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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녹도아리랑 ㉖] 나라를 위해 숨죽여 빌었다

  • 김광희 기자
  • 입력 2026.10.04 0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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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름을 빼앗긴 사람들, 끝내 이어진 노래

정선 동학항쟁, 기록에 남지 않은 사람들

 

26편1 70%.png

 

무은담, 기도와 글을 지킨 집

 

안개가 걷히기 전에 사람들이 냇물을 건넜다.

앞사람이 디딤돌에서 발을 떼어야 뒤의 사람이 움직였다. 건너편 집은 보이지 않았으나 물소리 너머로 개 짖는 소리가 한 번 났다. 맨 앞의 사내가 멈추어 손을 들자 뒤에서도 발이 멎었다.

잠시 뒤 어둠 속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이쪽이오.”

유시헌의 목소리였다.

무은담(霧隱潭)에서는 물보다 안개가 먼저 보이는 아침이 많았다.

밤새 골짜기에 고인 흰 기운이 냇물을 덮고 밭둑과 돌길을 차례로 지웠다.

물소리는 가까운데 흐르는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건너편에서 사람이 기침해도 어느 집 앞인지 가려내기 어려웠다.

 

해가 산등성이에 닿으면 안개 속에서 나뭇가지 하나가 먼저 나타났다.

그 아래 돌이 드러나고, 한동안 더 기다려야 물가에 기대선 집의 낮은 처마가 보였다. 처음 오는 이는 냇가에서 돌아서기도 했으나 여러 번 드나든 사람은 물살이 돌을 치는 소리를 듣고 건널 곳을 찾았다.

그날 찾아온 도인들은 집 가까이 이르러서야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어둠 속에서 뒤따르던 사람이 아는 이임을 확인하고도 반가운 소리를 내지 않았다. 등짐을 내려놓고 손을 맞잡았을 뿐이었다.

방에 들어온 사내 하나가 젖은 버선을 벗다가 손을 멈췄다. 발목을 감싼 헝겊에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곁의 사람이 물그릇을 당겨주었으나 그는 괜찮다며 버선을 다시 신으려 했다.

“안에서는 벗고 계시오.”

유시헌이 말했다.

사내는 문 쪽을 한 번 보고 나서야 매듭을 풀었다.

 

을해년(1875년) 동짓달, 정선 무은담 유시헌의 집에서 설법제(說法祭)가 열리는 날이었다.

대선생 최제우가 처형된 뒤에도 도인들은 가르침을 버리지 않았다.

다만 그것을 드러내놓고 배울 수는 없었다. 한 사람이 붙잡히면 누구에게 주문을 배웠는지, 어느 집에서 모였는지 추궁이 이어졌다. 도를 묻던 사람이 길을 바꾸었고, 어제 열렸던 문이 오늘은 안에서 잠겼다.

이곳까지 온 사람들도 문밖의 소리를 먼저 들었다.

최시형은 방 안을 둘러보았다.

얼굴을 아는 이도 있었고 다른 도인의 소개로 처음 온 이도 있었다. 그는 어느 고을에서 왔는지 묻고, 함께 오기로 했으나 보이지 않는 사람의 안부를 물었다.

한 사내가 무릎을 모으고 대답했다.

“길에서 헤어졌습니다. 뒤에 오겠다 했는데…….”

그는 문 가까이에 앉은 사람을 보았다. 아직 들어올 자리가 남아 있는지 살피는 눈길이었다.

최시형은 그 자리를 비워두게 했다.

 

그해 최경상은 이름을 최시형(崔時亨)으로 고쳤다.

강수는 강시원(姜時元), 유인상은 유시헌(劉時憲)이 되었다. 세 사람의 이름에는 ‘때 시(時)’가 함께 들었다.

오래 부르던 이름은 쉽게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

누군가는 강수를 찾다가 말을 고쳤고, 유시헌은 옛 이름이 들리면 여전히 고개를 돌렸다. 새 이름을 받았다고 뒤쫓는 손길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길에서 누가 이름을 묻느냐에 따라 대답을 삼켜야 하는 일도 그대로였다.

“용시용활(用時用活).”

최시형은 그 말을 일러주었다. 때에 맞게 쓰고 살아가는 가운데 도를 살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 말을 듣고 돌아온 유시헌은 찾아오는 이들의 길부터 살폈다.

같은 고개에서 여러 사람이 줄을 잇지 않게 했으며, 늦는 이가 있어도 마을 어귀에 나가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했다. 멀리서 온 사람에게는 다음에 찾아갈 집을 일러주되, 그 집에서 먼저 누구를 찾으라고 해야 하는지까지 확인했다.

