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을 빼앗긴 사람들, 끝내 이어진 노래
정선 동학항쟁, 기록에 남지 않은 사람들
굶주림이 맞붙은 문턱
김서방의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물굽이와 바위 밑을 훑던 사람들의 발길도 끊겼다. 김서방은 아내의 옷가지를 치우지 못했고, 작은아이는 사립문 여는 소리만 나면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는 언제 와요?”
김서방은 아이를 데리고 들어와 문을 닫았다. 문고리를 놓기도 전에 아이가 다시 물었다.
“내일은 와요?”
방 안에서는 큰아이가 아궁이 쪽 벽에 등을 붙이고 앉아 있었다. 김서방은 작은아이를 형 곁에 앉힌 뒤 부엌으로 나갔다. 솥뚜껑을 열자 저녁에 남겨둔 보리밥이 바닥에 조금 붙어 있었다.
며칠 뒤 아침, 처마 밑에서 짚신을 기우던 김서방 앞에 박 노인이 찾아왔다.
눈 붙은 지팡이를 짚고 겨드랑이에는 빈 자루를 끼고 있었다.
“어제도 강에 갔었는가.”
김서방이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은 지팡이 끝으로 신에 붙은 눈을 털었다. 자리를 내주어도 앉지 않고 서 있던 그가 겨드랑이에서 자루를 빼냈다.
“이런 때 보채고 싶지는 않은데…… 보리를 조금 받을 수 있겠는가.”
힘이 부쳐 밭을 갈지 못하게 된 박 노인은 김서방에게 밭을 맡기고 거둔 곡식의 일부를 받았다. 가을에 받아야 할 몫 가운데 보리 두 됫박이 남아 있었다. 김서방은 겨울 품을 팔아 채워주기로 했으나 아내를 찾아다니느라 일하지 못했고, 덜어놓았던 보리마저 아이들 끼니로 들어갔다.
“며칠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나무하는 데라도 다녀오겠습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자루를 접지 않았다.
바닥에 덧댄 천은 지난해 여름 아내가 기워준 것이었다. 그 무렵 박 노인은 밭둑에서 아이들을 보아주었고, 아내는 김을 매다 돌아오는 길에 노인의 물동이를 채웠다. 작은아이가 지팡이를 말처럼 타고 달리면 노인은 넘어질까 봐 뒤를 따라다녔다.
“나도 기다려주고 싶네. 그런데 어제는 나물 줄기만 삶아 먹었어.”
김서방이 열린 부엌문을 돌아보자 노인도 벽에 기대놓은 보리 자루를 보았다. 자루 아래쪽이 조금 불룩했다.
“모레 다시 오겠네. 반 됫박이라도 마련해주게.”
노인이 돌아간 뒤 김서방은 기우던 짚신을 무릎에 올렸다. 새끼줄을 풀어 다시 꿰었으나 신코는 자꾸 한쪽으로 비뚤어졌다.
그날 저녁, 김서방은 여량의 지왈길 집을 찾아갔다.
접주인 지왈길이 도인들과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먼저 와 있던 무진이 자리를 내주자 김서방은 문가에 앉았으나 소리를 잇지 않았다.
주문이 끝나고 사람들이 무릎을 펴는데 김서방이 지왈길을 보았다.
“사람마다 한울님을 모셨다고 하지 않습니까. 내 아내에게도 계셨겠지요.”
“그렇소.”
“그럼 아내가 어디 있는지 아실 것 아닙니까. 나는 몰라도 그 안에 계신 분은 아실 것 아닙니까.”
지왈길은 무릎에 얹었던 손을 내려놓았다. 방 안의 누구도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 물음에는 나도 답할 수가 없소.”
김서방은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다가 아이들을 두고 왔다며 일어났다. 무진이 따라 나서자 지왈길도 사립문까지 나와 두 사람을 배웅했다.
다음 날 김서방은 아이들을 이웃집에 맡기고 산판에 다니는 사람을 찾아갔다.
