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마노탑 선캐처·자장율사 키링 등 체험 다채 만항재·정선5일장까지… 천년 역사와 정선 여행을 잇다


산길을 따라 정암사(사진)에 들어서면 시간이 조금 느리게 흐른다.
태백산 자락을 타고 내려온 바람이 숲을 흔들고, 계곡물이 돌 사이를 흐른다. 그 길 끝에 천년의 시간을 품은 산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절 뒤편 산비탈에는 국보 정암사 수마노탑이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때 문화유산을 만나는 방법은 대개 비슷했다. 안내판을 읽고, 탑을 바라보고, 사진 한 장을 남긴 뒤 돌아섰다.
하지만 올해 정암사에서는 조금 다른 일이 벌어진다.
아이들은 자장율사를 작은 블록 키링으로 만들고,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수마노탑 선캐처를 만든다. 정암사 곳곳에 흩어진 조각을 찾아다니며 천년 산사를 보물찾기하듯 누빈다. 어른들은 산사의 역사와 정선의 자연·인문·예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천년 고찰 정암사가 ‘바라보는 문화유산’에서 ‘직접 경험하는 문화유산’으로 변신하고 있다.
정선군은 올해 ‘정암사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길’을 주제로 전통산사 국가유산 활용사업을 이어간다. 정암사와 국보 수마노탑이 지닌 역사·문화적 가치를 체험과 여행, 인문학, 예술로 풀어내 주민과 관광객이 보다 쉽고 재미있게 국가유산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다.
2019년 시작된 이 사업은 해를 거듭하며 정암사의 역사와 정선의 관광자원을 연결하는 지역 대표 문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올해 프로그램은 크게 세 가지다.
‘자장율사, 태백산 갈반지를 찾아 떠나다’, ‘알면 보이나니 산사에서 배우는 품격 인문학’, ‘정암사에서 힐링한데이’다.
이름부터 딱딱한 문화유산 답사와는 조금 다르다. 걷고, 듣고, 만들고, 찾아다니며 자연스럽게 정암사의 이야기를 알아가는 방식이다.
가장 가족 친화적인 프로그램은 ‘정암사에서 힐링한데이’다.
오는 7월 25일과 10월 3일 정암사 일원에서 열리는 이 프로그램에서는 수마노탑 선캐처 체험키트, 자장율사 블록 키링 만들기, ‘정선 정암사 흩어진 조각 찾기’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아이들에게 천년 전 역사를 긴 설명으로 들려주는 대신 손으로 직접 만들어 보게 한다.
수마노탑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선캐처가 되고,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는 작은 블록 캐릭터로 다시 태어난다. 정암사 곳곳에 숨어 있는 흔적과 이야기는 하나씩 찾아내야 할 조각이 된다.
아이에게는 놀이지만, 그 과정에서 정암사의 역사와 문화가 자연스럽게 기억에 남는다.
문화유산을 ‘공부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한번 만져보고, 만들어보고, 다시 찾아가고 싶은 기억’으로 바꾸는 것이다.
정암사의 이야기는 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암사는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천년 고찰이다. 깊은 산중에 자리한 정암사는 오랜 세월 한국 불교문화와 지역의 역사를 함께 품어왔다. 특히 정암사를 대표하는 수마노탑은 정교하게 쌓아 올린 독특한 모습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됐다.
그러나 오래된 문화유산일수록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일은 쉽지 않다.
역사적 가치가 크다는 설명만으로는 어린이나 가족 관광객의 관심을 오래 붙잡기 어렵다. 정선군이 정암사의 역사에 체험과 여행, 이야기를 더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천년 전 이야기를 오늘의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다시 풀어내겠다는 것이다.
지난 7월 11일부터 12일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진행된 ‘자장율사, 태백산 갈반지를 찾아 떠나다’는 정암사의 역사와 정선 여행을 하나로 묶었다.
가족 참가자들은 문화유산해설사와 함께 정암사와 수마노탑을 둘러보며 자장율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여행은 산사에서 끝나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만항재와 정선5일장, 아라리촌, 가리왕산 케이블카 등 정선의 주요 문화·관광지를 함께 찾았다.
