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당신을 잊는 동안

― 포르토마린에서 멜리데까지
곤사르까지 가던 날, 나는 정희가 피곤해서 일찍 멈췄다고 적었다.
그 길을 다시 걷는 아침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미뇨강 위에 안개가 남아 있었다. 마을을 내려서는 동안 흰 지붕들이 먼저 사라지고 높은 곳의 성당 벽이 한동안 햇빛을 받았다. 물가로 내려온 바람은 차가웠다. 나는 지퍼를 올리고 배낭의 가슴끈을 잠갔다.
길은 숲으로 올라붙었다. 소나무 아래에서는 밤새 젖은 솔잎 냄새가 났다. 볕이 드는 비탈은 희게 말라갔으나 그늘의 흙은 아직 검었다. 오르막에서 돌아보니 물이 나뭇가지 사이로 잘게 나뉘어 있었다. 조금 더 올라가자 강도 마을도 보이지 않았다. 길 옆 배수로에서 흐르는 물소리만 남았다.
숲이 드문드문 끊기자 목초지 너머로 낮은 구릉들이 포개졌다. 먼 능선 위에서는 구름의 그림자가 옮겨갔다. 철망 가까이 온 소가 내가 지나갈 때까지 고개를 들고 있었다.
곤사르에 가까워졌을 때 왼발이 뜨거워졌다. 같은 발이라는 생각에 걸음을 멈췄다. 예전에 정희와 걸을 때도 이쪽 발을 절었다. 길가에 앉아 양말을 내리니 뒤꿈치가 붉어져 있었다. 아직 터지지는 않았다. 신발 끈을 느슨하게 풀고 발을 식혔다.
곤사르는 산타마리아 성당과 돌집들이 길 곁에 모인 작은 마을이었다. 옛날에는 포르토마린의 성요한 기사단과 관계가 있던 곳이라고 숙소 안내에 적혀 있었다. 카페 앞 의자들이 차고 비는 동안 배낭은 잠깐씩 벽에 기대었다가 다시 사람의 등에 올랐다. 나는 오늘 여기서 묵기로 되어 있었다. 주인에게 예약을 보여주고 방이 준비될 때까지 마당의 벤치에 앉았다.
검은 수첩에서 곤사르를 찾자 ‘정희 피곤. 예정 거리 못 감’이 나왔다. 정희의 작은 공책에는 같은 날 다른 말이 적혀 있었다.
‘당신 자꾸 절음. 내가 발 아프다고 했다.’
수첩과 공책을 무릎 위에 나란히 놓았다. 정희도 발이 아프기는 했을 것이라고 중얼거렸다. 지나가던 주인이 돌아보았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내의 글 앞뒤를 읽었다. 내 발 이야기는 있었으나 제 발 이야기는 없었다. 다시 내 수첩을 보았다. ‘정희 피곤’ 다음에 그날 묵은 숙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신발을 신으려다가 내려놓았다. 붉어진 뒤꿈치에 손가락을 가볍게 대보았다. 내 수첩에는 정희 때문에 멈춘 것처럼 적혀 있었다.
식당에서 수프를 먹고 방에 들어갔다. 신발을 벗어 벽 쪽에 놓고 주인이 준 종이로 안쪽의 습기를 눌러 닦았다. 정희가 신문지를 구겨 넣던 손이 잠깐 떠올랐다. 얼굴을 생각하려 하자 손도 함께 흐려졌다. 종이를 신발 안에 넣었다. 발끝까지 들어가도록 손가락으로 밀고 남은 종이를 다른 쪽에도 채웠다.
다음 날에는 카스트로마이오르를 지났다.
마을 위쪽에 오래된 취락 유적으로 가는 표지가 서 있었다. 산티아고를 향해 사람들이 걷기 훨씬 전, 철기시대부터 사람이 살던 언덕이라고 했다. 성벽과 도랑으로 둘러싼 터에 집들의 기초가 남아 있었다. 나는 길에서 벗어나 조금 올라갔다. 지붕이 사라진 집 안으로 풀이 자라고 있었다. 낮은 벽을 넘어온 바람이 방이었을 자리를 그대로 지나갔다.
