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당신을 잊는 동안
2부 두 번째 길
마을이 물에 잠기기 전, 사람들은 성당의 돌마다 번호를 붙였다. 돌을 하나씩 떼어 언덕 위로 옮기고, 번호를 따라 제자리에 다시 쌓았다.
몇몇 돌의 번호는 지금도 벽에 남아 있다. 어떤 번호는 지워져 더는 읽을 수 없다.
― 아홉 해 뒤, 화암에서 사리아로
마을이 물에 잠기기 전, 사람들은 성당을 이룬 1만 6천 개의 돌마다 번호를 붙였다. 돌을 하나씩 떼어 언덕 위로 옮기고, 번호를 따라 제자리에 다시 쌓았다.
몇몇 돌의 번호는 지금도 벽에 남아 있다. 어떤 번호는 지워져 더는 읽을 수 없다.
정희의 아홉 번째 기일을 치른 봄, 예순여덟의 나는 딸과 병원 검사실 앞에 앉아 있었다.
복도 끝 유리창 너머로 마른 가지가 보였다. 가지 끝에는 잎보다 먼저 빛이 걸려 있었다. 산비탈의 눈은 볕 드는 자리부터 녹아 검은 흙을 드러냈다.
지은은 내 외투를 무릎에 올려두고 있었다. 내가 벗어 건넸는지, 딸이 받아 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병원에 같이 가겠다는 지은에게 나는 날짜만 알려주었다. 전날에도 제 엄마 이야기를 하다 통화를 끝냈지만, 딸은 약속한 시간에 왔다. 차 안에서는 길이 막히지 않았다는 말만 했다.
“언제부터 달라졌다고 느끼셨어요?”
의사의 물음에 나는 여섯 달이라고 했다가 일 년으로 고쳤다. 편집자의 문자에는 십팔 개월 전에도 같은 파일을 두 번 보냈다고 적혀 있었다. 내 기억 속에서 그날은 수정본을 보낸 날이었다. 나는 내가 보낸 파일의 날짜만은 틀리지 않는다고 아직 믿고 있었다.
달라진 것은 문장에서 먼저였다.
원고를 쓰다가 아는 말이 오지 않으면 괄호를 쳐 두고 다음 줄로 넘어갔다. 처마 끝에 매달린 ( ). 나중에 채우면 되었다. 한 장에 괄호가 하나이던 것이 셋이 되었다. 지은과 통화하다가도 그랬다. 저번에 네가 보내 준 그거, 국 끓이는 거, 하고 말을 돌리면 딸이 먼저 이름을 대 주었다. 나는 그것을 기일이 다가와서라고, 원고가 막혀서라고 했다. 예순이 넘으면 다들 그렇다고 편집자도 웃었다.
지난가을에는 늘 다니던 개울길에서 방향을 잃었다. 마을 어귀 우체국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던 길이었다. 작은 다리 하나를 건너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 난간을 잡고 서 있었다. 한참 그렇게 있다가 물이 흐르는 쪽을 보고서야 길을 알았다. 집에 와서는 그날 안개가 짙었다고 수첩에 적었다. 그날 안개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검사자가 들려준 단어는 처음엔 어렵지 않았다. 다른 질문에 답하고 나서 다시 말하려니 하나가 나오지 않았다. 모양은 가까이 있었다. 식탁 위에 있었고, 잡으면 차가울 것 같았다. 손잡이가 굽은 자리까지 떠올랐는데 이름만 오지 않았다.
검사자는 기다려 주었다. 재촉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다는 것이 견디기 어려웠다. 나는 그 기다림이 끝나기 전에 아무 말이든 하고 싶었다.
검사가 모두 끝난 뒤, 진료실에서 의사가 말했다.
“오늘 검사만으로 확진할 수는 없습니다. 혈액검사와 MRI 결과를 더 봐야 합니다. 다만 지금까지의 소견과 생활에서 달라진 점을 함께 보면 초기 알츠하이머병이 가장 의심됩니다.”
“집사람도 그 병으로 갔습니다.”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그 사람을 보내고 나니 이제 나라는 겁니까. 그게 말이 됩니까.”
따지는 말투였다. 누구에게 따지는지는 나도 몰랐다.
의사는 잠시 나를 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아내와 나는 혈연이 아니니 옮은 병이 아니라고 했다. 이 나이에는 흔한 병이라 부부에게 따로 올 수도 있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동안 나는 지은이 받아 적는 손을 보았다. 볼펜 끝이 한 글자에서 잠깐 멈췄다가 다음 줄로 넘어갔다.
지은이 고개를 들었다.
“엄마는 쉰한 살이었어요. 그때도 흔한 병이라고 하셨어요?”
의사는 그 나이에 시작되는 것은 조금 다르게 본다고 했다. 대개는 나이가 들어 생기지만, 일찍 시작되는 경우 가운데 아주 드물게 유전자 하나가 원인인 집안이 있다고 했다. 알츠하이머 전체로 보면 백 명에 한 명이 될까 말까 한 경우라고. 그런 변이는 부모 중 한 사람에게서 자식에게 절반의 확률로 간다고 했다. 어머님이 그 경우였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고, 원하시면 유전 상담부터 받아 볼 수 있다고 했다.
지은은 수첩에 절반이라고 적었다. 그 두 글자 아래에 줄을 긋지는 않았다.
나는 내 병 이야기를 들으러 온 자리에서 딸들의 병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아니, 아직 아무도 앓지 않는 병이었다. 앓을지도 모르는 병. 의사는 지금 당장 정할 일은 아니라고 했고, 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볼펜 뚜껑을 닫는 소리가 났다.
“지금은 아내분 때보다 쓸 수 있는 방법이 많습니다. 진행을 늦추는 치료를 검토해 보시죠.”
“고칠 수는 없는 거지요.”
“네. 하지만 늦출 수는 있습니다.”
나는 소설은 쓸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다른 것은 묻지 않았다.
“지금 하시는 일을 모두 그만두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혼자 감당하지는 마세요. 석 달 뒤에 다시 보시죠. 운전은 당분간 하지 마시고요.”
