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사람이 ‘관광 정선’을 고민하다-⑥ 서덕웅 문화관광해설사
-경상도 출신, 솔향 못 잊어 귤암리로 귀농
-“가족단위 관광객들 정선에서 ‘힐링’ 원해”
◇원래 정선 분은 아니시죠?
경상남도 진주가 고향입니다. 고향에서 중학교까지 나오고 부산에서 고등학교, 대학교부터는 쭉 서울에서 생활했습니다. 대학졸업 후에는 현대자동차에서 25년 근무했지요.
제가 정선에 처음 와본 건 1993년이었어요. 그때가 가리왕산 자연휴양림이 처음 개장하던 해인데, 친구들과 같이 내려와 가리왕산 휴양림에서 묵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어찌나 공기가 상쾌하고 좋든지요. 특히 코 끝에 닿았던 향긋한 솔향은 잊혀지지가 않더라구요.
그러고는 몇 년 있다가 서울생활이 지겨워졌습니다. 처음에는 고향 근처로 내려갈까도 생각해봤어요. 그런데 부모님 다 여의고, 또 고향을 일찍 떠났으니 남아있는 친구들도 별로 없더라구요. 사회생활 하면서 사귄 서울 지인들 찾아올 생각하니 진주는 너무 멀기도 하구요.
그때 그 가리왕산에서 맡았던 솔향이 떠올랐고, 교통 때문에 진부나 평창 쪽으로도 찾아봤는데, 결국 인연이 닿았던 귤암리로 내려오게 됐지요. 2000년에 땅을 조금 사서 그곳에 집을 지었지요.
◇정선의 자연에 반해 내려오셨는데, 정선사람들과는 잘 어울리셨나요?
텃새가 없었다면 거짓말이지요. 정선으로 내려올 당시엔 저도 55세였으니 혈기도 꽤 남아있었지요. 갈등도 있었고요. 제가 정선에 내려온 지 벌써 15년이 됐지만 지금도 서운할 때가 있는걸요.
그래도 이미 다 지난 일이고, 이제는 저도 정선사람들과 융화가 됐다고 봐요.
사실 정선 분들은 심성이 참 고우세요. 저는 여느 경상도 남자들처럼 좀 퉁명스럽고 직설적이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이 곳에 융화되는 과정에서 생겨나야할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문화관광해설사는 어떻게 하게 되셨어요?
2000년도에 내려와서는 어찌하다 당시 문화원장이었던 배선기 씨를 알게 됐어요. 그 분이 추천해 문화유산해설사(이후 문화관광해설사로 명칭이 변경됨)를 하게 됐어요. 1기로 저 포함해서 세 명이 교육을 받고 일했습니다. 일은 재미있는데 보수가 많지는 않아요.
당시만 해도 정선에 찾아오는 관광객이 별로 없었어요. 숙암 약수터에 안내소 하나 만들고 그곳에서 일했습니다. 진부 쪽에서 들어오는 관광객들에게 길 안내 해주는 수준이었지요.
지금은 여러 관광지가 개발돼, 저희가 설명해야 할 것이 많아졌지만, 당시만 해도 정암사 등 몇 곳 외에는 찾는 이가 없었거든요.
◇정선관광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90년대 까지만 해도 ‘관광’이라 하면, 직장 동료나 친목계원들이 하루 이틀 먹고 마시고는 기념사진 좀 찍는 게 고작이었지요. 지금은 많이 바뀌었어요. 제가 만나는 관광객들만 봐도 ‘치료’를 위해서 정선을 찾는 경우가 많아요. 요즘말로 하면 ‘힐링’이지요.
도심을 떠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조용히 지내면서, 한 두 가지 체험도 해보는, 그런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많아요.
이런 사람들의 만족도를 높이려면, 정선의 관광산업도 ‘건강’과 ‘교육’이라는 두 가지 명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봐요. 그런 점에서 정선의 관광자원은 참 훌륭해요. 제가 뭔가를 설명할 겨를도 없이 관광객들의 입에서 ‘아~ 좋다’라는 감탄사가 나오니까요. 일단 공기가, 그리고 풍광이 좋다는 거지요.
마케팅을 위해서는 꾸며진 인공적인 관광자원도 일부 필요하겠지만, 조금 투박하고 불편해도 그 자체의 매력을 살리는 게 정선과 어울린다고 봅니다. 여기에 조금 더하자면 건강에 좋은 먹거리가 필요해요. 요즘 분들은 좀 비싸더라도 건강에 좋은 것을 찾거든요. 이건 주민 수입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교육적인 관광지도 개발되면 좋을 것 같아요. 정선은 지질학적 가치가 큰 지역이고, 아직 자라나고 있는 화암동굴의 석순, 그리고 한국 산업발전사의 한 부분으로 폐광된 탄광들도 많고요. 아라리촌에서는 양반전을 통해 조선후기 사회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요. 이런 것들이 다 교육과 연결되지요.
◇정선군의 발전을 위해서는 선생처럼 귀농하려는 사람들도 큰 자산일 수 있는데, 많이 늘릴 수 없을까요?
이 질문은 조심스럽네요. 그래도 얘기하자면, 외지인이 이곳에 내려와 정착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봐요. 그냥 요양 목적으로 내려오거나, 산속에서 혼자 신선처럼 지내겠다면 별 문제 없겠지요.
하지만 정선의 지역사회에 어울려 살려 한다면 쉽지 않아요. 지연·혈연·학연으로 다 묶여있는 사회이고, 여기에 외지인이 와서 섞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구조니까요. 문화적·감성적인 부분이라 지자체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요.
그런데 이건 어느 시골 지역이나 마찬가지 일거에요. 어찌됐든 먼저 변화하는 곳이 경쟁력을 갖기는 하겠지요. 귀농인과 현지인들의 상호간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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