천년 고찰에서 시작한 발걸음이 고원의 숲과 전통시장, 아리랑의 역사, 가리왕산의 풍경으로 이어진 것이다.
정암사를 하나의 관광지로 따로 떼어 놓는 것이 아니라 정선 전체를 하나의 문화여행 코스로 연결하려는 시도다.
오전에는 천년 산사를 걷고, 장날에는 시장 골목에서 정선의 음식을 맛본다. 아라리촌에서는 지역의 옛 생활문화를 만나고, 가리왕산에 올라 정선의 산과 계곡을 내려다본다.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보고 떠나는 관광’에서 ‘머물며 경험하는 여행’으로 확장하는 셈이다.
가을에는 산사가 인문학 교실로 변한다.
오는 10월 24일 열리는 ‘알면 보이나니 산사에서 배우는 품격 인문학’은 정암사를 비롯해 정선의 자연과 역사, 인문, 예술을 전문가 강연과 문화 프로그램으로 풀어낸다.
같은 탑도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알고 보면 다르게 보인다.
무심코 지나쳤던 돌 하나와 산길 하나에도 역사가 있고, 오래된 산사가 왜 그 자리에 세워졌는지를 알게 되면 풍경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진다.
‘알면 보인다’는 프로그램 이름처럼 단순한 관람을 넘어 문화유산을 이해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정선군이 전통산사 국가유산 활용사업을 이어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화유산은 잘 보존하는 것만큼 사람들이 찾아오고, 경험하고, 기억하게 하는 일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문을 잠그고 지키는 문화유산이 아니라 아이들이 웃으며 뛰어다니고, 가족이 함께 체험하고, 어른들이 역사와 인문학을 이야기하는 살아 있는 문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특히 정암사는 정선의 다른 관광자원과 연결할 가능성이 크다.
고한·사북 폐광지역과 가깝고, 만항재를 비롯한 고원 관광자원과도 연결된다. 정암사를 찾은 방문객이 주변 관광지와 시장, 숙박시설까지 이용한다면 국가유산 활용사업은 단순한 문화행사를 넘어 지역 체류시간을 늘리는 관광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천년의 역사를 하루아침에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천년의 역사를 오늘의 사람들이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지는 지금 만들 수 있다.
아이의 가방에 매달린 작은 자장율사 키링 하나, 창가에서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수마노탑 선캐처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정암사를 다시 기억하게 하는 작은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때 정암사에서 만들었지.”
그 기억이 언젠가 다시 정선을 찾는 발걸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정암사는 천년 동안 같은 자리에 있었다.
이제 그 오래된 산사가 새로운 방법으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고 있다.
탑을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야기를 듣고, 직접 만들고, 산길을 걷고, 정선의 시장과 마을까지 여행하는 길이다.
‘정암사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길’이라는 사업 이름처럼, 천년 산사에서 시작된 작은 길이 정선의 새로운 문화여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광희 기자
■ 올해 정암사에서는 무엇을 즐길 수 있나
△ 정암사에서 힐링한데이
7월 25일·10월 3일 / 정암사 일원
수마노탑 선캐처 체험키트, 자장율사 블록 키링 만들기, ‘정선 정암사 흩어진 조각 찾기’ 등 가족과 어린이가 함께 즐기는 체험 프로그램
△ 알면 보이나니 산사에서 배우는 품격 인문학
10월 24일 / 정암사 일원
정암사와 정선의 자연·역사·인문·예술을 전문가 강연과 문화 프로그램으로 만나는 산사 인문학
△ 자장율사, 태백산 갈반지를 찾아 떠나다
7월 11~12일 / 1박 2일
문화유산해설사와 함께 정암사·수마노탑을 둘러보고 만항재, 정선5일장, 아라리촌, 가리왕산 케이블카까지 여행하는 가족 답사 프로그램
△ 참가 신청 및 문의
한국문화유산연구센터 ☎ 02-2038-8938
※ 선착순 모집으로 조기 마감될 수 있으며 일정과 세부 내용은 운영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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