의사는 그 말을 하며 지은 쪽을 한 번 보았다. 이제부터는 나보다 딸에게 하는 말이라는 듯했다. 지은은 수첩에 ‘석 달 뒤 재검, 운전은 당분간 삼갈 것’이라고 적었다. 글씨는 반듯했다. 펜을 쥔 손가락 마디만 하얬다.
차 안에서 나는 의사가 비참하게 죽는다고 했다고 말했다. 신호등 앞에서 지은은 의사가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가방에서 공책을 꺼내 펴 보니 내 글씨로 ‘치료, 혼자 있는 시간 줄이기’라고 적혀 있었다. 내 손으로 받아 적은 말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들었다고 믿는 말이 더 또렷했다. 나는 공책을 덮었다. 이제부터는 내 귀보다 딸의 수첩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다.
신호가 바뀌었는데 딸은 차를 움직이지 않았다. 핸들을 쥔 손등에 힘줄이 섰다. 지은은 앞만 보고 있었다.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물고 숨을 아주 천천히 쉬었다. 울음이 새어 나오지 않게 하는 숨이었다. 뒤에서 경적이 울렸다. 딸은 핸들을 고쳐 잡고 차를 움직였다.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딸이 우는 얼굴을 내가 보지 않는 것이 딸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희가 울 때도 나는 자주 그렇게 생각했다. 논 가장자리의 볏짚은 검게 젖어 있었고, 그 사이에 고인 물에는 흐린 하늘이 누워 있었다.
집에 돌아오자 지은은 약을 받으면 어디에 둘 거냐고 물었다. 나는 정희의 약이 놓이던 자리는 싫다고 했다. 식탁 모서리, 물컵 옆, 아침 볕이 가장 먼저 닿던 자리였다. 그 자리는 아직 정확히 기억났다. 다른 것이 다 흐려져도 그 자리만은 흐려지지 않을 것 같았다. 딸이 식탁 쪽을 가리켰다. 나는 책상에서 먹으면 된다고 했다.
이 주 뒤, 결과를 듣고 처방받은 약봉지가 원고 아래에서 나왔다. 언제 거기 넣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지은은 작은 상자를 가져왔다. 칸마다 요일이 쓰여 있었고, 칸은 다시 아침과 저녁으로 나뉘어 있었다. 정희가 쓰던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물건을 쓸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지금 쓰면 안 되는 거야?”
딸은 상자를 식탁에 놓았다. 나는 그것을 정희가 앉던 자리에서 한 칸 떨어진 곳으로 밀어 놓았다. 아내의 자리와 나란히 놓이는 것만은 아직 싫었다.
지수는 저녁에 전화를 했다. 평소보다 말을 천천히 했다. 한 마디씩 끊어서, 또박또박. 딸이 제 엄마에게 하던 말투였다. 검사 결과를 어디까지 들었느냐고 물었더니 언니에게 들었다고 했다.
“둘이 내 이야기를 마음대로 하니?”
“언니하고 이야기 안 하면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모르잖아.”
“할 일 없어.”
딸은 대답하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어디냐고 묻자 집이라고 했다. 딸이 혼자 사는 집이었다.
“그래도 오늘 저녁 먹은 건 알려줘.”
냉장고를 열었다. 반찬 통마다 날짜가 적혀 있었다. 모두 딸들의 글씨였고, 내가 붙인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내일은 내가 장을 보겠다고 하자 딸은 필요한 것을 적고 가라고 했다.
“그런 것까지 적어야 하니.”
“적으면 되잖아, 아빠.”
끝의 아빠라는 말이 젖어 있었다. 울고 있느냐고 묻자 아니라고 했다. 잠시 뒤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냉장고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자 부엌이 어두워졌다. 식탁 의자를 당겨 앉았다.
“엄마 아플 때는 내가 뭘 하면 되는지 알았어. 죽 끓이고, 씻겨주고, 약 챙기고.”
지수는 잠깐 말을 멈췄다가 이었다.
“그런데 엄마 가고 나니까, 엄마하고 같이 뭘 했는지가 잘 생각이 안 나. 같이 웃은 날도 있었을 텐데. 자꾸 엄마 씻기던 것만 생각나. 엄마 등이 얼마나 말랐는지, 그런 것만.”
내 앞에는 지은이 가져온 약 상자가 있었다. 뚜껑 하나가 덜 닫혀 있었다. 손가락으로 누르자 작은 소리가 났다. 딸이 그 소리를 들었는지 잠깐 숨을 멈췄다.
“아빠하고도 많지 않아. 둘이 찍은 사진 찾아보면 늘 누구 결혼식이거나 엄마 기일이야. 다 검은 옷 아니면 흰 옷이야.”
다음에는 함께 어디라도 가자고 말하려는데 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 좋은 사람 생겼어.”
나는 약 상자에서 손을 뗐다. 언제부터냐고 물었다. 지수는 좀 됐다고, 아빠한테 말하려고 했다고 했다. 말하려던 날마다 먼저 있던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누구냐고 묻자 나중에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엄마가 있었으면 엄마한테 먼저 말했을 텐데. 어떤 사람이냐고, 밥은 잘 먹느냐고 자꾸 물었을 거야. 같은 걸 열 번 물어도 나는 열 번 대답했을 거야.”
나는 식탁 건너편을 보았다. 정희가 앉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았다. 의자만 식탁 안으로 반듯하게 밀려 들어가 있었다.
“데리고 와. 같이 밥 먹자.”
지수가 알겠다고 했다. 그 뒤로 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끊긴 줄 알고 화면을 보았다. 통화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다시 귀에 댔을 때 딸이 나를 불렀다.
“아빠, 나 결혼하면 같이 들어가야 하잖아.”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대답이 조금 늦었다.
“그날 내가 팔 잡으면, 아빠는 내가 왜 잡는지 알아야 하잖아. 누가 아빠 팔을 잡는지는 알아야 하잖아.”
