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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녹도아리랑 ㉗] 짚신만 돌아온 밤

  • 김광희 기자
  • 입력 2026.10.04 10:26
  • 댓글 0
  • 글자크기설정

  • 이름을 빼앗긴 사람들, 끝내 이어진 노래

정선 동학항쟁, 기록에 남지 않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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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잠그지 못한 문

 

김서방이 나루로 내려왔을 때 한쪽 짚신이 없었다.

무진은 마지막 손님을 내려주고 배를 묶고 있었다. 진눈깨비에 젖은 밧줄이 손바닥에서 미끄러졌고, 강 가장자리에서는 얇은 얼음이 물에 떠밀려 서로 부딪쳤다.

김서방은 배를 보지 않았다. 무진의 뒤쪽, 어두워지기 시작한 물을 보고 있었다.

“집에 없어.”

밧줄을 당기던 손이 멎었다.

“아주머니가요?”

“뒷간에도 없고…….”

사내는 나머지 말을 하지 못했다. 물가로 내려서다가 돌에 발을 헛디뎠고, 무진이 팔을 받치자 그제야 얼굴을 돌렸다. 짚신을 잃은 발의 발가락 사이에 흙이 끼어 있었다.

“그 몸으로 어디를 가겠나.”

 

갑오년의 항쟁보다 세 해 앞선 신묘년(1891년) 겨울이었다.

여량으로 장가온 그는 마을에서 김서방으로 불렸다. 아내와 밭을 부치고 농한기에는 산판 일을 다니며 두 아이를 먹였다. 지난가을 아내가 밭에서 쓰러진 뒤로는 그마저 어려워졌다.

마을에서는 중풍이라고 했다. 오른팔과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했고, 말도 더뎌져 한 구절을 마치려면 중간에서 숨을 골랐다. 스물아홉이었다.

무진은 배를 단단히 묶고 김서방을 따라 집으로 올라갔다.

신부터 찾아 신자고 했으나 사내는 비탈만 보고 걸었다. 미끄러질 때마다 길가의 마른 풀을 움켜쥐었고, 일어선 뒤에도 꺾인 줄기가 손안에 남아 있었다.

처마 아래에는 열 살 난 큰아이가 서 있었다. 여섯 살 동생은 형의 등 뒤에서 저고리 자락을 움켜쥐고 있었다.

“어디로 가신다고 했느냐?”

무진이 묻자 큰아이는 뒷간 쪽을 가리켰다.

“볼일 보신다고…… 내가 같이 가려고 했는데 동생 보라고 했어요.”

 

김서방은 아이의 말이 끝나기 전에 집 뒤로 돌아갔다. 뒷간 문이 열렸다 닫히고, 헛간에서 마른 짚을 들추는 소리가 났다.

무진은 문턱 앞에 쪼그려 앉았다. 한쪽 발로 디딘 자국 곁에 흙을 끈 흔적이 있었다. 처마에서 떨어진 물이 자국의 가장자리를 허물고 있었다. 밭둑 가까이에서는 여러 사람의 발에 밟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얼마나 됐느냐?”

큰아이는 부엌을 돌아보았다.

“불이 자꾸 꺼져서요.”

아궁이 곁에는 젖은 장작이 뽑혀 있었다. 솥뚜껑 틈에는 죽이 말라붙어 있었고 아이의 소매에는 검댕이 묻어 있었다. 불을 붙이고 동생을 뒤로 끌어내다가 뒷간 앞에 가서 어머니를 불렀다고 했다. 그 사이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지 못했다.

김서방이 빈손으로 돌아왔다.

“신도 없어.”

무진은 처마 밑에서 낡은 짚신 한 켤레를 꺼내 발 앞에 놓았다. 김서방은 남아 있던 신도 벗고 벽을 짚은 채 갈아 신었다. 뒤축이 접혀 무진이 손가락으로 펴주었다.

아이들에게 안에 있으라고 이른 뒤 두 사람은 아래 길로 내려갔다.

 

무진은 집 앞을 지나던 이웃을 불러 세웠다.

“산판에 계신 지왈길 접주님께 전해주십시오. 김서방 아주머니가 없어졌으니 일하던 분들도 함께 내려와 찾아달라고요.”

지왈길은 여량의 동학접주였다. 김서방과 무진도 그의 집에서 주문과 가르침을 배웠다. 밤늦게 돌아올 때면 두 사람은 갈림길까지 나란히 걸어가며 어느새 품을 보태고 곡식을 빌릴 만큼 가까워졌다.

