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당신을 잊는 동안

― 사리아에서 포르토마린까지
첫날 밤에는 남의 방문에 열쇠를 꽂았다.
저녁을 먹고 올라와 문에 적힌 번호를 확인했으나 열쇠가 돌아가지 않았다. 다시 돌리는데 안에서 사람이 문을 열었다. 문틈으로 비누 냄새와 더운 공기가 밀려 나왔다. 나는 미안하다고 하고 물러났다. 그 사람은 열쇠의 표찰을 보더니 아래층을 가리켰다. 숫자는 맞았으나 층을 잘못 올라왔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표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방에 들어가 지은에게 도착했다고 보냈다. ‘아까 방에 들어갔다며?’ 답이 왔다. 저녁을 먹고 올라오다가 한 층 더 올라갔다고 했다. ‘그럴 수 있지. 누구나.’ 위로인지 그냥 사실인지 나는 몰랐다. 사진으로 찍어둔 문과 눈앞의 문을 맞춰보았다. 같은 문이었다.
지은은 항공편을 바꿨으나 바로 출발할 수는 없다고 했다.
자기가 갈 때까지 매일 연락하고, 예약한 숙소를 임의로 바꾸지 말자고 했다. 나는 내일부터 먼저 걷겠다고 했다. 예전에 걸었던 길을 짧게 나누어 갈 것이라고 했다. 딸은 한동안 답이 없다가 일정표의 마을 이름에 동그라미를 쳐서 돌려보냈다. 사리아 이후의 숙소는 내 출발에 맞춰 앞당기겠다고 했다.
‘예약 바꾸면 다시 보낼게. 따로 잡지 마.’
나는 알았다고 답했다.
책상에 현금 봉투와 여권, 순례자 여권, 약을 펼쳤다. 한국 여권을 가방 안주머니에 넣고 그 자리를 적었다. 방 번호와 약 먹을 시간도 종이에 옮겨 옷의 안주머니에 넣었다. 내 손으로 한 일이 나중의 나에게도 알려져야 했다.
지수에게 전화했다. 딸은 바로 받았다. 좋은 사람은 언제 데리고 올 것이냐고 묻자 아빠가 돌아오면 보자고 했다.
“밥 먹기로 했지.”
“응.”
나는 결혼 이야기를 꺼내려다 딸의 나이를 물었다. 지수는 웃으려다가 멈췄다. 그러고는 제 나이를 말해주었다. 언니 나이도 덧붙였다. 나는 받아 적으며 원고에 쓰려고 묻는다고 했다. 딸은 알겠다고 했다.
전화기 너머에서 서랍 닫는 소리가 났다. 화암 집에서 내 옷을 찾고 있다고 했다. 언니가 가져갈 것이라고 했다. 뒤늦게 한국 시간을 보았다. 새벽 두 시였다.
“아직 안 잤어?”
“이것만 챙기고 자려고. 오늘은 여기서 자.”
“내일 하면 되잖아.”
“언니 오기 전에 보내야지.”
서랍을 다시 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침대에 꺼내놓은 옷을 보았다. 외투와 셔츠 사이에 양말 한 짝이 끼어 있었다.
지수는 아침에 화암 집에서 화상으로 회의에 들어간다고 했다. 새로 맡은 팀에서 처음 보고하는 날이라 전화를 못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회사가 바뀌었느냐고 물었다. 딸은 회사는 같고 하는 일이 달라졌다고 했다.
“점심때 연락할게. 아빠 자고 있으면 메시지 남길게.”
나는 잘하라고 했다. 무슨 일을 하는지 물으려는데 통화가 끝났다. 지수의 이름 아래 메모를 열었다. ‘지수, 내일 보고’라고 적고 한국 시간이라고 덧붙였다.
숙소에서 받은 안내지를 펼쳤다.
사리아에서 산티아고까지 백여 킬로미터가 남아 있었다. 사리아는 레온의 왕 알폰소 9세가 십이 세기 말에 세운 마을이었다. 왕은 1230년 산티아고로 순례하던 도중 이곳에서 죽었다.
안내지의 짧은 문장을 다시 읽었다. 그가 끝내 걷지 못한 길로 내일 아침 사람들이 나갈 것이었다. 마을의 막달레나 수도원도 순례자를 재우고 돌보는 집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창밖 처마 밑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새 배낭을 멘 남자가 신발의 상표를 떼어 주머니에 넣었다. 정희와 이곳에 왔을 때도 출발 전 하천길을 걸으며 신발을 길들였다. 아내는 새 신발을 신은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처음 신은 신발이 더 아플 수도 있다고 하자 제 신발을 내려다보며 그럼 이게 낫겠다고 했다. 말끝의 억양은 떠오르지 않았다. 숙소 문 앞에 나란히 놓인 두 켤레와, 신발 뒤축을 손가락으로 펴던 모습만 남아 있었다.
복도에서 문 닫는 소리가 났다. 맞은편 침대의 이불은 펴진 그대로였고 베개 가운데에는 아무 자국도 없었다. 휴대전화를 충전기에 꽂고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도 처마의 물소리는 같은 자리를 두드렸다.
