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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퉁이마다 동심을 태우고, 반세기를 달렸다

  • 임학빈 기자
  • 입력 2026.10.01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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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선 출신 남진원 작가, 작품 6편 교과서 수록…고향이 다시 읽어야 할 문학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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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버스가

숨바꼭질 한다

굽이굽이

숨었다 나타나고

나타났다 숨고

또 찾았다

또 숨었다

종일

산과 버스가

숨바꼭질 한다

 

정선읍 출신 아동문학가 남진원(73)의 동시 「산골 버스」다. 

「가을 한낮」, 「어머니」, 「그때 그 고향집」 등 5편과 함께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어린이들을 만난 작품이다. 그의 시는 책가방에 담겨 등교했고, 교실에서 아이들의 목소리로 살아났다.

산모퉁이를 돌아 버스가 쏙 사라진다. 

다음 굽이에서 빼꼼 모습을 내밀더니 이내 또 숨는다. 어른이 굽은 길을 보는 동안 시인은 숨바꼭질을 발견했다. 

산과 버스는 서로 숨고 찾는 놀이 친구가 된다.

 

“또 찾았다”와 “또 숨었다” 사이에는 놀이의 박자가 있다. 

짧은 행을 따라 읽다 보면 눈길이 저절로 다음 모퉁이를 기웃거린다. 

“종일”이라는 말은 그 놀이를 오래 이어준다. 숨으면 기다리고, 나타나면 반긴다. 목적지까지 남은 시간을 헤아리던 어른도 잠깐은 창밖을 보는 아이가 된다.

 

교과서 속 동시를 기억하면서도 시인의 이름은 잊은 독자가 있을 것이다. 

산과 버스의 숨바꼭질은 머릿속에 남아 있지만, 그 풍경을 시로 옮긴 사람이 정선 출신이라는 사실은 낯설 수 있다. 고향에서 그의 작품을 다시 펼쳐볼 이유다.

「산골 버스」를 읽으면 정선 사람들이 몸으로 아는 산길이 떠오른다. 

 

산자락을 감아 돌다가 골짜기로 내려앉고, 고개 하나를 넘으면 또 다른 산이 앞을 채우는 길이다. 어린 시절 차창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방금 지나온 길을 찾던 기억도 따라온다.

시에는 정선이라는 지명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고향 독자들은 그 안에서 익숙한 굽이를 알아볼 수 있다. 날마다 오가던 길이 시 한 편을 만나 아이들의 놀이터로 펼쳐진다.

 

그의 시선은 버스가 지나가는 산길을 넘어 숲과 냇물, 돌담과 꽃으로 이어진다. 『남진원 동시선집』에 실린 「함지」의 첫머리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멀리서 멀리서 보면

숲 속은 작은 함지

 

숲을 나무로 만든 둥근 그릇에 담아 바라보는 상상이다. 

이어 시인은 새소리를 “팥죽 같은 새소리 떼”라고 표현한다. 숲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부엌에서 익숙하게 보던 음식에 견주자, 자연이 생활 가까이 다가온다. 「산골 버스」에서 산길을 놀이로 바꾸던 눈이 「함지」에서는 숲을 정겨운 그릇으로 빚는다.

 

이 선집에는 시인이 직접 고른 대표 동시 100여 편이 담겼다. 

「싸리울」과 「저녁 강」, 「엄마 손」과 「고향 집」 등 작품의 제목만 살펴도 자연과 가족, 고향을 오래 바라보아 온 문학의 자취가 드러난다. 어린이의 하루를 이루는 작은 것들이 그의 작품 세계를 채워왔다.

그의 문학 인생은 1976년 시조 「늦겨울 아침」으로 샘터 시조상을 받으며 첫 결실을 맺었다. 

이듬해 『아동문예』의 동시로 문단에 나섰고, 1980년에는 『월간문학』을 통해 시조시인으로 등단했다. 

 

1983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시 「봄빛」이 당선됐으며, 1996년에는 『문예한국』을 통해 문학평론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동시와 시, 시조와 평론을 오가며 걸어온 길이 올해로 반세기에 이른다. 『싸리울』, 『할아버지 이 뽑기』, 『남진원 동시선집』 등의 동시집을 펴내며 어린이 독자들과 꾸준히 만나왔다. 한국동시문학상과 한정동아동문학상 등을 받았고, 2025년에는 제62회 한국문학상 아동문학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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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원은 평소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작품 창작에 힘쓰겠다”고 말해왔다. 

반세기 동안 글을 써온 그에게 문학은 여전히 삶의 기쁨이다.

“글 쓰는 일이 좋아하는 일이기에 아파도, 가난해도 항상 최고의 행복 속에 살아간다”는 말에는 글을 쓰며 살아온 마음이 담겨 있다. 

그는 “문학으로 행복한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진심을 전한다”고도 말해왔다.

 

그가 글을 쓰며 얻은 행복은 작품을 읽는 사람에게도 건너간다. 

「산골 버스」를 읽는 아이는 산길에서 숨바꼭질을 발견하고, 함께 읽는 어른은 어린 날의 차창을 떠올린다. 고향이 그의 문학을 가까이 간직할 길도 그렇게 한 편을 읽는 데서 시작된다.

도서관에서 그의 동시집을 펼치고, 학교에서 교과서 속 시인이 우리 고향 사람이라고 알려주는 일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아이들이 시를 읽고 익숙한 산과 숲을 다시 바라보는 동안, 고향의 풍경에도 새로운 이야기가 쌓일 것이다.

 

정선의 버스 안에 「산골 버스」 한 편을 붙여두는 것도 좋겠다. 

차창과 시를 번갈아 보던 아이가 맞은편 산모퉁이에서 다른 버스를 발견하고 “또 찾았다”고 말할지 모른다. 

함께 탄 어른의 입가에도 웃음이 번질 것이다.

산골 버스는 오늘도 굽이를 돈다. 시인이 글 속에 담아둔 숨바꼭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임학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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