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미래대응기금에 지방계정 신설…농어촌 기본소득 편입은 아직 미정
이재명 대통령 “2년 한시에도 효과…영구 도입하면 효과 더 클 것”
정선 인구 10개월 만에 1878명 증가…안정적 국가 재원 마련이 관건
반도체 공장에서 거둔 성장의 과실이 소멸 위기에 놓인 농촌으로 흐를 수 있을까.
정부가 반도체 호황 등으로 늘어난 세수를 적립하는 ‘미래대응기금’에 지방계정을 설치하기로 하면서 농어촌 기본소득의 본사업화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지방을 위한 대규모 국가 재정의 그릇이 만들어지는 만큼, 2년간의 시범사업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기대다.
다만 농어촌 기본소득의 미래대응기금 편입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기획예산처는 관련 언론 보도가 나오자 지난 20일 “농어촌 기본소득과 농어촌특별세 증가분의 미래기금 포함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내부 검토 가능성까지 부인한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편입 방침을 공식화한 단계는 아니라는 의미다.
기획예산처는 지난 21일 제1차 재정운용전략협의회를 열고 교육부·행정안전부와 미래대응기금 도입 방안 및 관련 법률안을 논의했다. 정부는 입법예고와 다음 달 1일 국무회의를 거쳐 3일 내년도 예산안과 함께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미래대응기금은 반도체 호황과 경제구조 변화로 장기 추세를 넘어 늘어난 세수를 국가의 미래에 다시 투자하는 재정 플랫폼이다. 총괄계정과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인재 등 4개 사업계정을 두고 일자리와 주거, 첨단산업, 지역 발전과 인재 양성 등에 투자한다.
<정부가 반도체 호황 등으로 늘어난 세수를 적립하는 ‘미래대응기금’에 지방계정을 설치하기로 하면서 농어촌 기본소득의 본사업화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지방을 위한 대규모 국가 재정의 그릇이 만들어지는 만큼, 2년간의 시범사업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기대다.>
세금이 많이 걷힐 때 일부를 저장했다가 성장동력을 키우고 세수가 부족할 때 재정 여력을 보강하는 ‘재정 저수지’인 셈이다. 투자 방향에는 지방 발전과 지역소멸 대응이 포함됐지만, 농어촌 기본소득은 구체적인 지원사업으로 명시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두 정책의 연결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안정적인 재원이 절실한 데다 이재명 대통령이 농어촌 기본소득의 영구 도입과 확대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10일 농어촌 기본소득 시행 이후 인구가 증가한 충북 옥천군 사례를 소개하며 “2년 한시 도입인데도 이 정도 효과인데 영구 도입하면 훨씬 효과가 클 것”이라고 밝혔다. 지급액을 높이면 효과가 더 커질 수 있다는 뜻도 내비쳤다.
재원 마련 방안도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주식시장 활성화 등으로 늘어난 농어촌특별세를 활용하고, 농로·교량 등 농어촌 사회간접자본에 투입해 온 재정 일부를 주민소득과 지역경제를 살리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앞서 수석보좌관회의에서는 농어촌 기본소득과 햇빛소득을 ‘효과가 확인된 정책’으로 평가했다. 국무회의에서도 농어촌 기본소득을 단순한 현금 지원이 아니라 “불편함을 감수하는 대가로 지역을 다시 살리기 위한 장치”라고 규정했다.
미래대응기금 편입은 미정이지만, 농어촌 기본소득을 시범사업 이후에도 지속 가능한 제도로 발전시키려는 대통령의 의지는 분명하게 확인됐다. 이제 그 의지를 법과 예산으로 뒷받침할 재원 구조를 만드는 일이 남았다.
현재 농어촌 기본소득은 정선군을 비롯한 전국 17개 군에서 시행되고 있다.
주민 1명당 월 15만 원~20만 원을 지역사랑상품권으로 지급하며 사업 기간은 올해부터 내년까지 2년이다.
올해 국비는 추가경정예산 증액분 706억3000만 원을 포함해 총 3047억500만 원이다.
전체 사업비는 국비 40%, 지방비 60%로 나눠 부담한다.
2027년 이후 본사업으로 전환하거나 대상 지역을 확대하려면 해마다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업이 가장 절실한 인구감소지역일수록 재정이 열악해 현행 지방비 부담을 장기간 감당하기 어렵다.
