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정선에서 항매원 사이의 역(驛)이 있던 곳으로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벽탄역은 조선시대 관원들의 공무를 위한 교통기관 역할과 중앙과 지방 고을간의 공문서 전달을 위한 통신기관으로 공물 또는 조세운반에 이용되기도 했다. 역에는 역장, 역리, 역졸 등을 두어 역의관리와 공역 등을 담당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당시 벽탄역은 강원도 역도(驛)인 보안도 소속의 역으로 여량역에 비해 규모는 작았지만 정선군내에 있던 호선역, 당시 강릉군에 속한 임계역보다는 규모는 컸다. 1757년(영조 33)부터 1765(영조 41)까지 펴낸 ‘여지도서(與地圖書)’에는 벽탄역에는 짐을 싣는 말인 복마 3필, 역노 22명, 여종 27명이 있다고 나와 있다.
넘마을
벽탄교에서 벽탄초등학교에 이르는 마을로 줄여서 ‘넘말’, ‘너매마을’이라고도 한다. 오래 전 서면 소재지였던 안말에서 볼 때 새덕 쪽에서 안돌쪽으로 내리 뻗은 노루머리 ‘너머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안말 바깥쪽으로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외촌(外村)이라고도 한다.
외촌(外村)
넘말을 안말 바깥쪽에 있다고 해서 한자로 쓰면 ‘외촌’이라고 한다.
다래들
회동리와 용탄리를 걸쳐 길게 뻗어있는 넓은 들판이다. 북동쪽에서 남동쪽으로 흐르는 하천이 마을에서 완만하게 굽이돌면서 평야를 이룬 곳으로 들판의 지형이 달과 같이 둥근 평지라고 해서 생겨난 이름이라고 하나 ‘산’의 옛말 ‘달’과 ‘들’이 더해저 ‘달애들’, ‘다래들’로 변한 말이다. ‘산 밑의 들판’이라는 뜻이다.
월평(月坪)
다래들을 한자로 쓰면서 ‘다래’는 ‘달 월(月)’로 하고 ‘들’은 ‘들 평(坪)으로 하여 ’월평‘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고려시대인 1310년(충선왕 2)부터 1353(공민왕 2)정선군으로 변경되어 봉양리로 이전하기 전까지 침봉군의 소재지가 있던 곳으로 당시 5리마다 표송을 심었다는 얘기가 전해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