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을 빼앗긴 사람들, 끝내 이어진 노래
정선 동학항쟁, 기록에 남지 않은 사람들
죽음 앞에서도 버리지 않은 믿음
“문부터 닫으시오.”
강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청이 어머니를 업은 채 문턱 안으로 쓰러졌다.
유인상이 달려들어 박씨 사모의 어깨를 받쳤고, 뒤따라 들어온 최경상은 바깥길을 한 번 더 살핀 뒤 사립문을 닫았다.
사모의 발이 세청의 허리께에서 힘없이 내려왔다.
젖은 짚신 한 짝은 벗겨져 있었고, 다른 쪽에는 피 밴 헝겊이 밑창에 달라붙어 있었다.
세청은 어머니를 내려놓고도 허리를 펴지 못했다.
기침이 터질 때마다 사모의 몸이 그의 등에서 흔들렸으므로, 마지막 고개에서는 두 손으로 어머니의 팔을 가슴에 붙들어 매고 걸어야 했다.
“어머니, 다 왔습니다.”
사모는 눈을 떴으나 아들을 알아보는 데 한동안 걸렸다. 입술이 움직여 세청이 귀를 가까이 댔다.
“뒤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는 대답하고도 문 쪽을 돌아보았다.
임신년(1872년) 구월이었다.
동학을 일으킨 수운 최제우의 아내와 아들이, 그 뒤를 이어 도를 이끄는 최경상이 머물던 정선 무은담으로 피신해왔다.
남편은 참수되었고 맏아들 세정은 양양에서 붙잡혀 매를 맞다가 옥중에서 숨졌다.
남은 식구들을 찾는 손길이 영춘 장현곡의 산골 마을 장간지(獐間地) 가까이까지 미치자, 사모는 앓던 몸을 일으켜 다시 길을 나서야 했다.
최경상과 강수가 그들을 데리러 갔을 때에는 며칠째 제대로 먹지 못한 뒤였다.
세청은 어머니가 걸을 수 있는 데까지 부축하고, 비탈이 가팔라지면 업었다.
최경상과 강수는 솥과 그릇, 옷 보퉁이를 나누어 졌다.
쉬는 동안에도 사모는 길 아래를 살폈다. 세청이 물을 떠오느라 잠깐 곁을 비우면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아들을 찾았다.
최시화가 이불을 펴자 유인상과 세청이 사모를 구들목으로 옮겼다.
어깨를 받친 손을 빼는 순간 기침이 터졌다. 사모는 옆으로 몸을 돌리지 못해 세청이 등을 받쳐주어야 했다.
더운물이 오자 최경상은 발에 감긴 헝겊부터 적셨다. 천을 조금 당기자 사모가 이를 악물었다. 모두 손을 멈춘 채 기다렸다가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 뒤에야 다시 풀었다.
그 아래 벗겨진 살이 드러났다.
사모는 천장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하늘은 진실로 무심하구나. 어찌 나를 이토록 괴롭히는가.”
세청은 어머니의 손을 쥔 채 고개를 숙였다.
최경상은 새 헝겊을 접다가 손을 멈췄다. 여러 고을에서 사람마다 한울님을 모셨다는 시천주(侍天主)의 가르침을 전해왔으나, 사모의 발 앞에서는 답할 말 한마디 찾지 못했다.
잠시 뒤 사모가 세청의 손을 당겼다.
“짐은 들였느냐?”
“예.”
“옷 보자기도?”
세청은 문 가까이에 내려놓은 보자기를 가져왔다.
사모는 매듭을 풀 힘이 없어 손끝으로만 만졌다. 그 안에는 남편과 세정이 입던 저고리가 들어 있었다. 먹을 것을 넣지 못한 날에도 그녀는 그 옷들을 빼놓지 않았다.
세청이 보자기를 머리맡에 놓아주자 사모는 비로소 손을 놓았다.
그날 밤 사모는 몇 술의 죽도 다 삼키지 못했다.
한 숟갈을 넘긴 뒤에는 눈을 감고 숨부터 골라야 했다. 세청은 그릇을 무릎에 받친 채 기다렸다가 어머니가 입술을 열면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너도 먹어라.”