아침에는 비가 그쳤다.
빵집 환기구에서 나온 더운 김이 골목 공기에 풀렸다. 문을 여니 구운 밀가루 냄새가 얼굴에 닿았다. 주인이 긴 빵을 썰었다. 칼이 껍질을 지날 때마다 마른 소리가 났고 부스러기가 도마 끝으로 모였다.
정희가 진열대를 짚던 손을 떠올리며 같은 것을 고르려 했으나 빵은 다 달라 보였다.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자 주인이 작은 빵 두 개를 봉지에 담았다. 받아 드니 종이가 아직 따뜻했다. 하나는 가게를 나서며 베어 물었다. 껍질이 부서져 외투 앞섶에 떨어졌다. 몇 번 씹지도 않고 삼키자 목이 메어 물을 마셨다.
사리아를 벗어나는 길에는 성당과 오래된 집들이 이어졌다. 문을 연 카페에서 잔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뒤꿈치가 닳은 신발과 흙 한 점 묻지 않은 신발이 같은 화살표 앞에서 나란해졌다.
아스페라 다리를 건넜다. 오래전부터 순례자들이 지나던 돌다리는 물 위로 낮게 등을 굽히고 있었다. 아래에서는 불어난 물이 교각에 걸려 갈라졌다가 다시 합쳐졌다.
다리 건너 오르막으로 들어서자 차 소리가 멀어졌다. 참나무 가지에 머물던 빗물이 바람에 쏟아졌다. 돌담 밑에는 낙엽이 검게 눌어붙어 있었고, 발에 밟혀 뒤집힐 때마다 젖은 흙냄새가 올라왔다.
정희는 이런 길에서 자주 멈췄다. 처음에는 숨이 차서 그러는 줄 알았다. 돌아보면 아내는 담장 틈의 꽃이나 나뭇가지에 걸린 양털을 보고 있었다. 아내가 가리킨 것들은 사진에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마을 이름과 걸은 거리는 적어두었으나 정희가 무엇 때문에 나를 불렀는지는 적지 않았다.
바르바델로로 가는 오르막에서 숨이 찼다. 길가로 비켜서자 뒤에서 온 부부가 지나갔다. 여자의 배낭 옆에 회색 스웨터가 말려 있었다. 소매 끝이 걸음에 맞춰 흔들렸다. 정희가 입던 내 스웨터도 젖은 날이면 저렇게 매달려 있었다. 소매가 흙에 끌리면 아내는 배낭을 멘 채 등을 돌려 내게 묶어달라고 했다.
바르바델로 성당은 집들 사이에서 낮게 서 있었다. 문 둘레에는 새와 짐승과 사람의 형상이 뒤엉켜 있었다. 얼굴은 닳았고 벌어진 입과 굽은 몸통이 그늘 속에 남아 있었다. 12세기 후반의 로마네스크 성당이었고, 곁에는 길에서 병들거나 날이 저문 사람들을 들이던 구호원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했다. 문 위에서는 두 팔을 벌린 형상이 그들을 맞고 있었다.
십오 년 전에도 나는 문 둘레의 조각을 먼저 찍었다. 수첩에 끼워둔 사진과 벽을 맞춰보았다. 돌 얼굴들이 비슷했다. 사진에는 정희가 없었다. 아내는 그때 성당 옆 탁자 앞에서 도장을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길가로 나가 돌담에 기대서 있었다.
성당 옆 탁자에는 이번에도 도장 찍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새 여권을 펴 놓고 기다렸다. 한참 뒤 모자를 쓴 남자가 열쇠 꾸러미를 들고 나타났다.
“오래 기다렸어요?”
그가 서툰 영어로 물었다.
“아니요. 아내가 더 오래 기다렸습니다.”
남자는 무슨 말인지 몰라 웃으며 도장을 찍었다. 나는 볼펜을 꺼내 도장 아래에 마을 이름을 적고, 한 줄을 더 적었다. 정희가 탁자 앞에서 도장을 기다림.
길 위에서 처음 채운 칸이었다. 다 쓰고 보니 그 줄에 나는 없었다. 돌담에 기대 서 있던 사람도 적을까 하다가 두었다. 이 칸은 정희가 한 일을 적는 자리였다.
문 옆 돌턱에 앉아 남은 빵을 꺼냈다. 입으로 가져가다가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정희는 늘 껍질 한쪽을 조금 뜯고, 그 자리에서 속을 한 점씩 떼어 먹었다. 나는 빵 끝을 엄지와 검지로 잡았다. 껍질이 갈라지며 희고 부드러운 속이 드러났다. 조금 떼어 입에 넣었다. 정희는 이렇게 먹다가도 내가 먼저 일어서면 남은 것을 봉지에 넣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끝까지 먹었다. 지나가던 여자가 성당을 향해 성호를 긋고 걸음을 이었다. 무릎의 부스러기를 털고 빈 봉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바르바델로를 지나 작은 갈림길에 이르렀을 때 앞사람들의 가방이 한쪽으로 움직였다. 나는 따라갔다. 얼마 뒤 노란 화살표가 보이지 않았다. 앞서 걷던 사람들은 밭 옆 건물로 들어갔다. 열린 문 안에서 쇠붙이를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지도를 열었으나 내 위치를 나타내는 점이 늦게 움직였다. 지나온 길로 돌아서는데 조금 전에 본 담이 낯설었다. 돌 틈의 이끼도 철문 아래 고인 물도 어느 쪽에서 보았는지 알 수 없었다. 문 앞에 있던 남자에게 산티아고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온 쪽을 가리키고 엄지와 검지를 조금 벌렸다. 고맙다고 말하고 돌아왔다.
