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일·교육·정치로 한 세기를 살아온 ‘구암(鷗岩) 전상요(全相堯)’선생
정선군 유도회(회장 고상호)는 지난 10월 29일 (음력 9월 9일) 중양절을 맞아 정선읍 향교 옆 향현사에서 제향을 봉행했다. 올해 제향은 특히 구암 전상요(이하 성명 생략) 선생이 열 번째로 향현으로 숭모된 뒤 처음으로 올리는 제향이어서 의미가 깊다.
항일정신으로 시작된 삶의 큰 걸음
정선 출신의 항일 애국지사이자 독립운동가, 향교 전교(오늘날 교장선생님), 한학자, 그리고 제 3대 국회의원을 지낸 구암 선생은 격동의 큰 현대사 속에서 지역과 국가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구암선생은 1878년(고종 15년) 정선 덕송리에서 출생, 두 살 때인 1880년 당시 북면 장열리
로 이사해 유년 시절을 보냈다. 1906년, 당시 29세의 구암 선생은 지역 청년 약 50명과 함께 ‘정선 의병대’를 결성했다. 직접 화승총을 제작하며 무장을 강화했고, 의병대는 원주 이강년 부대와 합세하여 남면 낙동리 전투에서 일본군 5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1907년 일본군에 체포됐으나 고종의 은사령으로 석방됐고,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안동 일대에서 항일운동을 펼치다 다시 체포돼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
이후 탈옥에 성공한 구암선생은 정선으로 돌아와 동지 규합을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자, 일제의 감시를 피해 북평리 소재 백석산 토굴에서 약 26년간 은거하며 학문과 심신수련에 몰두했다.
해방과 함께 다시 지역으로, 공직자의 길을 걷다
1945년 해방을 맞은 구암 선생은 토굴을 나와 북평5리 항골 양지마을에 정착하며 지역 사회 발전에 나섰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차량골(차항골)로 피난하여 지냈다.
당시 집터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1952년 구암선생은 북평(현 여량면) 초대 면장에 당선되어 지방 행정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리고 1954년 제3대 국회의원(민의원)에 당선되어 중앙 정치 무대에 섰다. 당시 국회 개원식에서는 최고령 의원으로 임시 의장을 맡아 주목을 받았다.
정치인보다 ‘길을 여는 사람’으로 기억되다.
국회의원으로 재직 시 구암 선생은 오랜 숙원이던 정선 제1교(1957년), 임계교(현 송계교)
건립을 추진하며 지역 기반시설 확충에 크게 기여했다.
정선의 주요 교량이 세워지기 시작한 배경에는 구암 선생의 강력한 의정 활동이 있었다. 이후 의원직에서 물러난 구암 선생은 집에서 조용히 학문에 전념했다.
선생은 한시집, 회고록, 의병활동 기록 등 다양한 저술 작업에 몰두했고, 중앙 정치인사, 지역 주요 인사, 지역 한학자, 지식인들과 폭넓은 교류를 이어갔다. 특히 故 김영삼 前 대통령은 초선의원 시절 구암 선생을 찾아 정선을 여러 차례 방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최고령 의원이었던 구암 선생과 최연소 의원이었던 고 김영삼 대통령 사이에는 남다른 존경과 애정이 있었다고 한다.
산처럼 깊고, 물처럼 흐르던 삶
1971년 구암 선생은 북평 1리 자택에서 숙환으로 향년 93세 별세했다.
당시로는 대단한 고령으로 지역 사회에서 존경받던 큰 어른, 그의 생애는 너무나 거대했고
한 지역이 품기에는 벅찬 무게였다.
구암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이 지면이 모두 담기에는 너무도 부족하다.
구암 선생의 추가 자료와 구술 증언은 정선의 귀중한 향토사 자료이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새로운 자료를 발굴해야 할 것이다
임학빈 기자
참고문헌_정선향토사연구소 ‘구암 전상요 자료집’
구술증언_임응규 정선 향토사 연구소장, 이중재 전상요 선생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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