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의 역사와 문화, 후대에 온전히 전하는 것이 사명”
정선군은 지난 10월 27일 오후 2시 군청 소회의실에서 문화관광과 주관으로 '정선군 향토문화유산 심의위원회' 위촉식 및 심의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정선군은 심의위원 당연직 2명(군의원)과 외부 전문가 7명 등 총 9명을 위촉하여 향토문화보존 체계를 한층 강화했다.
이어 진행된 심의회의에서는 '정선 뗏목 문화', '정선 남평리 토방집 짓기놀이' 등 2건의 안건을 심도 있게 검토하여 심의 의결했다. 정선군은 심의결과를 바탕으로 11월 19일자로 정선군 향토문화유산으로 공식 지정했다.
이번 향토문화 지정의 이면에는 오랜 시간 지역 향토사 연구에 매진해 온 정선군향토사연구소 임응규 소장의 보이지 않은 노력이 있었다. 정선군의 역사, 문화 자산이 체계적으로 기록되고 보존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해 온 그는 이번 지정 과정에서도 심사위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본 기자는 임응규 소장을 만나 소장의 인간적 면모와 정선 향토 문화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알아보았다.
Q. 이번 정선군 향토문화유산 심의위원으로 위촉되신데 이어, 그동안 애써오신 심의 상정된 두 건의 향토문화유산이 새롭게 지정되는 성과를 이루셨습니다. 이에 대한 소회와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심의위원에 위촉되고, 향토문화유산으로 상정된 두건 모두 새롭게 지정되는 과정을 함께 할 수 있어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정선의 향토문화는 오래된 전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직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소중한 자산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향토문화가 사라지지 않고 다음 세대까지 온전히 전해 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Q. 정선 출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선 향토사 연구 소장을 맡아 활발히 활동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역할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A. 네 맞습니다. 저는 울산에서 태어나 초·중·고와 대학까지 모두 울산에서 나왔습니다. 정선에 온 것이 2001년도이니 벌써 25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정선이 저에게는 제2의 고향입니다. 제 전공은 행정학이었으나 워낙 역사를 좋아해 역사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했습니다. 정선에 온 뒤에는 자연스럽게 정선의 과거와 향토 역사에 매력을 느껴 군 관련 자료들을 수집, 분석하며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연구하다 보니 한문 실력이 턱 없이 부족함을 느껴 서울 소재 한문학 강의실을 2년간 전전하면서 조금씩 한문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유림 어르신들과 지역 향토사를 연구하는 선배 연구원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정선군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기록하고 알리는데 더욱 힘쓰고자 합니다.
Q. 그동안 정선 향토사 연구소 소장으로 이루어 오신 성과나 업적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 가장 의미 있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A. 소장으로서 그동안 일 해온 여러 가지 중 두 가지가 생각납니다. 첫 번째는 '삼충신(三忠臣)'의 역사적 재조명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삼충신은 고려 태조 왕건의 건국 과정에서 생명을 걸고 보좌한 全氏 삼형제인 전이갑, 전의갑, 전락을 일컫는 말입니다.
예전까지 전씨 후손들이 사당을 지어 그 뜻을 기리고 있었으나 어느 시점에서 사당이 철거돼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적 상황이 안타까워 전씨 문중과 지역 주민들에게 삼충신의 역사적 사실을 적극 알리고, 그 정신을 다시 일깨우는데 힘써 왔습니다. 다행히 현재 석곡리에 새로운 사당터가 마련된 상태입니다.
두 번째로는 '구암 전상요' 선생의 위패를 향현사에 봉헌한 일입니다. 구암 선생은 1879년 덕송리에서 태어나 1971년 항골 양지마을에서 별세하셨습니다.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 애국지사이자 독립 운동가로, 해방 후에는 국회의원과 한학자로 활동하며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저는 구암선생의 흩어져 있던 자료를 수년간 수집, 정리해 정선 유도회에 향현(響賢) 자격 심사를 요청하여 2004년 1월 유도회로부터 향현으로 충분하다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2025년 10월 향현사에 열 번째로 위패가 봉헌되는 결실을 맺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소장으로서 특히 보람을 느끼고 성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앞으로 향토문화 연구소 소장으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A. 정선의 향토사 자료를 더욱 체계적으로 정리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려초부터 1910년까지의 정선 군수의 명단과 그들의 행적, 치적을 발굴 시대순으로 정리해 보는 게 저의 희망이자 꿈입니다.
임학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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