돌담 사이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내가 나 없이 걸은 날 지나간 길이 저 아래로 한 줄로 나 있었다. 갈래도 없고 숨을 데도 없는 길이었다. 아일랜드 여자가 쉬자고 할 때마다 정희는 이런 담 그늘에 앉았을 것이다. 나는 그날 이 길을 차로 십 분 만에 지나갔다. 건너편 비탈의 집 굴뚝 하나에서 연기가 올랐다. 나는 내려와 다시 길로 들어섰다.
오스피탈다크루스를 지났다. 이 길에는 옛 구호원과 여관의 흔적을 이름에 간직한 마을들이 이어졌다. 먹을 것과 잠자리를 얻으려 멈췄던 자리에 지금은 카페와 숙소가 있었다. 벤타스데나론에 닿았을 때 처마가 낮은 집 앞에서 걸음이 멎었다. 처마 밑에 의자가 두 개 놓여 있었다. 그날 나는 무릎에 찬 수건을 대고 저 의자에 반나절을 앉아 있었다. 두 시간이 지나고 세 시간이 지나도록 길모퉁이만 보았다.
길 건너에 작은 막달레나 경당이 있었다. 그날 그 문이 열려 있었는지 나는 보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정희가 문 쪽을 보는 동안에도 하늘만 보았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잔을 내려놓고 나오려는데 주인이 나를 불렀다. 탁자에 전화기가 있었다. 고맙다고 하고 받아든 뒤 지은의 메시지를 읽었다. 오늘은 아이레이셰에 닿으면 더 걷지 말라고 했다. 전화기를 지퍼 달린 옷 주머니에 넣고 끝까지 잠갔다.
나는 길을 건너 경당 앞에 섰다. 문은 닫혀 있었다. 손잡이를 잡았으나 열리지 않았다. 문틈으로 서늘한 돌 냄새가 조금 새어 나왔다. 나는 손을 떼지 않고 한동안 서 있었다. 그날 이 문이 열려 있었다면 정희는 들어가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나는 처마 밑에서 그것을 보지 못한 채 길모퉁이만 보았을 것이다. 안주머니 위로 손수건에 싼 묵주를 한 번 눌러보고 돌아섰다.
리곤데 쪽으로 올라가자 나무가 줄고 하늘이 넓어졌다. 라메이로스의 오래된 돌십자가 아래에 잠깐 섰다. 1670년에 세웠다는 십자가였다. 한쪽에는 못 박힌 그리스도가, 다른 쪽에는 죽은 아들을 안은 성모가 새겨져 있었다. 받침돌에는 못과 집게, 사다리와 해골이 있었다. 돌의 홈에는 검은 물때가 끼었고 가장자리는 둥글게 닳아 있었다. 나는 아들을 안은 쪽에 오래 서 있었다. 내일이면 딸이 이 길 끝에서 나를 기다릴 것이었다.
리곤데 마을 안에서 걸음을 늦추었다. 길가에 돌담이 있었고 그 위로 십자가가 서 있었다. 이번에는 무덤을 곧바로 알아보았다. 젖은 풀들이 엉킨 땅은 빈터가 아니었다.
정희가 내 옆에 서서 물었었다. 순례하러 왔다가 여기서 죽은 거냐고. 그리고 조금 뒤에 집에서는 알았을까, 하고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답할 말이 없어 전화기만 내려다보았다.
아내는 집 아래 정류장 가까이의 길 위에서 죽었다. 그때 나는 약을 받고 죽을 사서 돌아오는 차 안에 있었다. 집에서는 알지 못했다. 아내는 그 집을 나서서 길에 있었고, 나는 집에 없었다.
돌담 앞에 오래 서 있었다. 배낭을 멘 사람들이 내 뒤를 지나갔다. 한 사람이 십자가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가 걸음을 이었다. 나도 고개를 숙였다.