며칠 뒤부터 나무를 나르기로 했지만 아직 하지 않은 일의 삯까지 먼저 받을 수는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마른 가지를 주워 등에 지고 오니 큰아이가 동생을 업은 채 사립문 앞에 서 있었다.
박 노인이 다시 찾아온 날에는 진눈깨비가 내렸다. 김서방은 뒤꼍에서 장작을 패다가 지팡이 소리를 듣고 도끼를 내려놓았다. 노인의 짚신에는 진흙이 붙어 있었고, 젖은 버선목은 발목에 달라붙어 있었다.
“마련했는가.”
“닷새만 기다려주십시오. 산판에 나가기로 했습니다.”
“지난번에도 기다려달라고 했네.”
노인은 처마 안으로 들어와 자루를 폈다.
“반 됫박이면 되네. 두 됫박 다 달라는 게 아니야.”
김서방은 부엌에서 보리 자루를 끌어내 주둥이를 벌렸다.
바닥 가까이 남은 보리가 한쪽으로 쏠리자 노인은 지팡이를 벽에 기대고 쪼그려 앉았다.
“이것이 다입니다. 저녁을 지으면 또 줄어듭니다.”
노인은 빈 자루를 무릎 사이에 세우고 부뚜막의 됫박을 집어 들었다.
“이만큼만 가져가겠네.”
김서방이 손목을 붙잡자 노인은 손을 빼려다가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내 아이들 먹을 것입니다.”
“내 먹을 것도 거기 있네.”
방문이 열리고 큰아이가 나왔다. 아이는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자루를 보더니 부엌으로 내려섰다. 노인이 됫박을 넣으려 하자 벌어진 주둥이를 오므렸다.
“아버지가 안 된대요.”
박 노인은 아이의 손 위에 제 손을 얹었다.
“네 아버지한테 빌리러 온 게 아니다. 할아비 것도 여기 있어.”
김서방은 아이를 뒤로 물리고 자루를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노인은 됫박을 놓친 채 자루 끝을 붙들었고, 보리가 쏠리는 소리에 작은아이까지 방문을 열었다.
“이것 가져가시면 내일은 뭘 먹입니까.”
“나는 오늘 먹을 것이 없네.”
김서방이 다시 당기자 노인의 무릎이 문턱 쪽으로 끌렸다. 노인은 몸을 일으키려다 그의 소매를 붙잡았고, 김서방은 손을 떼려 팔을 흔들었다.
“놓으십시오.”
“그러고 들어가 버리면 나는 어쩌란 말인가.”
김서방은 자루를 내려놓고 노인의 손가락을 벌리려 했다. 마른 손이 옷을 놓지 않는 동안 작은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김서방은 노인의 가슴께에 두 손을 대었다.
“그만하시란 말입니다!”
밀려난 노인의 발이 젖은 문턱을 헛디뎠다. 지팡이를 찾던 손이 벽을 긁고 내려왔으며, 옆구리가 돌 모서리에 부딪치면서 몸이 마당으로 꺾였다.
김서방은 내민 손을 거두지 못했다.
노인은 입을 벌렸으나 짧은 숨만 토해냈다. 큰아이가 아버지를 부르자 그제야 김서방이 내려가 노인의 팔을 잡았다.
“일어나십시오. 제가 부축해드릴 테니…….”
팔을 당기는 순간 신음이 터졌다. 김서방은 손을 놓고 등 뒤로 돌아앉아 몸을 받쳤다. 진흙물이 바지에 스며드는 동안 노인의 어깨가 가쁘게 오르내렸다.
“무진 아저씨를 불러라. 빨리.”
큰아이가 뛰어나간 뒤 김서방은 노인의 젖은 옷깃을 풀었다. 노인은 옆구리를 감싸고 고개를 저었다.
“거기는…… 만지지 말게.”