지왈길이 산판의 사내들과 내려왔을 때는 날이 저물어 횃불이 필요했다. 그는 도끼를 처마 밑에 세워놓고 큰아이 앞에 앉았다. 아이가 아궁이의 불과 동생의 기침, 어머니를 처마까지 부축했던 일을 말하는 동안 끼어들지 않았다.

“돌아봤을 때 손이 안 보였어요.”

“어느 손이?”

“벽 잡고 있던 손이요.”

벽에는 손이 닿았을 만한 높이에 흙이 문질러져 있었다.

“그 뒤에는?”

“뒷간에서도 부르고, 집 뒤에서도 불렀어요.”

아이가 고개를 숙이자 지왈길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제 어른들이 찾으마.”

마당으로 나온 그는 사내들을 둘씩 나누었다. 동백과 막동댁은 가까운 집과 빈 헛간부터 살피기로 했다.

 

김서방은 횃불을 받아 들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강부터 봐야겠네.”

“아랫마을로 가셨을 수도 있습니다.”

무진이 말하자 그가 불빛 너머로 얼굴을 들었다.

“요 며칠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며칠 전 김서방은 씨 할 곡식까지 장에 내다 팔았다. 그날 저녁 아내는 남편이 떠먹이는 죽을 밀어내며 아이들부터 주라고 했다. 제 것을 먹은 작은아이가 어머니 앞의 그릇으로 다가오자 김서방은 사발을 당겨놓고 소리를 질렀다.

놀란 아이가 물러서다가 사발을 건드렸다. 죽이 쏟아지고 사발이 바닥을 굴렀다.

큰아이가 동생을 데리고 나간 뒤에도 그는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아내가 벽에 걸린 아이들 옷을 보며 말했다.

“내가…… 없으면.”

김서방은 말을 막았다.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먹기나 하라고 했다.

지금 무진에게 그 일을 털어놓으면서도 끝의 말은 잘 나오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들었어야 했네.”

그는 횃불을 낮추고 앞서 내려갔다.

집 아래 버드나무를 지나면 길이 갈라졌다. 아래쪽은 강가였고, 옆으로 난 길은 밭을 끼고 아랫마을로 이어졌다. 김서방은 둥치 아래부터 불빛을 가져갔다.

아내는 문턱에서 처마 기둥까지 오는 동안에도 두 번은 쉬었다. 오른발이 따라오지 않으면 기둥을 잡고 기다렸고 힘이 풀리면 그대로 앉았다.

“여기서는 쉬었을 텐데.”

무진도 나무 아래를 살폈다. 뿌리 사이로 흙물이 흐르고 있어 누가 머물렀던 자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위쪽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산판의 사내가 집과 버드나무 사이의 바위 아래를 가리켰다. 그 손에 짚신 한 짝이 들려 있었다. 신코에는 헝겊이 덧대어져 있었다.

김서방은 횃불을 무진에게 넘기고 그것을 받았다. 손가락으로 천을 문지른 뒤 뒤축을 벌려보았다.

“내가 댄 거야.”

아내는 발을 끌면서 신코부터 닳았다. 그는 버릴 저고리에서 천을 잘라 그곳을 감싸주었다. 걷는 연습을 하다가 주저앉으면 아내는 왼손으로 신코의 흙을 털곤 했다.

김서방은 바위 아래에 무릎을 댔다. 비탈에서 흘러내린 물이 그곳에 모였다가 길 아래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여기서 벗겨졌소?”

“제가 보았을 때는 물에 걸려 있었습니다.”

지왈길이 횃불을 받아 주변을 비추었다. 사람들이 오가며 밟은 자국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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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이 돌아와 짚신을 보았다.

“아주머니가 저희 집에 오겠다고 하신 적 있어요.”

김서방이 고개를 들었다.

“언제?”

“그저께요. 아이 바지를 기우다가 날이 풀리면 혼자 와보겠다고 하셨어요.”

“혼자 걷지도 못하는데.”

“그래서 제가 온다고 했어요. 그래도 길을 물으셨어요.”

그날 아내는 찢어진 아이 바지를 무릎 위에 놓고 있었다. 오른손을 쓸 수 없어 동백에게 천을 잡아달라고 했다. 왼손으로 든 바늘은 자꾸 비스듬히 들어갔고, 꿰맨 곳을 당기면 한쪽이 주름졌다.

몇 땀을 뜨던 아내가 낮게 소리를 냈다.

“아리랑…… 아리랑…….”