전화기로 마을 안내를 찾아 읽었다. 이곳에는 순례자를 받아주던 집이 있었고 왕들도 이 길을 지나 묵었다고 했다. 카를로스 1세가 환대를 받고 피신할 권리를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쫓기는 사람이 정해진 집의 문턱에 닿으면 보호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문턱만 넘으면 되는 집이었다. 나는 안내문 아래의 전설 목록까지 화면을 내렸다. ‘되살아났다’는 말이 있는지 몇 줄씩 읽었다. 끝까지 내려갔다가 화면을 닫고 지은에게 도착할 숙소 이름을 보냈다.
리곤데를 지나 낮은 물길을 건너고 아이레이셰로 다시 올라갔다. 얕은 물이 풀뿌리 사이를 비집고 흘렀다. 미뇨강을 건널 때와 달리 다리 위에서도 물 밑의 돌이 하나씩 보였다.
숙소는 예전과 주인이 달랐다. 사진을 보여주자 건물은 맞다고 했지만 정희를 기억하지는 못했다. 저녁에 옛 부엌을 찾으러 내려갔다. 복도 끝 문은 잠겨 있었다. 손잡이 옆 벽에 색이 다른 네모난 자국이 남아 있었다.
비는 밤에 시작됐다. 처음에는 유리에 작은 알갱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곧 빗줄기가 굵어지고 마당의 바닥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옛 부엌이 있던 방향의 창에는 불이 없었다. 정희가 그 안의 식탁에 앉아 있던 사진을 본 뒤 방의 전등을 꺼보았다. 한동안 어둠에 눈을 두었으나 식탁도 아내의 얼굴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시 불을 켰다.
지은은 다음 날 팔라스데레이에서 만나자고 했다. 여기서 얼마나 더 가야 하느냐고 묻자 지은은 일정표에 적혀 있지 않느냐고 했다가 말을 고쳤다.
“팔 킬로미터쯤이야. 힘들면 차 타고 와도 돼.”
나는 걸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아침에 전화기를 보니 배터리가 거의 없었다. 콘센트에 꽂힌 것은 충전기뿐이고 줄은 가방 안에 있었다. 지은에게 오늘 늦게 걷기 시작한다고 보내자 딸은 알겠다고 했다. 이유를 덧붙이려다 배터리가 없었다고만 썼다.
숙소에 남아 있던 남자가 다가왔다. 전날 길에서 몇 번 마주친 사람이었다.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어 팔라스데레이라고 대답했다. 남자는 함께 출발하자고 했다. 나는 혼자 가겠다고 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자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우리는 레스테도 가까이까지 같이 걸었다. 밤비가 그친 길에는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다. 처마 그늘의 돌은 검었고 담장 윗돌에는 볕이 들었다. 풀밭은 밤새 먹은 물을 무겁게 달고 있었다. 바람이 지나는 곳부터 풀끝이 눕고 물방울들이 짧게 번쩍였다. 마을을 떠나기 전 산티아고 성당 곁을 지났다. 여러 차례 고쳐 지은 건물에는 옛 로마네스크 양식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묘석에 새긴 인물을 사자 굴의 다니엘로 풀이하는 글을 전날 숙소에서 읽었다. 사자들 사이에서도 살아남았다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이름을 묻고도 몇 번 잊었다. 남자는 독일에서 왔다고 했다. 무슨 일을 했느냐고 물어 소설을 쓴다고 대답했다. 어떤 소설이냐고 했다.
“아내 이야기요.”
남자는 아내도 글을 쓰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가 조금 뒤 고쳤다.
“아내도 공책을 썼어요.”
남자는 두 말의 차이를 묻지 않았다. 오르막에서 내 숨이 거칠어지면 말을 멈추고 걸음만 옮겼다. 포르토스를 지나자 비라르데도나스로 갈라지는 길이 나왔다. 정희가 내 발을 보고 오늘은 그냥 가자고 했던 성당이었다. 순례자를 보호하던 산티아고 기사단의 옛 수도원이었다. 성당 안에는 기사들의 무덤과 오래된 벽화가 남아 있다고 했다. 그날 정희는 벨라와 엘비라라는 이름을 한 번 따라 했었다. 나는 지은과 만나기로 한 시각을 확인하고 표지 앞을 지나쳤다. 그 성당 앞을 그냥 지나친 것이 두 번째라는 것은 한참 걸은 뒤에야 알았다.