무진이 달려왔을 때에도 김서방은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노인을 방으로 옮기자 그는 흙이 엉긴 버선부터 벗겼다. 마을에서 아픈 사람을 보아온 이가 옆구리를 살피다가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내가 밀었습니다.”
무진이 고개를 들었으나 김서방은 노인의 발을 닦는 천만 내려다보았다.
밤이 되어도 노인은 몸을 펴지 못했다. 물 한 모금을 넘기는 데에도 숨을 골랐고, 기침이 나오려 하면 아픈 쪽을 두 손으로 감쌌다. 소식을 듣고 온 지왈길이 이웃에게 아이들을 부탁하자 김서방은 젖은 짚신을 다시 신었다.
“의원을 모셔오겠습니다.”
무진이 밤길을 걱정했으나 김서방은 문을 열었다.
“날 밝을 때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네.”
그가 의원과 돌아왔을 때 지왈길은 노인의 머리맡에 앉아 있었고, 무진은 아궁이의 불을 살리고 있었다. 김서방은 의원의 두루마기를 받아 걸고 문가에 주저앉았다. 짚신의 새끼줄이 풀려 한쪽 발등이 드러나 있었다.
의원은 노인의 옆구리와 가슴을 살폈다. 어디가 아픈지 물을 때마다 노인은 같은 자리를 가리켰다.
“얼마나 지나야 일어납니까.”
의원은 다시 노인의 숨을 살핀 뒤 다친 곳이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깊을 수 있다고 했다.
“살려주십시오. 품을 팔아서라도 갚겠습니다.”
의원이 누운 사람 곁에서 그런 말부터 할 때가 아니라며 물리자 김서방은 부엌으로 나갔다. 잠시 뒤 남은 보리를 안고 돌아와 의원 앞에 내려놓았다.
“우선 이것이라도 가져가십시오. 약을 더 써야 하면 써주십시오.”
의원은 자루를 들여다보다가 부엌에 도로 두라고 했다.
“왕진한 값은 뒤에 받겠네. 약 지을 것은 접주와 의논할 테니.”
지왈길이 자신이 의원을 따라가겠다고 하자 김서방은 자루를 내려놓았다.
주둥이를 묶으려는데 손이 떨려 매듭이 자꾸 풀렸다. 무진이 곁에 앉아 끈 한쪽을 잡아주었다.
이튿날 노인을 제집으로 옮길 때 김서방은 문짝의 머리 쪽을 들었다. 문턱을 넘기 전에 발 디딜 자리를 살피더니 요에 눕히고도 어깨 밑에 넣은 팔을 빼지 못했다.
지왈길은 도인들이 번갈아 곁을 지키도록 했고, 동백은 아이들을 데려다 먹였다. 김서방은 약을 달이고 물을 데우느라 부엌과 방을 오갔으나 노인은 그가 다가갈 때마다 눈을 감았다.
저녁 무렵 김서방이 죽그릇을 들고 앉자 노인이 물었다.
“애들은…….”
“동백네 있습니다.”
노인은 그릇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김서방은 숟가락을 든 채 기다렸으나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무진이 자리를 바꾸어 앉고 나서야 노인은 죽을 몇 숟가락 넘겼다.
둘째 날 밤, 장작을 들고 돌아온 무진은 사발을 든 채 처마 밑에 서 있는 김서방을 보았다.
“물이 식겠습니다.”
김서방은 사발을 내려다보다가 따라 들어왔다. 노인의 입가를 닦으려고 천을 대자 마른 손이 그의 손목을 붙들었다. 김서방은 움직이지 않고 기다렸다. 잠시 뒤 손이 풀렸고, 그는 젖은 입술 아래를 조심스럽게 닦았다.
그날 밤에는 더는 방을 나가지 않았다.
사흘째 밤, 노인은 죽도 넘기지 못했다. 김서방이 의원을 다시 부르러 일어나자 소매를 당겼다.
“물…….”