한 가락으로 길게 잇지 못해 숨을 골랐다. 동백이 천을 조금 더 가까이 잡아주자 다시 불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남들은 밭에 가고 마실도 가는데

나는 문턱 하나를 못 넘어가네

 

마지막 말이 바늘 끝에서 끊어졌다. 문밖에서는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아내는 그 소리를 듣다가 바지를 제 쪽으로 당겼다.

잠시 뒤 사설이 달라졌다.

 

우리 아기 해진 무릎 내가 기워주고

봄볕 나거들랑 마실이나 가보세

 

‘가보세’의 끝소리가 작게 떨렸다. 웃으려 했으나 입 한쪽만 움직였다. 바늘을 놓치자 동백이 주워 손에 쥐여주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해요.”

아내가 고개를 저었다.

“이건…… 마저.”

남은 틈을 닫고 나서야 바늘을 내려놓았다. 동백이 바지를 펼쳐 보여주자 비뚤어진 바늘땀을 오래 보았다.

“입히면…… 안 보이겠지.”

“잘 기우셨어요.”

아내는 문밖의 큰아이를 불렀다. 바지를 입혀보는 동안에도 시선은 꿰맨 무릎에 머물렀다. 아이가 다리를 굽혔다 펴도 터지지 않자 그제야 손을 놓았다.

“그러고 나서 저희 집이 어느 쪽인지 물으셨어요.”

동백의 말을 듣고 김서방은 짚신의 벌어진 뒤축을 오므렸다.

“그럼 거기로 갔을 수도 있겠네.”

“오늘 오시려던 건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그 길을 찾아볼게요.”

 

지왈길은 동백이 가는 길에 산판의 사내 하나를 붙이고 강 쪽으로 두 사람을 더 보냈다. 김서방은 짚신을 품에 넣었다. 덧댄 천이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저고리 안쪽을 눌렀다.

아래에서 두칠이 올라왔다.

“아이들만 있네. 큰애가 어머니 찾으러 나오려는 걸 도로 들여보냈네.”

무진은 집으로 올라가는 길을 보았다. 떠날 때에는 금방 돌아올 줄 알았다. 김서방은 벌써 동백이 가리킨 길로 움직이고 있었다.

“제가 집에 가 있겠습니다.”

그가 부르자 사내가 돌아보았다.

“두칠 형님하고 같이 다니십시오.”

김서방은 잠시 서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진은 횃불을 넘기고 돌아섰다. 뒤에서 아내를 부르는 소리가 났으나 발을 멈추지 않았다.

큰아이는 방문 앞에 앉아 있었다. 동생은 이불을 덮은 채 잠들었으나 발이 밖으로 나와 있었다.

“찾았어요?”

무진은 아직 찾고 있다고 말하고 동생의 발을 덮어주었다. 아궁이에 장작을 넣자 아이가 곁으로 와 앉았다.

“내가 따라갔어야 했지?”

불쏘시개를 밀어 넣던 손이 멈췄다.

“너는 동생을 보고 있었잖니.”

“어머니가 혼자 간다고 해도…….”

아이의 무릎에 비뚤어진 바늘땀이 보였다. 무진은 그곳을 보다가 아이의 얼굴로 눈을 돌렸다.

“어른이 와 있어야 했다. 네가 다 할 수는 없지.”

아이는 제 무릎을 내려다보았다.

밖에서 발소리가 나자 먼저 일어났다. 막동댁이었다. 빈 헛간과 아랫집들을 살피고 돌아온 여자가 아이의 손을 잡았다. 아이는 얼굴을 보고도 묻지 않았다.

 

무진은 아이들을 부탁하고 다시 나갔다.

골목에서 지왈길을 만났다. 그는 젖은 종이를 펴놓고 있었다. 김서방의 집에 누가 들를지 적어두었던 종이였다. 줄을 긋고 다른 이름을 넣은 곳이 여러 군데였다.

아내가 쓰러진 뒤 김서방은 품을 나가지 못했다. 지왈길이 사정을 알리자 도인들이 곡식을 조금씩 모아왔고, 번갈아 집에 들러 아내와 아이들을 살폈다. 무진도 나루 일이 뜸하면 물을 긷고 땔감을 쌓았다. 그렇게 김서방은 다시 일하러 나갈 수 있었다.

“오늘은 누가 오기로 했습니까?”

지왈길이 한 줄을 짚었다.

“이 집 아주머니네. 사람을 보냈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

아낙의 이름 곁에는 아침부터 해 기울 때까지라는 표시가 있었다. 그 위로 지운 이름들이 겹쳐 보였다. 한 사람은 품을 나갔고 다른 사람은 어린것이 앓았다. 대신 와준 이도 이튿날에는 제집의 곡식을 마련해야 했다.