길가 카페에서 남자는 커피를 마시고 먼저 떠났다. 나는 방금 들은 이름을 공책에 적으려다 못 적었다. 다만 그가 계산할 때 내 커피값까지 냈다는 것은 기억났다. 밖으로 나가 손을 들었으나 이미 보이지 않았다. 공책에 ‘커피값’이라고 적고 동그라미를 쳤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정희와 빵을 먹은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벤치가 있는 곳마다 나무와 길의 방향이 달랐다. 정희가 빵을 뒤로 감추던 어깨만 떠올랐다.
팔라스데레이에 들어서기 전 길가에서 마을 안내를 읽었다. 이름이 ‘왕의 궁전’에서 왔다고 했다. 궁전은 남아 있지 않았다. 딸이 기다리는 식당이 그 자리 어디쯤이었다. 팔라스데레이에 닿았을 때 지은은 식당 밖에 서 있었다. 길 건너에서 알아보고 손을 들었다. 딸은 달려오지 않고 내가 건너오는 것을 기다렸다. 가까이 닿자 배낭을 받아 의자에 내려놓았다. 나는 딸의 어깨를 한 번 잡았다가 놓았다. 겉옷에는 오래 앉아 온 구김이 남아 있었다.
지은은 제 자리에 앉아 물을 한 잔 다 마셨다. 딸의 가방 옆주머니가 조금 불룩했다. 나는 엽서를 떠올렸으나 묻지 않았다. 지은이 내 눈길을 따라 가방을 보았다.
“엽서는 산티아고에서 줄게. 엄마가 거기서 쓰려던 거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여기서 순례자 여권에 도장 받았어.”
지은은 엄마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다. 나는 지갑을 열어 접힌 종이들 사이를 뒤졌다. 작은 사진을 끼워둔 줄 알았으나 펼친 것은 진료 예약증이었다. 딸은 내 옆에 놓인 전화기를 가리켰다.
산티르소 성당 문 옆에 정희가 서 있었다. 여러 차례 고친 성당에 남은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의 아치였다. 지은은 사진을 크게 늘렸다. 돌기둥이 화면 밖으로 밀려나고 아내의 얼굴과 옷깃이 남았다.
“이 옷 가져갔었네.”
돌아온 뒤에도 집에서 자주 입던 옷이라고 했다. 소매 끝이 늘어나서 자기가 버리자고 했는데 엄마가 편하다며 입었다고 했다. 지은은 화면을 끄지 않은 채 전화기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다른 사진도 있느냐고 물었다. 몇 장을 더 넘겼다. 내게는 길을 찾는 자료였던 것들을 지은은 제 전화기로 한 장씩 옮겨갔다.
그러다가 제 사진들을 뒤로 넘겼다.
“엄마가 보낸 것도 있어.”
같은 성당 문이었다. 정희의 머리카락이 입가에 걸려 있었고 한쪽 손은 모자 챙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내가 찍은 사진보다 얼굴이 작고 문밖으로 난 길이 더 많이 나왔다.
“엄마가 혼자 찍어달랬어.”
내가 말했다. 딸은 그랬느냐고 했다. 화면 아래 엄마가 보낸 말이 남아 있었다.
‘바람 많이 분다. 모자 잘 샀지.’
지은은 사진을 제 전화기에 다시 저장했다. 나는 내 것도 보내달라고 했다.
식당 주인이 도장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새 여권의 팔라스데레이 칸에 도장을 받고 볼펜을 쥐었다. 마을 이름은 금방 썼다. 그다음 줄이 오지 않았다. 정희가 여기서 무엇을 했던가. 성당 문, 바람, 모자. 방금 본 것들은 지은의 전화기 안에 있었고, 내가 적으려는 것은 내 안에 있어야 했다.
지은은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제 접시를 보았다. 포크를 내려놓고 기다렸다. 무엇을 쓰려느냐고 묻지 않았다. 나는 볼펜 끝으로 종이를 몇 번 두드렸다. 옆 식탁의 사람들이 계산을 하고 나갔고, 주인이 그 자리를 닦았다. 창밖의 그늘이 식탁 모서리에서 접시 가장자리까지 옮겨 왔다.