그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사모가 잠든 뒤에야 세청은 부엌으로 나갔다. 강수가 남겨놓은 그릇을 건네자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첫술을 입에 넣으려다가 방 안에서 기침이 나자 그릇을 내려놓고 돌아갔다.
둘째 날에도 사모는 방을 나오지 못했다.
최시화가 상처를 감싼 헝겊을 갈고, 유인상은 약으로 쓸 것을 구하러 사람을 보냈다. 세청은 볕이 드는 시간에 어머니의 이불을 조금 걷어 발을 말렸다.
마당에서 놀던 아이 하나가 넘어졌다가 손에 묻은 흙을 털고 일어났다. 사모의 손이 무릎 위에서 조금 움직였다. 아이가 울지 않고 달려가자 그녀는 그쪽을 한동안 보았다.
박씨 사모가 왔다는 소식은 도인들 사이로 전해졌다.
조를 담은 바가지를 들고 온 이도 있었고 빈손으로 고개를 넘어온 이도 있었다. 유인상은 사모가 앓고 있다며 문밖에서 사정을 전했으나, 먼 길을 온 사람들은 얼굴만 뵙고 가겠다고 했다.
사모는 그 말을 듣고 세청에게 등을 받쳐달라고 했다.
“누가 왔는지 보아야지.”
찾아온 사내는 문턱에 이마를 대고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강수가 팔을 잡아 앉히자 품에서 손때 묻은 종이를 꺼냈다.
“대선생께 배운 것을 적어두었습니다. 집에 사람이 들이닥쳤을 때 이것만 옷 속에 넣고 나왔습니다.”
사모는 종이를 받지 않고 그의 손 위에서 펼쳐보았다. 여러 번 접힌 자리의 글씨가 닳아 있었다.
“다 외우셨소?”
“예.”
“그럼 잊은 사람에게도 일러주시오.”
사내가 고개를 숙였다.
“제가 가르쳐도 되겠습니까?”
사모는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
“그걸 품고 여기까지 왔으니,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주어야지요.”
세청은 어머니의 등을 받친 채 그 말을 들었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에도 낯선 사람들이 집에 왔다.
그들이 돌아간 뒤 어머니는 밥그릇을 거두고 잠자리를 정리했다. 이제 아버지는 없고, 찾아온 사람들은 어머니 앞에서 아버지의 말을 다시 꺼냈다.
저녁이 되자 사모의 기침이 깊어졌다.
도인이 물러난 뒤 세청은 어머니를 눕히고 이불을 끌어올렸다.
“내일은 아무도 들이지 않겠습니다.”
사모가 눈을 떴다.
“먼 길 온 사람에게 아픈 몸을 보여 무얼 하겠느냐.”
세청은 그 말을 허락으로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사모는 아들의 소매를 붙들었다.
“내가 못 만나면 네가 들어주어라.”
사흘째 되는 날, 유인상은 낯선 사람이 마을 어귀에서 손님이 많이 든 집을 묻고 갔다는 말을 들었다.
그날 밤 그는 최경상과 세청에게 그 말을 전했다.
세청의 눈길이 어머니의 발로 내려갔다. 헝겊을 갈 때마다 상처가 다시 벌어지고 있었다.
“며칠만 더 쉬시면 안 되겠습니까?”
유인상은 문밖을 살폈다.
“낮에 온 자가 누구인지 아직 모릅니다.”
사모가 머리맡의 보자기를 당겼다.
“언제 떠나면 되오?”
최경상이 그녀 가까이 앉았다.
“길을 먼저 살피겠습니다. 이번에는 오래 계실 곳을 찾아보겠습니다.”
사모는 고개를 끄덕이고 보자기를 풀었다. 저고리의 소매를 맞추다가 손이 멈추자 세청이 대신 접었다. 그는 옷을 보자기 안쪽에 넣고 어머니가 하던 모양대로 귀퉁이를 덮었다.
새벽에 일행은 싸내로 향했다.
세청이 어머니의 짚신 끈을 매는 동안 최시화는 보리떡을 무명천에 쌌다.