미래대응기금의 지방계정을 기본소득 재원으로 활용하면 매년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 불확실성을 줄이고 다른 인구감소지역으로 사업을 넓힐 토대도 마련할 수 있다.
기금의 핵심 재원은 정부가 새롭게 정의한 ‘추가세수’다. 세입예산보다 실제 세금이 더 걷힌 ‘초과세수’와 달리, 반도체 호황이나 경제구조 변화로 내국세 수입이 최근 10년간의 장기 증가 추세를 넘어설 경우 그 증가분을 기금에 적립하는 방식이다.
농어촌 기본소득의 본사업화에 힘을 싣는 것은 시범지역에서 먼저 나타난 인구 변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최초 시범지역 10개 군의 주민등록인구는 지난해 9월 31만8841명에서 올해 6월 33만4547명으로 늘었다. 9개월 동안 1만5706명, 4.93% 증가했으며 10개 군 모두 인구가 늘었다.
반면 공모에 신청했지만 선정되지 않은 33개 군은 0.33%, 신청하지 않은 19개 군은 0.78% 감소했다. 농촌 대부분이 인구 감소의 비탈을 내려가는 동안 기본소득 시범지역의 숫자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정선의 변화는 더욱 선명했다.
정선군 인구는 지난해 9월 말 3만3266명에서 올해 7월 말 3만5144명으로 늘었다. 10개월 만에 1878명, 5.6% 증가하며 무너졌던 3만5000명 선을 다시 넘어섰다.
고한읍이 522명 늘어 12.4%의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고 정선읍 485명, 사북읍 255명, 남면 151명, 북평면 121명, 임계면 102명 등 증가세는 군 전역으로 번졌다.
정선 안에서 주소만 옮긴 것도 아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전입자는 2266명, 전출자는 597명으로 순전입 인구가 1669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91.6%는 다른 시·군에서 들어온 외부 인구였다.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돈의 크기보다 지급 방식이었다.
충북 괴산군은 지난해 12월 주민에게 50만 원을 한 차례 지급하면서 전입자가 급증했지만, 올해 6월까지 초기 유입 인구의 67%만 남았다. 목돈은 사람을 불렀지만 정착까지 만들지는 못했다.
정선은 월 15만 원을 지역화폐인 와와페이로 2년간 지급한다.
전입 주민도 실제 거주 사실을 확인한 뒤 지급한다. 한 번 받고 떠날 수 있는 돈이 아니라 정선에서 삶을 이어가야 계속 받을 수 있는 소득이다.
한 번에 지급한 50만 원이 전입의 순간을 만들었다면, 매달 이어지는 15만 원은 사람이 머물 시간을 늘렸다.
지역화폐는 골목에도 다시 돈을 돌게 했다.
정선군이 지난 3월 지급한 기본소득 44억 원 가운데 일정 기간 확인된 사용액은 약 26억 원으로 60%에 달했다. 와와페이 가맹점도 대상 업소 2876곳 가운데 2656곳으로 92.4%를 차지한다. 북평·화암·남면·여량에서는 늘어난 소비를 겨냥한 창업도 잇따랐다.
사람이 들어오고 지역화폐가 골목을 돌며 닫혔던 가게 자리에 새로운 불빛이 켜지는 선순환의 싹이 돋고 있다.
아직 인구 증가를 기본소득만의 효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사업이 끝난 뒤에도 전입 인구가 남을지 지켜봐야 하며, 청년과 가족이 뿌리내릴 일자리와 주거, 보육·교육 정책도 뒤따라야 한다. 미래대응기금 편입과 본사업 전환 역시 정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농어촌 기본소득을 영구적인 국가 정책으로 키우겠다는 대통령의 의지와 지방소멸 대응을 위한 국가 재정의 큰 그릇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능성은 커졌다.
반도체 공장에서 늘어난 세수가 지역화폐를 타고 농촌 주민의 생활비와 골목상권의 매출로 흐르는 길이다.
대통령의 의지가 법과 예산으로 이어져 그 길이 끊기지 않는다면, 농어촌 기본소득은 2년짜리 실험을 넘어 사람이 돌아오고, 돌아온 사람이 머무는 농촌을 만드는 국가 정책으로 나아갈 수 있다. 김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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