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소득이 만든 생활밀착형 창업…‘반월 사랑방’ 판매점 넘어 이웃 안부 잇는 마을 사랑방으로
“이제 옷 한 벌 사러 멀리까지 안 가도 되겠네.”
인구 1,500여 명이 살아가는 정선군 화암면에 반가운 옷가게가 생겼다. 이름은 ‘반월 사랑방(사진)’.
화려한 대형 매장도, 유명 상표가 즐비한 쇼핑몰도 아니지만 주민들에게는 생활 속 빈자리를 채워주는 기다리던 가게다.
화암면에는 그동안 의류를 판매하는 점포가 없었다. 주민들이 옷을 사려면 정선읍이나 인근 지역까지 나가야 했다. 승용차가 있으면 그나마 사정이 나았지만, 대중교통에 의지하는 어르신들에게 일상복 한 벌을 장만하는 일은 마음먹고 길을 나서야 하는 ‘작은 원정’이었다.
그런 화암면에 문을 연 ‘반월 사랑방’은 단순한 옷가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주민들은 이제 자신이 사는 마을 안에서 옷을 직접 살펴보고 고를 수 있게 됐다. 크기와 색상을 확인하려고 먼 길을 오갈 필요도, 한 번 나간 김에 서둘러 장을 봐야 하는 불편도 줄어들게 됐다.
도시에서는 흔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옷가게 하나가 화암면에서는 주민의 이동 부담을 덜어주는 생활 기반이 된 셈이다.
◇ ‘없는 가게’를 찾아 문을 열다
‘반월 사랑방’은 정선군이 추진하는 ‘2026년 정선 기본소득형 창업 지원사업’을 통해 문을 열었다.
이 사업은 농어촌 기본소득이 단순히 지역에서 소비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창업과 일자리, 주민 소득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 추진되고 있다. 주민들이 실제 생활에서 필요로 하지만 지역에 없거나 부족한 업종을 발굴해 생활서비스를 확충하고 지역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핵심이다.
주민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먼저 살핀 결과, 화암면에서는 옷가게가 선택됐다. 지역의 필요가 하나의 사업 아이디어가 되고, 그 아이디어가 주민들의 불편을 덜어주는 가게로 이어진 것이다.
정선군은 지난 6월 북평면에 창업지원사업 1호점인 ‘숨바우식당’을 연 데 이어 화암면에 의류 판매점 ‘반월 사랑방’을 개업하며 기본소득형 창업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북평면에서는 주민과 방문객의 한 끼를 채우고, 화암면에서는 주민들의 옷장을 채운다. 지역마다 부족한 것을 찾아 채워가는 작지만 실속 있는 창업이 이어지고 있다.
◇ 옷도 사고, 안부도 묻는 ‘진짜 사랑방’
가게 이름에 ‘사랑방’을 붙인 데는 이유가 있다.
‘반월 사랑방’은 옷만 사고 돌아가는 판매점이 아니라 주민 누구나 부담 없이 들러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을 지향한다.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고, 이웃의 안부를 묻고, 마을 소식을 주고받는 곳이다.
사람이 모이면 이야기가 생기고, 이야기가 오가면 마을에도 온기가 돈다. 손님과 주인만 만나는 상점이 아니라 이웃과 이웃을 잇는 공동체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농촌지역에서 작은 가게 하나가 사라지는 일은 간판 하나가 내려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주민들이 필요한 물건을 구할 곳이 멀어지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나던 자리도 함께 사라진다. 반대로 가게 하나가 새로 문을 열면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뿐만 아니라 사람의 발길과 대화도 다시 생겨난다.
‘반월 사랑방’의 개업이 더욱 반가운 까닭이다.
◇ 기본소득, 주민 손에서 다시 마을로
농어촌 기본소득이 주민의 지갑을 거쳐 지역 상점의 매출이 되고, 그 매출이 창업자의 소득과 일자리로 이어진다면 돈은 지역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마을 안에서 다시 흐르게 된다.
‘반월 사랑방’은 이러한 기본소득의 지역 선순환 가능성을 보여주는 생활밀착형 창업 사례다. 거창한 시설을 새로 짓기보다 주민들이 일상에서 겪어온 불편 하나를 찾아 해결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옷가게 하나가 화암면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주민들이 옷 한 벌을 사기 위해 감수해야 했던 거리와 시간을 줄이고, 이웃들이 얼굴을 마주할 공간을 만들었다. 주민의 필요에서 출발한 창업이어서 그 쓰임도 주민의 일상 가까이에 있다.
이제 화암면 주민들에게 “옷 사러 어디까지 가세요?”라는 물음의 답이 하나 더 생겼다.
멀리 정선읍까지 나가지 않아도 된다. 마을 안 ‘반월 사랑방’으로 가면 된다. 옷을 한 벌 고르고, 이웃의 안부까지 챙겨 돌아오는 길. 화암면에 들어선 작은 옷가게가 마을의 일상을 조금 더 가깝고 따뜻하게 바꾸기 시작했다. 권동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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