사람들이 자리를 잡자 문이 닫혔다.

제례를 맡은 이들이 정해진 자리에 섰고, 방 안에서는 옷깃 스치는 소리마저 잦아들었다. 도인들은 몸을 낮추어 절했다. 얼었던 손을 바닥에 짚자 손가락이 쉽게 펴지지 않았다.

 

최시형이 먼저 기도했다.

“이 땅의 백성을 살펴주시옵소서.”

뒤따르는 숨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밭을 갈고도 굶는 자가 있고, 부모를 모시려 해도 함께 살지 못하는 자가 있사옵니다. 붙잡혀간 이들이 살아 돌아오게 하시고, 기다리는 식구들이 서로의 생사를 알게 하여주시옵소서.”

문가에 앉은 사내가 고개를 더 숙였다. 기다리던 사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도를 구한다는 까닭으로 집을 잃지 않게 하시고, 한울님을 부른다는 까닭으로 매를 맞지 않게 하여주시옵소서.”

누군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울음을 삼키는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할 길을 열어주시옵소서.”

 

보국안민(輔國安民).

유시헌은 바닥에 짚은 손을 조금 당겼다.

물을 건너오다 젖은 옷에서 찬 기운이 무릎으로 스며들었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비는 목소리가 문밖으로 크게 새지 않도록, 그는 다음 구절에서 숨을 낮추었다.

기도를 마친 뒤에도 사람들은 한동안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처음 온 도인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이 말을 밖에서 해도 죄가 됩니까?”

그는 문 쪽을 보다가 말을 이었다.

“백성을 살려달라고 빌었습니다. 나라가 무너지지 말라고 빌었습니다.”

강시원이 그의 젖은 소매를 안쪽으로 당겨주었다. 바닥에 괸 물이 무릎 아래까지 번지고 있었다.

최시형은 사내가 말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돌아가면 오늘 함께 빈 사람을 기억해주시오. 오지 못한 이에게도 전해주고.”

사내는 입술을 다물었다. 최시형은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소식이 끊긴 집이 있으면 서로 알아봅시다. 누가 먼저 가겠다고 나서거든 혼자 보내지 말고, 돌아올 길도 일러주시오.”

문을 열기 전에 바깥길을 살폈다. 먼저 나간 사람이 냇가에서 기다렸다가 다음 사람에게 건너오라는 뜻을 보였다. 방 안에 남은 이들은 그사이에 찾아갈 집과 전할 말을 확인했다.

끝내 오지 않은 사람의 자리는 마지막까지 비어 있었다.

 

두 해 뒤 정축년(1877년) 시월, 유시헌의 집에서 구성제(九星祭)가 열렸다.

하늘의 아홉 별을 받드는 의식이었다.

도인들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제를 올리고, 해마다 모여 스승을 높이는 뜻을 잇기로 했다.

밤하늘의 별은 산등성이 위에 드러났다 구름 뒤로 사라졌다.

어린 유택하는 아버지를 따라 마당에 나왔다가 고개를 들었다.

방금 보이던 별이 없어져 한동안 같은 곳을 찾았다. 아버지가 안으로 들어오라 하자 손에 든 물그릇을 조심스럽게 옮겼다.

그릇을 내려놓고도 곧 나가지 않았다.

방 안에는 전에 보지 못한 얼굴이 많았다.

어떤 이는 머리카락에 서리가 녹지 않았고, 어떤 이는 절을 마친 뒤 무릎을 짚고도 일어서지 못했다. 유택하는 곁에 있던 어른이 그 사람의 팔을 받쳐주는 것을 보았다.

 

기도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사람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일이 그치게 하여주시옵소서.”

유택하는 그 말이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아버지도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외국의 힘이 이 나라의 땅과 백성의 삶을 함부로 넘보지 못하게 하시고, 안으로는 백성을 괴롭혀 제 배를 채우는 자들이 물러나게 하여주시옵소서.”

대선생이 도를 펴기 시작할 때부터 바깥세상에 대한 두려움은 가르침 속에 들어 있었다.

서양의 여러 나라가 다른 나라를 공격하고 땅을 차지한다는 소식은 산골에도 전해졌다.

도인들 가운데 바다를 본 사람은 드물었지만 나라를 잃으면 살던 집과 밭이 어찌 되는지 묻는 이는 있었다.

