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뼝대에 불을 밝히는 동강의 대명사
내가 사는 동강 정선 재넘어마을에서는 이른 봄이면 할미꽃이 피기 시작한다. 양지바른 무덤가에서 피는 할미꽃이며, 동강의 하중도 황당한 모래 자갈밭에서도 피어 일 년 내내 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청정지역이다.
예전에는 어디에서나 무덤가에 흔히 만나는 정겨운 꽃이었으나 이제는 많은 환경 변화로 보기 어려워진 희귀한 꽃이 되었다.
우리에 친숙한 할미꽃은 애절한 이야기로도 시작한다.
예전에 한 두메산골에 두 손녀를 키우며 사는 할머니가 있었단다. 큰 손녀는 예뻤으나 성질은 못되고 고약했으며, 반면 작은 손녀는 인물은 변변치 않지만 마음씨는 비단결 같이 곱고 정도 깊었다. 손녀들이 성장해 큰 아이는 이웃 마을 부잣집으로, 작은 아이는 산 너머 가난한 농사꾼에게로 시집을 갔다.
시간이 흘러 늙고 병이 든 할머니가 큰 손녀를 찾아갔으나 오래가지 못해 쫓겨나고 말았다. 병약한 할머니는 산 너머 사는 작은 손녀를 찾아 나섰다. 죽을힘을 다해 산마루에 올랐으나 허약한 몸으로 추위와 허기를 견디지 못하고 작은 손녀 집을 내려다보며 그만 죽고 말았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작은 손녀는 애통해하며 자기 사는 마을 집 뒷동산의 양지바른 곳에 할머니를 고이 묻어드렸다. 그 이듬해 봄부터 할머니 무덤가에 허리가 굽은 이름 모를 풀 한 포기가 나와 꽃이 피었다.
그 후 사람들은 그 꽃이 할머니의 넋이라 하여 ‘할미꽃’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런 슬픈 이야기를 간직한 꽃은 흰 털로 덮인 꽃대가 구부러져 있고, 꽃이 진 후에는 꽃대가 바로 선 암술이 부풀어 오른 모습이 백발의 노인을 닮았다고 해 할미꽃이라 했다.
처음 싹이 돋아 처음 꽃이 필 때는 한 송이로 피나, 이듬해에 두 송이가 피며 해가 거듭할수록 꽃송이가 늘어나 여러해살이를 한다. 크기는 10~30cm 높이로 자라고 보송보송한 솜털로 뒤덮여 있다.
한방에서는 할미꽃 뿌리를 백두옹(白頭翁)이라는 지사제로, 민가에서는 뿌리에 독성이 강해 재래식 화장실에 살충제로 흔히 사용했다. 우리나라엔 노랑할미꽃, 분홍할미꽃, 가는잎할미꽃 산할미꽃 등 10여 종이 자생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동강의 대명사는 참으로 많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주인공은 결코 동강할미꽃이다. 매년 3월이며 동강 물길 따라 선택된 ‘뼝대’에 틀림없이 다양한 색깔의 아름다운 동강할미꽃이 핀다.
이곳 동강할미꽃은 가파르고 높은 절벽으로 찬바람을 막고, 회색의 거뭇거뭇한 석회암에 쏟아지는 햇볕을 흠뻑 받고, 지난해의 묵은 풍성한 떡잎으로 몸통을 잘 감싸 보호받아와 어디보다 먼저 일찍 꽃을 피운다.
이곳 뼝대에서 피는 동강할미꽃은 흔히 보와 온 할미꽃과는 달리 동강 물가 석회암의 검은 절벽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산다. 또 꽃대를 구부리지 않고 꼿꼿하게 바로 편 상태로 하늘을 바라보며 꽃이 피고 지는 특색이 있다.
크기는 한 뼘 정도로 자라고 많은 솜털로 뒤덮여 있다. 꽃은 연분홍, 연보라 또는 붉은 자주색 등 여러 고운 색깔을 띠고 있어 봄 한철 회색 검은 뼝대를 화려한 색깔로 장식해 장관을 이룬다.
동강할미꽃은 오늘날의 동강을 지켜냈고, 지금도 지속적인 국민의 동강으로 지키는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1997년부터 동강댐 건설을 추진 중이던 정부의 정책을 완강하게 반대에 나선 시민단체와 지역 주민들에게 동강 살리기에 큰 몫을 한 귀한 존재의 동강할미꽃이다.
동강할미꽃이 알려지기는 1998년 봄, 식물 사진작가인 김정명 씨가 동강을 거슬러 오르며 생태사진을 찍다가 꽃을 발견하여 이듬해 자신의 꽃 달력을 통해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이를 보고 연구를 한 한국식물연구원 이영노 박사에 의해 동강 지역에서만 발견되는 한국 특산 식물임을 밝혔다. 꽃이 발견된 지역의 '동강'을 명칭을 붙여 세계 학계에 공식 발표하여 학명(Pulsatilla tongkangensis Y.N. Lee et T.C. Lee)에 서식지 동강이 표시된 아주 귀하고 특별한 꽃이 되었다.
한국 특산 식물인 동강할미꽃과 국민의 댐 건설 저지 함성에 의해 동강댐 건설 계획은 결국 2000년 6월 5일 환경의 날에 김대중 대통령의 백지화 선언으로 동강은 국민의 강이 되었다. 이 일로 많은 국민은 생태와 자연환경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지금의 동강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하게 되었다. 동강 영월댐 백지와 25주년을 맞아 미래의 동강국립공원으로 발 돋음하고 있다.
동강할미꽃은 동강이 시작되는 정선의 귤암리에서부터 물길 따라 운치리, 닥천리, 평창의 마하리, 영월의 문산리까지 특정한 지역에만 피고 지는 귀하신 몸이다.
동강 따라 내려가면 많은 이야기와 함께 귀한 동강할미꽃을 독자들과 함께 만나 보려 한다.
글 사진 이수용 시니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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