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년째 정선 5일장 흥 지켜온 ‘장터의 목소리’ 정춘경 씨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장날 아침, 정선 5일장 상설무대에서 흥겨운 노랫가락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면 시장 골목 분위기도 덩달아 살아난다. 산나물 냄새와 갓 부친 메밀전 냄새가 장터를 채우고, 관광객들은 발걸음을 멈춘 채 무대 앞으로 하나둘 모여든다. 그 한가운데에는 22년째 정선 장터의 흥을 깨우고 있는 사회자 정춘경(52) 씨가 있다.
이제 정선 5일장을 찾는 단골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정춘경 씨 목소리가 들려야 진짜 장날 같다”는 말까지 나온다. 구성진 입담에 맞춰 어깨춤이 나오고, 흥겨운 아라리 장단이 흐르면 장터 분위기는 금세 잔칫집처럼 달아오른다.
오늘날 정선 5일장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기까지는 정선군과 시장 상인, 군민들의 오랜 노력이 있었다. 최근 산나물축제 기간에는 전국 각지 관광객들이 몰려들며 시장 골목이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고, 코로나19 이후 다시 옛 전성기의 활기를 되찾고 있다.
그리고 그 긴 세월 동안 장터 한복판에서 사람들의 웃음과 눈물을 함께 지켜본 인물이 바로 정춘경 씨다.
1997년 정선 출신 남편과 결혼해 정선에 정착한 그는 민예총 사무국장과 관광가이드 활동을 하던 중 우연히 무대 사회를 맡게 됐다. 공연 사회자가 갑자기 나오지 못하자 대신 마이크를 잡았는데, 그날의 인연이 어느덧 22년 세월로 이어졌다.
초창기 공연 환경은 열악했다.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파라솔 밑으로 몸을 피해가며 행사를 진행해야 했고, 변변한 음향시설조차 없어 이동식 장비 하나에 의존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장터의 노래와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정 씨는 무엇보다 장터 공연을 손꼽아 기다리던 어르신들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공연 있는 날이면 늘 같은 자리에 앉아 계시는 어르신들이 많았어요. 삶이 힘들고 외로워도 노래 한 곡 나오면 박수치고 어깨춤 추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실제로 정선 5일장 무대는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다. 장을 보러 왔다가 발길을 멈춘 관광객들이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어르신들은 박자를 맞추며 손뼉을 친다. 흥이 오르면 무대 앞은 어느새 즉석 춤판으로 변한다.
정 씨는 “장터 공연은 사람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노래 들으러 오고, 누군가는 사람 구경하러 오고, 또 누군가는 외로워서 장터에 나옵니다. 그런데 그렇게 다 같이 웃고 박수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풀리거든요.”
정 씨에게도 잊혀지지 않는 한 장면이 있다.
어느 날 한 어르신이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고, 정 씨는 흔쾌히 사진을 남겼다.
그런데 이후 그 어르신의 모습이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공연 도중 젊은 부부가 찾아와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저희 어머니입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꼭 감사 인사를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져 울컥했다고 그는 회상했다.
정선 5일장 무대는 화려한 스타들의 무대는 아니다.
대부분 무명가수들이 오른다. 넉넉하지 않은 예산 탓에 유명 가수를 자주 부르기는 어렵지만, 오히려 그 무대는 신인가수들의 꿈을 키우는 특별한 공간이 됐다.
실제로 최근 TV 경연 프로그램 ‘현역가왕3’에서 이름을 알린 구수경을 비롯해 풍금, 진달래, 강유진 등도 모두 정선 5일장 무대를 거쳐 갔다.
정 씨는 “무명 시절부터 봐온 가수들이 성장해 큰 무대에 서는 걸 보면 제 일처럼 기쁘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의 바람은 단순히 사회를 오래 보는 것이 아니다. 정선만의 전통문화와 장터의 정취를 더 생생하게 살려내는 무대를 만드는 것이다.
22년 동안 변함없이 장날의 마이크를 지켜온 정춘경 씨.
그의 목소리는 이제 단순한 사회자의 멘트를 넘어, 사람과 사람의 추억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정선아리랑이 되고 있다. 임학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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