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12경은 1997년 영월댐 건설의 급박한 시기에 시민단체와 뜻있는 주민이 동강이 시작되는 정선 가수리에서부터 평창 미탄을 거쳐 영월댐 건설예정지 섭새까지 수없는 답사결과로 탄생하였다.
이는 동강 유역의 생태문화적 경관을 국내외로 널리 알려 동강 댐건설을 저지해 동강의 총체적 자연과 문화유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자는 취지였다.
이곳은 계절에 따라 독특한 자연경관을 연출하고 생명들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다.
어름치와 수달이 헤엄치고 비오리, 원앙이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주민의 생활과 역사문화를 담고 있다.
동강을 따라 흐르면서 동강 제1경부터 12경의 정겨움을 살피며 걸어보자.
백룡동굴은 ‘동강 12경’ 중 제8경이다. 순서가 상류에서부터 8번째이지 백룡동굴은 백운산과 함께 동강의 핵으로 동강할미꽃과 같이 동강을 수몰에서 지켜낸 일등공신이다. 당연히 동강 12경의 제일 첫자리가 마땅하다.
동강12경은 1999년 6월 1일 연합뉴스에 처음 보도되었고, 신문으로는 한국일보에서 최초로 소개되었다. 책자로는 아리랑연구가 진용선 씨의 동강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동강 아리랑』에 처음 소개하고, 소나무 시로 유명한 박희진 시인과 현대 진경산수화의 대가 이호신 화백 두 분이 동강을 수차례 답사하여 맺은 결실로 시화집 『東江 十二景』으로 동강을 예찬하고 아름다운 시와 그림으로 녹여 넣었다. 최초의 동강지도는 1999년 수문출판사에서 <동강안내도>를 물에 젖지 않고 찢어지지 않는 재질로 제작 발행하여 동강의 기본 지도가 되었다.
백룡동굴은 평창 미탄에서 42번 국도로 정선으로 넘어가다 남으로 창리천을 따라 수하계곡을 흘러 동강으로 합류하는 마하리 본동 합수머리 진탄나루에서부터 맑은 샘과 여울들을 거슬러 올라간다. 더 이상 백운산 칠족령 줄기 뼝대에 길이 막힌 문희마을에서 끝난다. 전화가 1984년 간첩 침투 신고용으로 처음 마을에 들어올 정도로 오지였다. 문희라는 이름은 마을의 전설 속에 나오는 암캐의 이름으로 옻이 묻은 발로 백운산을 넘나들어 옻 칠(漆), 발 족(足) 자로 칠족령(漆足嶺)이 되었다.
전설적인 칠족령은 정선에서 영월 평창으로 넘어가는 백운산의 옛길 고개 마루다. 거대한 성황나무가가 있는 쉼터에 동강제일의 경관을 자랑하는 칠족령전망대가 있다. 반대편 산 넘어 아랫마을은 햇볕이 잘 드는 정선의 신동 땅 제장마을이다. 이 길은 최근 2022년 국가명승으로 지정되었다.
백룡동굴은 문희마을의 칠족령 서북쪽 험한 뼝대에 물길에서 높이 15m에 동굴이 있다. 맞은편 강 건너 마을이 절매이고, 동굴을 처음 발견한 정무룡 씨 집에서 정면으로 보인다. 문희마을은 평창 땅이고, 절매는 영월 땅 그리고 칠족령은 정선 땅이다, 백룡동굴은 영평정, 정선군과 영월군, 평창군의 접점으로 오지 중에서도 그 한가운데에 있다.
지금은 미탄에서 차량이 들어갈 수 있는 동강의 끝이 문희마을이지만, 25여 년 전 동강 영원댐 건설이 한참 밀고 당길 당시 차는 마하 본동에서 끝이다. 여기서 진탄나루를 거쳐 많은 여울과 소와 샘이 흐르는 험한 돌밭 길을 도보로 한 시간 이상 동강과 속삭이며 꿈속 같은 길을 걸어야 했다.