그는 어깨 밑으로 팔을 넣고 사발을 기울였다. 한 모금을 삼킨 노인이 고개를 돌리자 입술에 묻은 물을 닦아주었다. 소매를 붙든 손에는 힘이 거의 없었으나 김서방은 팔을 움직이지 않았다.
“지기금지 원위대강…….”
노인이 숨을 멈추면 김서방도 주문을 멈췄다. 가슴이 다시 들릴 때에야 다음 구절을 이었지만 자꾸 첫머리로 돌아갔다. 무진은 등잔에 기름을 보태고 그 곁에 앉았다.
새벽 가까이 노인이 문 쪽으로 눈을 돌렸다.
“날이…… 밝았는가.”
“아직입니다. 조금 더 주무십시오.”
“불을 좀…….”
무진이 심지를 돋우자 벽에 기대놓은 괭이와 저고리가 드러났다. 김서방은 등잔을 노인의 눈길이 닿는 곳으로 옮겼다.
“여기 있습니다. 잘 보이십니까.”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소매를 쥔 손이 미끄러져 김서방이 받아 감쌌다. 신음이 멎어 잠이 든 줄 알았으나 기다려도 다음 숨이 나오지 않았다.
무진이 어깨에 손을 얹자 김서방은 노인의 입 가까이 얼굴을 숙였다.
“잠깐만 더 계십시오. 의원을 다시 모셔오겠습니다.”
지왈길이 손목을 짚을 때에도 그는 손을 놓지 않았다. 문풍지에 새벽빛이 번지고 부엌의 물이 끓어 넘친 뒤에야 무진이 그의 손가락을 하나씩 풀었다.
지왈길은 마을 일을 맡은 사람에게 다툼과 죽음의 경위를 알렸다. 관아로 소식을 보냈다는 말을 듣자 김서방이 자신도 가겠다고 일어났다.
“사람이 올 것이오. 아이들부터 보고 오시오.”
집으로 돌아간 김서방은 작은아이의 짚신을 신겼다. 접힌 뒤축에 손가락을 넣어 펴주는데 사립문이 열리고 형리와 나졸들이 들어왔다.
“네가 노인을 밀었느냐.”
김서방은 일어나 아이들을 제 뒤로 물렸다.
“내가 밀었습니다.”
형리는 돌문턱을 살피고, 뒤따라온 무진에게 그때 누가 있었느냐고 물었다. 무진이 대답하기 전에 큰아이가 아버지 뒤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저도 있었어요.”
김서방이 아이의 어깨를 감쌌다.
“어린것입니다. 제가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형리는 아이에게 서 있던 자리를 묻고 이름과 나이를 적었다. 검험 때 다시 묻겠다는 말에 김서방이 아이를 당겨 제 뒤로 세웠다.
나졸이 포승줄을 풀자 김서방은 옷자락에 매달린 작은아이의 손을 떼어놓고 두 손을 등 뒤로 돌렸다.
“어디 가요? 저도 가요.”
김서방의 눈길이 아이의 발에 머물렀다. 조금 전 펴준 짚신 뒤축이 다시 접혀 있었다. 묶인 손이 움직이다 멎자 무진이 아이 앞에 무릎을 굽혔다.
“제가 아이들을 보겠습니다.”
김서방은 무진을 내려다보다가 큰아이를 불렀다.
“동생하고 같이 있어라. 아버지가…….”
나졸이 팔을 잡자 그는 말을 맺지 못한 채 나갔다. 작은아이가 따라 뛰려 하자 무진이 안아 들었고, 큰아이는 문설주를 붙든 채 아버지의 등이 사라질 때까지 서 있었다.
초검을 맡은 정선군수는 노인의 시신과 돌문턱을 살핀 뒤 곁을 지킨 이들을 불렀다.
무진은 자신이 도착했을 때 김서방이 노인의 등을 받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밀치는 것을 보았느냐.”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들었느냐.”
“김서방이 제 입으로 말했습니다. 내가 밀었습니다, 했습니다.”
형리는 붓을 움직이다가 다툼의 경위를 물었다.