“어제도 바꾸었네. 그제는 나도 산판 일이 생겨 못 왔고.”

지왈길은 종이를 접으려다가 손을 멈췄다.

“적어놓았으니 사람이 있는 줄 알았네.”

 

무진은 아침의 나루를 떠올렸다. 손님이 많지 않았다. 김서방이 다시 품을 얻었다는 말을 듣고 다행이라고만 생각했다.

얼마 뒤 동백과 사내들이 돌아왔다. 동백의 집에도 그 너머 빈집에도 아내는 없었다. 김서방은 두칠 곁에 서 있다가 무진을 보자 다가왔다. 새 소식을 기다리는 얼굴이었다.

그때 아랫마을에 다녀온 사내가 노인 하나를 데리고 올라왔다.

“이 어른이 낮에 여인을 보셨답니다.”

김서방이 가까이 다가섰다.

“어디서?”

“버드나무 지나 우리 밭 아래요. 한쪽 몸이 자꾸 기울더군.”

노인은 젖은 소매로 얼굴을 닦았다.

“눈 때문에 얼굴은 못 보았소. 어디로 가느냐고 불렀는데 대답이 없었고.”

“그 뒤에는?”

“집에 들어가 소 여물을 주었소. 다시 나왔을 때는 안 보였고.”

김서방의 손이 앞으로 나왔다가 노인의 소매에 닿기 전에 멈췄다.

“그 몸을 보고도…….”

노인은 고개를 숙였다.

“길 아래 집으로 가는 줄 알았소.”

김서방은 입을 벌린 채 그를 보았다. 품을 나서던 아침 아내도 벽에 기대앉아 있었다. 돌아오면 보리를 사오겠다고 했고, 아내는 아이들 옷에 묻은 지푸라기를 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손을 거두어 품속의 짚신을 눌렀다.

“본 자리를 짚어주시오.”

노인이 가리킨 곳은 버드나무를 지나 밭으로 접어드는 길목이었다. 위로 돌아보니 굽은 길 너머에 김서방의 집 지붕이 보였다.

“이쪽으로 내려오고 있었소?”

“그랬소.”

“혼자였소?”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서방은 그 자리에 한동안 서 있었다. 무진이 횃불을 낮추자 발치의 흙이 드러났다. 빗물에 씻긴 길 위로 짚신 자국들이 겹쳐 있었다.

지왈길은 그곳부터 사람들을 다시 나누었다. 자신은 두칠과 강가를 훑고, 무진은 아랫마을의 집들을 더 살피기로 했다. 김서방은 강으로 내려가는 두 사람을 따라갔다.

무진은 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한쪽 몸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여인이 찾아오지 않았는지 물었다. 등잔을 든 사람들이 문밖으로 나와 고개를 저었다. 어떤 이는 직접 헛간 문을 열어 안쪽을 비추어주었다.

강 쪽에서도 사람을 찾았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밤이 깊어 집으로 돌아왔을 때 김서방은 아궁이 앞에 앉아 품삯을 꺼내고 있었다. 종이를 펴는 손이 굳어 동전 하나가 바닥으로 굴렀다. 무진이 주워주자 받아놓고 내려다보았다.

“보리를 사려고 했네.”

그는 종이를 접지 않았다. 데운 죽을 놓아도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늦게 찾아온 아낙은 제 아이가 새벽부터 토해 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서방을 보며 몇 번이나 말을 잇다가 입을 다물었다. 소매에서는 토한 것을 닦아낸 시큼한 냄새가 났다.

 

지왈길은 아이들 곁에 있어달라고 부탁했다.

아낙이 방으로 들어간 뒤 김서방이 입을 열었다.

“내가 없으면, 그랬을 때…….”

그는 방문을 보았다.

“하지 말라고만 했네.”

무진은 죽그릇을 아궁이 가까이 옮겨놓고 사내 곁에 앉았다.

새벽 가까이 김서방이 밖으로 나가자 무진도 따라 일어났다. 나루 쪽으로 발자국이 이어졌다. 강가에 닿았을 때 그는 물 가까이에 서 있었다.

“김서방.”

불렀으나 돌아보지 않았다. 무진은 곁으로 가 팔을 잡았다. 김서방의 몸이 흔들렸고, 팔을 빼려던 손이 도리어 무진의 소매를 움켜쥐었다.

“이리로 오시오.”

물에서 떨어진 쪽으로 함께 물러났다. 김서방의 무릎이 꺾여 두 사람은 나루턱에 주저앉았다. 사내는 잡은 소매를 놓지 않았고, 무진도 손을 떼지 않았다.