갈림길의 화살표는 눈높이보다 낮은 돌에 있었다. 나는 그 옆에 서서 물을 마셨다. 공책을 꺼내 정희의 이름을 쓰려다 덮었다. 내가 잘못 들어간 길이 정희가 헤맨 밤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다만 돌아와도 길이 낯선 것은 지금 내 일이었다. 딸에게 조금 돌아왔다고 보냈다. 지은은 지금 서 있는 곳을 사진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사진을 보내고 답을 기다렸다가 다시 걸었다.
숲을 벗어나자 목초지의 풀들이 한쪽으로 누웠다 일어났다. 구름이 벌어진 자리로 볕이 내려왔다. 집 앞에서는 장작 타는 냄새가 났고 담장 안에서 개가 짖었다.
오르막 끝에서 배낭을 내려놓았다. 정희는 쉬고 나서 일어설 때 무릎을 짚었다. 내가 배낭을 들어주면 한쪽 팔부터 끼우고 몸을 돌렸다. 어깨끈이 꼬이면 손가락을 넣어 펴주었다. 아내는 내 가슴끈을 잡아당겨 잠갔다.
“이것도 하고 가.”
혼자서는 잘 잠그지 않던 끈이었다. 나는 배낭을 다시 멘 뒤 가슴 앞의 버클을 내려다보았다. 두 조각이 양옆으로 늘어져 있었다. 그것을 맞춰 끼웠다.
버클 위에 손바닥을 얹고 고개를 숙였다. 끈을 잠그고 나면 정희는 다 됐다는 듯 손바닥으로 내 가슴을 두 번 가볍게 두드렸고, 나는 그것이 이제 가자는 신호인 줄로만 알고 아내보다 먼저 걸음을 떼곤 했는데, 열이틀 동안 아침마다 그 손이 내 가슴 위에 잠깐 머물다 갔다는 것을 나는 이 돌담 앞에서, 내가 잠근 버클 위에 내 손을 얹고서야 알았다. 눈물이 턱을 지나 옷깃 안으로 떨어졌다. 한동안 손을 떼지 못했다. 나는 지팡이를 고쳐 잡고 다시 걸었다.
페레이로스에 닿아 숙소 직원에게 예약을 보여주었다. 방이 준비될 때까지 마당에 앉아 기다렸다. 배낭을 벗은 등이 서늘했다. 젖은 셔츠가 식으면서 어깨에 달라붙었다.
휴대전화를 열자 잠든 사이에 온 지수의 메시지가 보였다. 보고는 끝났고 생각보다 괜찮았다고 했다. 나는 잘했다고 썼다가 무엇을 보고했는지 묻는 말을 덧붙였다. 딸은 새로 맡은 일을 설명해주었다. 모르는 말이 있어 다시 물었다. 지수는 조금 쉬운 말로 바꾸어 보내주었다. 나는 그 답을 읽고 내 옷은 천천히 챙겨도 된다고 썼다.
예전 빨랫줄이 있던 자리는 찾지 못했다. 다른 쪽에 철제 건조대가 있었다.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양말을 빨아 널었다. 지은에게 도착했다는 말을 보내면서 건조대 사진도 보냈다. 딸은 잘 말리라고 했다. 나는 엄마가 여기서 빨래했다고 썼다. 잠시 뒤 돌아온 답에는 엄마는 어디서든 빨래했지, 라고 적혀 있었다. 웃는 표시가 붙어 있어 나도 웃었다.
공책에 ‘정희 빨래’라고 쓰려다 지웠다.
‘첫날, 내가 양말을 빨았다.’
지은이 바꿔놓은 숙소 예약들이 도착했다. 나는 화면을 내려 날짜를 확인했다. 포르토마린의 예약도 다음 날로 옮겨져 있었다. 알았다고 답하고 공책을 펼쳤는데, 잠시 뒤에는 내가 따로 찾아두었던 숙소의 예약 화면을 보고 있었다. 날짜를 넣고 이름을 적었다. 확인 문자가 온 뒤에는 그 화면을 저장했다. 딸이 보낸 예약과 나란히 열어보지는 않았다.