“받을 보리를 독촉하러 온 노인을 밀어낸 것이냐.”
무진은 대답하려다 멈췄다. 보리 두 됫박이 남아 있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두 사람이 어떤 말을 주고받고 어디를 붙잡았는지는 보지 못했다.
“그때 일은 아이에게 물어주십시오. 저는 뒤에 갔습니다.”
“그러면 네가 본 데서부터 말하라.”
“노인의 등을 받치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의원을 데려왔고, 남은 보리도 내놓으려 했습니다.”
군수는 그 말도 적게 하고 형리에게 아이를 부르라고 했다.
밖에는 동백이 큰아이를 데리고 와 있었다. 무진이 처마 아래로 나오자 아이는 그의 소매를 잡았다.
“저 때문에 아버지가 잡혀갔어요?”
무진이 몸을 낮추자 아이는 자루를 붙들었던 일을 말하다가 손가락을 말아쥐었다.
“내가 놓았으면 할아버지가 안 넘어졌어요?”
“네가 밀었느냐.”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네가 밀었다고 생각하지 마라.”
“아버지가 밀었어요. 할아버지가 소매를 잡아서…… 넘어지니까 아버지가 내려갔어요. 나는 아저씨를 부르러 갔고요.”
무진은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형리가 부르자 소매를 쥔 손을 풀어주며 말했다.
“네가 본 것만 말하면 된다.”
아이는 문턱을 넘다가 돌아보았다. 무진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잠시 뒤 부엌과 됫박 이야기가 들렸고, 한동안 끊겼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아버지가 두 손으로 밀었어요.”
무진은 처마 기둥에 얹었던 손을 내렸다. 안에서는 형리가 그 전에 노인이 어디를 붙잡았느냐고 묻고 있었다.
그날 관아에서 만난 김서방은 아이들이 무엇을 먹었는지부터 물었다. 동백이 보리밥과 감자를 먹였다는 말을 듣고서야 등을 벽에 기댔으나, 큰아이가 진술한 일을 전하자 몸을 일으켰다.
“그 애까지 데려갔는가.”
“곁에서 본 일을 물었습니다.”
“내가 밀었다고 했는데…….”
김서방은 무릎 위의 손을 뒤집었다가 다시 엎었다.
“제 탓이라고 하지 않던가. 보리 자루를 잡고 있었네.”
“자루를 잡은 것과 사람을 민 것은 다르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김서방은 고개를 숙였다. 밖에서 나졸이 나오라고 재촉하자 그가 무진의 옷자락을 잡았다.
“이제 빌어도 되겠나.”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애들 곁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저 어른은 못 돌아오는데, 나는 돌아가고 싶다고 빌어도 되겠나.”
무진은 옷자락을 쥔 손 위에 제 손을 얹었다.
“아이들이 기다립니다.”
김서방의 손이 풀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무진은 밖으로 나왔다.
며칠 뒤 이웃 고을 수령이 복검을 하러 왔다. 시신을 다시 살피고 의원과 증인들의 말을 확인한 뒤에야 매장 허락이 내려왔다.
박 노인의 집에는 관을 짤 돈이 없었다. 지왈길이 도인들에게 사정을 전했으나 약값을 보태고 며칠씩 일을 놓친 이들에게 관값까지 마련할 여력은 없었다.
무진은 노인이 덮던 이불을 걷어 마당에 널고, 지왈길은 이웃에게 거적과 굵은 새끼줄을 빌려왔다.
두 사람은 노인의 몸을 닦고 평소 입던 옷을 여며주었다. 무진이 팔을 들어 소매를 끼울 때 지왈길이 어깨를 받쳤다. 옷고름을 맨 뒤 이불로 몸을 감싸고 그 위에 거적을 둘렀다.
