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흥주 NPO신동별빛과학마을 이사장

예로부터 개는 사람이 사는 울타리 안에 깃들어 사는 한 식솔이자 삶의 일부였다. 필자의 어린 시절 기억 속 개는 요즘 말하는 ‘반려’나 ‘애완’ 같은 거창한 수식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잔밥을 치워주고 마당에 드나드는 낯선 발자국을 경계하는 든든한 파수꾼이었으며, 꼬리를 치며 부리는 재롱은 고단한 농사일에 작은 웃음을 주는 귀여운 덤이었다.
새 강아지를 들여오는 날이면 어머니는 제 어미나 옛 주인을 찾아가지 못하도록 보자기에 폭 싸 온 녀석을 곡식 까부는 키 위에 올려놓고 몇 차례 흔들어대셨다.
“울 넘어가 오줌 싸고, 재 넘어가 똥 싸라”며 혼을 쏙 빼놓던 어머니의 정겨운 주술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한 번은 강아지가 사랑방 굴뚝 개자리에 숨어들었다가 온통 새까맣게 그을린 채 기어 나온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밤새 큰 짐승의 기척에 놀라 그런 것이라며 애처롭게 강아지를 보듬으셨다.
당시의 개는 실용적인 가축이면서도 떠나보낼 때면 가슴 한쪽이 아릿해지던 묘한 동무였다.
다.
성견이 되면 살림 밑천으로 개장수에게 팔려 가기도 했다.
어린 마음에 부모님이 원망스럽고 개장수가 얄미워 돌을 던지며 엉엉 울던 기억도 아련하다.
충남 홍성의 ‘개방죽’에는 술에 취해 풀밭에서 잠든 주인에게 불길이 번지자, 개가 연못물에 몸을 적셔 불을 끄기를 거듭하다 끝내 주인을 살리고 죽었다는 의견(義犬) 설화가 전해진다.
이처럼 개와 인간은 수천 년 동안 삶의 고락을 함께하며 끈끈한 유대를 맺어왔다.

그러나 오늘날 들불처럼 번지는 ‘반려견·반려묘’ 문화를 보고 있노라면 격세지감과 함께 깊은 우려가 앞선다. 도를 넘은 신격화와 과잉 집착 탓이다.
어린아이를 태우던 유모차에 개가 타고, 부모와 이웃에게 향해야 할 정성과 온기가 동물에게 오롯이 쏟아진다.
대가족제도의 해체와 전통적인 효(孝) 사상의 쇠퇴, 그리고 관계 맺기의 피로감이 낳은 서글픈 단면이다.
무엇보다 미래를 향해 촌음(寸陰)을 아끼며 역량을 쏟아야 할 젊은 세대가 비생산적인 애완 문화에 과도하게 매몰되는 현실은 뼈아프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따르는 희생 대신 통제하기 쉽고 즉각적인 위로를 주는 동물을 택하는 풍조는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두운 그늘인 초저출생 위기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상처받기 두려워 사람과의 관계를 닫아걸고 동물과의 일방적인 소통 속으로 숨는 것은 온전한 치유가 아니라 도피일 수 있다.
동물을 아끼고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정서적 위안을 주는 순기능 또한 분명하다. 그러나 애완(愛玩)은 어디까지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전한 사회활동을 거친 뒤의 ‘여분(餘分)’에 머물러야 마땅하다.
인간에 대한 온기와 책임이 우선하지 않는 반려 문화는 자칫 공허한 자기만족에 그치기 쉽다. 사람 냄새가 먼저 나고 그 온기가 동물에게 자연스럽게 번져가던, 그 옛날 흙마당의 바둑이가 유독 그리워지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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