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가영·조원종 귀촌부부…한국무용 수업부터 정선아리랑·사과 재배·창업교육까지…“정선에서 꿈이 더 많아졌어요”
“아이들을 치열한 경쟁 속에서 키우기보다 자연과 함께 마음껏 뛰놀게 하고 싶었습니다.”
정가영(40·사진)·조원종(50) 씨 부부가 세 아이의 손을 잡고 정선으로 향한 이유는 단순하고 분명했다. 도시의 빠른 속도에 아이들을 맞추기보다 가족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갈 터전을 찾고 싶었다.
정선은 아무런 연고도, 익숙한 생활 기반도 없는 낯선 산골이었다. 그러나 용기를 내 정선을 선택한 다섯 식구는 이제 농사와 육아, 문화예술 활동을 넘나들며 누구보다 신명 나게 살아가고 있다.
정가영 씨의 일주일은 달력에 빈칸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빼곡하다.
월요일 오후 6시 30분이면 아리샘터 2층 강당에 장단이 울린다. 정 씨는 이곳에서 성인 수강생들을 가르치는 한국무용 강사로 변신한다. 손끝의 각도와 발디딤 하나까지 세심하게 짚어주다 보면 두 시간의 수업이 금세 지나간다.
수요일에는 정선아리랑전수관에서 온종일 아라리를 배운다. 한국무용을 전공한 그에게도 정선아리랑은 새롭게 익혀야 할 깊은 예술의 세계다. 구성진 가락과 사설에 담긴 정선 사람들의 삶을 배우며 자신이 살아가는 고장을 몸과 마음에 새긴다.
목요일에는 다시 학생이 된다. 아리아리정선 농업대학 사과학과에서 전정과 병해충 관리, 토양과 결실 관리 등 전문 영농기술을 배운다. 토요일에는 도시재생센터가 운영하는 나비캠퍼스를 찾아 창업과 자기계발 교육을 받는다.
강사였다가 학생이 되고, 학생이었다가 농부가 되는 변화무쌍한 일주일이다.
<정가영 씨는 월요일 오후 6시 30분이면 아리샘터 2층 강당에서 성인 수강생들을 가르치는 한국무용 강사로 변신한다.>
그사이 집 앞 1,000여 평의 사과밭도 돌봐야 한다. 작업복과 장화를 챙겨 신고 밭에 나가 나무의 상태를 살피고 풀을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해가 기운다. 세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까지 챙겨야 하니 하루가 짧을 수밖에 없다.
여린 체구에서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놀라울 정도지만, 정 씨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이 많아 바쁜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많아 바쁘기 때문이다.
정 씨와 춤의 인연은 어린 시절 시작됐다. 초등학생 때 리틀엔젤스예술단 단원으로 활동하며 해외 무대에 우리 문화를 알렸다. 이후 선화예술중학교와 선화예술고등학교를 거쳐 국민대학교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하고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다.
남편 조 씨도 정선군립아리랑예술단 상임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부부가 나란히 전통예술을 이어가며 정선의 문화예술에 힘을 보태고 있는 셈이다.
세 아이에게도 정선은 더없이 넓은 놀이터이자 교실이다. 큰딸은 여량초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고, 두 아들은 여량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다닌다. 아이들은 산과 들을 뛰놀며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과정과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배운다.
정 씨는 올해부터 아리샘터에서 성인 한국무용을 가르치며 자신의 재능을 지역 주민들과 나누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중단됐던 성인 한국무용 강좌가 다시 문을 열자 주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정원은 10명이었지만 15명이 신청했고, 현재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수강생들이 매주 월요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수업이 시작되면 강당은 금세 흥겨워진다. 장단에 맞춰 어깨를 풀고 버선발로 디딤을 익히다 보면 어색했던 몸짓도 조금씩 춤이 된다. 동작이 마음처럼 되지 않아 함께 웃고, 짧은 춤사위라도 제대로 맞으면 작은 공연을 끝낸 듯 박수가 터진다.
수강생들은 “월요일이 기다려질 만큼 수업이 즐겁다”며 “정선에서 전문적으로 한국무용을 배울 기회가 생겨 반갑다”고 입을 모은다.
정 씨 부부의 하루는 농사와 육아, 공연과 교육으로 눈코 뜰 새 없이 흘러간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이 바쁜 일상은 짐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행복이다. 사과나무를 가꾸고, 아라리를 배우며, 주민들과 함께 춤추는 시간이 가족의 뿌리를 정선 땅에 더욱 단단히 내려주고 있다.
사람을 지역에 머물게 하는 힘은 정책과 지원만이 아니다.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삶의 여건과 이웃의 따뜻한 온기, 자신의 재능을 펼칠 기회가 어우러져야 한다.
낯선 산골을 찾아왔던 정가영 씨 가족은 이제 정선에서 아이를 키우고 농사를 지으며 지역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이웃이 됐다. 사과밭에는 싱그러운 열매를, 강당에는 고운 춤사위를, 마을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더하고 있다.
사과나무처럼 정선에 뿌리내린 다섯 식구의 신명 나는 삶은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다.
정선에서도 충분히 배우고, 일하고, 아이를 키우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임학빈 기자yedo55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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