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로 그린 5월의 변화: 정선, 복지의 문턱을 낮추다 … ‘그냥드림’ 먹거리 안전망 구축
강원도 산골, 정선의 봄은 늘 늦게 왔다.
햇살은 분명 따뜻해졌는데, 사람들의 삶은 아직 겨울을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아침마다 ‘나눔냉장고’ 앞에 서는 여자가 있었다.
순자.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
하지만 그녀의 하루는 여전히 ‘사는 것’보다 ‘버티는 것’에 가까웠다.
냉장고 문을 열기 전, 그녀는 늘 주변을 살폈다.
누가 보고 있지는 않은지, 괜히 눈이 마주치지는 않는지. 그 짧은 망설임은 어느새 습관이 되어 있었다.
“오늘은… 있겠지…”
작게 중얼거리며 문을 연다. 두부 한 모, 달걀 몇 개, 작은 반찬통. 그날도 누군가의 손길이 남아 있었다.
순자는 한참을 바라보다가 두부를 집었다. 그러다 다시 내려놓았다.
“더 급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돌아섰다.
그날 점심은 김치에 물을 말아 먹었다.
배는 채워졌지만, 마음은 비어 있었다.
그 무렵, 마을에는 또 하나의 변화가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통장에 찍히는 숫자.
15만 원.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이게… 나한테 들어온다고?”
순자는 통장을 몇 번이나 다시 들여다봤다.
농어촌 기본소득. 큰돈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던 상태’에서 생긴 돈은, 그 자체로 다른 의미였다.
그날, 순자는 오랜만에 시장에 갔다.
“어르신, 뭐 드릴까요?”
“…달걀 한 판 줘.”
입 밖으로 나온 말이 스스로도 낯설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녀의 밥상에는 계란국이 올라왔다.
“이렇게 먹는 게… 얼마 만이냐…”
한 숟가락을 떠먹으며 그녀는 작게 웃었다.
그건 배부름 때문이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먹는다’는 감각 때문이었다.
그 무렵, 군청에서는 새로운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그냥드림 사업, 이번에 제대로 해봅시다.”
회의실 안,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증빙 없이, 조건 없이, 필요한 사람이면 누구나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사업의 목적입니다.”
누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면… 한 사람이 많이 가져갈 수 있는데, 남용될 소지가 있는 건 아닐까요?”
잠시 침묵. 그리고 한 사람이 말했다.
“못 받아서 굶는 것보다 낫죠. 많이 가져간다고 큰 문제일까요?”
그 말에 더 이상 반론은 나오지 않았다.
5월이 시작되던 날, 마을 나눔냉장고 앞에는 작은 변화가 생겼다.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물건들이 채워져 있었다.
쌀, 라면, 통조림, 생필품. 이전보다 훨씬 풍성해진 물건들. 그리고 붙어 있는 한 문장.
“필요하신 만큼, 그냥 가져가세요.”
순자는 그 문장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그냥.’ 그 단어가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그냥… 가져가도 된다고…?”
순자는 그 앞에 오래 서 있었다. ‘그냥.’ 그 말이 마음을 붙잡았다.
누구에게 허락받지 않아도 되고, 사정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말.
그녀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달걀 한 판을 꺼내고, 두부를 하나 더 집었다.
그리고 잠시 멈췄다가 라면 한 봉지도 함께 넣었다.
손이 떨렸다. 그건 죄책감이 아니라, 오랜만에 느끼는 ‘선택할 수 있음’ 때문이었다.
그날 저녁, 순자의 집에서는 다시 냄비에서 김이 올랐다. 계란국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조금 달랐다.
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제는… 버티는 게 아니라…”
말을 끝내지 못했지만, 그 의미는 분명했다.
며칠 뒤, 마을에 차 한 대가 들어왔다.
정선지역자활센터 직원들이었다.
“불편한 거 없으세요?”
사람들은 처음엔 경계했다.
하지만 그들은 캐묻지 않았다.
대신, 아주 단순하게 물었다.
“필요한 거 있으세요?”
그 질문은 이상하게도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다.
순자는 망설이다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쌀이 조금… 필요해요.”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녀에게는 큰 용기였다.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해결해 보죠.”
그날 이후, 순자의 집에는 쌀이 끊기지 않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녀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어느 날, 순자는 다시 통장을 펼쳐봤다.
15만 원. 그리고 냉장고 안에는 며칠은 버틸 수 있는 음식들. 그 녀는 가만히 앉아 생각했다.
‘ 이건… 하나만으로 되는 게 아니구나…’
기본소득이 하루를 버틸 힘을 주고, ‘그냥드림’이 그 하루를 사람답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저녁, 마을회관. 사람들이 모였다.
“이거 계속했으면 좋겠어요.”
“진짜 도움이 됩니다.”
누군가 말했다.
“이제는… 밥 먹는 게 덜 무서워요.”
그 말에 조용히 고개들이 끄덕여졌다.
순자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그냥 주는 게 아니네…’, ‘사람을… 다시 살게 하는 거네…’
그날 밤. 순자는 냉장고에서 달걀을 꺼내며 작게 웃었다.
“…고맙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몰랐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돈과, 그 냉장고와, 그 사람들 덕분에 그녀의 삶이 조금 덜 춥고, 조금 더 따뜻해졌다는 사실이었다.
정선의 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밤은 여전히 조용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삶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버티는 것에서, 살아가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고한읍 고한구공탄시장 광장에 설치된 공유냉장고 '야생화마을 나눔곳간'. 2024년 11월 초 개소식 장면>
기사=정선군 보건복지부‘그냥드림’ 사업 선정
정선군은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먹거리 기본보장 사업인‘그냥드림’사업에 선정돼 오는 5월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그냥드림’은 경제적 문제로 식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주민들에게 별도의 소득 증빙이나 복잡한 절차 없이 식품과 생필품 등을 지원하는 사회적 안전망 사업이다.
특히 기존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거나 사회적 편견 등으로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식생활 취약계층까지 지원 범위를 확대해 복지 사각지대를 완화하기 위해 추진된다.
이번 사업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개인 이용자에게만 식품을 우선 지원하던 기존 푸드뱅크 제도를 보완하는 성격을 갖고 있으며, 복지 사각지대 완화와 함께 정선군이 추진하고 있는 기본사회 실현 기조에 맞춘 방식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군은 넓은 지역에 인구가 분산된 지역 특성을 고려해 지역 맞춤형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한다.
한 곳에 거점을 두는 방식이 아닌 읍·면별로 설치된 ‘나눔냉장고’를 거점으로 물품을 지원하는 공급 방식을 적용해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주민들의 접근성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주민들이 먼 거리를 이동하지 않고도 생활권 인근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고, 기존 ‘나눔냉장고’와 연계한 물품 지원 체계를 통해 보다 효율적인 운영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군은 지역 내 ‘그냥드림’ 사업 관리와 운영을 위해 민관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수행기관인 정선지역자활센터가 읍·면을 순회하며 물품 지원과 함께 현장 상담을 진행하는 찾아가는 방식의 복지서비스를 강화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현장에서 발굴된 위기가구는 즉시 읍·면 맞춤형복지팀과 연계해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통합 사례관리 체계도 함께 운영한다.
군은 이번 사업을 통해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식생활 취약계층을 더욱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민관 협력 기반의 촘촘한 복지 안전망을 구축해 나갈 방침이다.
이상만 복지과장은 “사업 시행에 앞서 물품 수급 체계와 운영 일정 등을 정비하고 5월 본격 운영에 맞춰 주민 홍보와 협력체계 구축에 온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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