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역 도의원끼리 맞붙은 두 번째 선거(5회)

<강원일보에 실린 초선의원 시절 서울 명동거리에서 ‘갱목시위’ 모습.>

성희직(시인·정선진폐상담소장)
해고광부서 도의원 맹활약 전국 광역의회 강원도 ‘베스트의원’에 뽑혀
탄광촌 어려움 호소위해 서울에서 ‘갱목시위’ 한양대 병원엔 ‘신장기증’
‘해고 광부’에서 1991년 6월 강원도의원 선거에 당선된 이후 내가 겪은 일을 돌아보면 그야말로 파란만장이었다.
당선 직후 민중당에서 500만 원을 빌려 아내가 했던 가게는 몇 달 만에 접어야 했다.
무보수명예직 신분이라 비회기에 서울의 중국집 주방에서 일한 게 신문과 방송에 크게 보도되었다. 이 일로 KBS T.V 「현장 기록 요즘 사람들」이란 프로에서 1시간 동안 전국에 방송되었다.
1993년 여름엔 고한읍 정동탄광 체불임금 문제와 탄광촌의 어려움을 국민께 알리려고 서울에서 3일 동안 ‘갱목시위’를 하여 텔레비전 9시 뉴스에 크게 보도되었다.
1994년 6월엔 한양대학 부속병원에 ‘신장기증’을 해 또 한 번 여러 신문에 소개되었다.
신태일광업소 체불임금 문제로 광부들과 함께 노동부 영월지청에서 밤샘 투쟁을 하는 등의 역할로 1년여 만에 해결하였다. 이렇게 물불을 가리지 않는 활동으로 1994년엔 시사저널과 ‘지방자치실무연구소(소장 노무현)’가 선정한 전국 광역의회 강원도 ‘베스트의원’에도 뽑힌 일도 있다.

<성희직 도의원 후보 선거벽보>
그런데 4년 임기가 몇 달 남지 않았을 때 생각지 않은 변수가 발생했다. 정선군과 태백시 등 인구감소 지역 도의원 숫자가 한 명씩 준 것이다.
30년 만에 지방자치가 부활한 제3대 강원도의회 때만 해도 정선군과 태백시 도의원은 각 3명이었는데, 폐광지역과 농촌 지역은 인구가 준 탓이다. 정선군은 제1선거구(정선읍, 북면, 북평면 동면, 임계면)와 제2선거구(고한읍, 사북읍, 남면, 신동읍)으로 나뉘었다. 신동읍 남면, 동면 지역구인 민광기 의원은 고한읍 사북읍이 인구가 훨씬 많았기에 나와 맞대결이 부담스러워 망설였다.
그러자 박우병 국회의원이 “삼탄과 동원탄좌 소장에게 선거를 돕도록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 권유하여 생각을 바꾸었단다. 민광기 의원과는 후반기에 산업위원회에서 같이 활동하며 친밀한 사이였다. 당시 나는 재선에 나서는 외엔 달리 다른 계획도 없었기에 맞대결을 감수해야 했다.
선거엔 세 명이 출마하였다. 민광기 의원이 민주자유당 후보로, 민주당으로 이희대, 나는 무소속이었다. 민중당이 1992년 총선에서 국회의원 당선자를 내지 못해 당이 해산되었기 때문이다. 민광기 의원은 전국송어양식협회 회장, 정선군 재향군인회장 등 경력이 화려한 재력가였다.
그래도 나는 임기 동안 몸으로 부딪치는 의정활동으로 신문과 방송에 수도 없이 나왔기에 은근히 자신감도 있었다. 1995년 지방선거부터는 합동 유세를 폐지하는 대신 ‘개별 거리유세’가 허용되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이랬다. ‘군의원 도의원 군수 도지사까지 후보마다 거리유세를 하면 동네가 얼마나 시끄럽겠냐. 이게 다 민폐이다.’ 그런 마음에 거리유세는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선거 막판에 민광기 후보의 거리유세 모습을 보고서 마음을 바꾸었다.
투표일을 5일쯤 남은 그날은 종일 궂은 비가 내렸다. 선거운동 다니다 오후에 사북 시내 2층 선거사무소에서 느긋하게 쉬고 있는데 쩌렁쩌렁 마이크 소리가 들렸다. 창밖으로 내다보니 민광기 후보였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비옷을 입은 민 후보가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주변엔 우산을 든 운동원과 지지자 등 십여 명밖에 없는데도 20여 분 가까이 연설이 이어졌다. 이는 평소에 보아온 민광기 의원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한동안 지켜보든 머릿속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상대는 빗속에서도 저렇게 최선을 다하는데 나는 다 이긴 선거처럼 한가롭게 쉬고 있는 모습을 유권자들이 안다면 누구에게 표를 주겠는가!’
빗줄기 속의 민광기 후보의 선거운동은 전쟁에 나선 병사처럼 비장했다. 자기 인생의 모든 것과 자존심을 건 선거!! 다음날, 나는 급히 작은 음향기기를 구해 승용차 위에 줄로 묶고는 아파트 단지와 시장 거리 곳곳에서 거리유세에 나섰다. 주민들의 호응에 나름의 재미도 있었다.
6월 27일 개표 결과 세 명이 출마한 선거에서 53.43%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그랬다. “선거는 한 표가 모자란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유권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상대 후보에게서 선거운동의 자세를 배우고 인생을 배운 선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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