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12경은 1997년 영월댐 건설의 급박한 시기에 시민단체와 뜻있는 주민이 동강이 시작되는 정선 가수리에서부터 평창 미탄을 거쳐 영월댐 건설예정지 섭새까지 수없는 답사결과로 탄생하였다.
이는 동강 유역의 생태문화적 경관을 국내외로 널리 알려 동강 댐건설을 저지해 동강의 총체적 자연과 문화유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자는 취지였다.
이곳은 계절에 따라 독특한 자연경관을 연출하고 생명들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다. 어름치와 수달이 헤엄치고 비오리, 원앙이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주민의 생활과 역사문화를 담고 있다. 동강을 따라 흐르면서 동강 제1경부터 12경의 정겨움을 살피며 걸어보자.
동강은 태백산 금대봉 중허리 검용소에서 발원해 골지천은 임계을 휘돌아 평창 발왕산에서 내려오는 송천을 정선 아우라지에서 만나 조양강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조양강은 오대천과 동대천 물을 모아 내려와 정선 가수리에 이르러 함백산 지장천이 내려온 동남천은 물줄기를 만나 비로써 동강으로 탄생한다.
가수리에서 굽이굽이 돌아 51km를 흘러 영월 하송리에서 평창에서 흘러오는 서강을 만나 남한강이 된다. 남한강은 단양, 충주 여주를 거쳐 양수리에서 금강산에서 오는 북한강을 맞아 한강이란 이름으로 서울에 이른다. 한강은 파주에서 북에서 오는 임진강 물을 받아 남북한 물이 합수되어 강화도 앞 황해바다에 평화의 물을 쏟아 붓는다.
가수리 수미마을은 이름만큼이나 ‘물이 아름답다’는 그대로다. 동강과 동남천이 만나는 모퉁이에 가수분교가 있고 학교 마당 끝 합수머리에 700년 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지키고 있다. 키는 40m, 가슴둘레는 8.5m나 되는 거대한 체구에 수관도 균형이 잘 잡혀 어디서 보아도 장관을 이르며 가물소에 그림자를 담그고 물결에 따라 춤을 춘다.
몸통은 울퉁불퉁 불거져 나이에 걸맞지 않게 여전히 건강을 자랑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성균관 앞마당에 거대한 은행나무에 아기엄마의 젖무덤 같이 밑으로 쳐진 줄기 유주를 내리우고 있는데, 이곳 느티나무는 여인네의 가슴같이 어머니 자비로운 모습에 마을 수호신이 되어 한껏 뛰노는 아들들의 친구가 되었다. 20여 년 전에는 나무 밑둥에 어린이가 들어갈 만한 구멍(동공(洞空)이 있었는데 지금은 말끔하게 수술을 해 유심히 보지 않으면 상처를 느낄 수 없다.
아우라지에서 정선읍을 지나온 조양강은 광하교를 지나며 매무새를 가추며 동강의 분위기를 내기 시작한다. 귤암리 앞을 휘돌아 빠져 물길이 잔잔하고 시야가 넓게 열리며 강변 퇴적지에 넓은 터전 북대마을을 마주하고 수미마을 남쪽으로 동남천을 맞이한다. 두 물길이 만나는 합수지점은 물줄가가 힘을 겨뤄 솟아올라 쫄물을 이뤄 장관을 이른다. 이부터 떳떳하게 동강이라고 불려진다.
수미마을은 닭구봉을 앞산으로 하고 그사이에 낙동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은 홍수에는 붉은 흙탕물을 쏟아내는 조양강 물을 맑게 희석시켜준다. 조양강은 도암댐에서 내려 보내는 변덕 심한 흙탕물을 풀어 검붉은 색이 동남천 맑은 물이 동강의 큰 보탬이 된다.
수미마을은 두개 물길로 물이 풍부하고 아늑하고 아름다운 마을로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여기 700여 년 전 가수리에 처음 들어온 강릉 유씨(江陵劉氏)가 심은 느티나무로 전해지며 마을 당산목으로 매 년 초 제사를 지낸다한다. 3월 삼진 날에는 안수재, 풍신재를 지내 주민의 사랑이 지극하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건너다보이는 북대는 한 폭의 그림 같이 평화롭고 아름답다.
느티나무에서 강 상류 쪽으로 마을에 돋보이는 붉은뼝대는 물가 가까이 솟아 더욱 우뚝하며 곱게 분단장을 한 여인네 같아 정감이 성스럽기까지 하다. 그 앞 아래 언덕에는 세 그루의 소나무가 자리다툼을 한다. 절벽 끝에 자리한 소나무가 웅장하고 빼어나 장관을 이른다. 원래는 다섯 그루 오송정(五松亭)이 세월을 이기지 못해 세 그루만 남아 여전히 고고한 위엄이 뛰어나다.
느티나무에서 오송정 오르는 목에 20여 년 전에는 귀한 돌너와집이 있었다. 천년을 간다는 돌너와집은 돌능애집 또는 청석집이라고도 하는데 동강에서 보기 힘든 집이었다. 화단을 가꾸는 윤순덕(87) 할머니가 50여 년 째 이곳에서 살았다는데 2003년 태풍 매미 홍수가 집을 휩쓸고 내려갔다고 한다. 지금은 가수리 쉼터가 되었고 그 뒤로 자리를 물려 새로 조촐하게 새집이 되었다. 돌능애집 뒤 높은 터에 노인정은 옛 모습그대로이지만, 주인이 바뀌고 빈집이 되어 퇴락하여 옛길에 외롭게 남아 세월의 차이를 느끼게 한다.
노인정 밑 물가에 미루나무는 물속의 쉬리와 놀았는데 이제는 길이 넓어지며 포장된 길 한가운데로 밀려나 달려드는 차량이 위협적이다. 가수리에서 북대로 건너다니는 줄배는 사라지고 긴 다리가 놓여 동남천의 다리와 비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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