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가 만든 도시 vs 시장에 맡겨진 도시”, 갈라진 생존의 길
한때 대한민국 산업화를 떠받쳤던 석탄 도시들이 있었다.
강원 남부의 정선과 태백.
두 도시는 같은 산업 기반 위에 서 있었고, 같은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 정책 시행 이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 두 도시를 지탱하는 산업 구조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 집중 진단한다.
정선, 도시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 한 수’
정선과 태백.
같은 출발선에 섰던 두 도시는 지금 전혀 다른 길 위에 서 있다.
한 곳은 자립 기반을 구축하며 버텨내고 있고, 다른 한 곳은 여전히 생존의 경계에서 흔들리고 있다.
이 격차는 단순한 경제 여건의 차이가 아니다. 정책의 방향이었고, 정치의 선택이었다.
정선의 대전환은 하나의 축으로 설명된다.

<하이원리조트 전경>
정부는 폐광지역 회생을 위해 ‘내국인 카지노’라는 전례 없는 결정을 내렸다.
이 선택은 단순한 관광 정책이 아니라, 도시의 경제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한 정치적 결단이었다.
도시를 살리는 기본 조건은 ‘앵커 산업(선도기업)’ 유무다.
돈이 돌고 사람이 머무는 구조를 만드는 것,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이 바로 ‘앵커 산업’이다.
‘앵커 산업’은 단순한 대규모 기업 유치를 의미하지 않는다.
일자리와 소비, 연관 산업은 물론 교육과 관광까지 연결하는 지역 경제의 중심축 기업이다.
태백이 겪고 있는 위기는 산업의 절대적 부재가 아니라, 도시 전체를 견인할 ‘앵커 산업’이 없다는 데 있다.
정선,“돈이 도는 구조”를 만들다
정선은 강력한 수익 구조를 확보했다. 독점적 강원랜드 카지노 사업 구조, 즉각적인 현금 흐름, 안정적인 지방재정 기반이다.

<강원랜드 카지노 내부 모습>
관광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카지노는 즉시 수익을 창출한다. 이 차이가 결국 도시의 생존을 갈랐다.
정선의 또 다른 특징은 분명하다. 지역 발전을 민간 시장에 맡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규제 완화, 공기업 중심 개발, 집중 투자가 이뤄졌다.
즉, 정선은 “국가가 설계하고 만들어낸 산업 전환 모델”이다.
정선은 하이원리조트를 중심으로 숙박, 음식, 레저, 서비스업으로 산업을 확장했다.
그 결과 연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유입되며 지역경제는 일정 수준의 순환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강원랜드에서 발생하는 재원을 바탕으로 주민 1인당 월 15만 원을 지급하는 농어촌 기본소득 정책도 시행 중이다. 이 정책은 2,200여 명의 외지 인구 유입을 이끌어낸 ‘결정적 변수’로 평가된다.
그 이면엔 정선군민의 희생과 투쟁
이 과정은 결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석탄산업 붕괴는 정선지역을 급격히 무너뜨렸다.
고한·사북읍 인구는 5만6천 명에서 불과 8년 만에 2만 명대로 급감했다.
1995년, 주민들은 생존권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절박한 외침 끝에 제정된 것이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다.
이 법을 기반으로 1998년 강원랜드가 설립됐다. 당시 지역 인사들의 발언은 지금도 의미를 지닌다.
“카지노는 몰락한 폐광촌을 살리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다.”, “카지노 유치는 주민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 계기였다.”
태백, 왜 ‘버티는 도시’가 되었나
태백 역시 변화를 시도했다.
탄광 관광, 스포츠 도시, 자연 관광(태백산 국립공원 중심)에 승부를 걸었다.
전략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결정적 한계는 ‘앵커 산업’의 부재였다.
태백에는 ‘돈이 도는 산업 구조’가 없었다.

<오투리조트 전경>
관광은 있었지만, 산업은 없었다. 오투리조트 개발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초기 사업비는 2,800억 원으로 예상됐지만, 최종 비용은 4,100억 원으로 늘어났다.
과도한 투자와 낮은 수익성은 결국 부채로 남았다.
그리고 2024년 6월, 장성광업소 폐광. 지역 내 마지막 산업 기반마저 사라졌다.
태백의 또 다른 한계는 정책 방식이었다.
민간 투자 의존, 경쟁형 관광 모델, 차별성 부족이다. 결국 정책은 지속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버티는 정책은 있었지만, 살리는 전략은 없었다”고 평가한다.
현실은 더욱 냉혹하다.
스포츠 도시 전략은 일정 부분 성과를 냈지만, 정작 선수단 상당수는 숙박 여건 문제로 정선에서 머문다. 이것이 현재 태백 경제 구조의 단면이다.
정치권, 무엇을 했고 무엇을 놓쳤나
이제 질문은 피할 수 없다. 정선은 ‘결단의 정치’였다. 규제 완화, 특례 산업 도입, 집중 투자.
그 결과, 정치가 산업을 만들었다.
반면 태백은 “정치가 시간을 놓쳤다”는 지적이다.
산업 유치 실패, 정책 추진력 부족, 중앙정부 협상력 한계가 노출됐다.
두 도시의 문제는 과거형이 아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정선은 카지노 의존 구조, 태백은 산업 부재 문제를 안고 있다.
두 도시 모두 다음 단계 전략이 절실하다. 전문가들의 진단은 명확하다.
“관광만으로는 도시를 살릴 수 없다.”, “앵커 산업 없이 지역 회생은 불가능하다.”
정선과 태백의 차이는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책의 방향이었고, 정치의 선택이었으며, 결국 실행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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