“저희가 두려움에 서로를 버리지 않게 하시고, 나라를 지킬 뜻을 잃지 않게 하여주시옵소서.”

 

유택하는 물그릇을 들고 문 가까이로 물러났다.

목이 마른 사람이 있으면 내밀려고 기다렸으나 사람들은 쉽게 눈을 뜨지 않았다.

기도가 끝난 뒤 한 사내가 손등으로 얼굴을 닦았다. 그는 아버지를 보자 허리를 굽히고 소매 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유시헌은 그것을 받아 옆 사람과 함께 읽었다.

종이에 적힌 글자는 유택하에게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읽는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는 사내에게 언제 들은 소식인지, 누가 함께 있었는지 거듭 물었다.

그날 밤 어머니 최시화가 유택하에게 일렀다.

“여기서 들은 이름을 밖에서 부르지 마라.”

유택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까지 하늘을 향해 기도하던 사람들의 이름도 감추어야 한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더 묻지 않았다.

 

무인년(1878년) 칠월에는 개접(開接)을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여름비가 며칠째 산을 적셨다.

흙빛 냇물이 디딤돌을 덮어 사람들은 상류의 얕은 곳으로 돌아 건넜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사내가 문가에서 소매의 물기를 눌러 짜자 곁의 사람이 마른 헝겊을 건넸다.

개접은 흩어진 도인들이 함께 가르침을 배우고 수련할 자리를 여는 일이었다.

대선생 때 끊겼던 모임을 다시 잇는 자리에서 사람들은 주문을 맞추어 외우고 글의 뜻을 물었다. 배운 것을 제 삶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그 자리에 가져왔다.

한 사람이 대선생 최제우가 동학의 가르침을 세상에 펴는 뜻을 밝힌 「포덕문(布德文)」을 읽었다.

사람들이 하늘의 이치를 돌아보지 않고 제 마음대로 살아가는 현실을 걱정하는 글이었다.

서양의 여러 나라가 전쟁에서 이기고 다른 나라의 땅을 빼앗으니, 이웃 나라들이 무너진 뒤에는 조선도 홀로 편안할 수 없다는 우려가 이어졌다.

읽던 사람은 보국안민의 계책이 어디에서 나올 것인가를 묻는 대목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처마에서 쏟아진 빗물이 마당의 웅덩이를 두드렸다.

방 안 사람들은 그 물음이 적힌 종이를 바라보았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살릴 길을 구한 글이었다. 그러나 그 글을 함께 읽으러 오는 길에서는 저마다 이름과 거처를 감추어야 했다.

“다시 읽어주시오.”

문가의 사내가 말했다.

글을 읽던 사람이 앞줄로 손가락을 옮겼다. 이번에는 조금 더 천천히 읽었다. 사내는 ‘보국안민’이라는 말을 낮게 따라 한 뒤 물었다.

“그 계책을 배우러 왔습니다. 저희 같은 사람이 무엇부터 해야 합니까?”

다른 사람이 말을 보탰다.

“고을에서는 저희를 사학을 하는 자라 합니다. 옳은 도를 배운다 말하면 누구에게 배웠느냐고 묻습니다.”

 

최시형은 펼친 글을 내려다보다가 두 사람을 보았다.

“어디서 왔는지 숨기고 여기까지 오셨소. 돌아가면 식구들이 기다릴 것이오.”

문가의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온 사람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살펴주시오. 붙잡힌 사람의 식구에게는 소식이라도 전해주고. 굶는 집을 알면서 그 앞을 지나치지는 맙시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도를 배웠다면서 곁의 사람이 굶는 줄도 모르면, 오늘 읽은 글을 어디에 쓰겠소.”

유시헌은 들은 말을 옮겨 적었다. 글을 모르는 사람은 곁의 사람이 읽어주는 것을 되풀이했다. 같은 구절을 여러 번 묻는 이가 있어도 다음 장으로 서둘러 넘어가지 않았다.

「포덕문」에는 최제우가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은 경위도 담겨 있었다. 사람들은 그 대목을 읽으며 자신이 처음 주문을 배웠던 날을 떠올렸다. 누군가는 병든 식구를 살리고 싶어 찾아갔고, 누군가는 세상에 제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갔다.

한 사내가 굳은 손바닥을 무릎 위에 펴놓았다.

 

“저는 글을 모릅니다. 이 글을 가지고 가도 읽을 수 없습니다.”

곁에 앉은 사람이 종이를 그쪽으로 조금 돌렸다.

“오늘은 여기까지 익히고 갑시다.”

