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절염으로 10분 걷기도 힘들던 주부…17년 만에 학교 줄넘기 강사로
헬스 트레이너·마라토너로도 활약…“아이들의 변화가 가장 큰 행복”
“하나, 둘! 하나, 둘!”
체육관 문을 여는 순간 경쾌한 음악과 힘찬 구호가 귓가를 때린다.
휙휙 돌아가는 줄과 바닥을 탁탁 울리는 발소리 사이로 아이들은 한 몸처럼 강사의 동작을 따라간다.
지난 8월 21일 여량초등학교 방과후 줄넘기 수업 현장. 아이들의 리듬을 이끄는 중심에는 올해 환갑을 맞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활력이 넘치는 강사가 있었다.
학생들 못지않게 가볍게 뛰어오르는 발놀림과 탄탄한 몸매는 그의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게 한다.
시범을 보일 때마다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수업 내내 이어지는 힘찬 움직임에서는 오랜 운동 경력과 철저한 자기 관리가 묻어난다.
정선에서 ‘몸짱 줄넘기 강사’로 불리는 김신아(60·사진) 씨다.
그는 현재 정선지역 여러 초·중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며 줄넘기의 즐거움과 건강한 생활 습관을 전하고 있다.
김 씨가 줄넘기를 시작한 것은 17년여 전이다.
당시 그는 두 딸을 키우는 평범한 주부였지만 손가락과 무릎 관절염이 심해 10분 이상 걷기도 힘들었다.
학창 시절 체육시간이 싫어 책상 밑에 숨을 만큼 운동과 거리가 멀었지만, “아이들을 잘 키우려면 내가 먼저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에 헬스장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작은 동작 하나도 버거웠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운동부터 꾸준히 이어가며 체력을 회복했고, 그 과정에서 줄넘기를 만났다. 단순한 유산소운동으로 시작했지만 계속할수록 몸이 달라졌다.
김 씨에 따르면 손가락과 무릎 통증이 줄고, 쉽게 지치던 몸에는 활력이 생겼다. 일상생활이 한결 수월해지고 건강에 대한 자신감도 커지면서 줄넘기의 리듬과 성취감에 깊이 빠져들었다.
김 씨는 이후 헬스장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비만 관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자신의 몸이 달라진 경험이 있었기에 운동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교육청의 요청으로 학교 방과후 줄넘기 수업을 맡았다. 한두 학교에서 시작했지만 아이들의 반응이 좋아지면서 강습 요청이 잇따랐고, 전문적인 지도를 위해 줄넘기 강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현재는 혼자 모두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여러 학교에서 요청이 들어온다.
건강을 위해 시작한 줄넘기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이자 삶의 중심이 된 것이다.
김 씨는 운동을 단순히 건강과 몸매를 관리하는 수단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운동은 사람을 만나게 하고 자신감을 되찾게 하며,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라고 말한다.
김 씨는 “나이가 들었다고 집에만 있으면 몸과 마음이 금방 늙는 것 같다”며 “조금 힘들더라도 움직이고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김 씨가 수업을 이어가는 가장 큰 원동력은 아이들의 변화다.
비만으로 힘들어하던 아이가 꾸준한 운동으로 건강을 되찾고 학교생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낀다.
옷매무새를 계속 물어뜯던 아이에게 꾸준히 칭찬과 격려를 건네자 자신감을 되찾고 행동과 표정이 달라지는 모습도 지켜봤다.
지난해에는 줄을 한 번도 제대로 넘지 못했던 아이가 반복된 연습 끝에 30회 이상 연속으로 뛰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평범한 숫자지만 그 아이에게 30번은 포기하지 않고 넘어선 30개의 벽이었다.
김 씨는 “아이들은 혼낼 때보다 칭찬할 때 더 크게 성장한다”며 “줄넘기를 가르치지만 아이들이 자신감을 얻고 스스로를 믿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했다.
그의 수업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많이 넘느냐가 아니다. 어제 넘지 못한 아이가 오늘 처음 줄을 넘고, 친구들 앞에 서기 두려워하던 아이가 당당히 시범을 보이는 변화다.
김 씨의 하루는 학교 수업이 끝나도 계속된다. 정선읍 봉양리 S헬스클럽에서 트레이너로 활동하며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자세와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정선지역 마라톤계에서도 실력자로 알려져 있다.
각종 대회에 출전해 꾸준히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출전 대회마다 1위를 차지할 정도의 기량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관절염으로 10분 걷기도 힘들었던 주부가 이제는 줄넘기 강사와 트레이너, 마라토너로 누구보다 힘차게 달리고 있다.
탄탄한 몸과 운동 실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아픈 몸을 일으켜 내디딘 작은 한 걸음을 17년 동안 멈추지 않은 결과다.
김 씨의 희망은 소박하다.
자신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아이들이 운동의 즐거움과 자신감을 얻고, 주민들이 자신의 몸을 돌보는 습관을 갖기를 바란다.
건강을 되찾으려고 헬스장으로 향했던 한 주부의 작은 발걸음은 학교와 체육관, 마라톤 주로까지 이어졌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시작한 운동은 이제 수많은 아이와 주민의 변화를 이끄는 힘이 됐다.
60세는 누군가에게 삶의 속도를 늦추는 시기일 수 있다.
그러나 김신아 씨에게 환갑은 멈춤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선이다.
이날 여량초등학교 체육관에는 다시 구호가 울려 퍼졌다.
“하나, 둘! 하나, 둘!”
김 씨의 줄은 여전히 가볍게 돌아갔다.
그 줄을 따라 아이들도 저마다의 속도로 한 뼘씩 더 높이 뛰어올랐다.
권동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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