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부터 계엄과 탄핵 등 치명적 정치이슈들이 등장하고 대선까지 가까워지면서 필자의 정치성향을 직접적으로 묻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를테면 “자네는 색깔이 어때?”와 같은 질문. 경우에 따라서는 조금 무례하게 느껴진 적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필자는 그저 머뭇거릴 뿐이었다. 결국 묻는 이가 궁금한 것은 “당신도 내편인가, 아니면 저쪽인가?”하는 1차원적인 물음이겠지만 조금 깊이 있게 생각해 보고 싶다. 다음에 또 그런 경우가 생기면 그저 머뭇거리기 보다는 좀 그럴싸한 반응을 보여 주고 싶기도 해서다.
우선 통일에 대해서는 미온적이다. 하게 된다면 남쪽 대한민국 국민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통일 비용이 우리 삶에 크게 부담되지 않는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면 찬성해 줄 수는 있겠다. 하지만 혁명에 준하는 사회적 격변을 각오할 만큼 갈망하지는 않는다. 그보다 여행 정도는 해보고 싶을 뿐이다. 동성 간 결혼의 제도적 허용은 유교적 뿌리를 둔 우리 사회에 너무 큰 충격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입장에 가깝다. 하지만 성소수자라고 해서 직장이나 학교에서 부당하게 차별받는 것은 우리 헌법이나 사회 정의에 부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신재생에너지는 확대해야 하지만, 당장 원자력 또는 화력발전소 문을 닫아 가계나 기업에 부담을 주지는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검찰 개혁 필요성을 묻는다면 글쎄, 우리 사회에서 개혁이 필요한 곳이 어디 검찰뿐이겠느냐고 반문하는 정도의 답을, 그리고 그것에만 집착해 더 심각한 것을 놓칠까하는 우려도 있다. 국가가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어 가난한 이들을 지원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가 해야 할 당연한 역할이겠으나, 그것이 지나쳐서 성공에 대한 욕망을 억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AI기술에 대해서는 인간의 가치가 경시될까 걱정도 되지만 그보다는 AI가 줄 효용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 12.3 비상계엄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대부분 공감한다. 또 중국의 위협을 빈틈없이 경계해야겠지만 상대가 우리의 최대 교역국임을, 세계 양대 강국 중 하나임을 헤아려 국익을 위해 지혜롭게 관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관계는 유지 발전시켜 나가돼 자주국방이 우선이라는 게,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주는 역사적 교훈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게 평소 생각이다. 국토의 균형발전에 대해서는 적극 찬성하지만, 그것도 효율과 경제성을 따져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기까지 적고 보니 한 사람의 정치 성향을 규정짓는 것이 만만치는 않은 일 같다. 다음에 내 정치성향을 묻는 상황을 다시 맞닥뜨려도, 그저 머뭇거리는 게 최선인가 싶을 정도다.
다른 한 편으로 드는 생각은 “가령 ‘1’이 급진적 좌파고 ‘5’가 수구적 극우라면 대다수는 ‘3’을 기점으로 고만고만하지 않을까”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아니 우리 지역사회만 해도 도대체 뭣 땜에 정치적으로 갈등할까. 우리 사회 정치 갈등의 원인이 정말 정치성향의 다름 때문일까, 아니면 사익과 아집 때문일까.
그나저나. 독자께서 보시기엔 필자의 정치성향이 어떤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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