그가 읽은 구절을 사내가 따라 했다. 한 번에 외우지 못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비가 그치고 처마의 물소리가 잦아든 뒤에도 두 사람은 같은 대목을 되풀이했다.

수련을 마칠 때에는 함께 기도했다.

“지기금지 원위대강(至氣今至 願爲大降).”

지극한 기운이 지금 이르러 크게 내리기를 바라는 소리가 방 안에 포개졌다.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한울님을 모시고 조화가 자리 잡도록 하며, 오래도록 잊지 않고 모든 일을 알아가겠다는 구절이었다.

 

26편2.png

 

유택하는 부엌에서 물을 길어 나르다 그 소리에 멈췄다.

방문 앞에는 서로 다른 마을에서 온 짚신들이 겹쳐 있었다. 주인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짚신 가운데에는 뒤축이 닳아 끈으로 묶어놓은 것도 있었다.

그는 물동이를 내려놓고 제 손바닥을 보았다. 줄에 쓸린 자리가 붉었다. 안에서는 주문이 거듭 이어졌다. 처음에는 사람마다 달랐던 숨이 조금씩 서로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모임이 끝나도 글은 모두 떠나지 않았다.

도인들이 지켜온 기록이 유시헌의 집으로 들어왔다.

《최선생문집도원기서(崔先生文集道源記書)》였다. 대선생의 삶과 도가 비롯된 내력, 남은 사람들이 가르침을 이어온 일이 담겨 있었다.

유시헌은 방바닥을 짚어보고 궤를 놓을 자리를 골랐다. 유택하는 아버지가 궤 밑에 마른 나무토막을 고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한쪽이 흔들리자 토막을 빼내 다시 깎았다.

“안에 무엇이 들었습니까?”

“사람들이 남긴 글이다.”

“왜 밑에 나무를 놓습니까?”

“종이가 눅으면 글도 상한다.”

유택하가 궤를 한 번 흔들어보았다. 아버지는 받침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자리를 떴다.

 

그 뒤 비가 새는 날이면 유택하도 그 방부터 살폈다.

아버지가 궤를 벽에서 떼어놓으면 물 받을 그릇을 가져왔다. 궤에 손을 보태기 전에는 젖은 손바닥부터 옷에 문질러 닦았다.

아버지가 글을 읽어줄 때마다 방 안에 없는 사람들의 이름이 나왔다. 붙잡힌 사람, 죽은 사람, 멀리 피한 사람이 같은 종이 안에 있었다. 어느 이름에서는 손님이 고개를 들었고, 어느 이름에서는 아버지가 잠깐 읽기를 멈췄다.

유택하는 그럴 때마다 아버지의 손끝이 머문 곳을 보았다. 작은 글자 몇 개가 사람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경진년(1880년), 인제에서 《동경대전(東經大全)》이 간행되었다.

유시헌은 글을 바로잡는 일에 힘을 보탰다. 책이 무은담에 들어오자 마른 널조각 위에 놓고 한 장씩 넘겼다.

「포덕문」과 가르침을 묻고 답한 「논학문(論學文)」, 덕을 닦는 「수덕문(修德文)」이 책에 담겨 있었다. 가르침을 들려주던 사람이 떠난 뒤에도 누군가 펼쳐 읽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유택하는 아버지의 손끝을 따라 글자를 보았다.

“이 책도 궤에 넣습니까?”

“읽고 나면 넣어야지.”

“다른 사람도 가져갑니까?”

“다른 데서도 읽어야 하니까.”

아이는 책을 다시 보았다. 이 방에 한 번도 오지 않은 사람이 그 글을 읽을 것이었다. 아버지가 다음 장을 넘기려 하자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방금 짚어주었던 글자를 찾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무은담으로 오는 걸음은 더 늘었다.

가르침을 배우려는 사람과 다른 고을의 소식을 묻는 사람이 왔다. 제집에서 당한 일을 누구에게라도 끝까지 말하려는 이도 있었다. 유택하는 물을 길어주고 잠자리에 깔 멍석을 폈다. 아버지가 자리를 비우면 손님이 어디서 왔는지 기억해두었다.

어릴 적에는 어른들이 말을 멈추고 자신을 바라보면 방을 나갔다. 나이가 들자 그들이 돌아가지 못하는 까닭까지 듣게 되었다. 내일 떠나겠다던 사람이 사흘을 더 머물기도 했고, 기다리던 이가 끝내 오지 않아 혼자 길을 나서기도 했다.

 

기도는 그동안에도 이어졌다.

