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떠들썩했던 석공 함백광업소 참사
-“35년이 지났지만 추모비 하나 없다”
1979년 4월 14일 오전 7시 40분. 석탄공사 함백광업소 자미갱 입구에서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당시 트롤리카(전기기관차)의 전기가 오거드릴(채탄용 대형 드릴)로 누전되면서 그 옆에 있던 다이너마이트 자루가 터진 것이다. 이 사고로 26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됐다.
광차는 폭약전용·인부전용과 나누어 운행하도록 돼 있었지만, 이런 기본적인 안전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서 대형 참사로 이어진 것이다.
사고 후 35년이 지났다. 아직 이 곳에는 아직까지 추모탑은 고사하고 변변한 표지도 없는 상황이다. 멀리서 찾아온 유족들은 ‘아버지를 위해 술 한 잔 올릴 곳이 없다’며 발길을 돌리고 있다고 한다.
◇아직 생생히 기억하는 사람들
“그 때는 보통 외상 장사였다고. 광부들이 외상을 해놓고 월말이 되면 술값을 치렀지. 그 해 3월 지나고 4월 되니까 장사가 너무 잘 되는 거야. 참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말이야. 그런데 글쎄 사고가 딱 터졌지. 사망자가 한 두 명도 아니고 35명이야. 유족들은 시신도 못 찾아서 발버둥 치고 참 딱했어.” 당시 자미갱 입구에서 주점을 운영하던 김좌실 할머니(77세)의 증언이다.
김 할머니는 사건 당시 상황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어떤 광부는 술에 취해 주점에 주저앉는 바람에 목숨을 건진 이야기부터, 일부 희생자들은 이름까지 거론하며 특징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다. 김 할머니는 “갱 입구에서 다이너마이트 자루가 터졌으니 시신 온전히 찾은 사람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였다”며 “장사 치르고 며칠이 지나도록 짐승들이 유해 조각을 물어왔을 정도로 정말 참혹한 상황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사고 당시 인근 광산에서 광부로 일하다 현재는 농사를 짓고 있는 신동읍 방제리 주민 현경주 할아버지(77세)는 “우리 친척 중 한 아이도 원래 광차에 타고 있다가 술을 먹고 늦게 오니 동료가 ‘넌 걸어오라’면서 그 친구 연장을 휙 집어던졌는데 그 연장 주우러 간 사이 폭발해 참변은 면했다”며 “그래도 소리가 워낙 커서 고막이 크게 파열됐다”고 말했다.
◇전국이 떠들썩, 곧 잊혀졌다
1979년 석공 함백광업소 참사는 당시까지 있었던 광산 사고 중 단일 사고로는 가장 큰 인명피해를 기록했다. 사고 이튿날인 4월 15일자 각종 신문의 1면을 차지할 만큼 사회적으로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후 석공은 이들 희생자를 위한 추모비 하나 건립하지 않았고, 이 참사는 현재 유족들과 인근 지역 주민들만이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석공의 이 같은 행태는, 당시 우리 사회에서 광부들이 그저 성장을 위한 ‘소모품’이었다는 반증이라고 주민들은 해석하고 있다.
현경주 할아버지는 “그 때는 다들 먹고 살기 바쁜 상황인데다, 노동자들이 힘도 없던 시절이니 그렇게 지나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그래도 폐광되는 시점에서는 석공에서 추모비 하나 정도라도 세워주는 게 이치에 맞다”고 말했다. 또 “우리들 기억이야 죽으면 없어진다지만, 그런 기록이 있으면 유족들이나 주민들이 추모도 할 수 있고 후세에도 반성할 자료로 남길 수 있지 않겠냐”고도 했다.
◇“아버지를 위해 술 한잔 올릴 곳이 없네요”
대참사 이후 3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명절이나 기일이 되면 함백광업소 자미갱에는 유족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폭사로 유해를 찾지 못한 유족들이다. 조동8리 이장 오경호 씨는 “지난 명절에는 사고 희생자 아들 내외가 찾아와 ‘아버지를 위해 술을 한잔 올리고 싶은데 어떻게 추모비도 하나 없냐’며 울분을 터뜨리는데, 주민의 한 사람으로써 정말 미안했다”며 “이제라도 지자체든 중앙정부든 어느 곳이라도 나서서 추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석공 함백광업소 참사는 다시 끄집어내기도 ‘민망할’ 만큼, 오랫동안 먼지 속에 묻혀있었다. 폐광 이후 지역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주민들도 ‘경제성 없는’ 추모공원 보다는 ‘돈 되는’ 사업이 시급했고, 책임 있는 석탄공사는 ‘나홀로 탈출’, 관심 밖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주민들의 건의로 지자체가 추모비 또는 추모공원 건립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 위안이다. 박주일 신동읍장은 “지난해부터 주민들과 지역발전 사업 추진과 함께 협의를 해 오고 있다”며 “실무적으로는 일단 주민들 의견이 정확히 모아져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자체의 노력으로 그들이 안고 있었던 희생자와 유족들에 대한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 될지, 지역 주민들의 기대가 큰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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