“나 혼자 찍을게.”
내가 소리 내어 말하고 적었다. 정희 혼자 사진. 글씨가 칸 밖으로 조금 비어져 나갔다.
“엄마가 그렇게 말했어?”
“응. 나 혼자 찍을게, 그랬어.”
지은은 그제야 포크를 들었다.
식탁에서 딸은 내 일정도 다시 보았다. 이미 지난 숙소 이름에 선을 긋고 앞으로 묵을 곳을 짚었다. 일정표를 접은 뒤 지은은 오늘은 더 걷지 말자고 했다. 나는 엄마하고도 이만큼은 걸었다고 말했다.
“지금 엄마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잖아.”
나는 혼자서도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딸은 그렇다고 했다. 다음 말이 없어 내가 먼저 컵을 들었다.
저녁에 사위에게 전화가 왔다. 지은은 복도로 나갔다가 방문을 닫지 않고 통화했다. 말을 멈추고 오래 듣다가 자기도 언제 돌아갈지 모르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들어와 의자에 앉았다. 신발을 벗는 데 시간이 걸렸다.
나는 집에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딸의 집 일을 내가 먼저 물은 것은 오랜만이었다.
“일은 늘 있지.”
“먼저 돌아가도 돼.”
지은은 벗어놓은 신발을 보았다.
“아빠는?”
“나는 며칠만 더 있으면 되니까.”
딸은 발뒤꿈치를 손바닥으로 감싼 채 앉아 있었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갈 수 있어?”
대답을 기다리던 지은이 전화기를 뒤집어놓았다. 저녁을 어디서 먹을지 물었다. 나는 숙소에서 가까운 곳이면 된다고 했다.
다음 날 멜리데로 갈 때에는 지은도 작은 배낭을 멨다. 내 큰 짐은 다음 숙소로 보내기로 했다. 나는 내 것을 왜 보내느냐고 했다가 왼발 뒤꿈치에 붙인 테이프를 보고 말을 멈췄다. 딸은 물과 겉옷은 직접 들라고 했다.
팔라스데레이를 떠날 때 길 위에는 옅은 안개가 남아 있었다. 집 사이를 벗어나자 밤새 식은 풀 냄새가 났다. 얼마 뒤 산샤오두카미뇨에 들어섰다. 프랑스길 곁에 돌집과 성당이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이름에 붙은 ‘카미뇨’는 길이라는 뜻이었다. 돌벽을 따라 묘지가 둘러진 성당 앞에서 걸음을 늦췄다.
지은이 전화기로 마을 이름을 찾다가 성인의 이야기를 읽어주었다. 산샤오는 성 율리아노의 갈리시아 이름이었다. 길손을 돌보는 성인으로 여겨져 순례길의 여러 성당과 구호원에 그의 이름이 붙었다고 했다. 전설 속 율리아노는 집에 찾아온 부모를 아내와 다른 남자로 오인해 죽였다. 부모임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는 아내와 강가에 구호원을 세우고, 지나가는 길손을 먹이고 재우며 남은 생을 보냈다고 했다.
지은은 거기까지 읽고 전화기를 내렸다.
나는 성당 뒤편의 묘지를 보았다. 비석 사이로 풀들이 자라고 있었다. 부모를 죽인 뒤에도 그는 아침마다 일어나 불을 피우고, 찾아온 사람에게 잠자리를 내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오래 살아도 돌이킬 수 없는 밤이 있었을 것이다. 성당 뒤편에서 새 한 마리가 짧게 울었다. 지은이 배낭 끈을 고쳐 당겼다. 나는 딸이 길로 내려서는 것을 보고 지팡이를 짚었다.
숲에는 굵은 나무들이 길 위로 가지를 뻗고 있었다. 뿌리에 걸린 흙은 비에 씻겨 패었고 낮은 곳에는 흘러내린 잎들이 모여 있었다. 지은은 내가 멈추면 서 있었고 사진을 찍으려 할 때에는 조금 떨어졌다. 나는 왜 자꾸 뒤에 오느냐고 했다. 딸은 앞에 가겠다고 하고 몇 걸음 앞섰다.
