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8남매 형제 중 제가 일곱째이고 네 살 차이인 남동생이 막내였답니다. 제가 막내로 귀염 받다가 어느 날 느닷없이 머리가 나보다 더 큰 아이가 나타나 막내라고 귀여움을 독차지하니, 어린 나이에 귀여움 보다는 미움이(아마도 그것이 제 심술의 원천이 아닌가?) 많았나 봅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입학했는데 엄마는 막내만 젖을 주고 저는 주지 않아서 학교를 장기 결석을 해 (젖을 못 먹어 아마도 걸을 기운이 없었는지) 휴학을 하고 다음 해에 다시 입학을 해, 지난 해 같이 입학했던 이웃집 친구가 평생 1년 선배가 되었답니다.
그리고 우리 집 대문 앞에 바로 아랫집이 있는데 돌로 쌓은 축대 높이가 대략 6m는 족히 되고 구기자나무 덩굴이 무성했었는데, 그 앞에 앉아 있는 막내를 겁을 준다고 하는 것이 실수로 축대 아래로 떨어졌는데 다행히 구기자 덩굴에 걸리고 굴뚝에 부딪치고 하는 바람에 찰과상만 입었지요. 그때 만약 잘못 됐다면 생각만하도 끔찍한 일이였지요. 그러니 동생도 제가 미웠겠지요.
장독대에 내 키만 한 큰 독이 서너 개 있는데 그 중 한 독에 콩가루가 항상 있어서 (밥에 콩가루를 섞어 주먹만 하게 만들어 먹고 다니면 아주 맛이 좋답니다.) 콩가루를 몰래 꺼내려 하는데 독이 깊으니 몸은 독 안에 거꾸로 박혀있고 두 발만 밖에 달랑 달랑 거리는데 동생이 발을 툭 밀어서 내가 독 속에 거꾸로 빠졌으니 나 죽는다고 소리소리 질러 식구들이 와서 독을 옆으로 쓰러트려 기어 나와서 작대기 하나 들고 동생을 잡으려고 쫓다가 샘물가 돌에 걸려 쌍코피 터지고, 무릎 까지고, 내 몹쓸 심술의 발단인지 동생을 많이 때렸습니다.
내 아우님에게 정중히 사과함세. “아우님 미안해! 우리 어렸을 때 일이었고, 크면서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중 동생의 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면 좋겠소. 용서해 주시구려!”
그리고 엄마는 1년에 한두 번 화덕에 고기를 구우시면, 우리는 접시 하나씩을 들고 나이 순서대로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한번 차례가 와서 고기 한 점 받고 나서는 다시 끝에 가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줄은 길고, 고기는 왜 그리도 더디 익는지, 그래 고기를 씹지 않고 빨아 가면서 기다렸지요.
그리고 내 앞 자리가 바로 두살 위인 누나 자리이고 뒤에는 막내인데 누이 앞으로 새치기 하다가, 누이 손톱에 얼굴을 할퀴어, 그렇게 어려서 얼굴에 많았던 그 생채기가 아직도 조금은 남아 있는 듯도 하답니다. 그리고 방 하나에서 이불 하나로 부채살 잠을 자다가 내 오줌을 싸 집단 구타도 당하고, 헌데 지금은 부모님과 형들은 떠나시고 누나 셋에 막내 동생은 미국에서 이민 살이 하고, 보고 싶은 형제를 자주 볼 수 없으니, 그저 살아들 계시다는 것만으로 위로하며 살다보니, 보고 싶은 형제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움의 기쁨을 누리게 되더군요.
생채기
일 년에 한두 번 씩 엄마는 부엌 화덕에 고기를 구우신다.
우리 팔남매는 접시 하나씩을 들고 나이순으로 줄을 서서
고기 한 점씩 받아먹고는 다시 줄을 서고
고기는 더디게 익고 줄은 길기도 길어
입 속의 고기를 빨아가며 차례를 기다렸지
팔남매 중 일곱째인 나는 막내 남동생과 두 살 위인 누나 그 사이가
내 자리인데 누나 앞을 가끔 새치기 하다 누이의 손톱에 얼굴을 할퀴어
생긴 얼굴의 생채기
나이 육십이 지나서도 그 생채기가 몇 군데 남아 있는 듯도 하다.
그래 그 생채기가 지워지지 않고 오래 오래 있어주면 좋겠다.
부모님에 형님들은 떠나시고 누이 셋에 막내 동생은 미국 이민 살고
나도 이제 떠날 날이 가까워지고…
거울 앞에서 그 생채기를 볼 때마다 봄 안개처럼 피워 오르는 어린 시절
아련한 추억들에 부모 형제들이 울컥 울컥 보고 싶어진다.
보고 싶어 울컥이는 마음이라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어서다.
BEST 뉴스
-
차 한 잔의 행복- 멋진 노인
대학에서 심리학을 강의한 교수로서 지금은 6년 째 노인 복지 관을 순회하며 강의하는데, 반응이 좋다고 합니다. 추한 노인의 3가지 1)냄새가 나는 노인입니다. 입을 열면 구취(口臭), 몸에서 나는 체취(體臭), 옷에서 나는 의취(衣臭)입니다. 이는 나이 들수록 ... -
[기고] 반려동물 열풍을 바라보며
예로부터 개는 사람이 사는 울타리 안에 깃들어 사는 한 식솔이자 삶의 일부였다. 필자의 어린 시절 기억 속 개는 요즘 말하는 ‘반려’나 ‘애완’ 같은 거창한 수식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잔밥을 치워주고 마당에 드나드는 낯선 발자국을 경계하는 든든한 파수꾼이었으며, 꼬리를 치며 부리는 재... -
차 한 잔의 행복 -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
1569년, 조선 선조 때 퇴계 이황은 69세의 나이가 되자 우찬성(右贊成)의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가려고 했다. 그때 선조는 이황을 끝까지 옆에 두려고 이조 판서의 벼슬을 내렸다. 이황이 끝내 벼슬을 사양하며 낙향을 고집하자 젊은 관료인 율곡 이이가 찾아갔다. “어린 임금께서 즉위하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