딸은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물컵을 가까이 당겼다가 놓았다. 식장 문이 열리고, 하얀 옷을 입은 여자가 내 팔에 손을 넣고, 내가 그 손을 내려다보며 누구냐고 묻는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그 장면을 문장으로 쓸 수 있었다. 쓸 수 있어서 무서웠다. 아까의 대답이 늦었다는 것을 딸도 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러겠다고 한 번 더 말했다.
“그러니까 약 먹어. 적으라면 적고, 언니하고 병원도 가.”
지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아직 같이 할 거 많잖아.”
나는 대답 대신 약 상자를 열었다. 요일 아래로 아침과 저녁이 나뉘어 있었다. 저녁 칸을 찾으며 전화기를 어깨와 귀 사이에 끼웠다. 약을 손바닥에 쏟자 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물과 함께 약을 삼키고, 비어 있는 저녁 칸을 내려다보며 먹었다고 말했다. 지수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전화를 끊고 밖으로 나갔다. 해가 산 너머로 넘어가자 길의 온기가 빠르게 식었다. 가게에서 우유를 들었다가 집에 있는지 생각나지 않아 다시 놓았다. 진열대 앞을 한 번 더 돌고 빈손으로 나왔다. 돌아온 뒤에는 물건을 잊은 것이 아니라 살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다음 날 지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어제는 말이 모질었다고 하고 싶었다. 딸은 회의 중이라며 짧게 받았고, 나는 별일 아니니 나중에 통화하자고 했다.
점심때 지수에게 전화가 왔으나 아침에 하려던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장 보러 간다고 전화한 거야?”
아니라고 대답하고도 다음 말을 찾지 못했다. 딸은 생각나면 다시 전화하라고 했다. 통화를 마친 뒤 공책을 펼쳤다. ‘지수에게 미안하다고’라는 글이 있었다. 나는 그 줄에 한동안 손가락을 얹고 있었다. 아침에는 내 말이었을 텐데, 이제는 소리 내어 읽어도 입에 붙지 않았다.
그 주말 두 딸이 함께 내려왔다. 저녁을 먹은 뒤 지은이 병원에서 받아 온 안내지를 식탁에 놓았다. 맨 위에 유전 상담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지수는 그것을 한 번 보고 뒤집었다.
“알면 뭐가 달라져? 고칠 수 있대?”
지은은 대답하지 못했다. 지수는 뒤집은 종이 위에 물컵을 놓았다. 컵 바닥의 물기가 종이에 둥글게 배었다.
“나 엄마 씻기면서 그 생각 했어. 나도 이렇게 되면 누가 나를 씻기나. 알게 되면 그날부터 매일 그 생각만 할 거야. 모르면 가끔만 하잖아.”
절반이라는 말은 한 사람에게 절반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서는 자꾸 둘 중 하나라는 말로 바뀌었다. 나는 그 셈을 끝까지 하지 않으려고 숟가락을 들었다. 국은 식어 있었다. 지은도 검사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 무렵부터 오래 써두었던 정희에 관한 소설을 다시 열었다.
젊어서 쓴 장편도 꺼내 읽었다. 그 책에는 생계를 모르는 소설가와 돈 이야기만 하는 아내가 있었다. 정희가 붉은 펜으로 한 줄을 적어놓았다.
‘여기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
자료 수첩에는 딸의 준비물값을 내가 가져다 쓴 일이 있었다. 나는 소설에서 그 앞을 빼고 아내의 잔소리만 남겼다. 문장을 고치려다 아직도 그 문장이 잘 쓰였다고 느껴 한동안 책을 덮지 못했다.
새 원고에도 그 문장을 옮겼다. 남편이 침묵하는 부분을 고치면 뒤의 대화도 바꾸어야 했다. 여백에 ‘당시 형편 보충’이라고 적고 파일을 닫았다. 며칠 뒤 다시 읽을 때에도 문장은 그대로 있었다.
푸른 수첩에 끼워둔 산티아고 사진을 꺼냈다. 정희의 작은 공책에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날들이 있었다. 마을 이름을 쓰다 만 장 옆에 빵값이 두 번 적혔고, 먹은 음식 이름 대신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오늘 빵 당신이 큰 거 줌. 치즈는 싫다.’
어느 날의 일인지 날짜가 없었다. 내 기억에는 아내가 늘 큰 쪽을 내게 주었다. 지은에게 읽어주자 엄마는 냉장고에 치즈를 숨겨놓고 먹었다고 했다. 싼 네모 치즈였다고 했다. 나는 그곳에서 먹은 것은 다른 치즈였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공책에는 이름이 없었다.
뒤쪽의 한 장에는 엽서 크기의 자국이 누렇게 남아 있었다. 무엇이 끼워져 있다가 빠졌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네모난 테두리 안쪽만 종이 빛이 조금 밝았다.
편집자는 원고가 전보다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문장이 아니라 누가 무엇을 기억하는지 따라가기 어렵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이 소설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알겠다고 하고 같은 장면의 파일이 네 개 왔다고 덧붙였다. 가장 나중 것을 읽으라고 하자 날짜가 같은 것이 둘이라고 했다.
파일을 열어 비교했다. 한쪽에는 정희가 나를 기다렸고 다른 쪽에는 내가 정희를 기다렸다고 적혀 있었다. 둘 다 있었던 일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같은 날 같은 벤치였다. 나는 더 잘 쓰인 쪽을 골랐다. 한동안 읽다가 선택한 문장을 다른 색으로 바꾸고 보내지 않았다.
그날 밤에는 불을 끄고 누워 정희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눈을 감으면 늘 먼저 오던 얼굴이었다. 이마가 오고, 웃을 때 한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던 입꼬리가 왔다. 그런데 그 둘이 한 얼굴로 맞춰지지 않았다. 이마를 붙들면 입이 흐려졌고, 입을 붙들면 눈이 어디 있었는지 몰랐다.
불을 켜고 전화기를 열었다. 사진 속 아내는 거기 있었다. 그러나 사진을 보는 동안에만 있었다. 화면을 끄면 다시 조각으로 돌아갔다. 목소리는 더 멀었다. ‘여보’라고 부르던 소리의 높이를, 나는 아무리 기다려도 다시 듣지 못했다.
