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항재에서 이어진 죽렴지맥의 맹주… 곰과 닭 전설 간직한 백두대간의 깊은 산


정선의 곰봉(1,014.9m)은 깊은 산속에 숨어 있는 전형적인 육산이다. 널리 알려진 명산은 아니지만, 정상에는 전국에서도 드문 1등 삼각점이 설치돼 있어 주변 산세를 대표하는 봉우리로 꼽힌다.
곰은 단군신화에서 인간의 어머니가 된 신성한 동물이다. 오늘날에도 반달가슴곰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야생동물로 사랑받고 있으며,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마스코트 '수호랑'과 패럴림픽의 '반다비' 역시 반달가슴곰을 모티브로 탄생했다. 멸종됐던 반달가슴곰은 지리산국립공원에서 복원사업을 통해 다시 자연으로 돌아와 백두대간을 따라 서식지를 넓혀가고 있다.
곰봉은 백두대간 함백산(1,572.9m) 남서쪽 만항재(1,340m)에서 갈라진 두위지맥이 빚어낸 산이다. 두위지맥은 백운산과 두위봉을 지나며, 두위봉에서는 북서쪽으로 죽렴지맥이 갈라져 죽렴산과 마차재를 거쳐 곰봉을 세운 뒤 다시 북쪽으로 닭이봉을 일으킨다. 곰봉과 닭이봉은 동강 동쪽 수계를 이루는 대표적인 산줄기다.

<죽렴지맥을 넘는 38국도의 마차재 건널목.>
곰봉은 완만한 육산인 반면, 닭이봉은 험준한 암봉으로 유명하다. 지역 주민들은 "닭이봉은 쉽게 오를 산이 아니다"라며 고개를 흔들 정도다. 오래전 큰 홍수로 세상이 물에 잠겼을 때 곰 한 마리와 닭 한 마리가 각각 봉우리에 올라 살아남았다는 전설에서 두 산의 이름이 유래했다. 곰봉은 웅크린 곰처럼 넓고 둥글며, 닭이봉은 닭벼슬을 닮은 바위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다.
곰봉 정상으로 가장 짧게 오르는 길은 신동과 태백을 잇는 국도 38호선 마차재에서 시작한다. 정상까지 거리가 약 2㎞에 불과해 비교적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는 코스다.
은석힐링마을과 우분트카페 안내판을 지나면 송전선로 공사 자재가 쌓여 있는 골짜기가 나타난다. 마차재 정상에는 거대한 떡갈나무와 느티나무, 단풍나무가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으며, '죽렴지맥 마차재 725m'라는 표지판이 등산객을 맞는다.
좌측 임도를 따라 내려가 골곡리 175번 송전철탑 부근에서 희미한 산길로 접어들면 죽렴지맥 능선에 올라선다. 처음 만나는 산악회 리본이 반갑고, 이어 '죽렴지맥 869.1m봉' 안내판이 모습을 드러낸다. 인적 드문 산속에서 현재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고마운 이정표다.

<마치재 영마루의 떡갈나무와 산꾼의 ‘죽렴지맥 마치재’ 안내문.>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면 시야가 활짝 열리고 거대한 송전철탑이 우뚝 서 있다. 남면 방향으로는 태양광 발전시설이 넓게 펼쳐진다. 산나물을 채취하는 부부와 마주쳤다. 토질이 비옥한 육산답게 각종 산나물이 곳곳에 자라고 있었다.
능선을 따라 20여 분 더 오르면 하늘이 열리며 넓은 헬기장 같은 정상에 닿는다. 국가시설 철탑과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으며, 별도의 정상석은 없지만 삼각점과 자작 안내판이 반긴다. 철탑 울타리에는 백두사랑산악회가 설치한 작은 정상 표지판에 '죽렴지맥 곰봉 1,016.0m'라고 적혀 있고, 수많은 산악회 리본이 정상 도착을 알려준다.
정상 주변에는 다양한 야생화와 산딸기가 자라고 있으며, 산림에서는 골칫거리로 여기는 칡도 왕성하게 뻗어 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정상의 1등 삼각점이다. 전국 대부분의 산에는 3등이나 4등 삼각점이 설치돼 있지만, 1등 삼각점은 전국에 189개뿐이다. 약 40~50㎞ 범위를 측량하는 기준점으로 활용되는 만큼 곰봉이 주변 산세를 대표하는 중요한 기준점임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는 모두 1만6천여 개의 삼각점이 설치돼 있으며, 1등 삼각점은 국가 측량망의 핵심 역할을 한다.
하산은 북서릉을 따라 동강 운치리 방향으로 이어진다. 잠시 내려서면 웅장한 소사나무가 절벽 가장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절벽을 피해 왼쪽 바위를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정상 북사면 우회길과 만난다.