갈림길에서 내가 다른 쪽으로 접어들자 지은이 불렀다. 돌아보니 낮은 돌의 화살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그쪽으로 돌아왔다.
“그냥 옆에 가자.”
딸이 보폭을 줄였다. 한동안 두 사람의 지팡이가 번갈아 땅을 찍었다. 나는 지은이 팔을 흔들 때 손등에 드러나는 힘줄을 보았다. 어릴 때 내 손가락 두 개를 움켜쥐고 걷던 손이었다. 지금은 손을 내밀지 않고 곁에서 걸었다.
전화가 울려 딸이 멈췄다. 나는 길가의 돌에 앉아 기다렸다. 지은은 조금 떨어져 전화를 받았다.
“처음 신청한 날짜는 못 맞출 것 같아요.”
말투가 달라져 있었다. 딸은 날짜를 확인하고 인계한 자료의 위치를 설명했다. 통화를 마친 뒤에도 화면을 보며 몇 줄을 보냈다. 숲 위로 바람이 지나갔다. 잎들이 한꺼번에 뒤집혀 밝은 면을 보였다가 가라앉았다.
레보레이로에 가까워지자 숲이 열리고 목초지가 나왔다. 돌담 사이로 난 길 낮은 곳에는 아직 물이 고여 있었다. 그 너머로 낮은 지붕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그 지붕들을 알아보았다. 정희가 길가에 앉아 피 묻은 양말을 내리던 곳, 내가 발목 아래 손을 받치고 물을 부으며 저기까지만 가서 쉬자고 했던 곳, 아내가 무슨 말을 했는데 나는 가방을 여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끝내 듣지 못한 그 대답이 아직 이 목초지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 것만 같은 곳이었다. 소설의 첫 장면은 이 길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그때 지은의 발이 느려졌다. 쉬겠느냐고 묻자 괜찮다고 했다. 잠시 뒤 같은 말을 다시 하자 괜찮다고 했잖아, 하고 대답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곤사르에서 읽은 아내의 글이 떠올랐다.
‘당신 자꾸 절음. 내가 발 아프다고 했다.’
나는 멀지 않은 곳의 벤치를 보았다. 딸에게 더 묻지 않고 말했다.
“내가 좀 앉아야겠다.”
지은이 벤치 쪽으로 걸어갔다. 배낭을 내려놓고 발을 앞으로 뻗었다. 나는 옆에 앉아 신발 끈을 풀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고개를 들고 딸을 보고 있었다.
“나도 아프긴 해.”
딸이 말했다.
“새 신발도 아닌데.”
나는 그 말을 끝까지 들었다. 물병을 꺼내 건넸다. 지은은 제 물이 있다고 했다가 내 것을 받았다. 딸이 마시는 동안 신발을 벗었다. 잠시 뒤 지은도 벗었다. 두 켤레가 벤치 아래에 놓였다.
딸의 발 앞에 작은 돌멩이가 하나 있었다. 지은은 그것을 주워 밑창 홈에 낀 흙을 파냈다. 흙덩이가 떨어질 때마다 돌바닥에 작은 소리가 났다. 나는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묻지 않았다. 딸이 다른 쪽 신발까지 털고 돌을 내려놓을 때까지 앉아 있었다.
일어날 때 지은의 배낭을 먼저 들었다. 딸은 자기 것은 자기가 메겠다고 했다. 나는 돌려주었다. 신발을 신고 나란히 길로 나섰다.
레보레이로의 성당 앞에는 커다란 바구니처럼 생긴 곡물창고가 있었다. 나뭇가지를 둥글게 엮고 짚지붕을 얹은 ‘카바소’였다. 옥수수를 말리고 보관하던 곳이었다. 지은이 성당 문 위를 가리켰다. 아기를 안은 성모가 돌에 새겨져 있었다. 딸은 찾아 읽던 마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까운 샘에서 성모상을 발견해 성당으로 모셔왔는데, 옮겨놓을 때마다 샘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사람들은 성당 문 위에 같은 모습을 새겼고 그 뒤로는 성모상이 떠나지 않았다는 전설이었다.
