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군청 부이사관 퇴직 박명섭 아리벌양봉원 대표… 벌떼 공격받아 응급실 실려 가는 위기도

“벌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정성을 쏟은 만큼 달콤한 꿀로 답하고, 제 인생의 두 번째 봄까지 열어줬으니까요.”
정선군청에서 40년간 공직생활을 하고 기획감사실장을 끝으로 부이사관으로 명예퇴직한 박명섭(70 사진) 아리벌양봉원 대표. 그는 요즘 공직에 있을 때보다 더 바쁜 ‘꿀맛 인생 2막’을 살아가고 있다.
공직에 있을 때는 행정 현장을 누볐지만 지금은 자연을 일터 삼아 꽃을 따라 이동하며 300여군을 돌본다. 취미로 시작한 양봉은 연간 1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전문 농업으로 성장했다.
공직자의 명함은 내려놓았지만 열정까지 내려놓지는 않았다. 전문 양봉인이라는 새로운 명함을 얻으며 신명 나는 인생 2막을 써 내려가고 있다.
박 씨의 하루는 꿀벌보다 먼저 시작된다. 해가 뜨기 전 벌의 건강 상태를 살피고, 꽃이 피는 시기에 맞춰 벌통을 옮긴다. 꿀이 차오르면 채밀하고 찬 바람이 불면 월동을 준비한다. 출퇴근 시간은 사라졌지만 공직에 있을 때보다 하루는 더 짧아졌다.
양봉은 벌통만 가져다 놓는다고 꿀이 저절로 쌓이는 일이 아니다. 벌의 생태부터 날씨와 기온, 꽃의 개화 시기와 밀원 분포까지 정확히 읽어야 한다. 최근에는 이상기후와 꿀벌 개체수 감소, 각종 질병까지 겹쳐 양봉 환경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도 박 씨는 벌통 앞에 서면 여전히 설렌다.
그는 “사람은 속마음을 감출 수 있지만 벌은 상태를 곧바로 보여준다”며 “자연의 흐름을 읽고 정성을 다하면 좋은 꿀로 답해준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모든 일이 꿀처럼 달콤했던 것은 아니다.
공직생활을 마친 뒤 자연과 함께 살고 싶어 취미로 시작했지만 초보 양봉인에게 벌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벌떼의 집중 공격을 받아 응급실로 실려 간 적도 있었고, 기후변화와 질병으로 벌을 잃으며 가슴앓이하기도 했다.
박 씨는 포기하는 대신 공부를 택했다. 벌의 생태를 공부하고 전문 양봉농가를 찾아다니며 기술을 배웠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벌의 움직임과 날씨, 꽃이 피는 시기도 꼼꼼하게 살폈다.
40년 공직생활에서 몸에 밴 성실함과 꼼꼼함이 양봉에서도 빛을 발했다.
3군으로 시작한 양봉은 어느새 300여 군으로 늘었다. 연간 매출도 1억원에 이르면서 지역을 대표하는 전문 양봉인으로 인정받았다. 현재 허니힐링연구회 총무를 맡아 후배들과 경험도 나누고 있다.
![20260707_164858[1] 양봉 50%.jpg](/data/editor/2607/20260720191056_vpxklonz.jpg)
<정선군청에서 40년간 공직생활을 하고 기획감사실장을 끝으로 부이사관으로 명예퇴직한 박명섭 씨의 성공 뒤에는 동갑내기 아내 최종희 씨가 있다.>
박 씨가 생산한 천연 벌꿀은 뛰어난 품질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그는 ‘좋은 꿀은 좋은 자연과 건강한 벌에서 나온다’는 신념으로 화학약품 사용을 최소화하고 있다.
연구회 회원들은 “퇴직 후에도 끊임없이 배우고 도전해 전문 양봉인으로 성공한 모습이 귀감이 되고 있다”며 “어렵게 익힌 기술과 경험도 아낌없이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벌통 300여군을 돌보는 성공 뒤에는 동갑내기 아내 최종희(70) 씨가 있다.
최 씨는 벌통 점검부터 이동 양봉과 채밀까지 모든 작업을 남편과 함께한다. 무거운 벌통을 옮기고 꿀을 채밀하느라 온몸이 땀으로 젖어도 두 사람은 서로의 손발이 된다.
박 씨는 “양봉은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아내가 힘든 일을 함께해 줬기에 오늘의 아리벌양봉원이 있을 수 있었다. 가장 고맙고 든든한 동반자”라고 말했다.
최 씨도 “함께 돌본 벌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좋은 꿀이 나오면 고생을 모두 잊는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남편과 양봉을 이어가고 싶다”고 웃었다.
벌통 앞에서 보내는 시간은 부부에게 일이자 데이트이고, 노동이자 새로운 도전이다. 함께 흘린 땀은 꿀이 되고 수십 년 동안 쌓아온 믿음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박 씨의 인생 2막은 경제적인 성공에 그치지 않는다. 정선군법원 민사조정위원회 총무로 주민 간 분쟁의 원만한 해결을 돕고, 영월지역범죄피해자지원센터 정선지구 회장으로 범죄 피해자와 가족들의 일상 회복을 지원하고 있다.
공직에서는 물러났지만 지역사회를 위한 그의 출근은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다.
박 씨의 다음 목표는 정선 청정 벌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자신이 쌓은 경험과 기술을 후배들에게 전해 지역 양봉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꿈도 품고 있다.
도전의 열기는 아들에게도 이어졌다. 아들 박영기(35) 씨는 지난해 3월 경북대학교 섬유패션디자인학부 섬유공학전공 조교수로 임용됐다. 최근 이 같은 사실이 본보 보도를 통해 뒤늦게 알려지면서 지역 후배들에게 새로운 도전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박 교수는 정선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단국대학교 파이버시스템공학부에서 학사와 석사, 박사과정을 모두 마쳤다. 아버지가 퇴직 후 전문 양봉인으로 변신했다면, 아들은 고향 정선에서 품은 꿈을 대학 강단까지 이어간 셈이다.
40년 공직을 마치고 벌통을 돌보기 시작한 지 여러 해. 이제 박 씨의 벌통에서는 꿀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도전에는 정년이 없다는 자신감과 부부가 함께 일군 행복,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달콤한 희망도 함께 익어가고 있다. 권동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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