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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사 회화전 ‘무명의 초상’…어둠을 바라보는 열두 개의 시선

  • 최광호 기자
  • 입력 2026.08.3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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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 1일부터 서울 봉은사·하이원리조트·정선 아리샘터 순회

허달재·정종미·김창완 등 동시대 예술가 12명 참여…회화에서 조각·사진·설치까지

 

정동현, 탑. 숲., 2026, 체리원목, 178 x 178 x 227 cm..jpg

 <정동현, 탑. 숲., 2026, 체리원목, 178 x 178 x 227 cm>

 

허달재, 돌, 2024-2025, 한지에 수묵채색, 금니(金泥), 47 x 60 cm..jpg

 <허달재, 돌, 2024-2025, 한지에 수묵채색, 금니(金泥), 47 x 60 cm.>

 

김창완, 붓의 노래2, 2026, 캔버스에 아크릴, 161 x 130 cm..jpg

<김창완, 붓의 노래2, 2026, 캔버스에 아크릴, 161 x 130 cm.>

 

빛은 어둠을 밀어내지만, 예술은 때로 그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을 만나고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기 위해서다.

인간의 내면에 머무는 어둠과 흔들림을 열두 예술가의 시선으로 마주하는 전시가 서울에서 출발해 정선의 산자락으로 향한다.

 

정선 정암사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함백산야단법석이 주관하는 ‘2026 정선 정암사 회화전 《무명(無明)의 초상》’이 9월 1일부터 10월 5일까지 서울과 정선에서 순회 전시로 열린다.

전시는 9월 1일부터 9일까지 서울 봉은사 보우당에서 첫 문을 연다. 

이어 11일부터 20일까지 정선 하이원리조트 그랜드호텔 메인타워 4층, 22일부터 10월 5일까지 정선 아리샘터 1층 전시실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서울 도심의 고찰에서 시작된 전시가 정선의 산과 물길을 따라 이동하는 여정이다. 

장소가 바뀔 때마다 작품을 둘러싼 빛과 공기, 관람객의 시선도 달라진다. 전시장 세 곳은 작품을 담는 그릇을 넘어 ‘무명’을 서로 다르게 비추는 또 하나의 작품이 된다.

 

회화의 경계를 넘어선 열두 예술가

올해 전시에는 한국의 원로·중진·신진 예술가 12명이 참여한다. 회화를 중심으로 이어져 온 정암사 회화전의 전통 위에 조각과 사진, 설치 작품을 더해 전시의 공간과 조형 언어를 한층 넓혔다.

한국화의 맥을 이어온 원로 작가 직헌 허달재와 정종미를 비롯해 김병주, 박희섭, 서동욱, 송명진, 원성원, 유화수, 이강욱, 차현욱이 자신만의 시선으로 구축한 평면과 조각, 사진 작품을 선보인다.

 

가수와 배우로 대중에게 친숙한 김창완도 회화 작품으로 참여한다. 

오랜 시간 붓을 놓지 않은 그는 음악에서 길어 올린 감각과 영감을 화면 위에 옮기며 독자적인 회화 세계를 구축해 왔다.

건축가 정동현은 건축의 시선으로 정암사 수마노탑을 새롭게 해석한 설치 작품을 내놓는다. 돌을 쌓아 올린 탑의 구조와 시간, 그 안에 축적된 믿음과 기억을 현대적인 공간 언어로 풀어낸다.


열두 작가의 작품은 하나의 양식이나 해답으로 모이지 않는다. 

서로 다른 재료와 방식으로 세계를 더듬으며, 저마다 발견한 존재의 모양을 관람객 앞에 내어놓는다.

지워야 할 어둠에서 마주해야 할 내면으로

 

전시 제목인 ‘무명’은 불교에서 사물과 존재의 참모습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무지를 뜻한다. 인간을 괴로움과 윤회의 삶에 묶어두는 번뇌의 가장 깊은 뿌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무명을 단순히 몰아내야 할 어둠이나 결핍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무엇을 알지 못하는지 깨닫는 순간, 익숙했던 세계를 새롭게 감각하고 타인과 다시 관계 맺게 하는 출발점으로 읽어낸다.

 

우리는 스스로를 변하지 않는 단단한 존재로 여기지만, 자아는 수많은 관계와 경험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달라진다. 예술가는 그 불안정한 자리에 머문다. 재료를 만지고 대상을 바라보며 같은 동작을 거듭하는 동안 자신과 세계 사이에 놓인 경계를 조금씩 비워낸다.

 

수행처럼 반복되는 붓질,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시선, 자연의 질서와 흐름을 따라 존재를 감각하는 작업이 한 공간에 나란히 놓인다. 작품은 완성된 결론이 아니라 예술가가 세계와 접촉하고 흔들리며 걸어온 시간의 흔적이다.

 

관람객 역시 작품 앞에서 하나의 정답을 얻기보다 자신의 내면에 남아 있던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무엇을 보고도 보지 못했는지, 무엇을 안다고 믿어왔는지, 지금 자신을 이루는 것은 무엇인지를 조용히 되묻게 한다.

정암사 주지 천웅 스님은 “이번 전시는 우리가 끝내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흔들림의 자리, 즉 무명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자 하는 자리”라며 “보이지 않던 것들과 마주하는 이 여정이 관람객 각자의 내면을 비추는 작은 등불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전시를 찾는 모든 분의 마음에 무명을 밝히는 지혜의 빛이 깃들기를 기원한다”고 전했다.

 

정선 정암사 회화전은 정암사 수마노탑의 국보 승격을 기념해 시작됐으며 올해 여섯 번째를 맞았다. 

한 달여 동안 서울에서 정선으로 옮겨가는 열두 개의 시선은 인간이 품고 살아가는 어둠을 없애려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어둠을 오래 들여다봄으로써 그 너머에 있던 자신과 세계를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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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료는 무료이며, 전시 기간과 장소는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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