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도가 아니었다”… 진실은 돌아왔지만, 사과는 오지 않았다
1980년 4월의 끝자락,
아직 봄이라 부르기에는 거칠었던 바람이 정선의 탄광도시 사북을 스치던 그날.
인구 3만의 작은 도시는 더 이상 일상의 속도로 움직이지 않았다.
지하 깊은 갱도에서 석탄을 캐던 광부들과 그들을 기다리던 가족들이 지상으로 올라와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사북은 더 이상 하나의 마을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눌려 있던 시간과 침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순간.
그날의 시작은 크지 않았다.
1980년 4월 21일, 국내 최대 민영탄광이던 동원탄좌 사북영업소.
광부들은 노조 사무실 앞에 모였다.
임금인상과 처우 개선, 그리고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된 어용노조 지부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대화가 아니었다.
집회는 불허됐고, 항의 현장에서 사복 경찰 차량이 광부를 치고 달아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사북항쟁 당시 자극적 사진과 자극적인 내용이 가득했던 언론보도.
폭력의 기록만 남고 그 이전 억눌린 시대 노동자의 아픈 진실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했다. 언론들은 광부들을 유혈난동을 일으킨 폭도로 기록했다.>
그날, 무언가가 분명하게 끊어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북지서와 주요 시설이 공격받았고, 도시는 순식간에 긴장과 충돌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튿날에는 경찰과의 충돌 속에서 사망자가 발생하고 수많은 이들이 다쳤다.
며칠 동안 사북은 더 이상 ‘탄광촌’이 아니었다.
그곳은 광부들의 도시였고, 삶의 가장 밑바닥에서 밀려 올라온 사람들이 서로를 붙잡고 버티던 공간이었다.
이 사건은 이후 ‘사북사태’로 불리며, 군사정권 시기 노동자 집단 저항과 국가 공권력이 충돌한 대표적 사건으로 기록됐다.
그러나 끝은 곧바로 또 다른 시작이었다.
4월 24일, 노·사·정 합의로 사태는 일단락된 듯 보였지만, 이어진 것은 보복에 가까운 수사였다.
비상계엄 아래 구성된 합동수사단은 광부와 주민 200여 명을 연행했고, 구금 과정에서 집단적 가혹행위가 이어졌다.
이후 31명은 군법회의에 넘겨졌다.
계엄 포고령 위반 등의 혐의로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그날 거리에서 외쳤던 목소리는 법정에서 ‘죄’가 되었고, 저항은 기록 속에서 ‘위반’으로 정리됐다.
시간은 흘렀다.
하지만 역사는 오랫동안 바로잡히지 않았다.
당시 언론은 광부들을 ‘폭도’로 규정했고, 사건은 ‘난동’으로 축소됐다.
그들이 왜 거리로 나왔는지, 무엇을 요구했는지는 지워졌다.
폭력의 장면만 남고, 그 이전의 시간은 기록에서 밀려났다.
일부에서는 지금도 당시 상황을 공권력 붕괴를 초래한 ‘폭력 사태’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그것을 억눌린 시대가 터져 나온 ‘항쟁’으로 기억한다.
46년이 지난 지금, 그날의 기록은 다시 쓰이고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사북항쟁에 대해 진상규명 결정을 내리고 국가의 사과와 피해자 구제를 권고했다.

<제46주년 사북항쟁 기념일을 일주일 앞둔 지난 14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이원갑, 신경, 윤병천, 구정우 등 사북 국가폭력 피해자들과 고 원일오, 고 전효덕, 고 양규용, 고 진복규 등 희생자 유족들이 국가 사과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 경청수석비서관과 면담했다.>
또한 2022년과 2023년, 당시 처벌받았던 이들은 재심을 통해 잇따라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은 뒤늦게 판단을 바꾸었다.
그러나 국가는 아직 답하지 않았다.
정부는 현재까지 공식 사과나 종합적인 피해 회복 방안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 모이고 있다.
영화관에서, 사찰에서, 도시와 도시를 건너 ‘1980 사북’이라는 이름의 시간을 함께 바라본다.
무엇이었는가.
왜 그들은 거리로 나왔는가.
그리고 왜, 그 이후의 시간은 아직도 멈춰 있는가.
지난 14일, 사북항쟁 사건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청와대 앞에 섰다.
“진실은 밝혀졌지만, 사과는 아직이다.”
그들의 요구는 단순하다.
국가가, 그날을 인정해 달라는 것.
황인욱 정선지역사회연구소 소장은 “생존자들이 많지 않다”며 “46주년을 맞아 정부의 공식 사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
그러나 정의는 그렇지 않았다.
정선의 산과 바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러나 그 아래에서 벌어졌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과되지 않은 역사.
정리되지 않은 기억.
그리고 여전히 이름을 찾고 있는 사건.
시간은 충분히 흘렀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다.
국가가, 그날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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