상자 바닥에서 은색 녹음기를 찾은 것은 그다음 날이었다. 건전지를 갈아 끼우자 정희의 목소리가 나왔다. 멸치는 다섯 마리. 큰애는 시월. 꽃꽂이는 목요일. 아내의 목소리는 내가 기억하던 것보다 낮았다.
여보, 하는 소리는 없었다. 나는 마지막까지 들었다. 아내는 기계에 대고는 나를 부르지 않았다. 부를 일이 있으면 방문 앞까지 와서 불렀으니까.
책상 서랍에서 아내의 기도문을 꺼냈다. 뒷면의 두 줄을 읽었다.
‘제가 길을 잊으면 저 사람 있는 쪽으로 가게 해주세요.’
아내가 그 줄을 쓰던 날 길을 잊을 사람은 아내였다. 이제 길을 잊을 사람은 나였다. 그리고 내가 가야 할 쪽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내가 있던 쪽이 있을 뿐이었다. 사리아의 돌계단, 빨랫줄이 걸린 마당, 바람이 세던 다리, 광장의 젖은 돌바닥. 아내의 얼굴이 아직 남아 있는 곳이 있다면 거기일 것 같았다.
나는 그 밤에 가기로 정했다. 가는 날은 정했고, 돌아오는 날은 정하지 않았다.
주말에 지은이 내려왔다. 아침을 먹고 딸이 그릇을 개수대로 옮기는 동안 나는 식탁에 앉아 말했다.
“산티아고에 다시 가 보려고 한다.”
지은은 그릇을 내려놓지 않고 돌아보았다.
“지금?”
“재검 받기 전에.”
“운전도 하지 말라는데, 거기를 혼자?”
“혼자 간다는 말은 안 했어.”
딸은 그릇을 개수대에 넣고 물을 틀었다. 물소리 사이로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수세미가 같은 그릇의 같은 자리를 여러 번 돌았다.
“엄마하고 걸었던 길을 다시 걸어 보려고.”
지은이 물을 잠갔다.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지도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언제 정했어?”
“며칠 됐어.”
딸은 무언가를 더 물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나는 딸이 무엇을 묻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 며칠을 아빠가 다 기억하느냐고, 정한 것을 내일도 기억하느냐고. 지은은 그 말을 삼키고 행주를 집었다.
“의사 선생님한테 먼저 물어보자.”
“물어볼게.”
“나도 같이 들을 거야.”
지은은 식탁을 닦기 시작했다. 내 앞까지 와서 행주가 멈췄다. 정희의 약이 놓이던 모서리였다. 딸은 그 자리를 오래 닦았다. 아무것도 묻어 있지 않은 자리였다.
“재검 전에 다녀와.”
딸이 말했다.
“그다음은 나도 모르겠으니까.”
사리아에서 시작해 예전에 묵었던 마을 몇 곳을 거쳐 산티아고로 가는 일정을 만들었다. 짧게 걷고 쉬는 날을 넣었다. 지은은 자기도 가겠다고 했다.
“아빠가 쓰는 동안 나는 다른 데 가 있을게.”
나는 둘이서도 다녀왔던 길이라고 했다.
“그때 엄마도 있었잖아.”
여행 수첩에는 정희가 적은 출발 시간과 내가 놓고 온 바람막이, 약국 주소가 있었다. 나는 수첩을 덮었다.
“네 엄마가 미치도록 보고 싶어.”
지은은 식탁에 놓으려던 물컵을 든 채 나를 보았다.
“잊을까 봐 가는 거야. 거기 가면 아직 생각날 것 같아서.”
딸이 컵을 내려놓았다.
“같이 걸었던 길을 보고 싶어. 풀하고 강하고 들판을. 사진 밖에 뭐가 있었는지도. 엄마가 무슨 말을 했는지 생각날 수도 있잖아. 내가 안 듣고 지나간 말도.”
나는 수첩 표지를 문질렀다. 닳은 모서리의 천이 손끝에 걸렸다.
“이번에 가서 그 추억을 끝장내고 싶어.”
말하고 나서 내가 놀랐다. 평생 그런 말을 문장에 써본 적이 없었다. 입안에 남은 그 말의 모서리를 혀로 더듬었으나 다른 말로 바꾸어지지 않았다.
“뭘 끝장내.”
“돌아와서는 같은 사진만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
“보고 온다고 끝나?”
나는 사진을 한 장 뒤집었다가 다시 바로 놓았다. 지은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의자를 당겨 앉았다.
“엄마가 쓴 엽서 나한테 있어.”
나는 딸을 보았다.
“아르수아에서 쓴 거. 엄마가 아빠한테는 아직 말하지 말랬어.”
“지금은 말해도 되는 거냐.”
“거기 가서 줄게.”
나는 공책 뒤쪽의 누런 자국을 떠올렸다. 지은은 연차를 맞춰 표를 끊겠다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했다.
갈리시아에서 첫 숙소로 정한 곳은 걷기 전날 정희와 묵었던 사리아의 집이었다. 오래된 예약증에 주소가 남아 있었다. 건물 사진을 찾아보니 입구의 돌계단과 창 아래 화분이 눈에 익었다.
지은에게 그곳을 예약해달라고 했다.
“같은 방으로?”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딸은 요청을 남겨두겠다고 했다.
걷기 시작한 것은 그 뒤였다. 처음에는 집에서 마을 어귀까지만 갔다. 길 가장자리의 모래가 밑창에서 서걱거렸다. 비탈에는 마른 풀과 새풀이 함께 있었다. 바람이 지나가면 지난해의 풀잎이 먼저 소리를 냈다.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을 적고, 다음 날에는 조금 더 멀리 갔다.
배낭에 물병과 접은 외투를 넣었다. 현관에서 신발끈을 묶을 때면 정희의 뒤꿈치가 떠올랐다.
지은은 어디까지 갈 것인지 묻고 휴대전화 충전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그런 것도 간섭하느냐고 했다. 딸은 충전선을 뽑아 내 손에 쥐여주었다.