<곰봉 정상의 유일한 표징,국가시설물탑과 철망의 작은 곰봉 정상안내 판데기.>

<삼각점의 제왕1등 삼각점,전국189개 중 하나가 곰봉이다.>

<터골의 첫 주민 가옥.>
폐임도를 따라 내려가다 숲이 우거진 구간에서는 희미한 산길을 따라 사면을 횡단한다. 마른 계곡을 건너면 맞은편 농로가 이어지고, 곧 운치길 583번지의 작은 마을인 터골에 닿는다.
감자를 캐던 부부는 반갑게 길을 알려주었고, 길가에는 오래된 돌배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토종개가 반갑게 짖어 맞이하고, 울창한 소나무 숲속 정자가 있는 마을숲은 한적한 시골 풍경을 선사한다. 사과 과수원과 양배추밭 사이를 지나 운치리 돈니치 마을을 통과하면 어느새 동강 물가에 이른다.
깊은 숲과 전설, 그리고 전국에서도 드문 1등 삼각점을 품은 곰봉은 화려하진 않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정선의 숨은 명산이다. 글·사진 = 이수용 기자 smmount @ naver.com
BEST 뉴스
-
아리아리 고한·사북파크골프클럽 창립
아리아리 고한·사북파크골프클럽이 3일 사북읍행정복지센터 소회의실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공식 출범했다. 이날 발기인들은 초대 회장에 이민규 고한사북남면청년주민㈜ 대표를, 감사에 김기호 사북신협 전무를 각각 선출했다. 새로 출범한 클럽은 파크골프를 통해 주민들의 ‘건강한 백세’를 뒷받침하는 ... -
11억 원에 팔린 사북 도사곡 군유지…20년째 멈춘 개발
주택단지 조성을 목적으로 민간에 매각한 사북 도사곡의 옛 군유지가 20년 가까이 풀만 무성한 채 방치(사진)되고 있다. 정선군의회와 주민들이 우려했던 대로 개발은 멈추고 소유자만 여러 차례 바뀌면서, 정선군이 부지를 다시 매입해 공공자산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 -
요양보호사 자격증 있어도 요양원 취업은 기피
요양원 문 앞에서 취업의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은 손에 쥐었지만, 정작 그 문을 넘지 않는다. 노인요양시설의 인력난은 단순한 ‘사람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자격을 갖춘 이들이 왜 현장을 외면하는가에 대한 물음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관련기관에 따르면 ... -
“옛 사북 동원탄좌 터에 36홀 파크골프장 조성하라”
고한·사북 주민들이 폐광지역 상경기 회복과 스포츠마케팅 활성화를 위해 36홀 규모의 파크골프장 조성을 강력히 촉구했다. 아리아리 고한·사북파크골프클럽은 7일 성명서를 내고 강원랜드와 정선군에 옛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직원아파트 터를 대규모 파크골프장으로 조성해 달라고 공식 제안했다. &n... -
정선 인구 1,858명 늘었지만 아동은 125명 줄었다
청소년 10명 증가에 그쳐…청년은 390명 늘며 11.8% 증가 농어촌 기본소득 영향으로 강원랜드·협력업체 직원 주소 이전 지난 1년간 정선군의 인구는 크게 늘었다. 그러나 그 증가의 물결은 모든 세대의 기슭에 고르게 닿지 않았다. 청년 인구는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지만, 정작 아이들의 ... -
내리 늘던 정선 인구, 10개월 만에 멈췄다
농어촌 기본소득 타고 10개월 이어진 인구 증가세 마감 빈집 많아도 살 집은 부족…주거·일자리 확충이 인구 정착 관건 가파르게 오르던 정선군의 인구 곡선이 10개월 만에 아래로 방향을 틀었다. 감소한 인구는 7명이다. 월...