마당에는 짐받이를 넓힌 지게가 놓여 있었다. 이웃 사내가 지게를 붙들고 앉자 무진과 지왈길이 감싼 몸을 들어 조심스럽게 얹었다. 무진은 줄이 풀리지 않도록 매듭을 고쳐 맨 뒤 사내의 어깨에 지게 끈을 걸어주었다.
사내가 일어날 때 무진은 뒤에서 짐을 받쳤다. 문을 나서자 큰아이가 노인의 지팡이를 들고 따라붙었다. 동백이 아이에게 집에 있으라고 했으나 아이는 지팡이를 놓지 않았다.
산길이 가팔라지자 사내의 숨이 거칠어졌다. 무진은 아래쪽에서 지게를 받쳐 밀었고, 지왈길은 앞서가며 발 디딜 곳의 눈을 걷었다. 중턱에서 무진이 지게를 넘겨받을 때에는 사람들이 양옆에서 거적에 감긴 몸을 붙들었다.
무진은 어깨 끈을 당겨 메고 허리를 숙였다.
등 뒤의 무게가 한쪽으로 쏠릴 때마다 발을 멈추고 중심을 잡았다. 뒤따르던 아이의 지팡이 끝이 돌에 부딪치는 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미리 파둔 구덩이 앞에 이르러 사람들이 지게를 받쳤다. 무진이 끈에서 팔을 빼고 돌아서자 지왈길이 그의 젖은 어깨를 한 번 눌렀다.
노인을 구덩이 곁에 내려놓고 묶었던 줄을 풀었다. 네 사람이 거적 가장자리를 나누어 잡고 몸을 내렸으며, 무진은 허리를 깊이 굽혀 머리 쪽이 기울지 않도록 받쳤다. 바닥에 닿은 뒤에도 접힌 거적을 펴느라 한동안 손을 빼지 못했다.
도인들이 낮게 주문을 외우고 차례로 흙을 덮었다.
큰아이는 지팡이를 쥔 채 무진의 등 뒤에 서 있었다. 봉분을 다 쌓은 뒤에야 앞으로 나와 지팡이를 세우려 했으나 얼어붙은 땅에 꽂히지 않았다. 무진이 눕혀주자 아이는 비탈로 구르지 않도록 작은 돌을 주워 받쳤다.
산에서 내려온 지왈길이 빌린 물건들을 돌려주는 동안 무진은 동백에게 관아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아이 말이 어떻게 적혔는지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큰아이가 따라가겠다고 일어섰다. 동백은 아이의 옷깃을 여며준 뒤 함께 길을 나섰다.
무진은 두 사람을 관아 밖에 기다리게 하고 대문으로 들어갔다. 담 너머에서 곤장 치는 소리가 나더니 뒤늦게 비명이 터졌다. 걸음이 멎었으나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다.
형리가 있는 방으로 가자 나졸이 앞을 막았다. 무진은 김서방의 일로 왔다고 밝히고 처마 아래에 섰다. 잠시 뒤 문이 열리자 아이의 말이 기록에 들어갔느냐고 물었다.
“그날 받아 적는 것도 보지 않았느냐.”
“아비가 밀었다는 말 앞뒤로 한 이야기도 여쭙는 것입니다.”
형리는 무진을 바라보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무진은 물러나지 않고 기다렸다. 종이를 들고 나온 형리가 아이의 진술을 읽었다. 자루를 당긴 일과 소매를 붙든 일, 두 손으로 민 뒤 마당으로 내려가 몸을 받친 일까지 읽고 종이를 내렸다.
“이렇게 받았다.”
무진은 허리를 깊이 굽혔다. 형리가 문을 닫은 뒤에야 처마 아래에서 물러났다.
관아 밖에서 기다리던 아이가 동백 곁에서 일어났다. 무진의 뒤를 살폈으나 이번에는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고 묻지 않았다.
“네가 한 말은 적혀 있더라.”
아이는 잠시 무진을 올려다보다가 먼저 손을 잡았다. 무진이 걸음을 떼자 아이도 따라 내려갔고, 동백은 두 사람 뒤에서 비탈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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