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광촌 도의원의 선택, 국민회의 입당과 DJP연합의 시대

성희직(시인. 정선진폐상당소장)
‘특별위험수당’지원 조건으로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6회)
김대중 총재(DJ)는 네 번째 대선 도전을 위해 1995년 9월 새정치국민회의(이하 국민회의)를 창당하였다.
다음 해 총선에서 79석을 얻는 데 그치자 1997년 대선 승리를 위해 김종필 총재가 이끌던 자유민주연합(이하 자민련)과 정치연합체를 구성하였다.
이른바 DJP연합(김대중. 김종필, 박태준)이다. ‘내각제’를 약속하고서 JP(김종필)와 손을 잡은 게 신의 한 수가 되었다.
그 결과 DJ는 호남과 충청권에서 압승하여 1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무소속으로 당선 후 후반기에 상임위원장을 맡았던 내가 국민회의에 입당한 계기는 이랬다. 대선을 몇 달 앞두고 김대중 총재가 태백관광호텔에서 지역주민과 간담회를 했다.
간담회가 끝난 자리에서 동료인 안상현 도의원(국민회의 소속-원주시)에게 “입당할 테니 ‘탄광에 다니는 광부들에게 특별위험 수당을 지급’하는 문제를 당에서 적극적으로 도와달라”는 조건을 붙였다.
강원도에서 지지세가 취약했기에 재선 도의원의 입당 문제는 김대중 총재에게도 보고 되었고, 박광태 국회의원에게 해결 방법을 찾아보라고 지시하였다.
당시 산자위 여당(한나라당) 쪽 간사는 지역구 박우병 의원이었고 야당에선 박광태 의원이 맡고 있었다. 내가 처음 이 문제를 제기한 명분과 논리는 이랬다.
“탄광은 워낙에 일이 힘들고 위험해서 광업소마다 광부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 곤란을 겪고 있다. 때문에 ‘외국인 광부 수입’ 문제까지 거론되는 실정이다. 정부에서 석탄 생산량에 따라 보조금을 주는 만큼, 광부들에게 ‘특별위험 수당’ 명목으로 1인당 월 15만 원 정도씩 지원해달라”는 건의였다.
이 문제로 박광태 의원실 백봉현 보좌관과 수도 없이 통화하고 만나면서 구체적인 안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고서 1998년 12월에 총 94억 원 예산으로 탄광 갱내 입갱자들은 1인당 114만 원을, 갱외 근무자는 90여만 원을 지원하였다.
이렇게 만들게 된 ‘특별위험 수당’이 처음 건의한 대로 매년 지원되지 못하고 한 번으로 끝나버린 것은 지금도 아쉬움이 크다. (이 문제를 앞장서 도와준 박광태 국회의원(3선)은 2002년에 광주광역시장으로 당선되어 재선하였다.)

<국민회의와 자민련 광역의원 청와대 초청행사 후 기념촬영.(1999년7월20일)앞줄 김대중 대통령,이만섭 국회의장,박태준 총재 등>
(에피소드 1) 그렇게 국민회의에 입당하고서 나는 15대 대선 때 김대중 대통령 후보 강원도 선대본부 ‘대변인직’을 맡았다.
도의회 회의가 끝나면 강원도당 사무실로 가서 방문객과 기자들을 만나곤 했다. 어느 날 당직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면 폐광지역 어린이들을 청와대에 초청하도록 건의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내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되었다.
한나라당 맹형규 대변인이 “김대중 후보 쪽에서 어린이까지 선거에 이용하고 있다”하고 공격하여 텔레비전 뉴스에 크게 보도가 되었다.
나는 탄광촌 어린이들에게 청와대에 초청되는 기회를 주고자 제안한 것인데 의외의 방향으로 파장이 커져 버린 것이다. 강원도당에서 한 일이라, 중앙당에서도 어떤 내용인지를 몰라 기자들에게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단다.
(에피소드 2) 1998년 6월 실시하는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몇 달 앞두고 석탄공사 노조위원장을 지낸 손석암 씨가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도의원 선거에 출마하려는데 중앙당이나 강원도당에 나는 아는 사람이 없어 성 의원님을 찾아왔다.
꼭 공천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이야기였다. 당시엔 도의원 공천 조건이 그리 까다롭지 않았던 데다, 나는 대통령 선거 때 역할도 했었기에 공천 문제는 쉽게 해결되었다.
손석암은 당선 후 본회의 ‘5분 자유발언’ 때는 호소력 있는 연설로 동료 여성의원들의 눈시울을 젖게 한 일화도 있다. 또 의정 활동도 열심히 하였기에 초선이지만 도의회에서도 존재감이 있었다. 손 의원은 내가 3선 당선 후 전반기 도의회 부의장이 될 때 큰 역할로 도움을 주었다.
손석암 의원은 이후 두 차례 낙선하고서 2010년 선거에 당선되어 후반기(2012년)부터 강원도의회 부의장을 지냈다. (손 의원은 2019년 2월, 74세 아까운 나이에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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