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아리랑 예능보유자 유영란 회장
1970년. 수줍음 많지만 노래 잘하기로는 첫 손에 꼽히던 한 여고생은, 당시 정선 주민들과 함께 건전가요 경창대회 출전 멤버로 뽑혔다. 편곡된 정선아리랑 악보를 들고 영화가 끝난 평화극장 무대에 올라 실전 무대에서 필요한 담력도 길렀다. 며칠 후 열릴 건전가요 경창대회에 나서기 전 연습 무대였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건전가요 경창대회가 돌연 취소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광주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해달라는 제안이 다시 들어왔다. 당대 최고의 소리꾼으로 꼽히던 최봉출·나창주·박사옥 씨와 함께였다. 두 달 가까이 연습해 참가한 민속경연에서 정선아리랑 팀은 최우수상을 거머쥐었다. 이를 계기로 이 여고생은 정선아리랑 예능보유자로 선정되고 환갑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줄곧 소리꾼의 길을 걷게 됐다. 정선아리랑보존회장 유영란 선생의 이야기다.
◇고교 졸업 후에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그 때는 정선아리랑으로는 생활이 힘드니까, 경기민요를 배우라는 권유도 있었지요. 그런데 집에서 반대하니 감히 엄두를 못 냈어요. 그러고는 군청 군수비서실에 취직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아리랑 관련 행사에 참가할 사람이 필요하니 군에서 묶어 놨던 것 같아요.
77년도에 결혼을 했는데, 결혼하고도 정선에 계속 살았으니까 쭉 계속 하게 됐어요. 백일도 안 된 둘째 아이 안고 가서 나무 밑에 재워놓고는 최봉출 선생이랑 무대에 섰던 적도 있었지요. 아이들 키우느라 중간에 몇 년 쉬기도 했는데, 그래도 꼭 필요할 때는 참가했어요.
◇정선아리랑 전수·보존활동은 언제부터 다시 시작됐나요?
정선아리랑 전수 활동이 활성화 된 시기는 90년대 중반부터였던 것 같아요. 그 전에는 고 김병하 선생이 개인적으로 전수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당시 정선아리랑 기능보유자였던 최봉출·김병하 선생, 그리고 저까지 함께 조직적으로 전수활동을 시작한 게 90년대 중반부터였거든요. 지금 문화예술회관 2층, 그러니까 정선아리랑문화재단 자리에 있던 강당에서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회원이 스무 명 조금 넘었지요. 2000년에 정선아리랑전수회관이 완공되고는 지금 자리로 다시 옮겼고, 그때부터 더 활성화 됐지요.
◇정선아리랑 보존회장을 맡고 계신데, 힘든 점은 없나요.
작년부터는 상임이 돼서 출근을 해야 하니까, 그게 좀 힘들긴 해요. 늘 출근 하던 사람이 아니니까, 안하던 일을 하려니 좀 불편하지요. 하지만 소리 하는 거, 가르치는 건 늘 하던 일이니 힘든 건 없어요. 또 보존회 안살림은 이금득 사무국장이 도맡아서 해주니까, 참 고마워요. 어떨 때는 새벽 세시까지 야근하기도 하는데, 따로 월급이 없어서 미안하기도 하고요. 사무국장에게도 적절한 대우를 해주고 싶은데 그게 참 쉽지 않네요.
그리고 이건 좀 예민한 부분인데요. 예전에 비해 우리 정선아리랑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그러다보니 무대도 많이 생기고 대우가 좋아졌잖아요. 그래서 회원들이 오디션에서 떨어지거나, 어떤 명단에서 제외되면 섭섭해 하는 경우가 더러 있어요. ‘쟤는 되고 난 왜 안 돼?’ 하는…. 그래서 분위기도 조금 가라앉기도 하는데, 이럴 때 추스르는 게 좀 힘든 일이지요. 하지만 보존회 전체로 보면 이런 경쟁의식이 생기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봐요. 더 열심히 하게 되니까요.
◇정선아리랑의 특별한 매력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노래잖아요. 정선아리랑은 그 본류고요. 그래서 더 감정이 잘 전달되는 것 같아요. 지금도 무대에서서 긴 아라리를 하고 내려오면 마음이 참 구슬퍼져요. 정선 사투리로 ‘청승이 뚝뚝 떨어진다’그러지요. 이렇게 한국 사람이라면 저절로 감정이 몰입될 수 있다는 부분이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싶어요. 물론 다른 예술도 그런 부분이 있겠지만, 정선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노래라 더 쉽게 감정이 전달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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