“어디 가는지만 말해줘.”
나는 마을 어귀라고 했다. 그날은 그보다 더 갔다. 돌아와서도 말하지 않았다.
몇 주가 지나자 같은 비탈에서 숨이 덜 찼다. 한 시간씩 걷던 것이 두 시간이 되었고 점심을 싸서 나갔다 오는 날도 생겼다. 걸을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날수록 검사실에서 나오지 않던 단어는 멀어지는 것 같았다.
화암면 집에서 사북 시내까지 걸어갔다 오겠다고 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사북에서 하룻밤 묵고 다음 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지은과 지도를 펴놓고 걸을 수 있는 구간과 차를 부를 만한 지점을 짚었다. 딸은 사북 시내의 숙소를 예약했다. 도착하면 방에서 전화하라고 했다.
첫날은 여섯 시에 나섰다. 집 뒤 산은 아직 검었다. 골짜기 아래로 물소리가 따라왔다. 차창으로 볼 때는 금세 지나가던 집들이 걸어서는 오래 곁에 남았다. 사북 시내에 들어왔을 때 시계는 네 시 반을 넘고 있었다. 길가에 멈춰 서자 가만히 있는 일이 걷는 것보다 힘들었다.
방에 들어가 지은에게 전화했다. 딸은 방 번호와 내일 출발할 시간을 물었다.
“여섯 시쯤.”
“아침 먹고 가. 늦어도 괜찮아.”
욕실에서 발을 씻었다. 물이 발등을 타고 내려갔다. 정희의 양말에 물을 붓던 손이 생각나 수도꼭지를 조금 줄였다. 양말도 빨았다. 두 손으로 비틀다가 손목이 아파 수건 사이에 넣고 눌렀다.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돌아오니 사북의 불빛이 켜져 있었다. 창을 조금 열자 먼 열차 소리와 함께 서늘한 공기가 들어왔다. 공책에 걸은 시간과 발의 상태를 적었다. 그 아래에 몇 줄을 더 썼다.
화암에서 사북까지
잊으려고 집을 나섰다.
개울의 얼음은 밑이 비어 있었다.
물은 그 얇은 껍질을 핥으며 흘렀다.
응달의 언 흙이 발밑에서 부서져
신발 가장자리에 붙었다.
당신은 늘 내 뒤에서 옷깃을 당겼다.
나는 목을 빼며
얼마나 더 가야 하느냐고 물었다.
굽이에서 사람이 나타나면
그 뒤가 빌 때까지 보았다.
밤에는 양말을 빨았다.
뒤꿈치를 문지르자
찬물이 손목을 타고 소매로 들었다.
당신과 마주 잡았던 셔츠는
함께 비틀어야 물이 더 나왔다.
창가에 널고 보니
당신 것까지 걸 자리가 남았다.
창틈으로 들어온 바람에
양말 끝이 벽을 스쳤다.
하루를 걸어왔는데
밤에는 당신에게 할 말이 생겼다.
오늘은 발이 많이 아팠다고.
당신도 그때 이만큼 아팠느냐고.
내일은 해가 나도
조금 더 누워 있다 가자고.
나는 공책을 덮고 창을 닫았다.
밤중에 한 번 깼다. 천장의 모양이 낯설었다. 정희가 잠든 쪽으로 손을 뻗다가 침대 가장자리를 짚었다. 손이 허공으로 내려갔다. 몸을 일으켜 불을 켰다. 바닥에 놓인 배낭을 보고서야 사북에서 자고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휴대전화에는 지수의 문자가 와 있었다.
‘잘 자. 아침에 나갈 때 연락해.’
답을 쓰다가 시간을 보았다. 새벽 두 시가 조금 지났다. 늦어서 보내지 못한 말을 화면에 남겨두고 누웠다. 간판 불빛이 커튼 아래로 들어와 바닥에 얇게 놓였다. 나는 배낭을 침대 가까이 당겨놓았다.
다음 날은 일곱 시에 출발했다. 구름이 산마루에 낮게 걸려 있었다. 계단을 내려갈 때 무릎 앞쪽이 당겼다. 난간을 잡고 한 계단씩 내려갔다.
돌아오는 길에 가는 비가 시작되었다. 길 위의 먼지가 빗방울 닿은 자리마다 검어졌다. 비탈의 어린잎은 젖자 색이 짙어졌다. 먼 산은 위쪽부터 구름에 가렸다. 나는 배낭 덮개를 씌우고 외투의 목깃을 여몄다.
지은에게 전화가 왔다. 돌아오는 길이 더 힘들 수 있으니 차를 타도 된다고 했다.
“어제 왔던 길이야.”
“몸은 어제하고 다르잖아.”
나는 물병 뚜껑을 닫았다. 물이 얼마 남지 않았다. 딸에게는 비가 곧 그칠 것 같다고 말했다.
오후에는 실제로 비가 그쳤다. 그러나 바짓단은 다리에 붙었고 신발 안쪽은 마르지 않았다.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뒤꿈치에 통증이 와서 쉬는 시간을 줄였다.
어느 굽이에서 멈춰 섰다. 앞의 길이 낯설었다.
잘못 들어섰다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나무도 있었고 배수로도 있었고 산허리를 감아 도는 길도 있었다. 다만 조금 전까지 머릿속에 놓여 있던 집의 방향이, 식탁보를 한쪽 끝에서부터 천천히 당겨 걷을 때 그 위의 컵이 먼저 기울고 접시가 미끄러지고 마지막에 소금병이 넘어지듯, 개울 쪽부터 기울고 산등성이가 기울고 끝내 집이 기울더니 어디에도 놓이지 않았다. 뒤돌아보았다. 걸어온 길도 같은 모양이었다.
휴대폰을 꺼냈다. 젖은 손가락으로 화면을 밀었다. 지은에게 전화하려다 지도부터 열었다. 작은 점이 길 위에 있었다. 그 점이 나라는 것을 확인하고도 곧바로 움직이지 못했다.