뒤따라온 지왈길이 겉옷을 벗어 그의 어깨에 둘렀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김서방은 두 번 쉬었다. 두 사람은 그가 일어날 때마다 양쪽에서 팔을 받쳤다. 돌아와서는 젖은 옷을 갈아입히고 아궁이 가까이에 자리를 폈다.

그가 눈을 감은 뒤에도 두 사람은 곁을 지켰다. 처마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날 때마다 사내의 손이 이불 밖으로 움직였다. 무진은 그 손 가까이에 앉아 있었다.

날이 밝자 사람들은 노인이 여인을 보았다는 자리부터 다시 찾았다. 밤에 놓친 길가와 강둑을 살피고 강 아래 마을까지 내려갔다. 바위 아래와 갈대 사이를 들여다보았으며, 물가에 옷감이 걸려 있다는 말이 오면 가서 확인했다.

 

김서방은 젖은 천을 받아 펼쳤다. 아내가 입고 나간 옷과 다른 천이었다. 접힌 안쪽까지 펴본 뒤 건네준 사람에게 돌려주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튿날에는 더 아래로 내려갔다. 그 뒤에도 누가 무언가를 보았다는 말이 들리면 다시 길을 나섰다. 여인의 행방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김서방은 짚신을 씻지 않았다. 신코에 덧댄 천을 만지다가 흙이 떨어지면 손바닥으로 받아 문턱 옆에 놓았다.

수색에서 돌아온 저녁, 무진이 부엌에서 물을 올렸다. 큰아이가 솥뚜껑을 들려고 하자 먼저 받아들었다.

김서방도 들어와 곡식을 넣고 주걱을 잡았다. 작은아이는 문턱에 서서 아버지를 보았다.

“어머니는?”

“아직 못 찾았어.”

“오늘도?”

그는 밑에 가라앉은 낟알을 천천히 떠올렸다. 큰아이가 동생의 옷깃을 여미자 작은아이는 그 손을 밀어내고 밖을 보았다.

 

김서방은 아이들 그릇부터 채웠다. 큰아이가 동생의 것을 받아 식히는 동안 제 그릇도 놓았다. 무진에게 마지막 몫을 덜어준 뒤에야 숟가락을 들었다.

방 한쪽에는 아내의 이불이 개어져 있었다. 문턱 옆 물그릇은 그대로였다.

그날 밤 지왈길도 돌아가지 않았다. 짚신을 벗자 벌어진 밑창 사이로 흙이 떨어졌다. 김서방이 새끼줄을 가져다놓았고 그는 그것으로 신코를 묶었다.

동백은 잠든 큰아이의 바지를 벗겨 아궁이 곁에 말렸다. 작은아이가 몸을 뒤척이자 김서방이 손을 뻗어 이불을 덮어주었다.

한참 뒤 그가 일어나 방문을 당겼다.

작은아이가 눈을 떴다.

“어머니 못 들어와.”

김서방은 문을 잡은 채 서 있었다. 지왈길이 묶던 새끼줄을 내려놓았고 무진도 아궁이에 넣으려던 장작을 무릎 위에 두었다. 바람이 문틈으로 들어와 등잔불을 기울였다.

마당에는 녹다 남은 눈이 있었고 담 끝에서는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김서방은 문을 조금 더 당겨 바람만 막았다. 빗장은 문살 옆에 내려놓고 아이 곁으로 돌아왔다.

작은아이가 눈을 감은 뒤에도 그는 눕지 않았다.

아궁이 곁에 걸린 바지를 보다가 동백에게 들은 노래를 떠올렸다. 아내는 아이의 해진 무릎을 기우며 봄이 오면 마실을 가겠다고 불렀다 했다. 그는 그날 집에 없었다. 저녁에 돌아와 아이가 바지를 입고 있는 것은 보았으나 누가 기웠는지 묻지 않았다.

 

김서방은 이불 위에 두 손을 놓고 아내와 함께 외우던 주문을 시작했다.

“지기금지 원위대강(至氣今至 願爲大降)…….”

목소리가 중간에서 갈라졌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고 다음 구절을 이었다.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아내는 그가 한 구절을 마칠 때마다 왼손으로 이불을 두드리며 늦게 따라왔다. 말이 엉키면 그를 보았고, 그는 처음부터 다시 외워주었다.

“지기금지…….”

무진은 아궁이에 장작을 넣었다. 불이 붙자 걸어놓은 바지의 젖은 무릎 위로 비뚤어진 바늘땀이 드러났다.

김서방의 목소리가 다시 멎었다.

이번에도 그는 다음 구절로 넘어가지 않고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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