해 질 무렵 낮은 볕이 건조대의 쇠막대를 비췄다. 부엌에서 수프 냄새가 흘러나왔다. 식당에서는 혼자 앉았다. 맞은편 사람이 물병을 건네주었다. 잔을 채우고 돌려주자 그가 내 배낭의 가리비 껍데기를 가리켰다가 제 것을 보여주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으로 돌아와 원고를 펼쳤다. 정희가 날짜를 말하지 않던 부분이었다. 그 앞에 오늘 숲길에서 운 일을 넣었다가 지웠다.
빈 종이를 따로 꺼냈다. 정희의 이름을 쓰고 한동안 펜을 움직이지 못했다. 복도에서는 샤워실을 오가는 발소리가 났고 창밖 어딘가에서 접시가 깨졌다. 소란이 가라앉은 뒤 몇 줄을 썼다. 방 번호와 약 먹을 시간을 적은 종이 옆에 그 종이를 접어 넣었다. 안주머니가 조금 두꺼워졌다. 사흘 뒤면 지은이 엽서를 가지고 온다. 아내가 아르수아에서 무엇을 썼는지 모르는 채로, 나는 아내에게 쓴 종이를 먼저 품고 있었다. 불을 끄고 누워서도 마지막 행이 마음에 걸렸으나 다시 꺼내지는 않았다.
숙소에서 아침으로 내준 빵을 종이봉지에 싸서 배낭 바깥 주머니에 넣었다.
안개가 담장 높이까지 내려와 있었다. 집들은 지붕부터 지워져 있었고 열린 외양간에서 가축의 더운 입김이 흘러나왔다. 미라요스의 산타마리아 성당 앞을 지났다. 낮은 지붕 위로 종을 매단 벽이 솟아 있었다. 문 양옆에는 사자 머리를 새긴 돌이 문 위의 무게를 받치고 있었다.
이 성당도 처음부터 여기 서 있지는 않았다. 18세기에 가까운 마을에서 돌을 옮겨 다시 세웠고, 옛 로마네스크 양식의 문이 남았다고 했다. 번호를 매겨 옮긴 돌이 포르토마린의 성당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묘지의 꽃들이 젖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는 문 앞에 잠깐 섰다가 길을 이었다.
한동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안개 속에서 소방울이 울렸다. 소의 몸은 보이지 않고 소리만 풀밭을 옮겨 다녔다. 봉지 안쪽에 습기가 차 껍질이 눅눅했다. 입안에 오래 두었다가 물과 함께 삼켰다.
내리막으로 접어들 무렵 바람이 바뀌었다. 안개가 나무 사이로 풀려나가고 숲 아래에서 넓은 물이 드러났다. 미뇨강이었다. 나무 사이로 보이던 물은 몇 걸음 뒤에는 사라지고 길이 꺾이면 더 넓어졌다. 구름 밑에서는 납빛이었고 볕이 닿는 자리만 희게 번들거렸다. 건너편 언덕에 포르토마린의 흰 건물들이 모여 있었다.
여기서 보이는 넓은 물은 벨레사르 댐이 들어선 뒤 생긴 저수지의 일부였다. 미뇨강을 사이에 두고 있던 옛 마을은 1960년대 초 물에 잠겼고 사람들은 언덕 위로 옮겨갔다. 물이 낮아지면 옛집의 기초와 다리의 흔적이 드러난다고 했다. 오늘은 수면에 바람결만 보였다. 나는 어느 곳이 옛길이었는지 짐작하지 못한 채 사진을 열었다.
사진 속 정희가 난간을 짚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려 한쪽 눈만 보였다. 같은 방향으로 서보았으나 건물의 위치가 맞지 않았다. 다리를 건넌 뒤 돌아보고 찍은 것인지, 사진을 거꾸로 기억하는 것인지 몰랐다.
사진을 찍던 일은 조금 떠올랐다. 바람 때문에 아내가 자꾸 고개를 숙였고 나는 얼굴 좀 들라고 했다. 정희는 머리카락을 귀 뒤에 넘겼다. 셔터를 누르자 다시 얼굴 위로 흩어졌다.
“됐어?”
아내가 물었고 나는 한 장 더 찍자고 했다. 남아 있는 사진은 두 장이었다. 두 장 모두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렸다. 정희의 손가락이 난간을 단단히 잡고 있었다.
다리 입구에서 휴대전화의 마을 안내를 읽었다. 포르토마린은 강을 건너는 사람들 곁에서 자란 마을이었다. 중세의 순례 안내서에는 ‘미뇨강의 다리’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산티아고로 가려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강을 건넜고, 양쪽 강변에는 그들을 재우고 먹이는 집들이 들어섰다. 1112년 우라카 여왕은 그 다리를 허물게 했다. 남편인 아라곤의 왕 알폰소 1세의 군대가 건너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부부가 서로 군대를 겨누던 때였다. 끊긴 다리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남편의 땅이었고 한쪽은 아내의 땅이었다.
화면의 글을 읽다가 강 건너를 보았다. 바람이 수면을 밀고 있었다. 다리를 허물던 날에는 양쪽 강변에 사람들이 서 있었을 것이다. 군대가 물러간 뒤에도 강을 건너야 하는 사람들은 남았을 것이다.