유인상은 고개 아래까지 갈 사람을 붙이고, 다른 길로 먼저 내려가 낯선 이가 있는지 살피게 했다.
사립문을 나서던 사모가 돌아보았다.
“신세를 갚지 못하고 가오.”
유인상이 허리를 숙였다.
“몸을 보전하십시오.”
세청이 등을 내밀었으나 사모는 처음 얼마 동안은 걷겠다고 했다. 최경상이 한쪽 팔을 받치고 세청이 다른 쪽을 잡았다. 마을을 벗어나 비탈이 시작되자 그녀의 발이 자꾸 끌렸다.
길가에 앉혀 숨을 고르게 하는 동안 세청이 짐을 내려놓았다. 어머니 앞에 등을 돌리고 무릎을 꿇자 이번에는 사모도 만류하지 않았다.
고개를 오르던 중 그녀가 아들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내가 하늘을 원망한다 해서 네가 놀라지는 마라.”
세청은 걸음을 늦췄다.
“세정이를 데려갈 때에도 붙들고 물었소. 무슨 죄가 있느냐고. 대답은 하지 않고 끌고 갔소.”
말끝에 기침이 터졌다. 세청은 멈추어 서서 어머니의 몸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저희를 이리 쫓는데도 아버지 말씀을 믿어야 합니까?”
사모의 손이 아들의 가슴께에서 조금 조여졌다.
“쫓는 자들이 네 아버지 말을 옳고 그르다 정하게 둘 수는 없지 않으냐.”
세청은 대답하지 못했다.
다시 발을 옮기자 어머니의 짚신이 허리께에서 흔들렸다.
싸내에서 얻은 방은 작았다. 문풍지 틈으로 바람이 들었고 비가 오면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이 문턱까지 튀었다. 그래도 첫날 저녁 솥을 걸고 그릇을 꺼내자 식구들이 살던 집의 모양이 조금 생겼다.
세청이 아궁이 앞에서 불을 지폈다. 사모는 누운 채 그 모습을 보다가 아들을 불렀다. 가까이 오자 손을 들어 어깨에 붙은 지푸라기를 떼어주었다.
최경상은 가져온 장작을 부엌 벽에 세웠다.
떠나기 전 사모 앞에 앉아 곡식을 전할 사람과 소식을 이을 길을 일렀다.
사모는 그의 말을 듣고 물었다.
“붙잡혀간 사람의 식구들도 살피고 있소?”
최경상이 아는 마을을 몇 곳 대자 그녀는 세청에게 들으라는 듯 고개를 돌렸다.
“누가 소식을 물으러 오면 네가 아는 데까지는 말해주어라. 문밖에서 그냥 돌려보내지 말고.”
세청은 어머니의 발치에 놓인 보자기를 안쪽으로 밀어 넣으며 대답했다.
그 뒤 최경상은 갈래산으로 들어갔다.
적조암에서 마흔아홉 날을 보내는 동안에도 싸내의 방에는 저녁이 오고 아침이 왔다.
세청은 땔감을 구하고 품을 찾았다. 일손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으면 어머니의 물을 데워놓고 길을 나섰다. 하루를 일하고도 품삯을 다 받지 못한 날에는 돌아오는 길에 마른 가지를 더 주웠다.
사모는 몸이 허락하는 날이면 옷을 기웠다.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어 이불을 벽에 받치고 바늘을 들었다. 눈앞이 흐려지면 실을 꿰지 못한 채 기다렸다가 세청이 돌아오면 내밀었다.
관아 사람이 어느 마을까지 다녀갔다는 소식이 들리면 손님이 끊겼다. 다시 길이 잠잠해지면 누군가 곡식 주머니를 품고 왔다. 이름을 묻기 전에 내려가야 한다며 돌아서는 사람도 있었다.
사모는 주머니를 풀 때마다 보내준 집의 형편을 물었다.
아는 사람이 찾아오면 세정의 옥중 소식을 들은 것이 있는지도 조심스레 물었다. 마지막에 무슨 말을 했는지, 곁에 누가 있었는지 알고 싶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늘 모른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떠난 뒤에는 한동안 바느질을 하지 못했다.
