대답하지 못했다. 무진도 기둥에 기대어 남았던 두 사람을 찾고 있었다. 얼굴은 기억났으나 한 사람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길에서 물을 나누어 마셨고 밤에는 그의 뒤를 막아 주었는데 이름을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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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사내는 비탈 아래를 보다가 길가의 부상자 앞에 멈췄다. 

밤새 그를 옮긴 동료가 앉은 채 잠들어 있었다. 사내는 잠든 이를 깨우지 않고 옆에 앉았다. 부상자의 발을 제 무릎 위에 올리고 흙이 묻은 버선 끝을 조금씩 벗겼다.

물러나는 행렬은 대관령 쪽으로 모였다. 

삽당령을 넘어왔던 무진 일행도 부상자를 옮기는 무리에 붙었다. 무진은 임계로 돌아갈 길을 생각했으나 광부를 눕혀 두고 혼자 방향을 바꿀 수 없었다.

 

갈 때 새 세상을 말하던 사람들은 다음 고개까지의 거리를 물었다. 

성한 이들의 짐을 덜어 다친 사람을 업게 하고 남은 양식을 여러 자루에 나누었다. 쉬었다 일어날 때마다 누군가 행렬 끝으로 내려갔다. 이름을 불러 깨우고 나면 한동안 앉아 있던 사람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광부는 내리막에서 성한 발로 버텼으나 오르막에서는 몸의 무게를 온전히 맡겼다. 무진이 멈추자 앞서 가던 사람이 돌아와 다른 팔을 받쳤다.

 

“여기서는 셋이 같이 갑시다.”

그들은 한 사람이 발을 놓은 뒤 다음 사람이 움직였다. 비구름이 골짜기를 메워 강릉의 들을 가렸다. 광부의 숨이 무진의 귀 곁에서 끊어졌다가 이어졌다. 무진은 숨이 돌아오는 것을 듣고 걸음을 옮겼다.

고갯마루에서 바람을 피해 몸을 굽히자 품 안의 나무 비녀가 가슴을 눌렀다. 손을 넣어 바로잡으려다 광부의 허리를 다시 받쳤다.

 

평창 쪽으로 내려온 사람들은 가까운 마을의 헛간과 빈방을 빌렸다. 

피가 말라붙은 옷을 물에 적셔 떼어 내고 상처를 씻었다. 광부는 그때마다 벽을 짚었다. 무진은 손을 멈췄다가 그가 고개를 끄덕이면 다시 옷자락을 들었다.

늦게 도착한 무리가 올 때마다 강릉에 남은 이름들을 물었다. 무진은 이름 대신 두 사람의 얼굴과 옷차림을 말했다. 한 사람은 팔을 다쳐 기둥에 기대어 있었다고 덧붙였다. 들었다는 사람은 없었다.

 

군포를 물었던 노인은 말린 종이를 품에 넣고 강릉으로 돌아갔다. 

떠나는 날 무진에게 자식의 이름을 읽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무진은 노인의 짚신 끈을 고쳐 매 주었다.

날이 개자 마당에 빨래가 널렸다. 저고리와 버선 사이에는 주인을 찾지 못한 옷도 걸렸다. 며칠 동안 걷지 못했던 옷들은 밤이 추워진 뒤에야 거두었다.

무진은 소매 한쪽이 찢어진 저고리를 접었다. 자기가 찾는 사내의 옷인지 알 수 없었다. 다른 옷들과 함께 보자기에 넣고 매듭을 묶으려다, 손을 넣어 구겨진 소매를 폈다.

구월이 지나 시월이 되면서 흩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 여량과 임계, 북평과 남면에서 소식이 왔고 영월·평창의 

농민군 곁으로 다른 고을의 무리가 합세했다. 

 

토벌을 피해 집을 떠난 도인과 풀지 못한 송사를 가져온 농부도 있었다.

강릉으로 되돌아가자는 말이 나왔으나 부상자들은 아직 오래 걷지 못했다. 빌린 방에서는 밤마다 신음이 들렸고, 곡식을 내주던 마을의 솥에서도 죽이 묽어졌다.

광부가 담장까지 걸었다 돌아오던 날, 무진은 남은 양식을 헤아렸다. 자루 바닥에 손을 넣자 낟알보다 먼저 거친 삼베가 만져졌다.

 

지왈길이 정선에서 온 사내와 함께 마당으로 들어왔다. 

군수가 자리를 비웠다는 소식과 관아 창고에 곡식이 남아 있다는 말을 가져왔다.

“얼마나 있다 합니까?”

“문이 잠겨 있어 안까지 본 사람은 없소.”

무진은 빈 자루를 접었다. 지왈길은 방 안에 누운 사람들을 살핀 뒤 내일 길을 나설 수 있는지 물었다.

광부가 벽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가면 되겠소.”

무진은 그의 곁에 앉아 짚신을 당겨 놓았다. 부은 발을 넣을 수 있도록 끈을 느슨하게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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