여덟 해 뒤 여왕은 다리를 다시 놓으라고 명했다. 일을 맡은 사람은 ‘순례자 페드로’라고 불렸다. 그가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다리를 세웠는지는 짧은 안내에 나와 있지 않았다. 다만 1126년에는 순례자를 돌보는 구호원도 지었다고 했다. 건물 앞에는 라틴어로 ‘하느님의 집’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강을 건넌 사람들이 그 집에서 젖은 옷을 말리고 부은 발을 쉬었을 것이다. 훗날 성요한 기사단이 구호원을 맡아 순례자를 돌보고 다리와 길을 지켰다. 끊긴 다리를 다시 놓은 사람의 이름이 순례자였다는 것만 오래 남았다.
다리에 들어서자 바람을 막아줄 것이 없었다. 물비린내가 올라왔고 옷자락이 몸에서 떨어졌다 붙었다. 나는 지퍼를 목까지 올렸다. 뒤에서 자전거 종이 울려 난간 쪽으로 붙었다. 자전거가 지나간 뒤에도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건너편까지의 거리가 갑자기 멀게 느껴졌다.
정희와 건널 때 나는 몇 걸음 앞에 있었다. 아내가 부르는 소리를 바람 때문에 한 번에 듣지 못했다. 돌아보니 정희가 손을 내밀고 있었다. 되돌아가 그 손을 잡았다. 아내의 손은 차가웠고 손바닥에는 땀이 배어 있었다. 우리는 다리를 다 건널 때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그동안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지팡이를 한 손으로 옮겨 잡았다. 빈손을 주머니에 넣었다가 다시 꺼냈다. 난간을 짚고 몇 걸음 걸었다. 손바닥 밑으로 차가운 금속이 이어졌다.
다리 끝에서는 마을로 올라가는 계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몇 단을 오른 뒤 옆으로 비켜 앉았다. 허벅지가 가늘게 떨렸다. 물을 마시고 고개를 들었다. 건너온 다리가 길게 누워 있었다. 휴대전화를 열어 정희의 사진을 다시 보았다. 아내는 아직 난간을 잡고 있었다. 나는 화면을 끄고 물병 뚜껑을 닫았다.
계단 꼭대기에는 작은 경당이 있었다. 문은 닫혀 있었다. 눈의 성모 경당이라고 했다. 이 마을 사람들은 그 성모가 물에 빠져 죽는 것을 막아 준다고 믿는다고, 숙소 주인이 나중에 말해 주었다. 마을 하나를 통째로 물에 내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물을 거두어 달라고 빌지 않았다. 물은 그대로 두고, 그 안에서 사람만 건져 달라고 빌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내가 되풀이한 말은 낫게 해 달라는 것 하나였다. 병은 거두어지지 않았다. 병은 그대로 두고 그 안에서 아내를 건져 달라고 비는 말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지 못했다.
계단을 올라서자 길 양쪽으로 숙소와 식당이 이어졌다. 문 앞에 배낭을 내려놓은 사람들이 신발 끈을 풀고 있었다. 나는 지은이 보내준 주소를 확인하며 흰 건물 사이로 들어갔다. 포르토마린의 숙소에 닿았을 때는 정오를 조금 넘겼다.
주인은 내 여권을 보고 한참 컴퓨터를 눌렀다. 같은 날 내 이름으로 된 예약이 둘이었다. 지은이 바꿔놓은 방과 내가 따로 잡은 방이었다. 따로 잡은 기억은 있었다. 왜 잡았는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국은 저녁이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그릇 내려놓는 소리와 수돗물 소리가 났다. 지은은 먼저 직원과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전화기를 건네고 의자에 앉았다. 신발에 묻은 흙이 바닥에 조금 떨어졌다. 내 일인데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정리되고 있었다. 직원은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화면의 날짜를 짚었다.
나는 어느 쪽을 취소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지은이 설명해주었으나 예약 화면 둘을 번갈아 보고도 곧바로 구분하지 못했다. 방 하나면 된다고 말했다. 전화기를 돌려받자 지은은 조금 쉬라고 했다.
나는 미안하다고 했다. 딸은 그 말을 듣고 잠깐 조용했다. 또 미안하다고 하려다 고맙다고 바꾸었다. 지은은 도착했으니 됐다고 했다. 방에 올라가 예약 화면을 지우려다 취소한 쪽에 표시만 해두었다. 어느 것을 지웠는지 나중에 모를 것 같았다.
오후에 잠깐 눈을 붙이고 광장으로 나갔다. 햇빛이 흰 건물의 벽을 비췄다. 회랑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커피를 마셨고 식당 문이 열릴 때마다 기름에 익힌 마늘 냄새가 흘러나왔다.
그 위에 산니콜라스 성당이 서 있었다. 성당이라기보다 작은 성에 가까웠다. 높은 벽 위로 톱니 모양의 돌이 둘렸고 정면의 커다란 장미창은 어두웠다. 둥근 문 둘레에는 조각들이 빽빽했다. 가운데의 그리스도를 둘러싼 인물들은 악기를 들거나 고개를 기울이고 있었다.