바람이 불었다. 가지가 흔들리며 잎 끝의 물을 털었다. 나는 그 소리가 멎을 때까지 서 있었다. 화면은 어두워졌다. 다시 켜자 같은 점이 같은 자리에 있었다.
표지판이 보이는 데까지 천천히 걸었다. 익숙한 지명이 나타나 소리 내어 읽었다. 두 번 읽고 나서야 물을 마셨다.
지은에게는 쉬었다 가는 중이라고 했다. 딸은 어디냐고 물었다. 나는 표지판의 글씨를 그대로 읽어주었다.
“거기 있어. 데리러 갈게.”
“갈 수 있어.”
“아빠.”
딸이 부르는 소리에 길가의 돌을 내려다보았다. 정희를 찾던 밤 하천 다리 밑에서 받은 지수의 전화가 떠올랐다. 그때도 우리는 끊지 않은 채 한참 서 있었다.
“길 안 잃었어.”
내가 먼저 말했다. 지은은 길을 잃었느냐고 묻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조금 쉬었다 가겠다고 했다. 딸은 위치를 보내달라고 했다. 화면을 몇 번 눌러 보냈다. 전송됐다는 표시를 확인한 뒤에도 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차가 보이기 전에 나는 다시 걸었다. 얼마 뒤 지은에게 전화가 왔다. 표지판 앞에 도착했는데 내가 없다고 했다. 나는 집 쪽으로 걷고 있다고 말했다.
“거기 있으라고 했잖아.”
“이제 길 알아.”
잠시 뒤 뒤에서 차가 왔다. 지은이 창문을 내리고 타라고 했다. 나는 집까지 걸어가겠다고 했다. 딸은 차를 길 가장자리로 붙였다. 내려서 내 걸음을 살피고 발은 괜찮으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지은은 집 가까운 넓은 곳에 차를 세우고 걸어오겠다고 했다. 그때까지 길을 벗어나지 말라고 했다.
다시 딸을 만났을 때에는 여섯 시가 다 되어 있었다. 비가 걷힌 산등성이 아래로 늦은 볕이 들었다. 젖은 가지 사이에서 물방울들이 잠깐씩 빛났다. 지은이 배낭을 받으려 하기에 끝까지 메고 가겠다고 했다. 딸은 손을 내리고 내 걸음에 맞춰 곁을 걸었다.
현관에 들어서자 무릎이 풀렸다. 신발끈을 풀려고 몸을 굽혔으나 손이 닿기 전에 지은이 앞에 앉았다. 딸이 끈을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나는 뒤꿈치를 들어 신발을 벗었다.
“갔다 왔잖아.”
내가 말했다. 지은은 벗겨놓은 신발을 나란히 놓았다.
“응. 왔네.”
그 뒤에 말을 보태지 않았다. 부엌에서 물을 가져왔다. 컵을 받는데 손이 떨렸다. 오래 걸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밤 지수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에게 들었다고 했다. 나는 또 둘이 내 이야기를 했느냐고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엄마 때처럼 갑자기 연락이 안 되면…….”
딸은 말을 마치지 못했다. 나는 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바깥이 어두워 유리에는 방 안만 떠 있었다.
“아빠까지 어디 갔는지 모르게 되는 건 싫어.”
나는 집에 있다고 했다. 지금 집에 앉아 있다고. 지수는 안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출발한 시간과 돌아온 시간을 적었다. 사북 숙소의 영수증을 공책에 끼웠다. 중간에 방향이 잡히지 않았던 일은 쓰지 않았다. 펜을 내려놓았다가 다시 들고 표지판에서 읽은 지명을 적었다. 글씨 옆에 작은 물음표를 붙였다.
그 뒤에는 짧게 걸었다. 지은에게 길과 돌아올 시간을 말하고 나갔다. 바람이 센 날에는 비탈 아래에서 돌아왔다. 비가 오면 현관 처마 밑에 서서 빗줄기를 보았다. 산티아고에서도 이렇게 하루를 쉬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가 잦아들기만 하면 신발부터 보았다. 다음 해에도 그 길을 알아볼 수 있을지 생각하면 방 안에 오래 앉아 있지 못했다.
지수는 가방을 싸러 왔다. 약과 연락처를 챙기고 숙소 예약을 휴대전화에 넣어주었다. 출발 이틀 전부터는 화암 집에 머물며 준비를 돕겠다고 했다. 내가 아직 혼자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간다고 하자 딸은 손을 멈췄다.
“그건 알아. 다른 것도 같이 하자는 거야.”
나는 수첩은 내가 넣겠다고 했다. 딸은 수첩을 내 쪽으로 밀었다. 지수가 식탁에서 약 봉투마다 날짜를 쓰는 동안 나는 서재 서랍을 정리했다. 통장과 보험 서류를 큰 봉투 하나에 모으고, 원고 파일이 어디 있는지 종이에 적었다. 딸들이 나중에 찾느라 애쓰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종이는 접어서 공책 뒤쪽에 끼웠다. 서랍을 닫는 손이 조심스러웠다. 무엇을 조심하는지는 나도 묻지 않았다.
공책 앞쪽에는 다른 것을 적었다. 맨 위에 ‘앞으로의 나에게’라고 쓰고 세 칸으로 나누었다.
하루. 약 두 번. 한 시간 걷기. 원고 한 장. 딸들 전화 받기.
한 달. 사리아. 정희와 묵은 방. 산니콜라스 성당. 원고 끝내기.
일 년.
그 칸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새 순례자 여권은 지은이 주문해 주었다. 나는 그것을 정희의 여권 옆에 펴 놓고 칸을 세었다. 정희의 여권에는 빈칸이 없었고, 내 옛 여권에는 나흘째가 비어 있었다. 이번에는 하루도 비우지 않기로 했다. 도장을 받으면 그 아래에 마을 이름을 적고, 그 마을에서 정희가 한 일을 한 가지 적기로 했다. 수첩도 사진도 보지 않고. 적을 수 없는 날이 오면 그 칸은 빈 채로 두기로 했다. 비운 날이 생긴다면, 그것이 어느 날인지는 알아볼 수 있게.