어느 밤 세청이 잠결에 눈을 떴을 때 어머니는 벽을 향해 앉아 있었다. 입술이 움직이고 있었다. 아버지에게서 수없이 듣던 주문이었다.
“어머니, 누우십시오.”
사모는 마지막 구절까지 외운 뒤 돌아보았다. 세청은 이불을 들고 곁에 앉아 어머니의 어깨를 덮어주었다.
다음 해 겨울에는 곡식을 전하던 걸음도 드물어졌다.
싸내의 방에는 쌓아둘 양식이 없었다. 사모와 세청은 콩 몇 줌에 물을 부어 하루를 지냈다. 밤새 문풍지가 울었고 아침이면 사발에 남은 물 가장자리에 살얼음이 잡혔다. 재를 헤쳐도 불씨가 나오지 않는 날에는 세청이 얼어붙은 손으로 부싯돌을 쳤다.
콩이 익자 그는 어머니 그릇부터 채웠다.
사모는 사발을 들여다보다가 몇 알을 아들 쪽으로 밀었다.
“너도 먹어야지.”
“저는 먹었습니다.”
“무엇을?”
세청은 빈 솥의 뚜껑을 덮었다.
사모가 그릇을 내려놓았다. 세청은 어머니가 드시기를 기다렸고 어머니는 아들이 제 그릇을 가져오기를 기다렸다. 콩 위로 오르던 김이 가늘어지다가 사라졌다.
“식습니다, 어머니.”
“네가 먹은 그릇을 가져오너라.”
세청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이윽고 부엌에서 빈 그릇을 가져와 앉자 사모가 콩을 절반 덜어주었다. 작은 콩 하나가 그릇 밖으로 떨어졌다. 세청이 주워 손바닥에서 굴려보는 동안 사모는 두 손을 모았다.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세청은 콩을 그릇에 넣고 어머니의 목소리를 따랐다. 목이 메어 소리가 끊기자 사모도 기다렸다가 함께 끝을 맺었다.
두 사람은 식은 콩을 천천히 씹었다. 껍질이 입안에 오래 남았다.
강수에게 도를 배운 최중섭·최진섭 형제가 양식을 구하러 다닌 것도 그 무렵이었다.
형제는 자루를 들고 도인들의 집을 찾았다. 관아 사람이 다녀간 마을에서는 밤이 깊기를 기다렸다가 문을 두드렸으며, 곡식을 받으면 자루를 겉옷 안에 감추고 나왔다.
어느 집의 여자는 사모께서 어찌 지내시느냐고 물었다. 최중섭이 대답을 고르자 찬장 안의 바가지를 꺼냈다. 바닥을 긁어 모은 조를 자루에 넣고 손바닥에 붙은 낟알까지 떼어냈다.
“이것은 남겨두십시오.”
그가 바가지를 받치자 여자는 다른 손으로 자루 입구를 벌렸다.
“우리도 더 구해보겠소.”
다음 집에서는 곡식 대신 무청을 주었다. 또 다른 집에서는 땔감 한 단을 문밖에 세워놓았다. 형제는 길을 나누어 짐을 옮기고 싸내 가까이에서 다시 만났다.
세청은 어머니 머리맡에 그릇을 놓고 자루를 뒤집어 털었다. 조와 콩이 섞여 나왔다. 솔기 사이에 걸린 낟알이 마룻바닥으로 떨어지자 손바닥으로 쓸어 모았으며, 틈에 박힌 조 한 알은 손톱으로 빼냈다.
사모는 그 소리를 들었으나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누가 보내주었느냐?”
세청이 이름을 일렀다. 어머니의 입술이 조금 움직여 가까이 몸을 숙이자 가느다란 말이 들렸다.
“그 집 사람들은 무사하더냐?”
“예. 다음에 또 소식을 전하러 오겠답니다.”
사모는 눈을 감았다. 세청은 곡식을 씻으러 나갔다가 문밖에서 기다리는 형제를 보았다. 두 사람은 어머니가 드시는 것을 보고 가겠다고 했다.
