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청사 재재자적(幽人淸事 纔在自適) 고주이불권위환(故酒以不勸爲歡)기이부쟁위승(棋以不爭爲勝) 적이무강위적(笛以無腔爲適) 금이무헌위고(琴以無絃爲高) 회이불기약위진솔(會以不期約爲眞率) 객이불영송위탄이(客以不迎送爲坦夷)약일견문니적(若一牽文泥跡) 변락진세고해의(便落塵世苦海矣).
은둔자의 맑은 흥취는 모두가 유유자적에 있다. 그러므로 술은 권하지 않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고, 바둑은 승패를 다투지 않는 것으로 참된 승부를 삼으며, 구멍 없는 피리와 줄 없는 거문고로써 어떤 음악에도 구애되지 않는 것을 고상하게 여기고, 만남은 기약하지 않는 것을 참됨으로 삼으며, 손님은 마중과 배웅하지 않는 것이 서로 스스럼없다고 여긴다. 만약 한번 겉치레에 이끌리고 형식에 얽매인다면, 곧 속세의 고해(苦海)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중국 동진 때의 서예가인 왕희지는 유유자적한 마음으로 살고 있던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밤에 큰 눈이 내려 세상이 온통 은세계로 변했다. 그는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나 무심코 창문을 열었더니 천지가 하얗게 변해있었다. 그는 하얀 세상에 이끌려 밖으로 나와 눈길을 거닐다 문득 멀리 사는 친구 생각이 나, 한밤중 임에도 불구하고 배를 타고 노를 저어 친구에게로 갔답니다.
밤새도록 노를 저어 새벽녘에야 친구의 집 근처에 도착했으나 그는 친구를 만나지 않고 그냥 돌아와 버렸답니다.
이 사실을 안 지인이 그에게 그 까닭을 물으니 그는 “나 스스로 흥에 취해 친구를 찾아 갔다가 흥이 다해 돌아왔는데, 굳이 친구를 꼭 만나볼 필요가 있겠냐?”고 했답니다.
그는 친구를 소중히 여기지 않아 만나지 않고 그냥 돌아온 것이 아니라 하얗게 변해버린 세상을 보는 순간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자신의 흥겨운 감정을 조금이라도 더 유지하고 싶어 친구를 만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친구를 찾아 갔으면 꼭 친구를 만나야 한다는 형식적인 일에 구애를 받지 않는 그의 유유자적한 자유로운 삶의 일면을 보여준 것이지요.
채근담 후 집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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