지수가 돌아간 뒤 서랍에서 가리비 껍데기를 꺼냈다. 끈은 누렇게 변했고 매듭이 단단해 풀리지 않았다. 가위로 자르려다 배낭 오른쪽 옆 고리에 그대로 묶었다.
같은 서랍 안쪽에 경찰이 돌려준 봉투가 있었다. 봉투를 열자 정희의 묵주가 나왔다. 알 사이의 줄이 한 군데 닳아 있었다. 나는 첫 구절을 떠올려 보려 했다. 화암 집의 첫 밤 아내가 되풀이하던 그 한 줄만 입 안에서 맴돌았다.
옛 순례자들은 병을 고치러만 걸은 것이 아니었다. 죄를 씻으려고도 걸었다. 처음 그 길을 찾아 읽던 밤, 내게 씻을 것이 있는지는 정희가 나은 다음에 생각하기로 했었다. 아내는 낫지 않았고, 이제는 미룰 데가 없었다. 나는 묵주를 손수건에 싸서 배낭 안주머니에 넣었다.
며칠 뒤 지은이 항공편과 숙소, 약 이름, 병원에서 받은 서류를 펼쳤다. 나는 먼저 가 있으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왜?”
“혼자 좀 보고 싶은 데가 있어.”
“가서 따로 다녀도 되잖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딸은 맨 앞에 놓을 종이를 꺼냈다. 내 사진 아래 이름과 병명, 두 딸의 전화번호가 있었다. 길을 찾는 데 도움이 필요하니 연락해달라는 외국어 문장도 적혀 있었다.
나는 종이를 뒤집었다.
“이걸 목에 걸고 다니라고?”
“가방에 넣어두자는 거야.”
지은은 뒤집힌 종이를 바로 놓지 않았다. 나는 그 배려에도 화가 났다. 사진 속 얼굴은 책 뒤에 실으려고 내가 골라 보낸 것이었다.
“내가 어디 가는지도 모르는 사람 같잖아.”
“누가 연락할 수 있게 하려는 거야.”
나는 정희에게도 이름과 전화번호를 지니게 했던 일을 기억했다. 아내가 떼어놓으면 다시 넣어주었다. 그때는 내가 옳았다. 지금도 딸이 틀렸다고 말할 근거는 찾지 못했다.
지은이 돌아간 뒤 사진이 붙은 종이를 서랍에 넣었다. 은행에 가서 유로화를 받고, 집에 돌아와 금액을 적었다. 숫자는 맞았다. 항공편과 열차 시간을 다시 읽었다.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종이 위에 남아 있었다.
그날 밤 항공편을 닷새 앞당겼다. 지은의 연차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먼저 도착해 며칠을 지낸 뒤 딸을 만나면 될 것 같았다. 지은이 왔을 때 내가 약도 먹고 식사도 하며 잘 지내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마드리드 공항 근처의 숙소와 다음 날 사리아로 가는 열차를 새로 예약했다. 사리아의 집에는 앞당긴 날짜부터 혼자 묵을 수 있는지 물었다. 방이 있다는 답을 받고 예전에 아내와 잤던 방을 부탁한다는 말을 번역해 보냈다. 방 배정은 도착하면 안내하겠다고 했다. 확인 문자가 오자 화면을 껐다. 어둠 속에서 바뀐 날짜를 몇 번 말했다.
아침에는 가방을 들고 나왔다. 지수가 내려오기로 한 날은 사흘 뒤였다. 나는 딸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부엌 불을 끄고 현관에 섰다가 다시 돌아갔다. 켜져 있는 것 같았으나 꺼져 있었다. 가방을 메고 나서야 휴대전화를 책상에 두었다는 것을 알았다. 방에 들어가니 원고가 열려 있었다. 저장했는지 알 수 없어 버튼을 눌렀다. 문서 끝에는 정희의 이름이 있었다. 그 아래에 무엇을 쓰려 했는지 잠깐 생각하다가 컴퓨터를 껐다.
서랍에 넣었던 종이도 꺼냈다. 내 사진이 보이지 않게 접어 배낭 안주머니의 묵주 곁에 넣었다.
택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의 산은 윤곽만 남아 있었다. 골짜기에서 올라온 안개가 밭을 지나 길 아래로 흘렀다. 차가 움직이자 집이 나무 뒤로 가려졌다.
운전기사가 여행 가느냐고 물었다. 스페인이라고 하자 순례길을 가느냐고 했다.
“아내하고 간 적이 있어요.”
“그러면 길을 잘 아시겠네요.”
나는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하지 않았다. 배낭 옆의 가리비 껍데기가 차 문에 닿을 때마다 손으로 안쪽에 밀어넣었다.
먼저 간다는 문자를 보냈다. 지은의 전화가 곧 울렸다. 딸은 돌아오라고 했다.
“비행기는 혼자 탈 수 있어.”
“그 말이 아니잖아. 같이 가기로 했잖아.”
나는 이미 왔다고 했다. 딸의 숨소리가 들렸다. 무언가를 내려놓는 소리, 다른 사람에게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하는 소리가 났다.
“지금 어디 앉아 있어?”
탑승구 번호를 읽어주었다. 딸이 사진을 보내라고 했다. 나는 앉은 자리와 항공편, 새로 예약한 숙소와 열차표를 보냈다.
“숙소에 도착 시각은 알렸어?”
나는 아직이라고 했다.
“그것부터 연락해. 나도 표 알아볼게.”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닷새 뒤에 오면 된다고 했다.
“아빠는 그 닷새를 혼자 있겠다고 바꾼 거잖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른 비행기의 승객들이 일어났다. 나도 가방끈을 잡았다가 놓았다.
“나도 엄마 보고 싶어. 아빠만 그런 거 아니야.”
나는 전화기를 귀에 더 가까이 댔다.
“그런데 나는 또 전화기만 보고 있어야 하잖아.”
전광판의 글자들이 한 줄씩 바뀌었다.
“연락할게.”
“어디로 가는지 먼저 말해줘. 간 다음에 말하지 말고.”
나는 알겠다고 했다. 딸은 끊기 전에 한 번 더 말했다.