솥에 불이 붙자 최중섭은 남은 장작을 안으로 들였고 최진섭은 물을 길었다. 세청은 묽게 끓인 것을 사발에 담아 어머니 곁에 앉았다. 한 숟갈을 받아 삼키는 데 오래 걸렸다. 다음 숟가락을 내밀기 전에 어머니의 숨이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계유년(1873년) 섣달, 사모의 몸이 더 나빠졌다.
세청은 어머니가 잠든 사이에도 자주 얼굴 가까이 손을 가져갔다. 숨이 닿으면 손을 거두고 잠시 느껴지지 않으면 어머니라고 불렀다.
어느 저녁 사모가 그를 곁에 앉혔다.
“네 아버지 글은 어디 있느냐?”
세청이 보자기를 가져와 보여드렸다. 사모는 매듭을 만지다가 아들의 손을 잡았다.
“너는 살아야 한다.”
“어머니도 나으셔야지요.”
그녀는 아들의 손을 놓지 않았다.
“살아서 네 아버지가 가르친 것을 전해라. 글을 가진 사람만 알게 하지 말고, 글 모르는 사람에게도 일러주어라.”
“예, 어머니.”
“붙잡혀간 사람의 집도 잊지 말고.”
세청은 다시 대답했다. 사모는 듣고도 손을 놓지 않아 그는 한동안 곁에서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밤이 깊어지자 사모의 입술이 움직였다. 세청이 귀를 가까이 댔다.
“시천주…….”
그는 어머니의 입술을 보며 다음 구절을 받았다.
“조화정.”
사모가 숨을 고르는 동안 기다렸다가 다시 입술이 움직이면 그 뒤를 이었다. 어느 때부터는 어머니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 세청 혼자 외우고 있었다.
그는 주문을 멈추고 어머니를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손가락을 깨물어 입술에 피를 대었으나 넘어가지 못하고 입가로 흘렀다.
세청은 옷소매로 닦아낸 뒤 다시 불렀다. 어머니는 콩을 나누던 손을 이불 밖에 내놓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방 안의 불은 꺼지지 않았는데 손은 자꾸 차가워졌다.
박씨 사모가 환원(還元)한 뒤 최경상이 싸내로 건너왔다.
그는 사모가 입던 옷을 펴고 흐트러진 머리를 가다듬었다. 고개를 넘던 날 헝겊을 대주었던 발을 천으로 덮으려 하자 세청이 가까이 앉았다.
“업고 올 때에도 아프셨을 겁니다.”
최경상은 천을 든 채 그를 보았다.
“말씀을 안 하셨습니다. 더 아프면 제가 내려놓을까 봐 그러셨는지…….”
세청은 끝을 잇지 못하고 어머니의 버선을 들어 뒤집힌 곳을 바로 폈다. 최경상이 천을 덮을 때까지 발 아래를 두 손으로 받쳤다.
묻을 자리를 살폈으나 땅은 얼어 있었다. 삽날은 들어가지 않고 튕겨 나왔다. 자리를 옮겨 몇 번 더 파보아도 쇳소리만 났으며, 곡괭이 끝에서 떨어진 흙은 돌처럼 단단했다.
사람들은 장례를 치를 날을 정하지 못한 채 돌아왔다.
세청은 어머니의 그릇을 찬장 안으로 넣지 않았다. 최중섭이 빈자리를 정리하자고 하자 자기가 하겠다며 물렸다. 밤에 몸을 일으키면 어머니가 누워 있던 쪽부터 보았고, 아침에는 물을 데우다가 그릇을 두 개 꺼낸 뒤 하나를 도로 놓았다.
날이 조금만 풀려도 밖으로 나가 흙을 짚었다. 볕 받은 겉흙 아래로 손가락을 넣으면 단단한 땅이 막아섰다. 손톱 밑에 흙이 박힌 채 돌아와 곁에 앉은 사람에게 언제쯤 삽이 들어가겠느냐고 물었다.
그 밤들을 도인들이 번갈아 함께 지켰다. 먼 마을에서 온 사람은 땔감을 내려놓고 들어왔으며, 사모에게 들었던 말과 대선생을 만났던 일을 낮게 나누었다.