“아빠 같네.”
지은이 문 위의 성모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같은 숙소의 같은 방을 찾아다니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웃지 않았다. 딸도 웃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나는 벤치에 앉아 전화기로 그 샘을 찾아보았다.
“아빠는 왜 자꾸 전설을 찾아?”
“부활한 이야기가 있나 해서.”
지은은 제 전화기를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엄마가 돌아오는 이야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면에는 성당 문과 샘 사진이 번갈아 나왔다. 어느 것도 내가 찾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부활이 없으면 회귀라도.”
“언제로?”
“너희 어렸을 때. 네 엄마도 같이 있을 때.”
지은은 성당 쪽을 보았다. 나는 전화기를 끄고 두 손 사이에 세웠다.
“너희가 방에서 떠들면 엄마가 조용히 하라고 했어. 아빠 글 쓴다고.”
딸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문 닫고 계속 썼지.”
전화기 모서리를 엄지로 문질렀다.
“그 방에서 나가고 싶어. 너희 있는 데로.”
지은이 무릎 위의 전화기를 집어 배낭에 넣었다.
“오늘 지수한테 전화하자. 거긴 저녁이겠네.”
나는 알았다고 했다. 딸이 일어서며 성당 문 위를 한 번 더 보았다. 나도 전화기를 넣고 지팡이를 짚었다.
멜리데로 가는 길은 계속 숲속에만 있지 않았다. 도로 옆으로 나와 차 소리를 들었고 공장 건물과 넓은 마당을 지났다. 다시 나무 아래로 들어섰을 때 공기가 서늘해졌다. 길 아래에서 강물이 보였다.
푸렐로스강이었다. 양쪽 나무들이 물 위로 가지를 뻗고 있었다. 그늘 아래로 흐르던 물이 돌을 만날 때만 희게 일어났다. 그 위로 네 개의 아치를 가진 돌다리가 놓여 있었다. 12세기 수도원 문서에도 이름이 남아 있는, 순례자들이 오래 건너온 다리였다. 다리 한가운데는 양쪽 끝보다 조금 높았다.
지은이 난간 가까이 서서 물을 내려다보았다. 뒤에서 지팡이 소리가 났다. 우리 둘 다 가장자리로 붙었다. 사람들이 지나간 뒤 딸이 전화기를 들었다. 나는 화면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옆으로 물러났다.
“아빠도 있어.”
난간 가까이 다시 섰다. 지은은 전화기를 들고도 한동안 찍지 않았다.
“엄마 사진은 늘 아빠가 찍었잖아. 둘이 같이 있는 게 별로 없어.”
지나가던 사람이 손을 내밀었다. 지은은 전화기를 건네고 내 곁으로 돌아왔다. 나는 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얇은 옷 아래로 뼈가 만져졌다. 사진을 확인할 때 지은은 두 손으로 전화기를 잡았다. 내 손은 딸의 어깨에 놓여 있었고 강물 위로 나뭇가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다리를 건너 산후안 성당 앞에 닿았다. 문이 열려 있어 잠깐 들어갔다. 안에는 십자가에서 한쪽 팔이 풀려 아래로 내려온 그리스도상이 있었다. 이 마을 출신 조각가 마누엘 카히데의 작품이었다. 두 팔을 모두 벌린 십자가에 익숙한 나는 내려온 손을 한동안 보았다. 그 손은 아래에 선 누군가에게 닿으려는 것 같았다. 나는 안주머니 위로 손수건에 싼 묵주를 눌렀다. 지은은 먼저 문 쪽으로 가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 지은이 다리에서 찍은 사진을 내밀었다. 내 어깨 뒤로 강이 조금 나왔고 딸의 머리카락은 바람에 들려 있었다.
“한 장 더 찍을걸.”
내가 말하자 지은은 이것도 좋다고 했다. 딸은 사진을 지수에게도 보냈다. 멜리데로 들어서는 동안 지은이 답장을 읽으며 웃었다.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지수가 아빠 모자가 너무 깊다고 했다고 했다. 나는 챙을 조금 올렸다. 지수에게 아직 전화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때도 떠오르지 않았다.
