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석배 정선아리랑 전수조교
2004년 정선아리랑 전수회장을 맡고 있던 장석배 선생은 정선오일장터에 나가서 공연을 해보기로 했다. 아리랑 할 줄 아는 사람으로 14명을 모집하고, 운영하던 식당에 있던 노래방 기기 앰프 하나, 마이크 두개를 가져왔다. 북, 장구, 물박 등 악기도 필요해 사비 200만원을 들여 마련했다.
공연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돌아가면서 아리랑을 부르는 수준이었다. 장터 무료공연은 날씨도 가리지 않았다. 비나 눈이 오면 담벼락 처마 아래에서 아리랑을 불렀다. 그렇다고 보수가 나오는 것은 아니었고 단지 민예총 기금으로 점심 정도만 해결할 수 있을 뿐이었다. 주변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았다. 정선아리랑의 홍보와 정선 5일장 활성화라는 나름의 명분이 있었지만 정작 주변 상인들은 시끄럽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장터 공연은 몇 년이나 하셨어요?
3년을 하루도 안 빠지고 했어요. 그 뒤로 정선군에 ‘장터 상설공연도 아리랑 창극처럼 보수를 좀 줬으면 좋겠다’고 건의를 해서 받아들여졌지요. 그러니까 장터공연이 보수를 받게 된 건 공연 시작한 지 5년이 지나서 부터지요. 지금은 위에 비가림막도 씌워주고 공연 규모도 커졌지요. 뿐만 아니라 정선장 뿐만 아니라 임계, 여량, 사북, 고한, 남면 다 하잖아요. 보수도 주니까 지금은 서로 하려고 할 정도지요. 그렇게 고생을 하며 해온 일들이 이제는 많이 인정해주는 것 같아서, 장터공연만 보면 참 기분이 좋아요. 뿌듯하지요.
아리랑은 원래 즐겨 하셨나요?
어려서부터 좋아했어요. 저희 집안이 봉정리에서 5대째 살고 있으니까요. 아리랑은 어려서부터 들었지요. 부모님이 두분 다 아리랑을 잘하셨는데, 아버지께 좀 가르쳐달라니 ‘그걸 배워서 뭐하느냐’고 안 가르쳐 주시더라고요. 18세 때 4H회장을 맡았는데 그때 동네 형들하고 어울려 다니며 배웠지요. 스물일곱 되던 해에는 이장을 맡았거든요. 근데 동네 이장은 동네 대표자니까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같이 놀아도 괜찮다고 승낙을 해줬어요. 그래서 어르신들한테 아라리 한마디씩 배우고 술도 사드리고 했지요.
학교에서 아이들도 가르쳤어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여기 봉정국민학교가 있었거든요. 그 때 라디오 보급되고 시대가 변하면서 도통 아리랑을 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학교 선생님한테 얘기를 해서 저녁때마다 학생들을 모아놓고 아리랑을 가르쳤지요. 한 3년 하니까 감사패도 주더라고요. 또 1978년도에 정선아리랑 인재 발굴 경창대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1등을 했어요. 그 때 상을 받으니 정선군에서 아리랑을 본격적으로 하라고 제의하는데 이장을 맡고 있으니 길도 닦아야 되고, 상수도도 해야 되고 도저히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고는 한 집의 가장이니 농사도 짓고, 조그맣게 사업도 했어요. 그러다가 2002년 여량 정선아리랑전수회관 근처에 한우가든이라고 식당을 맡았는데, 그 식당을 하면서 아리랑하고 다시 인연이 됐지요.
음반도 내셨지요?
네, 2007년도에요. 정선아리랑전수회장도 맡고, 아리랑창극, 장터공연까지 하다 보니 음반도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판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지요. 그런데 판을 내고 안 좋은 소리도 많이 들었어요. 저는 돈을 벌려는 욕심도 아니고 옳은 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한 건데, 참 억울했지요. 사실 어느 분야나 그렇지만 특히 예술은 서로 시기가 많거든요. 정선아리랑 한다는 사람 중에 눈물 안 흘려본 사람 없을 겁니다.
그래도 아리랑 배운 덕분에 이 나이가 되어서도 즐겁게 지내고 있어요. 참 고마운 친구 같아요. 정선군 전체로 봐도 정선아리랑은 선조들이 물려주신 훌륭한 유산이에요. 일단 관광 홍보도 많이 되고요. 또 국가 예산 배정이나 문화적인 배려에도 정선아리랑이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잖아요. 고마운 일이지요.
BEST 뉴스
-
“몸의 균형은 발에서 시작… 건강수명 늘리려면 매일 빠르게 걸어야”
“허리가 아픈 것도, 무릎이 무너지는 것도 시작은 발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족부학 명장 1호’인 이재욱(사진) 교수가 최근 정선을 찾아 “발은 단순한 신체 말단이 아니라 몸 전체 균형의 출발점”이라며 발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건강수명을 늘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에 맞는 자세로 매일 꾸준히... -
35세 정선 청년, 경북대 교수 되다… 박영기 교수의 멈추지 않은 도전
정선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박영기(35 사진) 교수가 지난해 3월 경북대학교 섬유패션디자인학부 섬유공학전공 조교수로 임용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지역 후배들에게 새로운 도전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박 교수는 정선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단국대학교 파이버시스템공학부에 진... -
“영어 배우는 91세 만학도”… 오늘도 인생의 사과나무를 심는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 오래전 누군가 남긴 이 말은 희망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비유로 남아 있다. 그리고 지금, 정선의 작은 교실 한편에서는 그 문장을 삶으로 살아내는 한 노인이 있다. 매주 월요일 아침. 정선읍 애산리 여성회관 영어회화 교실. 문이... -
정선, 인생 2막 도시로 떠오르다… 2년 새 1499명 늘었다
한때 정선은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이 더 익숙한 곳이었다. 탄광의 불이 꺼진 뒤 젊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향했고, 빈집 처마 밑에는 먼지만 쌓였다. 시장 골목의 간판은 하나둘 빛을 잃었고, 산 아래 마을에는 “언젠가는 사라질지 모른다”는 체념 같은 말이 오래 남아 있었다. 하지만 ... -
강원 시니어클럽 한자리에… ‘노인일자리 해법’ 머리 맞댔다
강원특별자치도 15개 시·군 시니어클럽 기관장과 관계자들이 정선에 모여 노인일자리 사업의 발전 방향과 지역 간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정선군은 9일 정선군가족센터 대강당에서 ‘2026년 강원특별자치도시니어클럽협회 기관장 회의(사진)’를 개최했다. 이번 회의는 강원특별자치도시니어클럽협회가 주최하... -
25년 전 장학생, 세계적 석학 되어 고향 로타리 찾았다
“25년 전 고한로타리클럽의 따뜻한 격려와 지원이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세계적인 구조공학·지진공학 석학으로 성장한 권오성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교수가 8일 고향 정선을 찾아 25년 전 자신을 해외 유학길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준 고한로타리클럽 회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