세청은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만지던 보자기를 곁에 놓았다. 기침 때문에 주문이 끊기면 다른 사람이 이어주었다. 숨을 고르고 나면 놓친 구절부터 다시 따라갔다.
갑술년(1874년) 이월, 도인들이 싸내에 모였다.
응달에는 묵은 눈이 남아 있었고 볕 드는 비탈에서 녹은 물이 가늘게 흘렀다. 사람들은 대패 자국이 남은 관을 내려놓고 차례로 곡괭이를 잡았다. 몇 번을 내리쳐야 흙덩이 하나가 떨어졌다. 손이 떨리면 다음 사람이 자루를 받았다.
세청도 삽을 받아 깨놓은 흙을 퍼 올렸다. 이마에서 흐른 땀이 눈썹에 맺혔으나 닦지 않았다. 최경상이 잠깐 쉬라고 하자 삽에 몸을 기대고 숨만 골랐다가 다시 흙을 떴다.
관을 내릴 때 세청이 가장자리를 붙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손을 뗀 뒤에도 그는 놓지 못했다. 최경상이 곁에 서서 기다렸다. 세청의 손가락이 나무에서 하나씩 떨어졌다.
흙이 관 위에 쏟아졌다. 처음에는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흙이 쌓이자 그 소리도 잦아들었다.
도인들이 낮게 주문을 외웠다. 바람에 가려지는 구절은 곁의 사람이 이어받았다. 세청은 묘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입술을 움직였으나 목소리는 잘 나오지 않았다. 그는 손바닥에 묻은 흙을 털지 않고 두 손을 모았다.
어머니를 묻은 뒤에도 세청은 싸내의 방을 지켰다.
찾아온 사람이 있으면 먼저 앉을 자리를 내주고 아는 소식을 전했다. 아버지의 글을 묻는 이에게는 보자기를 풀어 보여주었다. 손때가 묻은 가장자리를 누르고 한 줄씩 읽어주면 글을 모르는 사람도 그 입을 보며 따라 외웠다.
기침이 깊어져 오래 읽지 못하는 날에는 종이를 곁의 사람에게 넘겼다. 틀린 구절이 들리면 감았던 눈을 떴다. 상대가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에 손을 조금 들어 멈추게 하고, 숨을 고른 뒤 그 대목을 다시 읽었다.
어느 날 찾아온 젊은 도인이 미안하다며 종이를 접으려 했다.
“오늘은 그만 배우겠습니다.”
세청은 종이 끝을 붙들었다. 기침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손가락으로 방금 읽던 곳을 짚었다.
젊은 도인은 다시 종이를 폈다.
겨울이 돌아왔을 때에는 세청이 문밖으로 나가는 일도 줄었다.
물을 마시려고 몸을 일으키다가 벽을 짚고 오래 앉아 있어야 했다. 도인들이 번갈아 찾아와 불을 지피고 죽을 끓였다.
글을 배우러 오던 사람은 이제 세청의 머리맡에 앉아 먼저 읽었다. 세청은 눈을 감고 듣다가 빠진 구절이 있으면 입술을 움직였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아지자 그 사람은 몸을 가까이 기울여 한 번 더 듣고 고쳐 외웠다.
방을 나서기 전에는 펼친 종이를 가지런히 맞추었다. 세청의 손이 보자기 쪽으로 움직이면 글을 그 안에 넣고, 매듭을 느슨하게 묶어 손 닿는 곳에 놓아주었다.
이듬해 정월, 세청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까지 곁을 지키던 도인은 한동안 읽던 구절을 멈추지 못했다. 세청이 눈을 떠 잘못된 곳을 짚어줄 것 같아 같은 대목을 다시 읽었다. 방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은 뒤에야 종이를 무릎 위로 내렸다.
세청의 아내는 친정으로 돌아갔고, 사모의 세 딸은 각기 혼인한 집에 있었다. 도인들은 장례를 치른 뒤 방 안에 남은 것을 거두었다. 솥과 그릇을 나누어 들고, 벽에 걸린 옷을 접었다.