벽을 따라 걷다가 손이 닿는 높이의 돌에서 희미한 숫자를 찾았다. 마을이 물에 잠기기 전 돌마다 번호를 붙여 이 언덕으로 옮겨 왔다는 성당이었다. 숫자 하나를 가까이 보았다. 가장자리가 희미해져 있었다. 그 옆 돌에도 흔적이 있었으나 읽을 수 없었다.
순례자를 지키라고 기사들이 세운 성당이었다. 팔백 년 뒤 그 성당을 물에서 건져 낸 것은 마을 사람들이었다. 지키던 것이 지켜지는 쪽으로 바뀌는 데 돌에는 팔백 년이 걸렸고, 사람에게는 아홉 해가 걸리기도 했다.
벽을 한 바퀴 더 돌았다. 숫자처럼 보이던 것 가운데 몇은 숫자가 아니었다. 화살 같은 것, 열쇠 같은 것, 두 선이 엇갈린 것. 석공들이 제가 깎은 돌에 새겨 둔 표식이라고 했다. 품삯을 셈하려고, 혹은 이 돌은 내가 깎았다고 남기려고. 팔백 년 전의 손이 새긴 표식과 예순 해 전의 손이 매긴 번호가 한 벽에 섞여 있었다. 하나는 이 돌을 누가 만들었는지를 말했고, 하나는 이 돌이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말했다. 순례자 몇이 벽 앞에서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세고 있었다. 그들도 둘을 가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화살 모양 아래에 손을 대 보았다. 그것이 번호인지 이름인지 나도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누군가 잊지 않으려고 새긴 것이었다.
강 건너의 산페드로 성당은 몸체를 물에 두고 정면만 떼어 와 새 벽에 붙였다고 했다. 뒤쪽의 벽과 기둥과 사람들이 무릎 꿇던 자리는 물속에 두고, 얼굴만 들고 언덕을 올라온 성당이었다. 내 사진 속 정희가 그랬다. 나는 아내의 얼굴만 크게 찍었고, 그 둘레의 길과 하늘과 아내가 보고 있던 것은 잘라냈다.
성당 계단 아래에서는 한 남자가 순례자 몇 사람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일흔은 넘어 보였다. 목에 건 끈 끝에 마을 문화관광해설사라고 적힌 이름표가 흔들렸다. 그는 지팡이 끝으로 장미창을 가리켰다가 벽의 돌을 가리켰고, 사람들은 그 끝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내렸다. 설명이 끝나자 순례자들은 사진을 찍고 흩어졌다.
노인은 내가 벽의 숫자를 들여다보는 것을 보고 다가왔다. 영어 몇 마디와 스페인어를 섞어 천천히 말했고, 모르는 말은 손으로 보여주었다. 방금 순례자들에게 한 이야기를 내게도 짧게 해 주었다. 1만 6천 개의 돌, 1962년의 댐, 언덕으로 옮겨 온 성당.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 이야기라는 듯 막힘이 없었다.
그러다 노인은 지팡이 끝으로 숫자 하나를 가리키더니 제 가슴을 두드렸다. 그의 아버지가 이 돌을 날랐다고 했다. 소달구지에 싣고, 달구지가 오르지 못하는 비탈에서는 사람들이 밧줄을 걸어 끌어 올렸다고 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번호가 지워질까 봐 돌마다 천을 덮었다고 했다. 노인은 손바닥을 펴서 무언가를 덮는 시늉을 했다. 아기에게 이불을 덮어 주는 손 같았다. 어린 그는 아버지를 따라 언덕을 오르내리며 천을 날랐다고 했다.
왜 그렇게까지 했느냐고 물었다. 번역기 화면에 떠오른 말을 노인이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는 성당 문을 가리켰다.
노인의 말을 다 알아듣지는 못했다. 그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가며 말한 것을, 나는 번역기와 손짓 사이에서 이렇게 옮겨 적었다.
이 문으로 아기들이 들어와 세례를 받았다. 젊은 사람들이 이 문 앞에서 혼인했다. 죽은 사람들이 이 문으로 마지막으로 나갔다. 팔백 년 동안 그랬다. 기사들이 강을 지키던 때에도, 흉년이 들던 해에도, 전쟁이 지나가던 해에도 마을 사람들은 이 문으로 들어와 무릎을 꿇었다.
집은 언덕 위에 다시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할머니가 세례를 받던 돌과, 아버지가 혼인하던 날 손을 얹었던 기둥은 새로 지을 수 없었다.
노인은 잠시 성당을 올려다보다가, 이건 해설할 때는 하지 않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러고는 번역기에 대고 한참 말했다. 화면에 떠오른 문장은 서툴렀으나 나는 그것을 고치지 않고 공책에 옮겼다.
‘성당을 물에 두고 가면, 우리 할아버지들이 거기서 한 기도가 다 거짓말이 되는 것 같았다.’
노인은 조금 쉬었다가 다시 말했다.
‘하느님은 돌이 없어도 계신다. 신부님도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우리는 돌이 필요했다.’