마하리는 아름다운 기화천을 따라 내려오면 말 바위가 있는 물가 마을로, 이제는 각종 체험과 관광으로 새롭게 등장한 어름치마을이 되었다. 넓은 주차장과 동강생태민물박물관이 있고. 출렁다리가 있으며 동강 래프팅의 원조 동강레포츠의 김정하 대표가 여전히 마을 어른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백룡동굴은 절매마을의 정무룡 씨가 1976년 1월에 처음 발견해 동굴 속에서 주먹만 한 구멍으로 박쥐가 드나드는 것을 보고 마을 주민 4명과 같이 작은 구멍을 나흘간 밤낮으로 망치와 정으로 뚫어 겨우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구멍을 만들어 신비의 세계로 들어갔다.
이름은 백운산(白雲山)의 백(白) 자, 정무룡(鄭武龍), 몽룡 형제의 돌림 룡(龍) 자를 따 백룡(白龍)동굴이라 지었다. 정무룡 씨는 동굴 발견을 정부에 신고했다.
1977년 한국동굴보존협회에서 학술조사를 하고, 1979년 문화재청에서 천연기념물 제260호로 지정해 학술연구 외는 영구 비공개동굴이 되었다. 그리고 강원대 지질학과에서 1999년 영월댐 수몰지 동굴 세부 조사를 했다. 총길이 1,875m, 네 개의 굴로 이루어져 총면적 956㎡이며, 주 동굴은 780m이다.
백룡동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6년 동강에 영월댐 건설계획을 발표해 수장될 위기에서, 동굴사진작가 석동일 씨에 의해 알려졌다. 백룡동굴은 영월댐 건설 반대 운동에서 동강할미꽃과 보존운동의 항상 맨 앞에 있었다. 2000년 정부의 김대중 대통령이 6월 5일 환경의 날 동강댐 백지화 선언으로 기사회생하게 되어 동강할미꽃과 함께 댐 백지화의 일등공신으로 동강의 주인 자리를 지켜냈다.
백룡동굴 주변 뼝대는 한국특산종 동강할미꽃의 자생지이기도 하며, 많은 탐방객으로 인해 훼손위기에 처해 있기도 하다. 이를 백룡동굴과 함께 절매의 정무령 씨의 극진한 보살핌에 지금도 아름다운 자태로 피고 지고 있다.
우리는 동강댐 반대운동 당시에 비공개 백룡동굴의 신비를 안겨주기 위해 동강 래프팅 탐사와 절매 뒷 능암덕산 넘어 베틀굴 탐방으로 동강의 절경과 동굴 신비감을 체험하도록 다양한 코스 답사를 했다.
백룡동굴은 천연의 험한 절벽에 있어 완전하게 경관이 보전되어 왔으며 2010년 7월 16일부터 백룡동굴 생태체험학습장으로 780m의 주 동굴이 제한 공개되며 뼝대에 300여m의 긴 탐방로가 개설되었다. 현재는 낙석으로 훼손되어 사용이 중지되어 경관이 크게 망그러져 흉물스런 괴물이 되어있다.
백룡동굴체험은 문희마을 중앙에 있는 백룡동굴탐방센터에서 시작한다. 현대식 3층 건물에 대한민국 유일의 탐험동굴이라는 자긍심이 대단하다.
아침 9시부터 8차례 20명씩 그룹으로 체험 팀을 이루어 2층을 통해 뒷 건물로 이동해 답사에 필요한 오징어게임에서의 붉은 원피스타입의 탐험복을 지급 받아 탈의실에서 갈아입고 장화와 랜턴이 달린 헬맷을 지급받고 벨트를 매어 준비를 끝낸다. 모여 복장 확인과 동굴해설사의 주의사항을 듣고 이동해 절매나루에서 인상 좋은 문희마을 터줏대감 김삼용 선장의 백룡호에 승선한다.
백룡호는 나루를 출발해 절매로 향해 동강 중심으로 들어 물길을 거슬려 올라 뼝대 밑으로 서서히 이동해 접안한다. 25m여의 돌계단을 올라 박쥐 도안의 철문 앞에 모여 동굴탐험의 주의 사항과 특히 훼손에 절대 유념해 달라고 당부를 하고 박쥐문장의 철문이 철거덕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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