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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들려주는 정선이야기 ④ 반세기 전 미스트롯

  • 최광호 기자
  • 입력 2023.02.15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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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의 이데올로기 대결 속에 남북한이 아리랑을 경쟁적으로 정전(政典)화했고 이후 여러 정치적·문화적 사건들이 중첩되며 아리랑이 민족의 노래가 된 것은 어찌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민족화합의 상징이 된 아리랑이 어떤 측면에서는 이데올로기 경쟁의 산물이기도 한 셈이니 말이다.


1970년 광주에서 열린 제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는 정선아리랑에 큰 전환점이 돼. 이렇다 할 볼거리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이 대회는 전국적으로 상당히 관심이 높은 축제였어. 


그런데 당시 참가했던 정선아리랑 팀이 국무총리상, 민요부문 1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지. 이것이 계기가 됐는지 이듬해인 1971년 정선아리랑은 강원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고, 정선아리랑보존회도 결성됐지. 또 1970년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했던 나창주, 최봉출, 유영란 선생님은 정선아리랑 예능보유자로 지정됐어.


1976년에는 봉양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정선아리랑제가 처음 열리게 됐는데, 주민들의 열기가 어마어마했다고 해. 지금의 정선아리랑제는 다양한 공연도 하고 지역주민들이 모여 즐기는 일종의 문화축제이지만, 당시에는 오직 경연 그 자체에 이목이 집중됐어. 


지금처럼 볼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이기도 했겠지만 아리랑이라는 콘텐츠 자체의 인기가 대단했다고 해. 어떤 것일까 짐작해보자면, 뭐 요즘의 ‘미스트롯’으로 대표되는 트로트 가요의 인기 같은 것 아니었을까 싶어. 당시 주민들에게는 수십 년 전 부르고 들었던 추억의 노래, 추억의 장르를 되새겨내는, 그런 매력이 있었으리라 생각해. 


그러고 보니 정선아리랑제는 대중적으로 널리 흥행하기에는 제한적인 콘텐츠라는 생각이 들어. 2080년 즈음에 트로트 다시 부르기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셈이랄까. 지역에서도 여러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애를 써보는데 쉽지는 않은 것 같더라고. 특산품이든 무엇이든 유형의 소재가 아닌 무형의 문화콘텐츠인데, 사실 그것이 지금 대중의 구미를 당기는 소재는 아니니까 말이야. 시간이 지나면 우리 지역사회가 좋은 변화를 찾겠지.


그래도 정선아리랑이 문화적으로 지역의 소중한 자산인 것만은 분명해. 지금도 학교나 유치원에서 적당한 시간을 분배해 정선아리랑을 가르치고 있던데, 지역에 대한 이해도도 높이고 애착도 기르는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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