나는 그 두 문장을 오래 보았다. 하느님은 돌이 없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팔백 년 동안 그 돌 앞에서 무릎 꿇은 사람들의 기도는, 그 돌이 물속으로 사라지면 어디에 남는가. 사람들은 자기 기도가 닿았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 기도를 받아 낸 돌뿐이었다. 무릎이 닿아 닳은 바닥과, 손이 닿아 검어진 기둥과, 촛농이 스며 얼룩진 벽뿐이었다. 그 돌을 물에 내주는 것은, 선조들이 평생 빌어 온 말을 아무 데도 닿지 않은 말로 만드는 일 같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돌을 날랐다. 하느님을 지키려고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 섰던 사람들을 지키려고. 그 사람들의 믿음이 헛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자기들 손으로 증명하려고.
사람들은 집보다 먼저 기억을 옮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 마을에서 기억은 믿음의 다른 이름이었다.
노인은 벽의 돌 하나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숫자가 지워진 돌이었다. 노인이 번역기에 대고 무어라 말하자 화면에 문장이 떠올랐다.
‘몇 개는 제자리를 못 찾았다. 그래도 성당은 섰다.’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보았다. 번호를 잃은 돌도, 제자리가 아닌 데 끼워진 돌도 벽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래도 누가 보아도 성당이었다.
번호가 지워진 돌을 제자리에 끼운 것은 그 돌의 기억이 아니었다. 옆의 돌들이었다. 위아래와 양옆의 돌들이 제 번호를 지킨 채 그 돌의 자리를 비워 두었고, 사람들은 비어 있는 자리에 그 돌을 맞추었다. 돌 하나가 제 이름을 잊어도, 둘레의 돌들이 그 자리를 기억하고 있으면 그 돌은 벽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정희의 기도문 여백에 적힌 줄이 떠올랐다. 제가 하느님을 부르는 말까지 잊으면, 그때는 하느님께서 저를 기억해 주세요. 아내는 제 번호가 지워질 날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를 둘러싼 돌들에게 자리를 부탁해 두었다. 아이들 이름을 적고, 내 이름을 적고, 맨 위에 제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이름 위에, 저를 기억해 달라고 하느님을 적었다.
1만 6천 개의 돌에 하나하나 번호를 매기던 사람들의 손을 나는 알 것 같았다. 잊지 않으려고 쓰는 손이었다. 찬장 문 안쪽에 ‘소금’이라고 꾹꾹 눌러 써 붙이던 손이었다. 그리고 내 손은 그 손들과 달랐다. 나는 평생 무언가를 적었지만, 그것은 무엇을 지키려는 기록이 아니라 무엇을 쓰려는 기록이었다. 아내는 지키려고 적었고, 나는 쓰려고 적었다.
이제 내 번호가 지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벽에 손을 얹은 채 생각했다. 내 자리를 비워 둘 돌이 누구인지. 내가 내 이름을 잊는 날, 나를 둘러싸고 서서 그 자리를 지켜 줄 사람들이 있는지. 나는 평생 그들의 자리를 지켜 준 적이 있었는지.
물이 낮아지는 해에는 잠긴 옛 마을이 다시 드러난다고 했다. 무너진 집의 기초와 옛 다리의 교각이 몇 달 동안 볕을 받다가 물이 차면 다시 잠긴다고 했다. 진단을 받던 해 밤, 침대 끝에 앉아 정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근데 툭 하고 와. 아무 때나.
정희와 왔을 때 아내는 벽에 손을 대고 있었다. 내가 옮겨 지은 성당이라고 말하자 손을 떼고 건물 위를 올려다보았다.
“이걸 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정희는 다시 벽에 손을 얹었다.
나도 벽에 손을 얹었다. 볕을 받은 돌은 미지근했고 그늘 쪽으로 손바닥을 옮기자 서늘해졌다. 정희가 만졌던 자리를 알 수 없어 손을 내렸다.
성당 문은 열려 있었다. 문이 흔들릴 때마다 서늘한 돌 냄새와 촛농 냄새가 바깥으로 조금씩 흘렀다. 나는 문턱을 넘어 들어갔다.
두꺼운 벽 안에서는 광장의 소리가 멀었다. 신발 밑창이 돌바닥을 문지르는 소리만 높이 올라갔다. 문 쪽에서 들어온 빛이 통로 중간에서 끊겼고 제대 곁에는 촛불 몇 개가 켜져 있었다. 먼저 앉아 있던 사람이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뒤쪽 의자에 앉았다. 배낭을 내려놓자 등이 서늘해졌다. 앞 의자의 나무 등받이는 사람들의 손이 닿던 곳만 검게 닳아 있었다.
정희는 성당에 들어가면 먼저 무릎을 꿇었다. 나는 곁에 앉아 기다렸다. 아내가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면 함께 나갔다. 무슨 기도를 했느냐고 물은 날도 있었고 문밖의 날씨부터 말한 날도 있었다.
앞의 무릎받침을 내려 무릎을 댔다. 두 손을 맞잡고 정희가 부르던 이름을 불렀다.
