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문화원 ‘아리랑 고개너머 시집살이’ 아라리촌 공연 300회 넘어
평균 80세 어르신 19명이 무대에 옮긴 어머니 세대의 삶

한때는 삶이었고, 이제는 무대가 됐다.
낯선 고장으로 시집와 가족을 돌보며 견뎌야 했던 고단한 나날, 친정에 대한 그리움과 차마 드러내지 못했던 설움이 풍물과 연극, 춤과 정선아리랑으로 되살아난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배우들은 평균 연령 80세의 정선지역 어르신들이다.
정선문화원이 운영하는 고은(go silver)님들의 공연 ‘아리랑 고개너머 시집살이’가 어머니 세대의 삶과 정선아리랑의 정서를 한 무대에 담아내며 주민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18년 정선읍 아라리촌에서 처음 막을 올린 공연은 지금까지 300회를 넘겼다. 그동안 40명 이상의 지역 어르신이 무대에 참여했으며, 올해는 정선문화원 노인공익활동사업에 참여하는 어르신 19명이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공연은 과거 시집살이를 겪은 여성들의 삶과 당시 시대상을 소재로 만든 창작극이다. 특히 땅끝 해남에서 정선으로 시집와 살아온 어르신들의 구술과 당시 생활상을 토대로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정선문화원이 운영하는 고은(go silver)님들의 공연 ‘아리랑 고개너머 시집살이’가 어머니 세대의 삶과 정선아리랑의 정서를 한 무대에 담아내며 주민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18년 정선읍 아라리촌에서 처음 막을 올린 공연은 지금까지 300회를 넘겼다. >
고향을 떠나 낯선 산골에 뿌리를 내려야 했던 여성들의 삶은 한 편의 연극이 됐다. 말로 다 풀어내지 못했던 설움은 정선아리랑이 되고, 가족을 위해 견뎌온 세월은 풍물과 춤이 됐다. 한 사람의 기억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이름 없이 한 시대를 떠받쳤던 어머니 모두의 이야기로 넓어진다.
무대에 오르는 어르신들 역시 비슷한 시대를 살아왔다. 삶의 경험이 공연 속 인물과 맞닿아 있는 만큼 그들의 연기에는 꾸밈보다 진정성이 앞선다. 표정과 몸짓, 노랫가락마다 자신들이 지나온 시대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공연의 울림을 깊게 한다.
공연은 서로 다른 세대를 하나의 이야기 앞에 불러 모은다.
어르신들에게는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하는 추억과 위로가 된다. 중장년층에게는 부모 세대가 가족을 위해 감내했던 희생과 사랑을 되새기는 시간을 건넨다. 젊은 세대에게는 조부모 세대가 살아온 시대를 이해하고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다.
무엇보다 이 공연은 어르신들의 삶을 지나간 기억으로만 남겨두지 않는다. 시집살이의 애환과 생활의 지혜, 한 시대를 견뎌온 경험을 공연예술로 되살려 정선이 간직해야 할 문화자산으로 바꿔놓는다.
무대 위에서 어르신들은 더 이상 누군가의 어머니나 할머니로만 머물지 않는다. 자신의 삶과 시대를 직접 들려주는 배우이자, 정선의 기억을 다음 세대에 건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여든의 나이는 무대에서 물러나야 할 이유가 아니라,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이야기를 품은 세월이 된다.
정선문화원은 노인공익활동사업인 ‘고은(go silver)님들의 놀이마당’을 운영하며 지역 어르신들의 문화교육과 창의적인 문화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참여 어르신들은 아라리촌 상설공연뿐만 아니라 문화소외계층을 찾아가는 문화나눔 공연도 펼치며 지역사회에 문화예술의 가치를 전하고 있다.
공연은 오는 11월 7일까지 매월 첫째·셋째 토요일 오후 1시 정선읍 아라리촌 야외무대에서 열린다. 관광객과 군민 누구나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심재복 정선문화원장은 “‘아리랑 고개너머 시집살이’는 정선아리랑의 정서를 연극이라는 문화콘텐츠로 풀어내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새로운 방식으로 계승하고 있는 의미 있는 공연”이라며 “앞으로도 어르신들의 문화활동을 지원하고 세대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공연을 통해 정선의 문화적 매력을 널리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삶은 지나가지만, 살아낸 이야기는 남는다.
해남에서 정선으로, 한 집안의 딸에서 아내와 어머니로 건너온 여성들의 세월은 이제 정선아리랑을 타고 다음 세대에 닿는다. 여든의 배우들이 무대에서 다시 넘는 아리랑 고개는 옛 시집살이의 고개만이 아니다. 잊힐 뻔한 어머니들의 삶이 오늘의 문화가 되고, 한 세대의 기억이 다음 세대의 마음으로 건너가는 고개다. 김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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