최경상은 글이 든 보자기를 가져왔다.
뒤에 사위들이 박씨 사모와 세청의 묘를 파서 영춘으로 옮겼다. 유골을 거두고 흙을 덮자 싸내에는 낮은 흙자리 두 곳이 남았다. 사위들은 짐을 꾸려 산길로 접어들었다. 세청이 어머니를 업고 넘어왔던 고개였다.
그날은 뒤쫓는 사람이 없었다. 오르막에서 오래 쉬어도 누가 오나 살필 필요가 없었다. 돌아보면 싸내의 지붕들이 보였으나 함께 떠날 식구는 없었다.
무은담 유인상의 집에는 그 뒤로도 사람들이 찾아왔다.
어떤 이는 아버지에게 배운 주문을 확인하러 왔고, 어떤 이는 붙잡힌 도인의 식구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방 안에서 아이들이 잠들면 사람들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문밖에 기척이 나면 읽던 글을 멈추고 누구인지 먼저 확인했다.
최경상은 세청의 방에서 가져온 글을 펼쳤다. 한 사람이 읽으면 다른 사람이 따라 읽었으며, 종이를 구해온 이는 무릎 위에 놓고 한 획씩 옮겼다. 손에 익지 않은 글자를 만나면 붓을 든 채 기다렸다.
세청에게 글을 배우던 젊은 도인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 주문의 한 구절을 빠뜨리자 그가 손을 들었다.
사람들의 소리가 멎었다.
그는 종이 위의 글자를 짚고 빠진 대목을 낮게 읽었다. 곁의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시천주 조화정(侍天主 造化定), 영세불망 만사지(永世不忘 萬事知).”
한울님을 모시고 조화가 자리 잡도록 하며, 오래도록 잊지 않고 모든 일을 알아간다는 뜻이었다.
밖에서는 바람이 사립문을 흔들었다. 문 가까이 앉은 사람이 고개를 돌려 소리를 살피는 동안에도, 안쪽에서는 다음 사람이 같은 구절을 이어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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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동학항쟁, 기록에 남지 않은 사람들 끝내 잠그지 못한 문 김서방이 나루로 내려왔을 때 한쪽 짚신이 없었다. 무진은 마지막 손님을 내려주고 배를 묶고 있었다. 진눈깨비에 젖은 밧줄이 손바닥에서 미끄러졌고, 강 가장자리에서는 얇... -
[연재소설|녹도아리랑 ㉕] 끝내 놓지 않은 하늘
정선 동학항쟁, 기록에 남지 않은 사람들 죽음 앞에서도 버리지 않은 믿음 “문부터 닫으시오.” 강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청이 어머니를 업은 채 문턱 안으로 쓰러졌다. 유인상이 달려들어 박씨 사모의 어깨를 받쳤고, 뒤따라... -
[연재소설|녹도아리랑 ㉙] 나무는 한양으로, 굶주림은 집으로
정선 동학항쟁사, 기록에 남지 않는 사람들 보리 대신 재를 받은 사람들 박성돌이 첫 품삯을 받으러 내려온 날, 산판 대리인은 그가 내민 됫박을 밀어놓았다. “한양에서 나무값이 아직 안 왔소.” 성돌은 됫박을 거두지 않았다. 산에 들어... -
[연재소설|녹도아리랑 ㉘] 구원을 빌던 손
정선 동학항쟁, 기록에 남지 않은 사람들 굶주림이 맞붙은 문턱 김서방의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물굽이와 바위 밑을 훑던 사람들의 발길도 끊겼다. 김서방은 아내의 옷가지를 치우지 못했고, 작은아이는 사립문 여는 소리만 나면 밖으... -
[연재소설|녹도아리랑 ㉜] 숨을 산마저 없었다
정선 동학항쟁, 기록에 남지 않은 사람들 매를 피해, 총 앞에 서다 “문을 닫아주시오.” 사내는 문턱을 넘다가 무릎부터 꺾였다. 뒤따라온 영월 사람이 겨드랑이를 받쳤으나, 풀로 감싼 발이 땅에 닿자 몸을 비틀었다. 무진이 반대쪽 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