“주님.”
입 밖으로 나온 말이 낯설었다.
“제 아내를 아시지요. 정희입니다. 이 길을 저하고 걸었습니다.”
제대 쪽을 보았다. 촛불 뒤의 벽이 어두웠다.
“아이들 얼굴만은 알아보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집에 돌아가 밥을 짓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정희가 묵주를 넘기던 손이 떠올랐다. 손가락 마디에서 잠깐 걸린 구슬을 엄지로 밀어 넘겼다. 나는 그 곁에서 시계를 보기도 했다.
“그 병을 앓는 것도 모자라 그렇게 떠나야 했습니까.”
앞에 앉은 사람이 몸을 조금 움직였다.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이제 저까지 같은 병을 앓게 하십니까.”
그다음 말은 나오지 않았다. 맞잡은 손의 마디가 하얘졌다. 문밖에서 누군가 웃었고 문이 닫히면서 소리가 끊겼다. 나무 등받이의 닳은 가장자리가 눈앞에 있었다.
제대 곁에서 누군가 새 초에 불을 붙였다. 성냥 타는 냄새가 잠깐 났다. 앞에 앉았던 사람은 어느새 나가고 없었다.
“시간을 조금만 주십시오. 다 적을 때까지요.”
안주머니의 종이가 가슴에 눌렸다. 손수건에 싼 묵주도 그 곁에 있었다.
“아이들이 엄마 이야기를 꺼내면, 저도 같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무릎을 펴고 일어나 배낭을 멨다. 어깨끈 한쪽이 접혀 있어 손가락을 넣어 폈다. 제대 쪽으로 고개를 들지 않고 문으로 갔다.
문을 밀자 광장의 빛이 눈에 들어왔다. 처마 그늘에 잠깐 서 있다가 성당 앞 벤치에 앉았다.
배낭에서 그때의 검은 수첩을 꺼내 펼쳤다. 이 마을의 기록은 몇 줄 되지 않았다. 날씨와 숙소 이름 아래에 ‘정희 대답 회피’라고 적혀 있었다.
그날 나는 아내에게 날짜를 물었다. 정희가 순례자 여권의 도장을 보려 하자 보지 말고 말해보라고 했다. 아내는 여권을 덮었다. 보지 말고 대답하라고 한 내 말은 적혀 있지 않았다.
십오 년 묵은 종이 위의 ‘정희 대답 회피’에 지금의 펜으로 줄을 그었다. 잉크가 오래된 글씨 위에서 조금 번졌다. 그 아래에 적었다.
‘그날 정희가 왜 대답하지 않았는지, 나는 몰랐다.’
휴대전화에서 원고를 열었다. ‘정희는 대답을 피했다’를 지웠다. 빈자리에 방금 쓴 문장을 옮기고 저장했다.
안주머니에서 어젯밤 쓴 종이를 꺼냈다. 접힌 자리를 펴고 가운데 몇 줄을 지웠다. 남은 글을 빈 곳에 다시 옮겼다.
당신도 무서웠겠다
당신 얼굴이 떠오르지 않으면
사진을 보면 될 줄 알았다.
사진 뒤에는 당신 이름이 없다.
내가 아니까 적지 않았다.
당신도 이 길에서
내 얼굴을 오래 보았을까.
잊지 않으려고.
다리 위에서 당신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돌아가 그 손을 잡고
바람이 세다고 했다.
당신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나는 그날 몇 킬로미터를 걸었는지 적었다.
오늘은 사진 뒤에 당신 이름을 썼다.
지은이와 지수의 사진에도
이름을 적었다.
사진을 보고도 모르면
그 이름을 읽어도 모르면
언젠가 아이들이 찾아와
아빠, 우리 왔어, 하는데
나는 문을 조금만 열고
들어오려는 아이들 앞을
몸으로 막아설까.
큰아이가 동생의 팔을 잡고
한 걸음 물러서면
나는 문고리를 놓지 않은 채
누구를 찾느냐고 물을까.
시를 적은 종이를 다시 접는데 모서리가 어긋났다. 손톱으로 눌러 접은 뒤 안주머니에 넣었다. 방 번호를 적은 종이 옆으로 밀어 넣고 단추를 잠갔다. 광장 쪽에서 의자를 끄는 소리가 났다. 바람이 무릎 위의 수첩장을 넘겼다. 나는 손바닥으로 종이를 눌렀다.
전화가 울렸다. 지은에게 오늘 날짜를 먼저 말했다. 딸은 알겠다고 하고 점심은 무엇을 먹었느냐고 물었다. 배낭 바깥 주머니의 빈 빵 봉지를 보았다. 아침에 숙소에서 싸온 것을 길에서 다 먹었다.
“아침에 싸온 빵 먹었어.”
지은은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 따뜻한 것을 먹으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수첩을 덮었다. 배낭에 넣으며 빈 봉지도 접어 넣었다. 광장 건너 식당의 문이 열리자 마늘 냄새가 다시 바람을 타고 왔다. 나는 그쪽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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