붙잡힌 사람이 돌아오게 해달라고, 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재물을 빼앗기지 않게 해달라고, 굶는 백성이 제 땅에서 살게 해달라고 빌었다. 외세의 침탈을 막고 가르침을 떳떳하게 펼칠 날이 오기를 바랐다.

그 바람은 뒤에 교조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호소로 이어졌다.

 

임진년(1892년), 도인들은 감영에 글을 올려 동학을 금한다는 구실로 사람을 가두고 재물을 빼앗는 일을 막아달라고 청했다. 아침저녁으로 하늘에 비는 뜻이 보국안민과 가르침을 널리 펴는 데 있음을 밝혔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동학이 조정에서 금하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이듬해에는 대선생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요구와 함께 왜와 서양의 침탈을 물리치자는 목소리도 더욱 커졌다.

무은담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그 소식을 전했다.

누군가는 감영 앞에서 기다린 날을 손가락으로 세었고, 누군가는 도인들이 함께 읽은 글의 구절을 기억해왔다. 유시헌은 전해 들은 말과 직접 본 일을 나누어 물었다.

유택하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백성을 살려달라 했더니 먼저 도를 버리라 하였습니다.”

말을 전하던 사내가 끝내 주먹을 펴지 못하자 곁의 사람이 물그릇을 밀어주었다. 사내는 받지 않고 무릎 위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유택하는 어린 날 설법제를 마치고 묻던 사람을 떠올렸다.

이 말을 밖에서 해도 죄가 됩니까.

그날 밤 주문은 평소보다 낮게 시작되었다.

유택하는 문 가까이에서 바깥을 살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의 소리와 섞였다. 어릴 때 안개 속에서 듣던 것과 같은 구절이었으나, 이제는 그 소리에 누구의 기다림과 두려움이 들어 있는지 조금 알 수 있었다.

 

갑오년(1894년), 탄압은 그 집의 식구들에게도 닥쳤다.

최시화가 붙잡혀갔고 식구들이 흩어졌다. 유택하 역시 붙잡혔다가 벗어난 뒤 몸을 숨겨야 했다. 집으로 모여들던 사람들의 길이 이번에는 그 자신이 피해야 할 길과 이어졌다.

밤중에 문을 열어준 집이 있었다. 젖은 옷을 말려주고 밥을 덜어준 사람이 있었다. 떠날 때 마당까지 나오지 않는 이도, 다음 고개에서 피해야 할 길을 일러주는 이도 있었다.

그는 얼굴과 마을을 기억해두었다. 이름을 적으려다가도 그 종이가 누구의 손에 들어갈지 몰라 붓을 들지 못했다. 지나온 길이 늘어날수록 서로 닮은 고개와 집들이 마음속에서 겹쳤다.

어느 집에서 밥을 먹었는지는 기억나는데 주인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날이 생겼다. 이름은 아는데 그를 만난 것이 눈 오기 전인지 뒤인지 확신할 수 없는 일도 있었다.

유택하는 한 번 들은 것을 다시 물었다. 대답이 다르면 어느 쪽을 먼저 들었는지 되짚었다. 함께 길을 걸었던 사람이 돌아오지 않으면 마지막으로 헤어진 곳과 그때 곁에 있던 이를 기억하려 했다.

훗날 그는 자신과 집안, 도인들에게 일어난 일을 《동학난중기(東學亂中記)》에 남겼다.

누구를 만났는지, 어디서 헤어졌는지, 어느 길로 몸을 피했는지 적었다. 들은 일은 들은 것으로 남기고 직접 보지 못한 대목에서는 붓을 멈췄다. 사람의 이름을 적을 때에는 오래전 어머니가 일러주던 말을 떠올렸다.

 

밖에서 함부로 부르지 마라.

그는 종이를 펼쳐 손바닥으로 눌렀다. 아버지가 궤 밑에 받칠 나무토막을 다시 깎던 모습이 떠올랐다. 조금만 흔들려도 그냥 두지 않던 손이었다.

등잔 심지를 돋우자 글씨가 밝아졌다.

유택하는 한 줄을 읽고 다음 줄을 이었다. 안개 속에서 물소리를 듣고 디딤돌을 찾듯 기억나는 곳까지 천천히 적었다. 모르는 곳은 빈 채로 두었다가 다시 물을 사람의 이름을 곁에 적어놓았다.

밖에서는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방금 적은 이름을 낮게 읽었다. 어린 날 그 이름의 주인이 어느 자리에 앉았는지 떠올리다가, 다음 장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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