“엽서는 내가 가져갈 거야. 닷새 뒤에.”
통화를 마치고 공책을 펼쳤다. 뒷장에는 지수의 글씨로 약 먹는 시간이 적혀 있었다. 그 아래 내가 써놓은 귀국 날짜가 있었다. 한 번 고친 숫자 위로 펜 자국이 짙었다.
긴 비행 뒤 마드리드 공항 근처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 날 역으로 갔다. 열차 안에서 점심을 먹고 창밖을 보았다.
들판에는 어린 풀이 낮게 깔려 있었다. 비가 지나간 땅이 군데군데 검었다. 마을을 지날 때마다 붉은 지붕이 나타났다가 멀어졌다. 나는 같은 모양의 들판이 나올 때마다 수첩에서 눈을 들었다. 사리아에 내렸을 때는 해가 기울어 있었다.
택시 기사는 주소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차가 멈춘 곳에는 사진에서 보았던 돌계단이 있었다. 창 아래 화분은 바뀌어 있었다. 나는 배낭을 메고 계단을 올라갔다.
안내하는 여자가 여권을 받고 예약을 확인했다. 나는 오래된 예약증을 꺼내 여백에 적어둔 방 번호를 보여주었다. 정희와 함께 묵었던 방이라고 말했다. 여자는 컴퓨터 화면을 살폈다. 그 방은 이미 다른 손님이 쓰고 있다고 했다. 내일부터라도 옮길 수 있느냐고 묻자 예약표를 다시 보고 고개를 저었다.
여자가 새 열쇠를 내밀었다. 나는 예약증의 방 번호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한 말을 번역기에 넣어 보여주었다.
‘방은 달라도 구조는 같아요.’
나는 화면을 읽고 열쇠를 받았다.
여자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배낭 옆의 가리비 껍데기가 난간에 닿았다. 손으로 감싸 안쪽으로 밀었다. 여자가 문을 열었다. 창가에 침대가 있었고 벽 쪽에 다른 침대가 놓여 있었다. 가운데 작은 탁자가 있었다. 화장실은 문 가까이에 있었다.
그날의 방도 이랬는지는 곧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사진 속 커튼은 갈색이었으나 지금은 옅은 회색이었다. 침대보에는 아무 무늬도 없었다. 여자는 난방과 아침 식사 시간을 알려주었다. 나는 종이에 적어달라고 했다. 여자가 탁자 위에 메모를 놓고 나갔다.
문이 닫힌 뒤에도 한동안 배낭을 메고 있었다. 창을 열자 골목에서 접시 부딪는 소리가 올라왔다. 젖은 돌 냄새에 저녁 짓는 냄새가 섞였다. 맞은편 창 안에서 누군가 커튼을 당겼다.
나는 창가 침대 끝에 배낭을 내려놓았다. 어깨끈이 눌렀던 자리가 늦게 아팠다. 침대보는 모서리까지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정희는 그날 방에 들어오자마자 내일 신을 양말을 꺼내 침대 끝에 펴놓고 손바닥으로 눌렀다. 나는 일정표를 보고 있었다. 첫날 거리를 줄여놓고도 아내가 걸을 수 있을지 걱정했다. 밤에 잠을 못 자면 어쩌나. 길에서 다시 사라지면 어쩌나.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 잘못이면 어쩌나.
아내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나는 내일 힘들면 바로 말하라고 했다. 정희는 알겠다고 했다. 나는 아프면서 참으면 안 된다고 한 번 더 말했다.
“알았어.”
아내는 양말을 가지런히 놓고 내 쪽을 보았다.
“당신도.”
그 말을 듣고도 나는 다음 숙소에 짐을 보낼 수 있는지 확인했다. 정희가 잠든 뒤에는 불빛이 가지 않도록 휴대전화를 가슴 쪽으로 기울였다.
이제 탁자에는 내가 먹을 약이 놓여 있었다. 나는 배낭 안주머니에서 손수건에 싼 묵주를 꺼내 약 옆에 놓았다. 무엇을 빌어야 할지는 여전히 몰랐다.
휴대전화에서 그날 사진을 열었다. 정희는 침대 끝에 앉아 있었다. 사진 한쪽에 내 무릎이 조금 나왔다. 아내는 나를 보지 않고 내가 들고 있던 전화기를 보고 있었다.
사진을 확대했다. 얼굴이 흐려졌다. 손가락을 모아 원래 크기로 돌렸다가 다시 벌렸다. 더 가까이 볼수록 아내의 얼굴은 알아보기 어려워졌다.
전화기를 내려놓았는데도 눈앞이 흐렸다.
“정희야.”
복도에서 발소리가 지나갔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숨을 길게 내쉬자 울음이 새어 나왔다. 탁자 위의 약봉지가 열린 창바람에 조금 밀렸다. 묵주의 십자가가 탁자 모서리에 닿아 작은 소리를 냈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지은이었다. 나는 목을 가다듬고 받았다. 딸은 방에 들어갔느냐고 물었다.
“응.”
“엄마하고 잤던 방이야?”
“그 방은 못 얻었어.”
손등으로 뺨을 닦았다.
“구조는 같대.”
딸은 잠시 말이 없었다.
“침대는 두 개야?”
“응.”
“가방 어디 놨어?”
“창가 침대에.”
나는 배낭을 보았다. 가리비 껍데기가 침대보 위로 기울어 있었다. 그 너머 벽 쪽 침대에는 베개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약도 꺼냈어?”
“탁자에 있어.”
“물은?”
나는 탁자 아래쪽을 보았다. 물병이 배낭 옆 주머니에 꽂혀 있었다. 꺼내 약 옆에 놓았다.
“있어.”
“방 사진 보내줘.”
사진을 찍으려고 일어났다. 화면에 두 침대가 함께 들어왔다. 창가의 내 배낭과 벽 쪽의 빈 베개가 보였다.
나는 사진을 보내고 다시 앉았다. 지은이 받았다고 했다. 통화는 끊기지 않았다. 나는 전화기를 귀에 댄 채 빈 침대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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