길가 카페 앞에서 파란 배낭을 보았다. 어제 내 커피값을 낸 사람인가 싶어 손을 들었다. 돌아본 얼굴은 달랐다. 나는 손을 내리며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고 했다. 남자는 카페의 빈자리를 가리켰다. 어차피 커피를 마시려던 참이라고 했다.
커피가 나오자 남자는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다. 지은이 멜리데라고 대답했다. 나는 어제 어떤 사람이 내 커피값까지 냈다고 말했다. 오늘 것은 내가 내겠다고 했다.
남자는 고맙다고 하고 지은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회사에 다닌다고 말했다. 딸이 내 쪽을 보았다가 남자에게 대답했다. 옷을 파는 회사에서 일한다고 했다. 어느 옷을 얼마나 들여와 팔지 정하는 일을 맡는다고 했다.
“만드는 건 아니고?”
내가 묻자 지은은 아니라고 했다. 전화기에서 여러 색의 옷을 늘어놓은 사진을 찾았다. 딸은 붉은 옷 하나를 크게 늘렸다.
“이건 많이 안 팔렸어요. 저는 좋았는데.”
남자가 먼저 일어났다. 우리는 조금 더 앉아 있었다. 지은이 아까의 붉은 옷을 다시 보기에 물었다.
“너는 샀어?”
“응. 집에 있어.”
“입은 건 못 봤네.”
“입었어. 아빠 집에 갈 때도.”
딸이 다녀간 날들을 떠올렸다. 늘 현관에서 인사를 받았는데 옷은 생각나지 않았다. 지은이 전화기를 넣자 붉은 옷도 사라졌다.
멜리데로 들어서자 집들이 가까워졌다. 끓는 물에서 문어를 건져 올리는 식당 앞에는 김이 자욱했다. 파프리카와 올리브유 냄새가 거리로 흘렀다. 오비에도에서 내려오는 프리미티보길과 우리가 걸어온 프랑스길이 이 마을에서 만났다.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나는 예전에 정희와 먹었던 음식을 주문했다. 같은 가게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주인이 삶은 문어를 가위로 잘라 나무 접시에 올렸다. 굵은 소금과 붉은 가루를 뿌리고 기름을 둘렀다. 감자에서 김이 났다. 지은은 문어를 먹고 감자를 내 쪽으로 밀었다.
“엄마는 여기서 문어보다 감자를 더 먹었어.”
“엄마가 좋아했지.”
딸은 감자 하나를 제 접시로 가져갔다. 포크로 반을 갈라놓고 먹지는 않았다.
“엄마가 나한테도 감자 해줬어. 퇴근하고 들르면 냄비에 삶아서 남겨놨어.”
나는 지은이 퇴근하고 들르던 저녁들을 생각했다. 방 안에서도 현관문 여닫는 소리는 들었다. 딸이 왔다는 것을 알고 원고를 계속 썼다.
“엄마가 밥 먹었냐고 묻고, 먹었다고 하면 감자라도 먹으랬어.”
지은이 포크 끝으로 감자의 갈라진 면을 눌렀다.
“그러고 조금 있다가 또 밥 먹었냐고 물었잖아. 그때 내가 엄마한테 아까 말했잖아, 그랬어.”
딸은 더 말하지 않았다. 나는 냅킨을 한 장 뽑아 접시 옆에 놓았다. 지은은 손을 대지 않다가 눈물이 턱에 맺히자 그것을 집었다.
“엄마 보고 싶어.”
나도 그렇다고 말하려다가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내가 그 말을 하면 딸의 그리움이 내 그리움 옆으로 비켜서야 할 것 같았고, 평생 그렇게 비켜서게 한 사람이 나였으므로, 딸이 냅킨으로 얼굴을 누르는 동안 나는 감자에서 오르던 김이 잦아드는 것만 보고 있었다. 옆 식탁에서는 접시가 바뀌고 누군가 웃었다.
지은은 냅킨을 접어 손에 쥐었다. 나는 딸이 냅킨을 내려놓기를 기다렸다. 한동안 아무것도 권하지 않았다. 딸이 다시 포크를 들었을 때 나도 내 것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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